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 규모 5.0의 지진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선 400년에 한 번 아주 큰 지진이 일어난다고 학자들이 보고 있다는데요 더 이상의 큰 지진이 없길 바랍니다만 그저 요행을 바라고 있으려니 생각하면 기막힙니다. 그렇다고 원전 고장도 잦고 모르던 단층은 자꾸 발견이 되고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할 관계자들은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니 안전하게 잘 관리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사드니 미사일이니 남북긴장이 조성되기까지 할 때면 이 땅은 정말 곧 죽은 땅이 될 수도 있구나, 두려움이 일어요.
벨기에에서는 최근에 노후한 원전이 불안하다며 정부에서 시민들에게 요오드를 보급하기 시작했는데요 우리는 제대로 된 방제대책도 없고 심지어 원전 밀집 지역인 부산에서는 세계에서 유래도 없는 10기의 원전을 지으려고 하고 있고 300만 명이 넘는 대도시와는 불과 26km 떨어져 있습니다. 핵없는세상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경험하고 그 충격 속에서 출발한 시민단체입니다만 이젠 후쿠시마의 영향만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매우 위험해 보이는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왜 핵없는세상에 모였는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되짚어 보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는 일이 매우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기존 회원들에게도 새로 오신 회원들에게도요.
이 발표는 워낙은 사무국에서 핵없는세상을 출발시켰던 근간 조직이었던 예람교회와 알트루사의 박영신 선생님과 문은희 선생님, 핵없는세상 공동대표이신 박영희 선생님께 발표를 부탁드렸던 바였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돌고 돌아 결국 제게 임무가 떨어졌습니다. 첫 사무처장이었던 네가 해라, 이렇게 되었어요. 부족하나마 제가 알고 있는 핵없는세상 이야기를 해 볼테니 앞에 계신 분들이 정정해야할 사항은 바로 바로 정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람교회
핵없는세상은 예람교회에서 싹이 텄습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 직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죄를 고백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우리의 침묵과 무분별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그 결과를 너무 끔찍하게 눈 앞에서 목격 했으니까요. 그때 예람교회에서 고백했던 대표 고백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작성은 박영신 선생님이 해 주셨어요. 박선생님은 사회학자로 사회운동을 오래 연구하셨고 녹색연합에 11년간 상임대표를 맡아오시면서 직접 사회운동에 참여하시기도 하셨죠. 현재는 녹색교육센터 이사장이시고 예람교회 목사님이시며 핵없는세상 일반회원이시기도 합니다. 예람의 고백은 작성은 박선생님이 하셨지만 예람 모두가 동의해서 예람 모두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원전 숭배와 그리스도인의 책임>>
--2011년 부활주일 예람교회 고백--
예람교회는 말씀에 터한 본래의 교회로 서서 생명을 일구고자 하는 초교파 신앙 공동체로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빚어진 재난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느껴 여기 우리의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는 단순히 천재지변의 재앙이 아니라 과학 기술의 한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원전은 과학 기술자들이 계획하고 건설하여 관리하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에너지라는 일방의 주장에 넘어가, 이것을 무작정 믿고 떠받들어온 우리의 집합 과오를 고백합니다.
원전은 가장 청정한 에너지가 아니라 가장 위험하고 불안정한 에너지임을 드러냈습니다. 원전처럼 경제성과 능률성이 높은 에너지는 없다면서 대안 에너지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이해 집단의 행태를 비판하지 않고, 이에 순순히 동조해온 우리의 원전 숭배 행위를 고백합니다.
원전 사고는 에너지 낭비가 아닌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습니다. 범람하는 소비주의와 편의주의에 휘둘려 절제와 규모의 미덕이 일상에서 몰아냄을 당할 때 이 흐름에 발맞추어 살아온 우리의 무절제한 삶을 고백합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우리는 오늘 다음과 같이 마음을 굳게 다집니다.
하나,
원전의 문제는 어느 특정 세력이 도맡을 수 없는 공동의 문제이기에 선한 시민으로 비판 능력을 살려 이에 적극 참여하고자 합니다.
둘,
원전의 문제는 일국의 문제도 당대의 문제도 아닌 만큼 인접국은 물론 범세계 시민과 연대하여 책임있게 행동하고자 합니다.
