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창에 있는 두암초당(斗巖草堂)을 다녀 왔습니다.
달랑 카메라 하나들고 혼자서 다녀왔읍니다.
그동안 보아왔던 정자중 저에게는 최고의 정자였읍니다.
흰구름이 이마를 스치는 곳 같은 자리 천길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걸어 둔, 한 평 남짓 방 하나를 두고 좁다란 마루를 두른 조그마한 정자로, 암벽에 끼워져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습니다.
두암초당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반암리 아산초등학교 뒷편, 영모정 뒷산에 있는 일제 강점기 초당으로 호암 변성온(1530∼1614)과 인천 변성진(1549∼1623) 형제가 만년에 머물렀던 곳입니다.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 이황과 교류한 호암의 인품이 마치 곡식을 되는 말(斗)같이, 저울추같이 평평하여 치우치지 않았다고 ‘두암’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두암초당상량문」에는 “용공부자 2486년 을해 3월 24일 임자 임신 진시 상량 자좌 구(龍孔夫子 2486년 乙亥 3月 24日 壬子 壬申 辰時 上樑 子坐 龜)”이라 쓰여 있으며, 퇴계 이황, 노사 기정진, 하서 김인후의 편액등 온갖 시들이 담긴 편액이 즐비하였읍니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6.62㎡ 남짓한 공간에 지어진 조그마한 정자로, 고창 출신으로 판소리의 대가였던 만정 김소희 명창이 15세 때 득음한 곳이기도 하나입니다.
두암초당의 현판은 구한말 일본강점기라는 격변기에 호남화단의 마지막 시(詩)·서(書)·화(畵) 삼절(三絶)’로 불리는 염재 송태회(念齋 宋泰會·1873∼1943)선생이 썼습니다.
염재 선생은 우리고장 동복 사평(지금의 화순 남면 사평)출신입니다.
▲ 두암초당의 ‘두암초당’편액
▲ 두암초당의 원경
▲ 노사 기정진의 편액
▲ 하서 김인후의 편액
▲ 퇴계 이황의 편액
▲ 후학 김정회의 편액
▲ ‘두암초당’과 ‘산고수장’ 편액
▲ 중재실에서 내려다 본 모습
▲ 두암초당의 상량문
첫댓글 감상 잘했습니다.
당대 최고 인물들의 편액이 걸려 있군요...
언제 한번 가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