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아브르(Le Havre)
르 아브르는 노르망디 북부 영불 해협에 있는 도시로 센(Seine)강 하구 북안에 위치하고 있다.
2차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상륙해안 북쪽 지역으로 극심한 폭격에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건축가 오귀스트 페레(Auguste Perret)의 주도로 옛 도시 형태와 역사적 구조물을 잘 보존하면서
콘크리트를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도시 계획과 건설 기술을 활용하여 1945~1964년에 걸쳐 재건하였다.
-채색한 화물용 컨테이너를 활용한 작품-
**부둣가에 설치되어 있다.
-르 아브르 인근 관광 지도-
**Le Havre(르 아브르)는 the Harbor 라는 의미이다.
-상선 정박지(Bassin du commerce)-
**맑은 물이 채워진 긴 직사각형의 이 못의 이름이 "상업적인 못(池)"인것으로 보아 선박의 정박지가 분명하지만
현재는 정박된 한 척의 배도 보이지 않아 상업항으로 사용하지 않는것으로 보인다.
일 각(脚)의 사장교 뒤로 생 조세프 성당의 타워가 보인다.
-분수 아취-
** 양쪽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아취를 만들고 있다.
- 1.2차대전 기념 조형물-
** 기단 전면에 1938, 1914~1918 이라는 글씨로 보아 1.2차 대전의 의미가 분명하지만 규모가
큰 조형물이라 멀리서 촬영하면서 기단 밑에 박혀있는 비문을 보지 못해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부조종사 가브리엘 게렝(Gabriel Guerin/lieutenant aviateur)-
**"프랑스를 위해 전사한(Mort pour la France) 부 조종사 가브리엘 게렝",
1892-1918이니 26세였다. 정박지 인근 공원에 설치된 조형물 들이다.
-시청 청사(Hotel de Ville)-
** 프랑스에서는 건물에 "호텔 드 빌(Hotel de Ville)"이란 표지가 자주 보이는데
호텔로 생각해서는 않된다. 시청 청사라는 의미이다.
-레지스땅스(항전) 추모비-
**두 마리 새의 청동상과 오벨리스크 모양의 기둥에는 노란 글씨로 추모 대상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다.
비문에는 작은 글씨로 "당신을 잊지 않는다(Souviens Toi)"라는 글귀가 있다.
-생 조셉(Saint- Joseph) 성당-
**2차 대전 중 완전히 파괴된 르 아브르 시가지 재건 사업은 성 요셉 성당이 1964년 봉헌되면서 완료되었다.
2005년 재건된 르 아브르와 성당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성당의 스테인드 그라스는
12,768 개의 조각으로 전체 넓이는 378 m2, 50 가지 색(色), 72개의 모듈이 사용되었다.
-건물 제원-
**건물의 전체적인 모양은 둔중한 십자가 모양의 기단 위에 8각형 기둥이 세워진 기념탑의 형상이다.
- 첨탑 밑에 걸려있는 설치 미술 작품-
** 제단 위에 불꽃을 상징한다는 붉은 색의 망이 걸려있다. 이 작품은 2015년, 56회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일본 대표로 참가한 '치하루 시오타(Chiharu Shiota)'의 작품이다.
여류 작가는 "붉은 소용돌이는 정신력의 응축을 의미한다".고 한다.
-첨탑 밑의 제단 모습-
** 8각 기둥과 마찬가지로 8각형의 평판 가운데 제대가 놓여있다.
-르 아브르의 노틀담 대성당 (Cathedral Notre Dame du Havre)-
**노틀담 대성당은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및 바로크 양식이 결합된 건물로 2차대전의 폐허로 재건축 된
르 아브르 중심가에서 부분적인 피해는 있었지만 유일한 생존 건물이고 또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대성당의 전신은 12세기에 노트르담 드 그라세(Notre Dame de Grace : 복되신 성모 성당)가
어부들만 사는 어촌에 세워졌고 현재의 성당은 1575~1610년 어간에 완성된다.
