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자가 귤 되랴
귤화위지는 순자(荀子) 권학편에 있다. 춘추전국시대 제(齊)의 왕이 초(楚)를 찾아 ‘초에는 지혜롭고 재능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왜 제에 오는 초 사람들은 도둑이 많을까?’라고 물었다. 이에 순자가 ‘강남의 귤나무를 강북으로 옮기면 탱자나무가 된다. 이는 토양과 기후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초나라 사람이 제나라로 오면 풍습과 환경이 다르기에 악행을 저지르게 된다.’라고 대답했다.
당시 제나라는 우리 조상 북방민족이 산둥반도에 세운 청구국의 후예이다. 초나라 역시 북방민족인 묘족이 묘도열도를 건너 장강으로 이주해 세운 나라로 당시에는 남방오랑캐로 업신여김당한 제비가 살던 강남이다. 이 초를 제 왕이 도둑이 많다고 은근히 헐뜯었으나, 순자는 초나라 사람 탓이 아닌 제나라 풍습과 환경 탓이라고 에둘러 한 방 먹였다.
순자는 춘추전국시대 후기에 제나 초가 아닌 조나라 사람으로 제나라 직하학궁의 총대표를 세 번이나 지냈으니 서울대 총장을 세 번 한 셈이다. 우리가 학창시절 순자 성악설과 맹자 성선설을 구별할 때 순(荀)을 순(順)으로 생각해 순한 순자가 성악설이라 외웠다. 그렇게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선한 것은 수양에 의한 것일 뿐이다’라고 가르친 스승이다.
아무튼, 귤나무가 좋지 않은 환경에 열매가 부실해지겠지만 탱자나무가 되진 않을 것이니, 이는 처한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는 비유이자 교훈이다. 따라서 좋은 환경을 만들고 유지하면 개인은 물론 국가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맹자 어머니의 자식 교육인 맹모삼천지교,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근묵자흑,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그것이다.
우리네 삶도 봄이면 남쪽 꽃소식에 움츠렸던 마음과 몸이 활기를 얻는다. 붉고 흰 매화가 마음을 흔든다. 노오란 산수유가 나비로 훨훨 날고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에 몸까지 들썩이니, 세태에 찌든 팍팍한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주는 위대한 자연의 조화이다.
그리고 이 자연의 조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세상사의 중추인 정치이다. 도덕이나 규범,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이면 으뜸이다. 하지만 세태는 세상사의 옳고 바름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다 자기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고 적용한다. 판단할 법이 있지만, 이 법마저도 특정 집단과 세력에 편향적이다. 특히 정치력이 실종된 한국 사회는 정치가 제일 썩었다는 비판과 비난을 받는다. 작금의 12·3 내란 사태가 더욱 그렇다. 내란 수괴가 만면에 미소 짓고 두 주먹 불끈 쥐어흔들며 마치 개선장군처럼 옥문을 나선다. 포승줄로 묶은 모습이나 머그샷 한 장도 없었다. 이 일이 탈옥임에 분명하고 법 위에 군림한 것이지만 오히려 정당한 법이라고 우긴다.
얼마 전 1979년 박정희 유신체제의 막을 내린 김재규의 당시 취조 때의 고문 사실과 재심 결정 사실이 알려졌다. 이 김재규의 포승줄에 묶인 모습 공개는 특정 중대범죄의 수사 및 재판 단계에서 신상정보 공개에 대한 대상과 절차 등을 규정한 이른바 ‘머그샷 공개법’이다. 특정 중대범죄는 내란·외환죄, 범죄단체조직죄, 폭발물사용죄 등이다.
당시 김재규는 김계원 비서실장에게 ‘형님, 각하를 좀 똑바로 모십시오!’라고 크게 말하고 박정희에게 ‘각하, 이따위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올바로 되겠습니까? 너 이 새끼 차지철, 아주 건방져! 죽일 놈!’ 하며 권총을 쐈다고 한다.
이 김재규의 결단에 대통령 권한대행 최상목이 겹친다. 최상목은 윤 정부 들어 40번째, 대행의 9번째 거부권을 행사하며 앵무새처럼 ‘내용상 위헌성이 상당하고…’를 읊조렸다. 정치의 최정점에 있는 자가 서민의 삶이나 나라의 역사와 미래 걱정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이익과 정권 연장의 기득권만 지킨 것이다. 참으로 김재규가 말한 버러지…, 아니다, 버러지는 비료라도 된다. 그런데 티브이 생중계로 지켜본 버러지만도 못한 내란범을 위해 버러지만도 못한 자가 법과 정치를 지 맛대로 주물럭거린다. 온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마저 짓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