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철 시인의 [고요가 아니다]는 시인 자신의 운명적인 고독과 상처에 대한 절절한 기록이면서 그를 통해 단련된 한 섬세한 영혼의 혁명적 인고를 표백한 시집이다. 전형철의 시적 주체는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있다. 그의 고독을 가중하는 것은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실패한 사랑이다. 고향은 그에게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저주받은 땅으로 기억되고, 현실의 사랑은 그에게 상처와 불통의 기억을 남긴다. 상처로부터 솟아 나오는 그의 문장은 벌어진 상처가 쓰라릴수록 한결 단단해진다. 저 단단한 고요가 역설적으로 그의 상처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이 상처의 깊이가 전형철식 혁명이 발원하는 장소다. 전형실이 생각하는 혁명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욕망을 거둘 줄 알고 그리움을 잘라 낼 줄 알고 성급한 고백을 숨길 줄 알고 무거운 침묵을 드리울 줄 아는 것이다.
저자 : 전형철
충북 옥천 출생. 2007년 [현대시학]을 통해 시 등단.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 수료.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초빙강의교수.
시인의 말
제1부 012 기네스 013 여시아문(如是我聞) 015 매복의 거처 017 재의 날 019 나쁜 피 020 시월 023 불수의적 정체(停滯) 025 갑골(甲骨) 026 반려 028 덫 029 비가 계속되는 동안 세상은 조금 평등해진다 030 독 032 젖은 지도 033 불꽃놀이
제4부 084 불씨 085 수풀에서 빛을 보다 087 당신의 북쪽 088 시간의 분재기 090 세드나 093 오페라 094 레인 스트라이크 096 매포역 097 구멍과 꼭짓점 098 삼선 파르테논―조 선생님께 099 물안개 100 황홀 거울 2―창귀(?鬼) 102 그녀는 모른다
해설 104 이경수 검은 무당의 춤
전형철 시인의 첫 신작 시집 [고요가 아니다]가 (주)천년의시작에서 2014년 1월 29일 발간되었다. 전형철 시인은 충북 옥천 출생으로, 2007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후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초빙강의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형철 시인의 [고요가 아니다]는 시인 자신의 운명적인 고독과 상처에 대한 절절한 기록이면서 그를 통해 단련된 한 섬세한 영혼의 혁명적 인고를 표백한 시집이다. 전형철의 시적 주체는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있다. 그의 고독을 가중하는 것은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실패한 사랑이다. 고향은 그에게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저주받은 땅으로 기억되고, 현실의 사랑은 그에게 상처와 불통의 기억을 남긴다. 상처로부터 솟아 나오는 그의 문장은 벌어진 상처가 쓰라릴수록 한결 단단해진다. 저 단단한 고요가 역설적으로 그의 상처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이 상처의 깊이가 전형철식 혁명이 발원하는 장소다. 전형실이 생각하는 혁명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욕망을 거둘 줄 알고 그리움을 잘라 낼 줄 알고 성급한 고백을 숨길 줄 알고 무거운 침묵을 드리울 줄 아는 것이다.
시인의 산문
시는 전염과 전이이다. 나의 고통이 당신에게 똑같은 고통일 수 없다. 나의 병은 전염력이 있으나 그 증상은 같지 않기를 꿈꾼다. 내 시에 빈 곳이 많았으면 한다. 그 빈 곳으로 당신의 숨결이, 당신의 아픔이, 당신의 언어가 채워졌으면 한다.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미결정이고 불확정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세상의 미결수(未決囚)라 부른다. 다시 운명이라는 것을 점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한 생(生)이, 오지 않을 미래가 그토록 명징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비탄의 고요를 견디는 일은 이 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춤이다. 예지의 촉수를 자르지는 않을 것이다. 상처를 감추는 일은 야수가 발톱을 숨기는 본능과 같다. 그리고 세상의 단 한 사람에게만 용서를 빌고 싶다. 내가 있어 당신이 살았다. 아니 이제 생각해 보니 당신이 있어 내가 살았다. 당신을 속이거나 기만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말이, 나의 떨림이, 나의 흐트러진 삶이 당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담보 잡게 할 수는 없다. 미안하다. 이 땅에 단풍과 눈이 사라질 때가 오면 나도 당신과 함께 부재할 것이다. 없음으로 당신과 나는 하나일 것이다. 오늘을 탈환하고 있을...전형철 시인의 첫 신작 시집 [고요가 아니다]가 (주)천년의시작에서 2014년 1월 29일 발간되었다. 전형철 시인은 충북 옥천 출생으로, 2007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수료 후 현재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초빙강의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형철 시인의 [고요가 아니다]는 시인 자신의 운명적인 고독과 상처에 대한 절절한 기록이면서 그를 통해 단련된 한 섬세한 영혼의 혁명적 인고를 표백한 시집이다. 전형철의 시적 주체는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있다. 그의 고독을 가중하는 것은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실패한 사랑이다. 고향은 그에게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저주받은 땅으로 기억되고, 현실의 사랑은 그에게 상처와 불통의 기억을 남긴다. 상처로부터 솟아 나오는 그의 문장은 벌어진 상처가 쓰라릴수록 한결 단단해진다. 저 단단한 고요가 역설적으로 그의 상처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이 상처의 깊이가 전형철식 혁명이 발원하는 장소다. 전형실이 생각하는 혁명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욕망을 거둘 줄 알고 그리움을 잘라 낼 줄 알고 성급한 고백을 숨길 줄 알고 무거운 침묵을 드리울 줄 아는 것이다.
