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9년에는 에로에 제지공장이 생겼다. 이리하여 중국식 제지기술은 12세기에는 널리 유럽에 퍼져서 종래의 양피지와 파피루스를 대신하게 되었다.
종이는 어떤 혜택을 가져왔을까?
이 무렵의 종이 재료는 주로 아마포와 무명천 누더기였다. 아마는 이집트에서 유럽에 걸쳐 널리 옷감으로 쓰인 섬유 식물이고, 목화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제조기술은 같아도 그 원료는 중국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인쇄술의 발달로 인해 종이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이들 재료만으로는 모자라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광범하게 분포된 식물섬유의 이용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1719년 프랑스의 화학자 로무르는 목재펄프를 이용하는 제지법을 창안했으나 그 반응은 미미했다. 목재펄프의 이용은 1843년 독일의 켈러에 의해 완성되었고, 때마침 도서의 수요증가와 더불어 이 목재펄프의 이용은 급속히 보급되었으며, 이윽고 북유럽이나 캐나다 등 삼림자원이 풍부한 나라의 새로운 산업으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펄프에는 2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목재의 셀룰로오스부문을 화학처리에 의해 제거한 것인데 내구성이 있는 고급지를 만들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쇄목펄프인데 목재를 그대로 분쇄한 것인데 내구성은 없으며, 하급지를 만든다. 그러나 이 펄프의 사용으로 누더기천의 이용은 쇠퇴되었다.
잘 분쇄된 섬유로 종이를 뜨는 데는 다년간 손으로 하는 방법이 쓰였다. 이것은 나무틀 바닥에 가는 그물이나 대나무발을 댄 것으로 물에 풀어넣은 섬유를 건져올리는 것이다. 수분을 흘려버린 다음에 그물이나 대나무발에 남은 소재를 벗겨내어 건조시킨다.
이렇게 품이 많이 드는 수공업 과정을 기계화 하려는 시도가 일찍부터 있어 왔는데, 18세기 말에 프랑스의 로베르가 기다란 금속망 위에 계속적으로 펄프액을 붓는 방법을 고안했다. 1803년 영국의 돈킨은 이것을 개량하여 금속망을 연결운동하는 것으로 고쳐서 제지속도를 높였다. 1805년 브라마는 금속망을 드럼형에 내장하는 회전형을 고안했고, 1805년 영국의 디킨슨은 이것을 개량했다. 이 기계는 무한한 운동을 하는 여과망을 가져서 종이가 연속적으로 제조되어 나온다. 이렇게 해서 19세기 중엽에는 하루에 1톤의 종이를 뜨는 연속초지기가 탄생되었다.
우리나라의 제지술도 일찍부터 발달하여 고려의 불승 담징은 일본에 건너가, 서기 610년 종래의 일본 제지법을 개량했다고 일본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