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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 가운데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 —
제1장 · 담장 곁의 태양
경북 어느 산자락 아래, 돌담이 허물어진 집이 하나 있었다.
주인은 이형도, 올해 일흔셋.
퇴임한 지 십 년이 넘었지만 그는 아직도 아침마다 같은 시각에 눈을 떴다.
몸에 새겨진 시간이었다.
강단에서 삼십 년을 보낸 사람은 새벽이 되면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 누가
부르지 않아도,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그는 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았다.
봄이었다. 담장 곁에 이름 모를 풀 하나가 돋아나 있었다. 누가 심은 것도 아니고, 씨앗을 뿌린 것도 아니었다.
그냥 거기 있었다. 어젯밤까지 흙이었던 자리에 오늘 아침 연두색 끝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형도는 한참 그것을 보았다.
언제 왔을까.
이상한 것은, 그 풀이 허물어진 담장
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좋은 흙도
아니고, 햇볕이 잘 드는 자리도 아니었다.
그런데 거기서 나왔다. 마치 누군가
이 자리도 괜찮다고, 이 자리도
살 만하다고 말해주는 것처럼.
형도는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물 한 잔을 따랐다. 마시면서 그는
오래전 제자 하나를 떠올렸다.
박준서. 지금은 마흔이 넘었을 것이다. 형도가 가르친 학생 중에 가장 말이 없었던 아이. 수업 시간에 한 번도 손을 든 적이 없었고, 발표를 시키면 목소리가 떨렸다. 성적도 중간이었다.
형도는 솔직히 그 아이를 크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십 년 전 퇴임식 날,
준서가 왔다. 머리에 흰 서리가 얹힌
중년 남자가 되어, 국화 한 다발을 들고.
"교수님, 저 기억하세요?"
형도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못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교수님 수업에서 한 말씀이
저를 살렸습니다."
형도는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씨앗은 억지로 피어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때를 기다리는 것이 발아의 본질이라고. 저는 그 말을 서른 내내
붙들고 살았습니다."
형도는 그날 밤,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끝내 찾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수업이 아니라 복도에서였는지도, 혹은 혼잣말처럼 흘린
말이었는지도 몰랐다.
빛은 그렇게 움직이는 것일까.
던진 사람도 모르게, 받은 사람의 내면 어딘가에 고이는 것.
마당의 풀은 그사이 조금 더 자란 것
같았다. 아니, 그렇게 보인 것인지도
몰랐다. 봄 아침의 빛이 그쪽을 향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형도는 빈 잔을 내려놓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
제2장 · 전선이 끊어진 전구
형도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재민, 마흔다섯. 서울에서 작은 건축 설계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세 살 때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단둘이 자랐다.
아버지가 강단에 있는 동안 재민은 혼자 밥을 먹었고, 혼자 잠들었고,
혼자 어른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몰랐다.
오래 쓰지 않은 근육처럼,
부자 사이의 언어는 굳어 있었다.
그해 봄, 재민은 설계 일감이 끊겼다.
경기가 얼어붙었고, 직원 둘이 나갔고, 사무실 임대료가 석 달째 밀렸다.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아버지는 항상 옳은 말만 했고, 옳은 말은 때로 가장 무거운 짐이 된다.
그러던 어느 저녁, 아버지에게서 먼저 연락이 왔다.
문자였다.
"마당에 풀이 났다. 네가 어릴 때 꺾어다 준 민들레랑 비슷하게 생겼어.
밥은 먹었냐."
재민은 한참 그 문자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원래 이런 문자를 보내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화도 용건이
있을 때만 했고, 문자는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당의 풀 이야기라니.
밥은 먹었냐.
그 다섯 글자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건축 설계의 언어도, 계약서의 언어도 아닌, 그냥 — 아버지의 언어.
재민은 답장 대신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좀 힘들어요."
평생 처음 하는 말이었다.
수화기 너머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왔다.
조용하고, 서두르지 않는.
"그래. 말해봐."
형도는 그날 밤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이 오십 년 전 젊었을 때 누군가에게 하지 못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말하지 못해서 굳어버린 것들, 연결되지 못한 채 어둠 속에 놓인 전구들.
전구는 혼자서는 빛나지 못한다.
전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선은 때로 '밥은 먹었냐'
다섯 글자처럼 단순하다.
제3장 · 이름 모를 관객
형도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예순다섯 이후였다.