2011년 4월 24일 부활 주일 (예람교회 목사 박영신)
출발이 예람교회였던 만큼 예람교회의 정체성을 간단히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다양한 배경을 갖고 계신 분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계신데요, 각 조직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것 같아서요. 예람교회는 평신도공동체입니다. 목사가 페이를 받지 않고 설교와 목회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딱 하루만 공간을 빌려 예배를 드립니다. 작은 교회에요. 그런데 보통 교회하고 좀 다른 점이 있어요. 워낙은 개신교 특징이 그러하겠지만 목사가 하나님 말씀을 독점하고 정답을 알고 있다고 전제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예배 후에는 모두 둘러 앉아 설교에 대해 대화를 나눕니다. 질문도 하고 신도 모두 각자가 이해한 대로 설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아가는 데 협력해 가는 것이죠. 자기 삶에 접목해서 설교에서 발견한 것을 고백하기도 하고요. 목회자 못지 않게 평신도의 책임이 상당히 큰 교회라고 할 수 있어요. 제가 그렇게 책임을 다 하는 평신도인가를 돌아보면 자신 없는 면이 많긴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예람교회는 직분으로 교우간에 서열을 두기보다 높은 책임을 함께 지는 수평적인 교우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 문화를 기반으로 원전숭배를 고백하며 더 이상 창조질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실천하는 길로 나서려고 했습니다. 교우 가운데 일곱 명이 준비위원으로 자천 타천으로 추천되어 모임을 기초했고 마침내 2011년 12월에 예람교회 송구영신 예배 직전에 핵없는세상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매 달 한 번씩 모임을 열었지요.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명칭이 핵없는세상을 위한 시민모임이 되었습니다. 내부에서 성격을 핵없는세상을 위한 기독교인 모임으로 설정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특색이 다양한 개신교 입장에서 누가 기독인을 대표하듯 그런 이름을 쓸 수 있겠냐는 문제의식에 교우들이 공감하여 일반 시민의 모임으로 그 성격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예람교회는 싹을 틔었을 뿐,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시민단체의 성격을 띄게 된 것이죠. 그래서 그 다음 모임인 2012년 1월 모임부터는 여성단체인 사단법인 한국 알트루사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알트루사가 조직 내부 결의를 거쳐 참여를 결정하게 되었거든요.
알트루사 역시 핵없는세상의 근간조직인 만큼 간단히 소개를 드리는 것이 이해와 협력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알트루사
한국알트루사는 정신건강사회운동을 펼치는 국내유일의 여성단체입니다. 국제단체고 국내에는 전쟁 직전에 생겼다가 오래 활동이 없었고 83년에 재결성되었어요. 국제 알트루사 본부가 있습니다. 전문직 여성들이 사회참여하며 봉사하는 여성국제조직인 것이죠. 미국에서 만들어졌어요. Altruism + USA 해서 ALTRUSA가 된 것이랍니다. Altruism은 이타주의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단체의 성격을 알게 하는 단어죠. 대 여섯 나라에 지부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가별로 제각각의 성격으로 전문직 여성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 년 전에 본부 홈페이지를 보니 미국에서는 흑인여성인권을 돕는 활동을 하기도 한 것 같은데요, 한국 알트루사는 현재 여성상담소 활동을 중심으로 정신건강사회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색 있는 점은 한국에서 전문직 여성이란 개념을 주부로 확장해서 해석했다는 점이지요. 문선생님이 주창하셨는데 설득력이 있어어 다른 회원들이 주부도 전문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알트루사는 주부 활동가가 많습니다. 저는 결혼을 하지는 않았지만요.
