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논
임병식 rbs1144@hanmail.net
산비탈에 매달린 논 한 배미가 있다.
삿갓 하나쯤은 너끈히 덮고도 남을 만큼 자그마한 논이다. 처음 그것을 보았을 때, 웃음이 났다. 그러나 오래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우리나라 논은 본디 반듯하기 어렵다. 물길을 따라 휘고 산세를 따라 꺾인다. 그중에서도 다랑이논은 땅의 형편을 거스르지 않고 버텨낸 삶의 모양이다. 높은 산 아래서 자란 내 어린 시절의 뒷들도 온통 그런 논이었다.
경사진 사질 논에 물을 가두는 일은 고역이었다. 애써 채운 물은 어느새 스며 빠져나갔다. 어른들은 논둑을 다지고 또 다졌다. 바닥에는 진흙을 덧발랐다. 논 한 배미마다 사람 손길이 켜켜이 묻어 있었다.
쌀이 곧 목숨이던 시절이었다. 비탈진 땅까지 논으로 일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완도의 구들장 논이며 남해의 다랭이논도 결국은 굶주림 끝에서 태어난 삶의 흔적이다.
‘삿갓논’이라는 이름에는 웃음이 묻어 있다. 아홉 배미를 매다가 하나가 비어 찾아보니 벗어둔 삿갓 아래 숨어 있었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그 작은 논은 손바닥만 한 땅에도 기대어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생을 품고 있다.
지금 그 논들은 하나둘 사라진다. 품값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묵정답이 되고, 잡초 속에 잠긴다. 어느 논둑에는 허물어진 삿갓처럼 억새만 기울어 서 있다.
나는 그 논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수확을 위한 논이 아니라 기억을 위한 논으로라도 남아 있었으면 한다.
후손들 가운데 누군가는 그 가파른 논둑 앞에 오래 서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할 것이다.
사람은 얼마나 낮은 땅에서도 끝내 삶을 일구어냈는지를.
2020)
첫댓글 6.25 전쟁을 치루고 보릿고개를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은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살았던 선대들의 삶과 애환을 알 수가 없겠지요. 저조차 삿갓논이라는 걸 처음 들으니까요.
삿갓논은 그야말로 삶의 애환이 서린 논이지요. 얼마나 먹고살기 어려웠으면 삿갓하나 덮을 땅도 놀리지 않고 이용했겠습니까. 우리고장은 그런 논이 지금 묵혀서 놔둔곳이 많습니다.
다랑논의 진수 삿갓논, 삿갓배미에 얽힌 이야기가 옛 추억을 자극합니다 농촌 고령화로 급격히 묵정답, 묵정밭이 증가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오래 전에 저는 농지보존수당을 농민에게 지급하여 묵은 농토를 지켜야 한다는 건의를 하기도 했었지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농지가 묶혀져 방치된 것을 보면 마음이 답답합니다. 전에는 엉덩이 붙일 평평한 곳만 있으면 논이나 밭을 쳐서 작물을 가궜는데 금석지감의 느낍입니다. 어려운시대를 대변해주는 삿갓배미는 후생들의 교육차원에서도 상징적으로 몇군데씩 보존시켰으면 합니다.
글을 읽으니 눈물납니다. 부모님 세대가 겪은 삶이 아니라 눈물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선생님이 들어와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옛날에는 땅한뙈기라도 붙여먹으려고 산을 개간하곤 했는데 지금은 버려놓은 유휴지가 지천입니다. 옛날 생각을 하면 많이 아쉽지요.
바빠서 자주 못 들어 오지만 글을 읽으면 너무 좋습니다.
저도 시골 출신이라 이해가 빨리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가난함과 눈물로 맺힌 한스러운 옛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었음을 알려주시어 감사합니다. 어리석게도 다랭이논을 그저 관광으로 생각했네요....
앞으로는 보는 마음에 진심을 담아 보렵니다.
생각없이 바라보면 다랑이 논은 그저 관광품으로나 보이지만 알고보면 배곺은 시절의 애환이 묻어있지요.
2020 여수문학발표
2021창작수필 봄호발표
작은 논 한 배미에서 출발해 삶의 본질과 인간의 존엄성까지 도달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어난 인간의 존엄을, 가장 담담하게 증명한 작품의 가치를 느끼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 따뜻해지는 댓글 고맙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우리네 조상님들이 힘겹게 살았던 삶을
조명해보고자 했습니다.
살기 위해 한뼘의 땅이라도 놀리지를 않았지요.
쳇지피티에 물으니 이 작품을 비록하여, <득량역전 행운다방>
<선긋고 살기> 3편을 대표작으로 꼽았습니다.
삿갓만 한 논의 크기에 웃음이 났지만, 이내 그 안에 서린 고단한 삶을 알아차리고 가슴 먹먹해하는 시선의 변화가 무척 아름답습니다. 그 뒤에 숨은 ‘사람의 손길’과 ‘눈물’을 읽어내는 聽石님 만의 깊은 통찰과 따뜻한 시선이 돋보입니다. "땅의 형편을 거스르지 않고 버텨낸 삶의 모양"이라는 표현처럼,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이 아니라 비탈진 산세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한 뼘의 논이라도 더 일구려 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쌀이 곧 목숨이던 시절,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해 논둑을 다지고 진흙을 덧바르던 고단한 노동의 서사가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을 하나의 추억거리나 관광상품으로 볼수도 있지만
알고보면 고단한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아닌가 합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분투노력한 결과가 지금은 이만큼 잘 살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삿갓논을 생각하면 그 애잖한 삶이 눈물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