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2.24 03:00
[에르메스가 반한 최고급 캐시미어… '콜롬보 노블 파이버'에 가다]
야생 동식물 국제 협약 준수… 동물 털 뽑지 않고 빠지면 모아
열매 빗질 등 94단계 공정 거쳐 "미래 원단은 방수되는 캐시미어"
엉킨 염소 털 뭉치를 꺼내자 마른 먼지가 뽀얗게 날렸다. "몽골에서 공수해온 캐시미어(cashmere) 털입니다. 염소들이 털갈이를 하는 봄에 현지 여성 200명이 땅에 떨어진 털을 일일이 주워 모아 저희에게 보내준 거지요.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을 준수하기 때문에 저희는 살아있는 동물을 절대 괴롭히거나 죽이지 않아요. 그 귀한 털로 아무도 생산해내지 못하는 섬유를 저희가 만들어내니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난 '콜롬보 노블 파이버(COLOMBO noble fibres·이하 콜롬보)'의 CEO 로베르토 콜롬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콜롬보는 캐시미어와 비큐나, 과나코 등 최상급 섬유를 생산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캐시미어의 특징은 '가볍다, 부드럽다, 따뜻하다'. 그중에서도 콜롬보 캐시미어는 노랑·연두·체리빛 등 색깔이 다양하고 신축성이 좋다. 특히 티베트 염소 털로 만든 금빛의 얀지르(Yangir)는 콜롬보에서만 생산되는 고급 섬유다. "금과 다이아몬드를 빼고 동물에서 생산된 원단 중 가장 비싸지만 인기가 좋다"는 게 콜롬보 측 설명이다.
- 최고급 섬유를 만드는 콜롬보 노블 파이버 공장에서 디자이너가 붉게 물들인 캐시미어 재킷에 핀을 꽂아 허리선을 살리고 있다. 캐시미어 세탁과 완제품 염색을 업계 최초로 개발한 콜롬보 노블 파이버는 25년 전 늘어나는 캐시미어 스판 원단을 도입해 또 한 번 업계를 놀라게 했다. /콜롬보 노블 파이버 제공
그래서 콜롬보 섬유는 에르메스와 루이비통, 프라다, 구찌, 디올, 휴고보스 등 명품 브랜드들도 앞다퉈 구입해 쓰고 있다. 해마다 매출액 50% 성장을 일궈냈고, 한국에도 진출해 최근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에 매장을 냈다.
콜롬보 공장은 밀라노 근교 보르고세시아에 있다. 털 가공에서 염색까지 모든 공정이 이뤄지지만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공기도 쾌적했다. "그린 럭셔리(Green Luxury)를 꿈꿉니다. 마지막으로 염색한 물은 사람이 마셔도 탈이 없을 만큼 깨끗하게 해 수질을 보호하지요."
- (위부터) 태양 신의 선물로 여겨질 만큼 사랑받는 비큐나. 거친 원단을 윤기 나도록 빗질할 때 쓰는 카르도 식물의 열매. 다양해서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캐시미어 색상. 콜롬보 노블 파이버의 CEO인 로베르토 콜롬보. /콜롬보 노블 파이버 제공
콜롬보가 손꼽는 캐시미어 생산지는 몽골 알라샨(Alashan)이다.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춥고 건조할수록 털이 짧고 촘촘하기 때문에 촉감 좋고 보온성 뛰어난 캐시미어를 만들 수 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걸 주워서 사람 손으로 겉 털과 속 털을 나누다 보니 1년에 염소 한 마리에서 얻을 수 있는 캐시미어는 300g에 지나지 않는다. 비쌀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모인 털은 공장에서 총 94단계의 생산공정과 18회의 중간점검을 거쳐 한 폭의 섬유가 된다. 콜롬보가 루이비통에서 목도리를 만드는 데 쓰일 100% 캐시미어 원단을 보여줬다. 첫 단계를 겨우 거친 캐시미어는 어부의 바다 그물처럼 거칠고 투박했다. "가로·세로 실을 수차례 꼬아서 단단하게 압축해야 고급화 처리를 할 때 원단이 느슨해지는 걸 막을 수 있어요. 캐시미어도 과학적 공정을 밟아 나오는 결과물입니다."
완성된 원단은 1m에 40유로를 받는다. "일반 캐시미어 원단(12유로)에 비하면 비싸지만 원단·원사는 투자를 많이 해야 해서 유지가 힘들다"는 게 콜롬보 얘기다. 명품 업체를 상대하다 보니 요구 사항이 많아 개발은 필수다. 콜롬보는 "30년 전 20곳에 달했던 섬유 업체들이 다 사라지고 전 세계에 겨우 5곳 정도 남아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아름다운 원단 수준에 올라선" 콜롬보가 미래에 선보일 첨단 원단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나의 천인데 앞은 캐시미어, 뒤는 나일론으로 서로 다른 것. 게다가 완벽히 방수되는 캐시미어예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