알트루사의 특색 중에 하나는 월급 받는 간사 중심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운영 주체가 되어 꾸려 가는 시민단체라는 점입니다. 알트루사는 페이를 받는 간사를 최소한으로 하려고 합니다. 한국 시민단체의 과제 가운데 시민없는 시민단체를 꼽는 이들이 많은데 알트루사는 그런 점에서 상당히 다르죠. 주류 시민단체가 겪는 문제를 벗어나 있습니다. 돈 받는 직업적 활동가가 시민으로 활동을 전담하고 시민은 후방에서 회비만 낸다는 개념으로 활동하는 곳이 아닌 것이죠. 봉사자는 직업적 활동가가 하는 일 가운데 단순하고 기계적인 일만 받아 단순노동을 하고 직업적 활동가가 지휘하는 형태가 아니라 서로 대등하게 활동을 기획하고 협력하고 평가하는 조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자기가 할 수 있을 만큼,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니 책임도 다 다양하게 집니다. 시민 각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것이죠. 문선생님은 여성상담소장님이시지만 돈을 받지않고 여성들을 상담하고 계시고 집단상담이며 계간지에 글쓰기며 수고료를 받지 않으십니다. 저도 따로 직업을 가지고 알트루사에서 활동을 하지만 페이를 받지 않아요. 여기 계신 알트루사 봉사자 대부분 유선희 간사가 아주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걸 제외하면 아무도 받는 월급이나 수고료가 없습니다. 오히려 후원금이며 이사회비며 심지어 점심값까지 다 각자가 지불하면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는 것이지요.
요즘 시민단체 내에서 재능기부라는 이름의 착취를 문제삼는 경우를 보는데요, 이건 기본적으로 월급 받는 간사 중심의 직업적 시민단체들 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이에요. 일단 간사와 일반회원이 대등한 관계가 잘 형성되어 있지가 않고 관계가 그러하니 일중심으로 협력하다보면 봉사자 자신이 단체의 손쉬운 도구로 다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직업적 활동가들은 월급이라도 받고 명망이라도 생기는데 자신은 재능기부라는 이름으로 받는 돈도 없고 이름도 알려주지 않거든요. 기실은 재능기부자체가 문제가 아닌 것이죠. 선배 활동가가 후배 활동가에게 헌신을 강요한다, 심지어 시민단체 내부에 노동조합 같은 모임이 결성되어 있기도 해요. 알트루사에서도 활동 문제로 갈등도 하고 활동양이 문제가 될 때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할 수 있는 만큼 선택하는 것으로 조절이 되는 것이고,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사회'라는 알트루사 슬로건이 가르키듯이 상담 받으러 왔다가 건강한 마음을 회복하면서 건강한 시민으로까지 성장하는 경험을 상당수 회원들이 경험합니다. 그 과정이 갈등없이 매끄럽고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의 책임감이라는 것도 정신건강의 한 영역으로 보기 때문에 성장하고자 하는 한 각자가 헌신하고 책임지는 부분이 전과는 달라져 가는 것이죠. 강제로 되는 게 아닌데 보통 이 부분이 다른 시민단체에서는 선배들에 의해 강제가 된다는 게 문제되겠죠. 그런 책임감이 갖춰지지 않은 채 시민단체 활동가로 지원하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알트루사에서 그렇게 성장한 회원들이 이사가 되어 활동하는데요 그래서 이사 수가 많습니다. 30명까지 둘 수 있어요. 임원을 선출하지만 시민 책임이 강조되는 조직인 만큼 수평적인 협력관계를 맺고 있고요. 유선희 선생님 경우는 이사회에서 자신의 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과 마주한 적도 있어요. 학창 시절에야 교장과 학생 관계였지만 알트루사에서야 같은 이사 입장에서 협력하는 거죠.
눈치채셨겟지만 알트루사 모람이면서 예람교회 교우들이 핵없는세상 회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숭실대 회원들
매달 시민모임을 열다가 2102년 8월 15일에 마침내 정식 시민단체로 발족이 되었는데요, 이때 숭실대 교수님이셨던 박정신 선생님이 상임대표를 맡아주셨고 민대홍 선생님이 그 인연으로 핵없는세상 두 번째 사무국장이시고 남태일목사님은 두 번째 사무처장이 되셨는데요, 제가 발표를 하는 탓에 숭실대 분들의 정체성 소개는 약할 수밖에 없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박정신 선생님은 기독교사를 연구하신 학자시고 현재 숭실대 교수를 거쳐 법인 이사시고요 기독교문화잡지 '그너머' 발행인으로 민선생님과 함께 일하십니다. 민선생님은 목사시면서 함석헌 연구로 박사논문을 쓰셨고 '그너머' 편집을 맡고 있는 일꾼이시죠. 남태일목사는 교회를 개척하시면서 마을도서관을 적극적으로 운영하시면서 사교육없는세상 회원으로, 또, 학교 운영위원장으로 핵없는세상 사무처장으로 아주 많은 일을 맡고 계십니다. 그러고보니 남목사님은 주로 00가 없는세상을 주로 만드시네요. 농담입니다. 남상일 선생님이나 이창원선생님은 남목사님 인연으로 회원이 되셨고요 두 분의 정체성은 두 분의 설명으로 대신하겠습니다.
