顯考學生府君神位.2024
저 앞 논의 모포기는 이미 땅 내음을 깊숙이 맡으며, 바람결에 스스로 그들의 이마를 식히는 시절, 그토록 땅을 사랑하셨던 아버님을 향불 따라 모시게 되니, 이다지도 세월 멀리 흐른 오늘은 아버님 돌아가신 지 스물 아홉 해라, 실로 무정하고도 무심한 세월을 헤아리며, 먼저 잔을 씻어 절을 올리옵니다. 이어 사무치는 마음으로 첫 술잔을 채워 올리니, 이 작은 잔에 담기는 회한과 그리움이야 어찌 하늘 너머라도 그 끝이 있다 하겠습니까. 실로 한없으셨던 은혜로움을 이 한 잔으로 공경할 뿐이옵니다.
이제 다시 잔을 채워 드릴 때, 아버님의 지극하시던 사랑을 잊지 않아, 손자 마루가 증손녀 하율과 참예하여 그 절이 두 분 영전에 나란하니, 어찌 대견하고 흐뭇하시지 아니하리까, 함께 기뻐하며 거듭 한 잔을 올리나이다.
이승의 텃밭에 상추와 아욱이 자라고, 남기신 초려에 아이들이 또한 잘 커가니, 오로지 아버님과 더불어 다정히 오셨을 어머님의 음덕으로 새기며, 몇 가지 제수에 맑은술 한잔을 더 보태어 올리옵니다.
보이지 않아도 사랑하고 들리지 않아도 그리워하옵는 마음을 이제 첨잔에 부치오니, 부디 저희가 알 수 없는 어느 세상에서라도 쌀밥 같은 복락을 무한히 누리소서.
불효 자식 상일은 삼가 올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