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때는그랬지 1 / 김유경
사면이 바다와 산으로 둘러져 있고 오직 교통 수단으로는 하루에 두 번 육지와 연결 해 주는 광진호, 광양호, 배 두 척이 전부다. 시계가 흔치 않았던 시절 마을 사람들은 배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 하고 시간을 가늠 한다. 나의 탯줄이 묻혀 있는 그곳 시서리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무골 이라고 했단다.
동네의 가호 수 는 백여 가구가 넘었다. 동촌. 서촌. 우대미. 뒷사장. 몽난게., 산꾸지.로 나뉘어 져있다.
산꾸지는 우리 집을 포함 네 가구가 오손도손 산과 이웃이 되어 살았다. 무덤이 많은 작은 동산도 지나서 올라가야 되고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달이 없는 밤에는 마실 다니기가 쉽지않았다.
산꾸지로 새집 지어 이사가는 해에 나는 엄마 뱃속에서 아주편히 살고 있었다. 아부지는 새집에 이사온 기념수로 무화가 나무를 심어 나와 함께 잘지라 한아름 고목나무가 되었다. 땅이 갈라질듯 강렬한 무더위에는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며 오가는 사람들의 간식거리도 제공했다.
잘익은 무화과의 꽉찬 속은 선홍색 알멩이에 한입물면 달달하고 식감이 부드러워 입에서 사르르 녹는다.
그무화가 맛은 산꾸지를 떠난 이후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었다. 키가큰 순심이는 시서에 자주 오는 영숙이 에게 아낌 없이 주는 나무에 심부름 꾼이되기도 했다. 순심이는 체력이 좋아 웬 만한 남자아이는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키가작고 허약한 나는 힘센 순심이 에게는 이길 수 있었다. 화가나면 순심이 등짝을 앙앙 거리며 마구 때려도 순심이는 그냥 큰소리로 웃기만 했다. 순심이는 친구가 어닌 듬직한 언니 같았다.
가을이 들쯤 칫간을 지나며 논사밭에 고추 잠지리는 빨래 바지랑 대와 *문저리* 말리는 장대 꼭대기를 분주히 오가며 멍석에 말려놓은 빨간고추가 친족임을 확인이라도 하듯 머리 를 제바르게 돌리며 살펴본다.
큰오빠는 긴줄에 낙시바늘에 지렁이 를 꿰어 *한산테미* 어께에 메고 또께비 섬 썰물에 때마추어서 뻘밭에 쭉놓아 두면 밀물이 왔다가 다음 썰물이 될때 살이 잔뜩오른 가을 문저리가 낙시 바늘 마다 마다 물려 있다.
가끔은 시커먼 짱뚱이도 한몫 하는데 잘말린 문저리는 겨울월동 준비로 충분했다. 엄마는 쌀 뜸물을 받아서 시원하게 국을 끓이는데 참 맛있었다.
뼛속 까지 파고든 추운겨울 빨강 엑스 란 내의가 유행할때 큰언니는 아부지께 빨간내의 사달라고 조르다 내의는 커녕 온집안 식구가 그날 참기 힘들 만큼 곤욕을 치르고 언니는 서럽게 울었다. 동냥은 않해주고 쪽박만 껬다. 오랜시간이 지났어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엄마는 정지 *부숭*에 작은 호리병 하나 를 두고 큰 언니에게 밥할때 마다 쌀 한 줌씩 병에 넣어 좀지리가 모아 지면 팔아서. 언니사고 싶은걸 사라고 했다. 이후 큰언니는 열심히 모았는데 좀지리 팔아 뭘샀는지 아직도 모른다,
문저리 * 경상도는 꼬시레기
한산데미 * 짚으로 엮은 바구니 용품
부숭 * 부뚜막
좀지리 * 한줌씩 모으는 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