핵없는세상에서 해온 일
핵없는세상 창립 전후로 당장 했던 일은 월마다 한 번씩 모여서 강연회를 연 것입니다. 박영신, 서경식, 박정신, 편영수 교수님들의 강연도 있었고 삼척탈핵운동에 오래 참여한 삼척시민 강연도 있었고 보통 시민들이 잘 모르는 심각한 주제인 사용후핵연료(핵발전소 쓰레기이자 핵무기 재료를 이르는 말이에요)에 대해 녹색연합 활동가 강연도 들었고 후쿠시마 장애인들을 불교단체와 공동으로 초청하여 강연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작은단체끼리 협력해 보려고 타단체와 협력하여 영화상영을 한 적도 있고 회원이신 양재경선생님께 창조과학에서 보는 원전문제에 대해 강연을 듣기도 했습니다. 청년탈핵단체 캠프를 약소하나마 후원하기도 했고 환경영화제에서 탈핵영화를 단체 관람하기도 했지요. 밀양송전탑 싸움을 하는 주민단식에 동조해서 시청 앞에서 하루 단식을 하고 회원들이 시청 앞에서 번갈아가며 하루 종일 1인 시위하며 지원하기도 했고요, 각종 탈핵관련 기자회견과 집회와 국민선언에 참여해 왔습니다. 후쿠시마 사고 시 일본 총리였던 간 나오토 국회 강연회에도 단체로 참여를 했습니다. 강연 후에는 대개 시민토론회를 열었고요. 이를 위해 강연시간을 길지 않게 잡으려고 애썼습니다.
각종 서명운동과 캠페인에 참여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 방청에 참여하여 원자력안전위원의 행태를 비판한 기사를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고 원안위 녹취를 일일이 참고하여 그들의 문제를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밀양과 부산, 삼척에 대표와 활동가가 방문하기도 했고 관련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고요. 한 해에 두 번 있는 탈핵 문화제가 있는데요. 3월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일 전후로 한 번 열리고 10월에 한 번 열리는데 거의 매번 부스를 설치해서 참여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합창단이 조직되어 작년 봄 탈핵문화제에서는 멋드러지게 합창을 해서 꽤 여러 곳에 이름을 날렸고요.
조직이 있는 예람교회에선 부활절 헌금을 매번 후쿠시마를 위해 쓰고 있고 월간 새가정사에 핵없는세상을 위해 광고를 한 해에 한 번 내고 있습니다. 알트루사에서는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종로구 계동에서 1인 시위를 벌여 왔고 현재까지 자체 핵없는세상을 위한 읽기모임을 한 달에 한 번 열고 있습니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회원 홍혜경님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탈핵수업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대만에서 탈핵운동이 힘있게 펼쳐져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한 적도 있는데요 삼삼오오 동네마다 활동하는 탈핵시민교육자, 특히 주부교육자들의 역할이 상당했다는데 알트루사에서 꾸준히 활동하시는 분 가운데 그런 주부가 계신 거죠. 30-40명 여성이 모이는 집단상담이 있는 수요일 모임 직후에는 자체 유인물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전달하고 탈핵관련 설문을 해서 시민교육을 펼치고 있습니다. 주말대안교육프로그램인 재미있는학교에서는 어린이 청소년들과 자체 탈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요. 어린이 청소년들은 탈핵 문화제 때 아주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방진복을 입고 행진하거나 손피켓이나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거나 자료집을 만들거나 다큐를 만들거나 어린이 탈핵 바자회를 열고 합창할 때 반주와 다채로운 목소리로 참여하지요.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이라는 전국탈핵단체연대조직이 있습니다. 핵없는세상도 이 단체에 집행위단체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회비를 내고 회의에 참여해 왔죠. 