퇴임하고 처음 두 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고,
밥을 짓고, 텔레비전을 보고, 잠들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강단을 잃은 사람의 하루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처음엔 그 고요가 선물인 줄 알았다.
나중엔 그것이 공허인 줄 알았다.
더 나중엔,
그 둘이 사실 같은 것임을 알았다.
글은 우연히 시작됐다.
지역 노인복지관에서 회고록 쓰기
강좌를 열었다. 형도는 강사가 아닌
수강생으로 등록했다.
평생 강의를 해온 사람이 수강생이
된다는 것이 처음엔 우스웠다. 그러나 앉아서 누군가의 말을 들어보니 —
그것이 얼마나 오랜만인 일인지
알 수 있었다.
강사는 젊은 여자였다.
서른도 안 된 것 같았다.
그녀가 첫 시간에 말했다.
"여러분이 사신 이야기는 누군가의
등불이 됩니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빛입니다."
형도는 그 말을 받아 적었다.
교수로 살면서 한 번도 받아 적어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조금씩 썼다.
처음엔 아내 이야기를 썼다.
그다음엔 준서 이야기를 썼다.
그다음엔 마당의 풀 이야기를 썼다.
글은 형편없었다. 문장이 딱딱하고
구조가 설명투였다. 강의안을 쓰는
버릇이 글 속에도 남아 있었다.
그래도 계속 썼다.
어느 날 복지관 게시판에 그의 글이
한 편 붙었다. 담당자가 허락을 구하고 올린 것이었다. 형도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일주일 후,
낯선 노인 한 명이 그를 찾아왔다.
팔십이 넘어 보이는 여자였다. 지팡이를 짚고 있었고, 눈이 많이 침침해 보였다.
"그 글 당신이 썼소?"
형도가 그렇다고 하자, 그 노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돌아섰다.
지팡이 소리가 멀어졌다.
형도는 영문을 몰랐다.
다음 주에 담당자가 전했다.
그 노인이 쪽지를 남겼다고.
"이 나이에 이런 글을 읽을 줄
몰랐습니다. 내 남편도 그렇게
기다려줬더라면."
형도는 그 쪽지를 오래 들고 있었다.
빛은 던진 사람도 모르게 닿는다.
받는 사람을 묻지 않고,
장소를 고르지 않고.
그것이 태양이 움직이는 방식이다.
제4장 · 안전한 온도
재민의 딸, 이세아는 열여섯이었다.
서울 아파트 12층에 살면서 창밖을
자주 보았다. 공부를 잘했고, 친구도
많았고, 딱히 불행한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애는 자주 이유 없이 울었다. 밤에, 혼자, 이불을 덮고.
할아버지를 가끔 만났다. 경북 산자락 아래 그 돌담 집에 내려가면, 할아버지는 항상 마루에 앉아 있었다.
특별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앉아 있었다.
세아는 그게 좋았다.
서울의 어른들은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공부해라, 운동해라, 준비해라. 그런데 할아버지는 그냥 있었다.
그냥 있으면서 세아를 보았다.
평가하지 않고, 조언하지 않고. 그냥.
어느 여름 방학, 세아는 할아버지 집에 일주일을 머물렀다.
첫날 저녁, 할아버지가 물었다.
"요즘 뭐가 제일 어렵냐?"
세아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냥 다 맞게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요."
할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해결책을 말하지 않았다. 위로도 하지 않았다.
그냥 끄덕였다.
그것이 세아에게는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사흘째 밤, 세아는 할아버지의 글을
읽었다. 마루 서랍 속에 있던 작은 노트. 허락을 구하지 않고 펼쳤다가,
멈출 수 없었다.
'씨앗은 억지로 피어나지 않는다.
때를 기다리는 것이 발아의 본질이다.'
세아는 그 문장에서 한참 멈췄다.
나는 지금 발아 중인 걸까.
아직 흙 속에 있는 걸까.
할아버지가 마루로 나왔다.
세아가 노트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형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에 앉았다.
밤바람이 마당을 지나갔다.
잠시 후 세아가 물었다.
"할아버지, 빛이 된다는 게 뭐예요?"
형도는 하늘을 보았다.
별이 많은 밤이었다.
"눈부신 게 아니야.
그냥 거기 있는 거야.
따뜻하게, 고루."
세아는 그 말을 이불 속에서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유 없이 울지 않았다.
제5장 · 로고스의 언어
형도에게 오랜 벗이 하나 있었다.
정인수, 일흔하나. 신학을 공부하다
철학으로 방향을 틀고, 결국 문학에
안착한 사람.
