■ 전국도민일보 2024년 8월 29일 금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우체국을 지나며
문무학
살아가며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가을날 우체국 근처 그쯤이면 좋겠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엔 우체국 앞만 한 곳 없다
우체통이 보이면 그냥 소식 궁금하고
써 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다
그대가 그립다고, 그립다고, 그립다고
우체통 앞에 서서 부르고 또 부르면
그 사람 사는 곳까지 전해질 것만 같고
길 건너 빌딩 앞 플라타너스 이파리는
언젠가 내게로 왔던 해묵은 엽서 한 장
그 사연 먼 길 돌아와 발끝에 버석거린다.
물 다 든 가로수 이파리처럼 나 세상에 붙어
잔바람에 간당대며 매달려 있지만
그래도 그리움 없이야 어이 살 수 있으랴.
♦ ㅡㅡㅡㅡㅡ‘써 놓은 편지 없어도 우표를 사고 싶’어 지던 때가 언제였나? 기다리는 소식 없이도 빨간 우체통을 보면 왠지 반가운 편지가 들어있을 것만 같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손 편지가 없어지고, 집 가까이 있던 우체국과 우체통이 사라지고, 공중전화부스도 볼 수가 없다. 손 안에서 모든 소식을 주고받으니, 손편지를 받아 본 기억도 까마득하다.
얼굴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사람과 가슴 두근거리는 펜팔을 하기도 하고, 밤새 고쳐 쓴 연애편지에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고 돌아오는 내내 가슴 쿵쾅거리던 설렘은 다시없지만, 옛 시절의 그리움은 여전히 남아서 고지서가 대부분인 우편함을 열 때마다 잠시 기대감이 부풀기도 하는 것이다.
우체국 앞을 지나며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우연히 정말 우연히 만날 수 있다면.....
해묵은 엽서 한 장 같은 가로수 잎들 발아래 버석대는 가을이면, 누군들 잊지 못할 그리움 하나씩은 떠올리지 않을까?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