대성당은 1919년 2월 10일,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대성당 내부-
-피에타(Pieta)-
**왼편의 삽입 사진은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인데 소녀같은 앳된 모습의 성모가
아들의 시신을 가볍게 무릎 위에 올려 놓고 한손으로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취하기 불가능한 포즈인 반면 이 성당의 "피에타" 가 누구의 작품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지금까지 보아 온 작품 중 가장 사실에 가까운 포즈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콘크리트로 건설한 신도시 르 아브르-
**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과 달리 재 개발이 끝난 후발국의 콘크리트 도시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2차 대전 중 독일의 점령, 영국의 공습,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겪은 요충지였던 르아브르는
도시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어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 벨기에 출신의 오귀스트 페레
(Auguste Perret)의 주도로 획일적인 패턴의 건물로 도시가 재건되었다.
-항만 관리소(Port Center)-
** 외항이 가까운 부둣가에 쎈터가 위치하고 있다.
-어선들이 정박되어 있는 내항-
-끌로드 모네가 그린 르 아브르 항구의 모습-
** 인상파 화가 글로드 모네(Claude Monet)는 1872년 겨울 아침에 이 그림을 그리고.
1874년에 전시회를 갖는다. 그림의 제목은 인상(Impression),"일출(Soleil Levant)"
부둣가에 서 있는 안내판의 내용이다.
-인상주의 사진(?)-
**항구의 일부분을 모네의 작품과 비슷한 색으로 후보정한 사진이다
-항만 관제탑-
-항만 관리소가 보이는 내항 풍경-
-항만 출입구-
** 사진 왼편에는 견시탑과 등대 그리고 해무가 심할 때 타종하는 종이 걸려있다.
견시탑 옆에 있는 기념비 명문의 내용은
"2차대전 후에 세워진 이 비는 르 아브르가 미군의 상륙과 그 후에 철수를 위한 주요한 항구의 역활을
하였음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1944년 9월과 1946년 8월 사이에 3,675,000명의 미군이 이 항구를 거쳐갔다."
-욧트 정박항-
- 앙드레 말로 현대 미술관-
** 부둣가에 위치하고 있다. 미술관의 전시 작품은 부록으로 작성합니다.
옹플뢰르(Honfleur)
센(Seine)강의 하구 좌안에 위치하고 있다. 어항과 무역항을 겸한 옛 항구는 16세기부터 개발되었다.
옹플뢰르에서는 노르망디 특유의 오래된 목조 가옥들을 볼 수 있으며 특히 15세기에 건립된 고딕양식의
생 카트린느 교회가 유명하다. 옹플뢰르의 구 항구도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노르망디 다리-
** 르 아브르 쪽에서 옹플뢰르로 향하는 모습이다. 다리의 경사도는 10도이다.
-옹플뢰르 시가지를 누비는 라이더들-
** 유럽에는 모든 고속도로가 바이크(오토바이)에 개방되어 있다. 후진국 일수록 통제가 심한것 같다.
-부둣가에 회전 목마-
-노르망디 양식의 반(半) 목조 가옥-
-부관副官(The Lieutenance)-
**뷰 바쌩(Vieux Bassin=옛 내항)으로 들어오는 수로의 도개교 옆에 당당히 서 있는 이 건물은 중세시대
옹플뢰르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루테난스(부관)라는 이름의 이 건물은 도성의 두 개의 문 중의 하나였다.
16세기의 도성 성곽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로 1686년부터 프랑스 혁명(18세기 말)까지
건물의 상부는 왕의 부관의 아파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부관(Lieutenance)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내항(욧트 항)-
-생 카트린느 교회(l'eglise Sainte Catherine)-
** 생 카트린느 교회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목조 건축물로 쌍동선을 뒤집어 놓은 듯한
독특한 모양으로 지어졌다. 14세기에 백년 전쟁이 끝난 것에 감사하는 의미로
시민들이 당시의 궁핍한 형편 속에서 재료들을 긁어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교회건물 뒤편의 모습-
-교회 내부-
-생 카트린느 교회의 종탑-
** 종탑은 본당 앞에 따로 분리해 세워졌다. 거대한 목조 본체 건물에 무거운 종탑을 붙여 짓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생 카트린느 종탑(le clocher Sainte-Catherine)-
