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신학생 간증<2>
이후 저는 중국 **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다가 또 다시 강제 북송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다시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것은 알았지만 하나도 고맙지 않았습니다.
다시 중국으로 탈북해서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를 거쳐서 오는 과정에 베트남에서 또 붙잡혔습니다. “아, 이젠 정말 죽었구나 싶었습니다.” 북한으로 끌려가서 고생하다 죽기 전에 기회를 엿보다가 뭐라도 있으면 자살하자고 어머니와 약속했습니다.
베트남 감옥에 한 15일 정도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저희를 식당으로 데려가서 한 끼 거하게 사주더니 저희를 풀어주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도 가을에 경기도 부천지역에 집을 배정받아 갔습니다.
얼마 후에 **에서 만났던, 저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던 **이 수소문해서 저를 찾아 왔습니다. 그분은 저희 아버지와 함께 북송되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을 통해서 저의 아버지의 마지막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 너희 아버지는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셨어.”라고 하시면서 말문을 여셨습니다.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70여명의 탈북민들이 중국 ** 감옥을 거쳐서 북한 **로 이송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온성군 보위부(국정원) 마당에 모두 무릎을 꿇게 하고 머리를 땅에 박게 했습니다.
한참 후에 한 고위급 간부가 와서 “여기서 하나님 믿는 사람 일어서라!” 이 말의 의미는 지금이라도 신앙을 거부하면 살려주겠다는 뜻입니다. 순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이 흘렀습니다.
그때 그 고요한 침묵을 깨고 일어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너희 아버지 ***이었다.” 뒤이어서 몇몇 선생들이 더 일어났고 그 일어난 사람들은 군인들이 어디론가 따로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 수용소에서 순교하셨다.”라고 들려주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10년 넘도록 저의 귀와 눈과 마음은 하나님을 향해서 꽁꽁 닫아버렸습니다. 한국에서는 하나님을 찾지 않을 최적의 조건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더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완강했던지 하나님께서 꿈으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천국으로 데려가서 구경시켜주셨습니다.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어린이부터 노인들까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아버지가 저에게 “난 이곳에서 이렇게 잘살고 있다.”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 꿈을 통해서 중요한 몇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다는 것과 저의 아버지는 순교자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무책임해서 죽게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길이 가장 영광스러운 길이며, 그 길이 가장 큰 복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이걸 깨닫고 나서 하나님에 대한 상처와 아픔이 조금은 회복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제 삶이 그 전과 확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당시 저는 결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더욱이 아내가 첫째 아이를 임신 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으로서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계기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마치 뾰족한 절벽 꼭대기에 서 있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통일을 준비하라.”라는 마음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제가 하나님께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처럼 저도 그렇게 데려가시려고요? 전 못합니다. 죽어도 자신 없습니다.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하고 완곡하게 거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가까웠는데도 그 마음이 사라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때에 중국 **에서 저희 아버지와 함께 선교사역을 하셨던 탈북민 목사님을 만났는데 놀라운 건 그 목사님이 제가 사는 옆 동네에 교회를 개척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그 목사님을 따라서 교회를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그 교회에서 3년째 전도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집을 유지할 수 있는 돈도 쌀 사 먹을 돈도 떨어졌습니다.
아내와 태어난 지 7개월 되는 첫째 아이를 데리고 교회로 가서 생활했습니다. 돈이 없으면 죽을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잘 살아지더라고요. 하나님은 제가 이 땅에서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단순히 이 땅에서 목회자 한 명을 더 만드시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탈북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이 나라와 민족을 복음화하는 사명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계속해서 광야와 같은 상황으로 내모셨던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마른 눈으로 봐야 잘 보이지만, 하나님은 젖은 눈으로 봐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가르칠 수 있는 탈북민 출신 ‘성경 강사’입니다. 나중에 북한이 열렸을 때 고향으로 가서 형제자매들에게 남한의 그 어떤 것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때를 위하여서 저는 현재 성경 66권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 형식으로 강의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지난 4년간 구약을 완성했습니다. A4용지 기준으로 대략 2000장 정도는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신약의 연구 및 강의안 작성을 진행하고 현재 사역하는 탈북민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의 정서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난해한 신학적 이론이나 이념이 아닌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로 풀어서 전하고 있습니다.
남한 교회와 목회자들로부터 몇 년씩 아무리 들어도 이해도 안 되고 점점 더 난해하기만 했던 성경이 탈북민 출신 사역자가 전하니까 너무 이해가 쉽고 성경이 재미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말씀이 탈북민들의 마음에 심겨지니 자연스럽게 인격이 변화가 되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방향이 변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들이 통일이 되었을 때 저 북한 땅에서도 우리 동포들에게 일어날 그 날을 기대하며 말씀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1Grace Nah
첫댓글 너무 은혜로워서 두 번에 나누어 전문을 실었습니다.
사실 미국에서는 모두 자기가 살기에 바빠서 탈북민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동영상에도 많은 사람들의 간증이 나와 있고 다 비슷하고요.
그러나 특별히 미국에서 후원하는 우리 새터민 신학생들의 큰 꿈이 남북통일과 함께
아름답게 이루어져서 주님께 영광돌리는 위대한 복음통일의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서 미국에서 성도님들이 더 뜨거운 관심을 갖고
기도하기를 원해서 이런 운동을 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