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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게시판(자유게시판) 스크랩 역사상 가장 칼빈적인 대통령
우물가에서 추천 0 조회 27 10.08.20 05: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68년부터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 역사상 가장 종교적인 대통령을 만들다

 

▣ 정우량/ 자유기고가

지난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외교가 최대 이슈일 것으로 예상됐다. 조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 이라크 전쟁 등에 대한 국민의 심판이 당락을 결정지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유권자들의 선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경제(20%)도 테러와의 전쟁(19%)도 이라크 전쟁(15%)도 아닌 도덕적 가치(22%)였다. 미국의 한 정치 분석가는 3G, 즉 하나님(God)·총기(Guns)·동성애자(Gays)가 선거를 결정지었다고 압축해 평가했다.

도덕적 가치가 왜 그리 중요한가


 


? 미국 기독교 근본주의는 마침내 가자아 종교적인 대통령을 찾아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 2월5일 워싱턴에서 열린 전국조찬기도회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고 있다. (사진 / AP연합)
미국인들에게 도덕적 가치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를 알려면 현재 미국 사회가 당면한 ‘사회 붕괴’ 현상을 이해해야 한다. 이혼의 일상화로 가족이 해체되고, 자녀들은 폭력과 난잡한 성 문화에 노출돼 있다. 일부 주(州)는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했다. 대학 사회도 위태롭다. 여대생의 5분의 2는 거식증 또는 다식증 환자며, 6분의 1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남학생들 역시 건전한 학교 생활보다 술·마약 등에 빠져들고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미국 사회는 급속히 보수화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것이 바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다. 그들은 미국이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이 도덕적 타락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을 대표하는 ‘도덕적 다수’를 이끄는 제리 폴웰 목사는 9·11 사태 발생 직후 “모든 것이 이교도, 낙태론자, 페미니스트, 동성애자, 미국을 세속화하는 집단들이 저지른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다. 9·11은 앞으로 일어날 더 무서운 사건들의 시작일 뿐이다”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은 기독교가 지배하는 나라다. 전체 국민의 77%가 기독교 신자다. 기독교 신자의 40%가 개신교, 25%가 가톨릭이다. 개신교 신자의 25%가 기독교 근본주의, 25%가 자유주의, 20%가 복음주의다. 최근 미국 교회의 보수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근본주의와 복음주의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져 둘을 합쳐 기독교 근본주의라고 부른 것이다. 여기에 오순절파를 포함해 ‘기독교 우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미국 역사를 봐도 기독교와는 불가분의 관계다. 미국인들이 자랑하는 선조(Fathers)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순례 시조’(Pilgrim Fathers), 다른 하나는 ‘건국 시조’(Founding Fathers)다. 순례 시조는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뉴잉글랜드 플리머스에 상륙한 영국 청교도(The Puritans)들이다. 이들은 영국 청교도들 가운데서도 가장 급진파에 속하는 분리주의자(The Separatists)들이었다.

종교개혁이 유럽을 휩쓸던 16세기 영국 헨리 8세는 1534년 영국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 로마 교황이 임명한 사제들을 몰아내고 자신이 임명한 사제들로 바꾼 것일 뿐 교회 조직이나 전례 등은 옛날 그대로였다. 엄격한 칼뱅주의자였던 청교도들은 이에 반대했으며, 그 중에서도 분리주의자들이 가장 극렬하게 저항했다. 싸움은 16~17세기 내내 계속됐다. 탄압을 견디다 못한 청교도들은 네덜란드를 거쳐 아메리카로 향했다.

신대륙에 도착한 청교도들은 1620년 11월11일 메이플라워호 선상에서 서로가 지킬 약속을 다짐했다. “신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증진 그리고 우리 국왕과 조국의 명예를 위하여…”로 시작하는 ‘메이플라워 서약’은 한마디로 미국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은 그 뒤 백인·앵글로색슨·개신교도(WASP)의 중심 세력이 됐으며, 복음주의와 결합했다. 미국이 서부 개척에 나서면서 내건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은 청교도적 복음주의가 미국의 국가 이데올로기로 정착한 것이다.