두 사람은 사십 년 지기였다.
자주 만나지는 않았지만,
만나면 밤을 지새웠다.
그해 가을,
인수가 형도의 집을 찾아왔다.
건강이 좋지 않았다. 걸음이 느렸고,
얼굴이 가늘어져 있었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했다 — 무언가를 오래 생각하는
사람의 눈빛.
두 사람은 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마셨다. 마당의 풀은 여름을 지나
갈색이 되어 있었다.
인수가 말했다.
"자네, 요한복음 8장 12절 읽어봤나.
최근에."
형도가 읽었다고 하자,
인수는 잔을 내려놓았다.
"빛이라는 단어가 거기서 끝나지 않아. 1장으로 돌아가야 해.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빛이었다고.
로고스야. 창조의 원리."
형도는 듣고 있었다.
"인간이 빛이 된다는 건, 그러니까 —
그 원리와 연결된다는 거야.
전구 같은 거지.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 연결되어야 해."
형도가 말했다.
"그 연결이 어떻게 생기는 건데?"
인수는 잠시 생각했다.
"머무름으로. 투쟁이 아니라 머무름.
어둠을 몰아내려고 싸우는 게 아니라, 빛 가운데 그냥 있는 거야.
상태의 변화야, 노력이 아니라."
밤이 깊어졌다. 인수는 이야기하다
눕는 법이 없었는데, 그날은 마루에서 잠들었다.
형도는 이불을 가져다 덮어주었다.
노인 둘이 오래된 집에서,
한 명은 자고 한 명은 하늘을 보았다.
별이 많았다.
형도는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연결을 기다리는 전구인지도 모른다.
필라멘트는 이미 준비되어 있고,
전선을 찾고 있는 것.
그 전선은 말씀이기도 하고,
사람이기도 하고,
마당의 풀 하나이기도 하다.
빛 가운데 머무는 것.
어둠을 향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
태양이 담장 곁의 풀에게 하듯.
제6장 · 거기 있었을 뿐
겨울이 왔다.
형도는 일흔넷이 되었다.
마당의 풀은 사라졌다.
그러나 봄이 되면 다시 올 것이다 —
그것을 알고 있었다.
재민이 아이들과 내려왔다. 세아와,
올해 일곱 살이 된 막내 이준.
준은 할아버지 집에 오면 마당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특별히 볼 것도 없는 마당을 —
그냥 뛰었다.
형도는 마루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예전의 침묵과 달랐다.
예전의 침묵이 끊어진 전선이었다면,
지금의 침묵은 흐르는 전류였다.
말이 없어도 무언가가 지나가고 있었다.
재민이 말했다.
"아버지, 글 계속 쓰고 계세요?"
"조금씩."
"제가 읽어봐도 돼요?"
형도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끄덕였다.
그날 밤, 재민은 아버지의 노트를
읽었다. 세아도 옆에서 함께 읽었다.
준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재민은 읽다가 몇 번 멈췄다.
어릴 때 아버지는 멀리 있었다.
강단에, 책 속에, 어딘가 형도만 아는
세계에.
그런데 이 노트 속의 아버지는 달랐다. 여기에는 틀리는 사람이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담장 곁의 풀을 오래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재민은 노트를 덮었다.
"아버지."
"응."
"저 민들레 기억해요.
어릴 때 뽑아다 드린 거."
형도가 고개를 돌렸다.
"기억하지."
"그때 아버지가 꽃병에 꽂아놨잖아요. 화분도 아니고 잡초를 꽃병에."
형도는 웃었다. 오래된 웃음이었다.
"예뻤거든."
그것이 전부였다.
더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세아는 두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다.
빛이 되는 일은 이런 것이구나.
눈부시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거기 있으면 된다.
민들레를 꽃병에 꽂을 만큼,
마당의 풀에게 아침을 줄 만큼 —
그것으로 충분하다.
겨울밤, 집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밖에서 보면 그 빛은 아주 작았다.
산자락 아래, 돌담이 허물어진 집의
창문 하나.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별로 눈여겨보지 않을 빛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말하고, 듣고, 침묵하고.
전선이 연결된 전구처럼 —
고루, 따뜻하게.
형도는 나중에 그날 밤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세상의 빛이 되려 한 적이 없었다. 그냥 거기 있었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는지 모른다.
태양도 그렇게 움직이니까.
빛나려 한 것이 아니라 —
거기 있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