대개 전문성을 자랑하고 규모가 큰 직업적 단체들이 주름 잡습니다만 꿋꿋하게 참여해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다가 저선량방사능문제로 전국조직인 환경운동연합이 일동후디스와 소송하는 과정에서 타단체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으로 협상하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핵없는세상이 타 단체와 협력해서 환경운동연합의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고 역시 환경운동연합이 공동행동 내에서 전횡을 부린 점이 있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한 바도 있지요. 탈핵문화제난 각종 기자회견과 국민선언은 공동행동에서 추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요, 그때마다 박정신 이하 대표님들이 일찍부터 오셔서 회원들과 함께 준비하시고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밀양송전탑 문제로 시청 앞에서 큰 집회가 열린 적이 있는데 박정신 대표님이 단상에 올라가 연설을 하신 적도 있지요. 한 번은 프레스센터에서 각 단체 대표자 회의를 연 후 국민선언을 하는데 막상 가보니 대표자 회의에 실제 대표가 온 경우는 핵없는세상밖에 없었습니다. 전 설마 단체대표들이 그렇게 굴지 몰랐기 때문에 박정신 선생님께 죄송한 마음이 있었지만 유일하게 대표로서 책임을 다하고 참여한 단체라는 자부심으로 민망함을 달랬습니다. 정작 앞선 회의부터 참여한 대표에겐 국민선언을 하며 발언기회도 주지 않고 늦게 온 큰 단체 대표들이 주름을 잡는 것이 연대조직의 현실입니다만 핵없는세상으로 그들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니 기막힘을 좀 달래보기도 했습니다. 그날 박정신 선생님이 비싼 점심을 사주셔서 덕분에 아주 잘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공동행동 차원에서 진행한 광화문 1인 시위에는 그야말로 남녀노소 회원 모두가 참여를 했습니다. 핵없는세상이 한 주인가 두 주 동안 1인 시위를 맡아 진행했는데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청년부터 문선생님 박선생님까지 이순신 장군 동생 앞에서 애쓰셨으니까요. 이때 박영신 선생님 옆 자리에 있던 분이 당시 장하나 국회의원이었는데 박선생님의 제자라서 현장에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시더군요. 장하나 국회의원이 원안위 방청이며 밀양문제며 열심히 활약을 했는데 19대 국회의원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현실에서는 좋은 분들이 항상 빛나는 자리에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빛나는 자리를 목표로 사는 것은 아니니 그에 아랑곳하지 말고 살아야겠지만요.
공동행동 차원에서 벌인 탄원서 쓰기나 탈핵소송에도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현재 월성1호기수명연장허가취소소송에는 23명의 회원이 참여했는데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양재동 행정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됩니다. 아직 판결이 나기 전인데 박영희 대표님이 열심히 방청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사무처장 활동 경험을 정리하며
당장 뭘 해야할지 막막했던 처음에는 강연회를 주로 열었습니다. 애초에 도쿄전력을 상대로 소송을 하자는 의견을 박영신 선생님이 내신 적이 있지만 법적인 문제에 문외한이고 국제법률가도 알아야 하고 핵문제 자체에 그다지 이해도 없어 추진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 후 활동을 하다보니 일본 내에서도 소송을 하는 시민들이 있기는 했는데 도쿄전력 관계자나 당시 참사를 지휘하던 간나오토 총리 같은 관료들은 재판해서 대개 무죄 판결을 받았고 실제 소송에 들어선 활동가들은 폭발원인 규명 문제로 애를 먹어 원전 부품을 제공했던 미국 GE사(제너럴 일렉트릭), 일본 도시바, 히타치를 대상으로 소송해야 한다는 얘길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언가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 해 볼만 한데 초창기에는 저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강연회의 경우는 꾸준히 진행하다보니 주제와 강사 풀에 한계가 발생 했습니다. 또 강연회는 여기 저기 많았구요. 강연회만으로는 회원확대에도 한계가 있기도 했습니다.