한편 건국 시조들은 다른 입장이었다. 그들 역시 기독교도였지만 종교보다 이성이 중요했다. 18세기 계몽주의를 신봉한 그들은 종교가 국가의 일에 개입할 때 생길 부작용을 경계했다. 그래서 종교는 하나님의 일을 맡고, 국가는 세속의 일을 맡는 정교분리 원칙을 정했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의 “의회는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는 법을 만들 수 없다”는 ‘국교 조항’(Establishment Clause)이 그것이다.

공화당을 ‘깜둥이당’으로 욕하던 이들이…

건국 뒤 계속되는 이민 유입으로 미국 사회가 다원화하자 기독교도 변해야 했다. 대처 방법을 놓고 분열했다. 한쪽은 현실을 수용하는 온건한 노선을 택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변화를 타락으로 보고 이에 저항했다.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에서 그같은 경향이 두드러졌다. 남부는 상대적으로 이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적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참된 기독교 신자라는 의미에서 스스로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불렀다.

? 1968년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옮겨간 네오콘은 기독교 근본주의에 기반한 대외정책을 펴고 있다. 왼쪽부터 부시 행정부의 대표적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딕 체니, 로널드 럼즈펠드, 존 볼튼, 폴 울포위츠.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역경 속에서도 자신들의 신앙을 지켜나갔다. 그들에게 신앙적 확신을 제공한 것이 바로 존 넬슨 다비의 종말론이다. 19세기 영국인 목사 다비는 성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세상의 종말이 가까웠음을 주장하면서 참다운 기독교 신자들만이 고난을 피할 수 있고, 세상이 멸망한 뒤 예수께서 재림하셨을 때 지복천년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는 세력이 약해졌다. 개신교에서 자유주의가 교세를 확장하고, 가톨릭권에서 이민자들이 대거 들어와 가톨릭 신자들이 크게 늘었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가톨릭을 집중 공격했다. 이 때문에 기독교 근본주의는 배타적 분리주의로 인식돼 일반인들로부터 멀어졌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자신들이 박해받고 있다는 피해의식으로 더욱 결속했으며, 여기에 남부라는 지역적 고립감이 더해져 전투적으로 변해갔다.

그러면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정치 세력으로 등장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본래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정치는 종교와 관련 없는 부정한 일로 치부하며, 오직 하나님 말씀만 따르며 살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말 정확히 말해 1968년 리처드 닉슨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거에 출마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닉슨이 내걸었던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 때문이다.

당시 공화당은 1920년대 말 이래 40년 동안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의 재임 8년을 빼곤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에 계속 패배했다. 닉슨은 선거에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보수적인 남부 표를 얻는 방법뿐이라고 판단했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흑인 민권운동, 베트남전 반대 등으로 진보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민권법을 제정해 흑인에게도 백인과 동등한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부여했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자신들이 지지해온 민주당에 배신당했다고 생각했다. 남북전쟁 이래 남부는 공화당을 ‘링컨당’ ‘깜둥이당’이라고 부르며 배척하고 줄곧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그런데 민주당이 동부 진보 세력에 점령당하고 흑인과 소수민족의 편에 서자 크게 실망했다. 바로 이때 닉슨이 미국 사회의 도덕성 회복, 주(州)의 권리 보장 등 남부가 매력을 느낄 만한 보수적 이슈를 공약으로 내걸자 남부는 공화당 지지로 돌아섰다.

이스라엘 극우파와 밀착

닉슨이 중도 하차한 뒤 남부는 다시 한번 민주당 후보 지미 카터를 지지했다. 카터는 남부 출신에 독실한 침례교 신자여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보기에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카터는 대통령이 된 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을 실망시켰다. 특히 중동 평화 정착을 위해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을 맺도록 중재한 데 분노했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는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 11월2일 조기 투표가 실시되고 있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이번 선거에서는 '도덕적 가치' 가 중요한 변수였다. (사진 / 로이터연합)

1980년 대통령 선거에서 남부는 카터 대신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에게 표를 몰아줬다. 레이건을 지지한 남부의 민주당원을 가리켜 ‘레이건 민주당원’(Reagan Democrat)이라고 불렀다. 이를 계기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공화당 편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현재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공화당원의 33%를 차지할 뿐 아니라 강한 결속력으로 공화당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으로 있던 12년 동안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미국 사회를 보수화하는 데 큰 성과를 거뒀다. 1992년 백악관이 다시 민주당에 넘어가자 ‘그릇된 세계관을 가진’ 클린턴을 공격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클린턴이 섹스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을 때 탄핵 직전까지 몰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 선거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이 가장 신뢰하는 지도자인 아들 부시를 백악관에 보내는 데 성공했다.