시인의 산문
시는 전염과 전이이다. 나의 고통이 당신에게 똑같은 고통일 수 없다. 나의 병은 전염력이 있으나 그 증상은 같지 않기를 꿈꾼다. 내 시에 빈 곳이 많았으면 한다. 그 빈 곳으로 당신의 숨결이, 당신의 아픔이, 당신의 언어가 채워졌으면 한다.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미결정이고 불확정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세상의 미결수(未決囚)라 부른다. 다시 운명이라는 것을 점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의 한 생(生)이, 오지 않을 미래가 그토록 명징하게 빛났으면 좋겠다. 비탄의 고요를 견디는 일은 이 별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춤이다. 예지의 촉수를 자르지는 않을 것이다. 상처를 감추는 일은 야수가 발톱을 숨기는 본능과 같다. 그리고 세상의 단 한 사람에게만 용서를 빌고 싶다. 내가 있어 당신이 살았다. 아니 이제 생각해 보니 당신이 있어 내가 살았다. 당신을 속이거나 기만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말이, 나의 떨림이, 나의 흐트러진 삶이 당신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담보 잡게 할 수는 없다. 미안하다. 이 땅에 단풍과 눈이 사라질 때가 오면 나도 당신과 함께 부재할 것이다. 없음으로 당신과 나는 하나일 것이다. 오늘을 탈환하고 있을 당신에게 안부를 묻는다. 끝내 당신은 여기에 없을 것 같다. ―전형철
자신의 몸이 속해 있고 매여 있는 곳에 그의 정신과 마음이 머무르지 못하므로 전형철의 시적 주체는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있다. 그의 고독을 가중하는 것은 뿔뿔이 흩어진 가족과 실패한 사랑이다. 고향은 그에게 그리움의 대상인 동시에 저주받은 땅으로 기억되고, 현실의 사랑은 그에게 상처와 불통의 기억을 남긴다. 상처로부터 솟아 나오는 그의 문장은 벌어진 상처가 쓰라릴수록 한결 단단해진다. 저 단단한 고요가 역설적으로 그의 상처를 짐작케 한다. 그의 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잊고 있던 오래전 상처가 욱신거림을 느끼게 된다. 묵직한 통증을 안고 전형철의 시는 천상과 지상을 자유롭게 오간다. 새와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천상을 활보하다 바닥으로 한없이 가라앉아 독(毒)을 새기기도 한다. - 이경수(문학평론가,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너무나 분명했던 인생의 세부들이 너무나 불분명한 인생의 전체에 의해 까마득히 지워져 버리는 것을 보면, 이렇듯 다단한 상처의 편린들은 각오로 새기고, 저주로 칠갑을 하지 않으면 붙들 수조차 없는 세목들이리라. 속죄가 새롭다 하겠는가? 무속이 낯설다고 하겠는가? 염원과 저주가 다른 이름이되 한 몸인 것처럼, 전형철의 시는 저주를 견디고 염원을 살고자 한다. 이물들의 교호와 죄의 경신과 함께. 그렇다고 그의 시에서 이물과 죄와 저주와 염원만을 본다면 이는 잘못이다. 사진의 마지막 피사체는 웃고 있는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다른 얼굴이며 그러므로 칠갑을 한 언어들 저편으로 물러나 앉는 것은 시를 쓰는 자의 마지막 미덕이다. 시와 세상과 시인의 얼굴이 궁금하다면 방법은 이것뿐이다. 저 검은 칠 너머를 보는 것. - 이현승(시인, 시작시인선 기획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