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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시&추천수필 스크랩 `우리詩` 8월호 신작소시집, 유진의 시
홍해리 추천 0 조회 115 17.08.06 04:35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 칡꽃

아득한 거리 - 유진

 

새벽이 붐비는 생선시장 건너편

고양이 울음이 세워진 차바퀴를 굴린다

 

생선가게 주인이 한 팔만 뻗으면 고무통에 던져질

파랗게 질린 눈, 토막 난 피 냄새를 물고 건너려다

놓쳐버린 길바닥을 향해

집요한 긴장을 조이는 어린 고양이에겐

생선머리 한 토막이

시동 걸리지 않는 4톤 트럭보다 더 무겁다

 

저 막막하고 아득한 거리

먹이를 붙든 것인지 먹이에 붙들린 것인지

 

서른두 살 비정규직 남자의 사무실

서랍 안의 사직서 봉투와 불끈 쥔 주먹 사이

그 막막하고 아득한 거리

   

 

 

스몸비족*

 

나는 없지, 내가 없으니 타인도 없어

까닭 없이 지청구할 일도 없고 부딪친다고 치켜들고

뺏거나 뺏기지 않으려는 신경전도 필요 없지

뉴스와 쇼핑, 유익한 정보와 게임은 물론 방향감각 길안내도

고개 숙인 자들만이 공유하는 거야

 

흔들리는 전동차나 버스, 공원 숲 근처나 정류장, 침대와 책상, 소파나 식탁까지

엉덩이를 걸칠 수 있는 곳은 모두 점령하고

길거리를 점령하고, 달리는 차와 도로를 점령하고

지구를 점령하고 머지않아 우주를 점령할 테니까

나를 점령한 내가 잠들기 전까지는 고개를 숙여야해

 

우산을 쓴 게임이 물웅덩이를 밟으면

오른쪽으로 철벅 왼쪽으로 철벅

튀어 오르는 빗물을 가방 속에 접어 넣고

전 속력으로 질척질척 뭉개버리는

하루, 하루, 하루

고개 숙인 공손이 더불어 우주를 정복하는 날까지

 

---

* 스몸비(Smombie) : 스마트폰(Smart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

   

 

 

꽃의 값

 

계절을 수선한 소국화분 세 개가

세 카트에 나란히 실려 간다

되가웃쯤의 찬거리 비닐봉지는

한 팔에 매달려 달랑거리나 말거나

8차선도로를 일렬횡대로 점령한

아줌마 셋 꽃수다가

5000 꽃값의 천배 꽃마지기다

짜증스런 여름악다구니들을 말끔하게 먹어치운

저 깔깔거리는 꽃송이들

수학공식 한번 배운 적 없어도

뻣뻣한 아침을 나긋한 저녁으로 갈아 끼우는

아줌마들의 시리고 뜨거운 궤도를 훤히 꿰고 있다

   

 

 

편견

 

  한동안 바다를 읽었다. 빛과 바람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는 물결, 빛깔, 소리... 저 다변의 감정들을 넓고 푸른 바다라고 단정 지은 당신은 누구였지

 

  잘못 읽힌 바다, 깨지고 부서지는 굴욕과 기억의 편린들 둥둥 떠다니는 감정의 바다를 너 혹은 나라고 읽어도 될까

  읽고 읽어도 모를 사람, 읽고 읽어도 모를

  나를 잘라낸다

  눈을 자르고, 입을 자르고, 귀를 자르고, 몸통을 자르고

  다시 나를 퍼즐한다

 

  작은 물 자락이었다가, 너울파도였다가, 해일로 치솟은 산을 일시에 뭉개버리고 다만 넓고 푸른 바다라 일축해버리고 은근슬쩍 낙천주의라 귀띔하는 당신을

  그저

  당신이라고 믿어도 될까

   

 

 

돌직구

 

불숙 튀어나온 입이었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이었다

 

비수匕首에 꽂힌 비수悲愁

 

말에 베인 상처는 두고두고 큰 힘이 된다는 걸

아문 상처자국을 보고서야 알았다

   

 

 

시 너머의 시

 

  시인이 되고 싶다는 내게

  시인 당선자가 보내준 계간지의 심사평을 읽는다

 

  새로운 시, 시 너머의 시, 낯설되 절실하고 또 뜨겁되 낯설며 신선하되 뜨거운 시, 기존의 시가 가진 문법과 언어들에서 탈피, 재기발랄한 언어들 속에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넉넉하고 날카로운 인식의 징후가 있고, 언어와 시각이 개인의 내면에만 폐쇄적으로 갇혀있지 않고 세상과 개인이 두루 열려 소통하고 있는 시. 구름과 나무와 바람과 빗방울이라는 전형적인 자연의 이미지들을 현대사회의 일상으로 끌어와서 부박하거나 남루한 삶의 편린들을 신선한 감각으로 재구성하고 재해석한 시. 염결한 삶을 진지하게 인식하고 사유하는 태도, 거칠지만 힘 있는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시. 소멸과 확장에 관해 사유하고, 언어를 장황하게 소비하지 않고 절제하면서 시의 구조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그 현실을 비교적 자유롭게 상상하고 해석하는 조곤조곤한 어조로 읽는 이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시

 

  아, 어쩌나 시 너머의 시

  소화력 부족한 나는 시인은커녕 독자가 되기도 글렀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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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08.08 16:00

    첫댓글 어이쿠! 어이 이사장님께서 이렇게......무지 영광입니다요.ㅎㅎㅎ

  • 작성자 17.08.09 04:43

    제주도에서 옮겨 놓았을 뿐입니다.
    무더위 잘 이겨내시고 26일 모임에서 뵙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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