부시는 40세가 될 때까지 무절제한 생활을 해왔다. 알코올 중독이 될 정도로 술을 마셨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끊고 신앙에 빠져들었다. 부시를 ‘거듭난 기독교도자’로 이끈 사람은 유명한 부흥목사 빌리 그레이엄이다. 부시는 백악관을 방문한 기독교 근본주의 신자들에게 “내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지금 백악관 오벌 오피스(대통령 집무실)가 아니라 술집 한구석에 처박혀 술을 마시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부시는 미국 역사상 가장 종교적인 대통령이다. 백악관 아침 회의는 기도로 시작한다. 부시의 연설에는 성서를 인용한 부분이 반드시 들어 있다. 비단 부시뿐 아니라 백악관 참모진과 행정부 안에도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이같은 강력한 인적 자원을 무기로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종교적 믿음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낙태 허용 반대, 줄기세포 연구 반대, 반페미니즘, 복지예산 축소, 종교 교육 강화 등이 그것들이다.

미디어 활용하며 교세 확장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한 것이 대외정책이다.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과 손잡고 부시의 일방주의 외교를 강력 지지하고 있다. 네오콘은 본래 반소(反蘇) 트로츠키주의자들로 민주당에 속했으나,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반전 분위기가 절정에 달하면서 민주당이 좌경화하고 소련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기울자 공화당으로 이동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유대계로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며, 극우파인 리쿠드당과 밀착해 있다.

네오콘의 리쿠드당 지지는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종교적 지향과 그대로 일치한다. 예수 재림을 위한 조건인 이스라엘 건국,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약속한 영토 회복, 예루살렘 성전 언덕에 ‘세 번째 성전 건설’이다. 새로 성전을 건설하자면 성전 언덕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파괴해야 한다. 사원을 파괴하면 적그리스도 이슬람 군대가 이스라엘을 공격해 마침내 아마겟돈 전쟁이 시작된다. 이로써 세상에 종말이 오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천년왕국의 새 세상이 시작된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미국에서 급속히 교세를 확장하고 있다. 교회 중심으로 선교하는 자유주의 성향 개신교와 달리 텔레비전, 라디오, 출판, 인터넷 등을 주로 이용한다. 텔레비전 선교는 ‘텔레밴절리즘’(televangelism)이란 신조어를 낳을 만큼 인기가 높다. 기독교 근본주의의 유명한 목사들은 대부분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사를 소유하고 있다. 출판 선교도 놀랍다. 종말론을 소설 형태로 쓴 팀 라헤이의 <뒤에 남은 사람>(Left Behind) 시리즈는 전체 12권 가운데 5권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총 5800만권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은 고정표를 확실히 지키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2000년 부시는 선거인단 득표에선 승리했지만 전체 유권자 득표에선 앨 고어에 55만표나 뒤졌다. 부시의 일급 참모 칼 로브는 2000년 선거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의 유권자 400만이 투표장에 나가지 않았다고 보고, 이들이 투표장에 나가게 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개표 결과 부시가 전체 득표에서 케리에 350만표 앞선 것을 보면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표가 부시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초교파 국제기독교 단체인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지난 11월2일 전세계 교회 가족을 대신해 미국 교회에 보내는 공개 편지를 통해 미국 대선에서 일부 보수적 교회가 당파성에 빠졌음을 지적하고 교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라고 촉구했다. 이 편지에는 “하나님이 누구 편이냐를 물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 편에 서 있어야 한다. 교회는 시대의 변화가 필요할 때 도덕적 양심이었다. 미국 교회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를 위한 도덕적·영적 나침반을 제공해야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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