**끌로드 모네 作, 1867. 옹플레르 위젠 보댕 박물관 소장
-종탑의 내부 얼개-
-종탑 내부의 공간은 각종 유물들의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유료 입장)-
- 전시된 유물들-
-고색창연한 목조 가옥의 거리-
**옹플뢰르를 조망할 수 있는 몽-졸리(Mont-Joli)언덕으로 이어진 길이다.
-사티(Satie)의 생가-
** 목조가옥이 늘어선 뒷골목에 위치하고 있다. 에릭 알프레드 레슬리 사티
(Eric Alfred Leslie Satie,1866,5,17~1925,7.1)는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이다. 작곡 외에도 사티는 가명을 사용해 전문지나
대중지에 많은 글을 투고하였다. 평생을 가난하게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위젠 보댕(Eugene Boudin) 박물관-
- "옹플뢰르 안뜰의 노인(Vielle cour a Honfleur)"-
** 1908,앙리 아담(Henri Adam)作, 옹플뢰르 위젠 보댕(Eugene Boudin) 미술관 소장
-옹플뢰르 현지와 화가의 그림-
**알렉산드르 두보(Alexandre Dubourg,1821~1891)作,"롬므 드 봐 거리(La rue de l'homme de bois)",
보댕 미술관 소장
- "아름다운 언덕(Mont-Joli)" 위의 십자가-
** 실은 "귀여운 언덕(Mont-Joli)"이라는 뜻의 나즈막한 산 정상 부근, 센(Seine)강이 내려다 보이는 쪽에
높이 8.21 m, 폭 2.50 m 의 십자가가 서 있다. 십자가의 예수상은 1871년 경에 조각되었고
1873년 축성되었다. 1931년과 1961년에 재 보수 되었다.
-몽 - 졸리(Mont-Joli) 정상 왼편에서 내려다본 풍경-
-몽-졸리(Mont-Joli) 정상 오른편에서 내려다본 옹플뢰르 시가지-
-몽- 졸리(Mont-Joli) 정상에 서 있는 복된 성모 교회(Notre Dame de Grace)-
** 이 교회는 1023년 노르망디의 공작인 리차드 2세(Richard II)가 설립하였다.교회가 설립된지 5세기 후인
1538년 절벽이 무너져 제대와 성모상 만을 남기고 교회를 휩쓸어 버렸다. 남아 있던
옛 잔해 마져 1602년 무너지고 1606년 현 교회의 주초가 놓여진다. 1615년에
옹플뢰르 부르쥬아 선원들에 의해 교회는 준공이 된다. 교회의 부지는
마담 몽펜시에(Mme Montpensier)가 기증한 것이다. 옹플뢰르
사람들은 2차 대전 중 유일하게 이 도시만이 폭격을
면한 것은 성모의 중재의 은총으로 믿고 있다.
-교회 내부-
** 교회 내벽은 사람들의 소원문과 기도문으로 빈틈없이 채워저 있다.
-퇴락한 목조 가옥-
-들려지는 도개교-
** 옹플뢰르 해안도로에 설치된 도개교 길이는 10 m 이다.
-욧트 통과-
-상점 앞의 설치미술-
-소형 크루즈 선-
**센(Seine)강 하구와 노르망디 다리(Pont de Normandie)까지 운행하는 소형 크루즈 선이다.
-열려지는 갑문-
-갑문 통과-
-노르망디 다리(Pont de Normandie), # 1-
** 르 아브르와 옹플뢰르 사이의 센(Seine)강 하구에 걸려있는 노르망디 다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995년 1월 22일 준공. 길이 2.141 m 로 두개의 교각으로 건설된 사장교이다. 기둥높이 214 m,
다리 폭 23.6 m, 교각 사이의 거리 856 m로 왕복 4차로의 다리이다.
-# 2-
-# 3-
-# 4-
-# 5, 6-
-크루즈 선에서 바라본 몽-졸리(Mont-Joli)언덕 위의 십자가-
-항만 관제탑(Radar Tower)-
** 38 m 높이의 이 타워는 1977년 운용을 시작 하였다.
-만조가 되어 완전히 열려 있는 갑문-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