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고 도시를 떠나는 모습 - 배경에 산, 사슴, 집, 마을이 보인다.
크레타 섬의 미노아 도시가 그림의 배경으로 보인다.’
크레타의 미노스 문명은 그리스 문명의 기원들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미노스 문명은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
크레타는 전설상으로 제우스가 태어나서 바위굴에서 자란 섬이며, 테세우스가 미노스의 크노소스 궁의 미로에서 살고 있는 괴물 황소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곳이기도 하다.
크레타의 지배자 미노스 왕은 제우스와 제우스가 납치해온 에우파로스 사이에서 태어난 전설적인 왕이다. 성질이 변덕스럽고, 잔인하며, 바다를 지배하는 자였다.
(그리스 신화에 제우스가 황소를 변신하여 근동지역의 해안가를 거닐던 에우파로스 공주를 납치한다.)
미노스 궁전의 미로에는 괴물 황소 미노타우로스가 살았다.(크레타 섬에서 황소를 신으로(토템으로) 모셨다고 해석한다. 그리스 본토에서는 매년 총각 7명, 처녀 7명을 미노타우로스의 제물로 바쳐야 했다. 이것은 그리스 본토가 크레타의 지배를 받았다고 설명한다. 이에 그리스 왕자 테세우스가 크레타에 와서 미노타우로스르 죽인다.(이 전설은 그리스 본토가 크레타의 식민지였다가 그리스가 크레타를 정복하여 크레타가 오히려 그리스에 복속하게 되는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의 역사 발달 과정을 보면 에게 문명 –> 미노스(크레타 문명) -> 미케네 문명(그리스 펠레폰네소스 반도의 그리스 인(이때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다.) —> 그리고 도리안이 처내려오는 암흑기를 거쳐 --> 우리가 말하는 아테네 중심의 그리스 문명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게, 유럽인에게 크레타는 안개에 묻혀있는 미지의 땅이 되어 버렸다. 1800년대가 되면 유럽의 탐험대가 몇 차례 방문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슐리만이 트로이와 미케네를 발굴하자, 영국의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가 크레타에 와서 1900년에 발굴을 시작하였다. 1903년에 화산재에 파묻혀 있던 도시 크노소스를 발굴함으로, 화산재에 묻혀 있던 도시가, 그리고 크노소스 궁정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사진에서 보는 모습이 미노스 문명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