1인 시위는 법적으로 집회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집회허가도 필요하지 않은 형태의 운동입니다. 1인 시위는 손쉽게 시민이 행동하는 방식이고 1인 시위를 경험한 시민들은 무언가 자신이 참여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점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운동에 처음 참여하는 시민의 경우 어려운 일만이 아니라는 걸 경험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1인 사위는 꾸준함이 있어야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인 시위만이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시민과 접촉점이 있어야 선전효과가 좋았습니다.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진행하며 2인 이상이 짝이 되어 설문지나 유인물을 나눠주고 시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효과적이란 생각을 합니다.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 1인 시위는 다른 운동가나 시민들도 많아 함께 수다 떠는 재미도 있습니다.
3월 10월 탈핵문화제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동안 어린이,청소년이 큰 기여를 했는데 앞으로는 합창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예측이 됩니다. 가사를 바꿔서 흔한 가요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쉽고 재미난 점이 있고 현장에서 퍼포먼스 성격이 있으니까요. 작년 합창에선 초 3 남학생이 랲을 해서 인기가 좋았지요. 노래나 퍼포먼스는 sns 상에서 확산시킬 수 있다는 잇점도 있습니다. 다른 단체에서 노래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조직이 있는 경우는 꾸준히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알트루사와 예람교회는 자체 조직을 탈핵조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관심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몸 담은 현장에서 다만 몇 명이라도 모임이 생긴다면 활동의 앞날을 기약하기 아주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꾸준함을 위해서는 전체 회원들에게 전달이 되는 소식지가 아주 유용하고 당장 모임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회원이나 회비만 내는 회원이라도 한 데 결속하고 활동에 관심을 유지시키고 교육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사무국활동을 하고 연대활동에도 참여를 하다보니 부족하나마 한국 탈핵운동의 흐름이 조금은 파악이 되어가는데요, 일단 회원들을 확대하고 유지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실천과제를 제시하고 꾸준히 벌이는 것이 아주 유용하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탈핵문제는 꾸준히 무언가를 보고 생각하지 않으면 금세 경각심이 사라지는 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니 꾸준히 할 수 있는 핵없는세상의 구체적 사업이 하나 있다면 그것을 핵없는세상 사업으로 내세우면서 회원을 모집하고 계속 활동해 가기 쉬울 것이라 예측합니다.
핵없는세상이 탈핵운동계의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활동을 발견하고 개척한 것이 있는데요 원전관련 공공기관 회의를 방청하고 그것을 세상에 알리는 활동이 그것입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와 각종 재판 방청활동입니다. 원안위 회의는 한 달에 두 번 열립니다. 일정은 비교적 나중에 발표를 하지만 아침 9시부터 회의가 시작이 되어 끝나는 시간은 정해지 있지 않습니다. 큰 이슈가 걸린 사안은 밤 11시에도 끝나거든요. 시민 누구나 방청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민 방청자가 많지 않습니다. 적습니다. 독일의 경우 원안위원들의 회의가 생방송 되어 11시간 회의를 시민 모두가 시청하며 알권리를 보장하고 함께 고민하고 합의해 가는 방법을 취하는데 저희는 방청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기도 하지만 공개도 하지 않습니다. 원안위 활동이 모든 원전 관련 인허가를 관장하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단체들이 언론과 국회를 상대하고 집회 등의 싸움에 집중하느라 역량을 쏟지 못했던 일이기도 한데요, 여러 가지 이유로 방치된 사업입니다. 가끔 이슈가 되는 사안의 경우 전국규모 환경운동단체 활동가 소수가 방청을 하는 형편입니다. 최근에는 밀양시민들이 방청하다 화가 나서 항의를 하고는 퇴장 당하기도 했습니다만 원안위원들의 행태가 어떤지를 안다면 시민들이 도저히 방치하고 있을 수 없는 활동입니다.
대한민국 원안위는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조직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원자력안전이라는 과제는 두 가지 크게 다른 입장을 낳습니다. 원전산업을 육성하는 진영에서는 원전산업을 안전하게 관리발전해 가겠다는 것이고요 원전 자체가 위험하다고 보는 진영에서는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한다는 것조차 쉽지 않음을 자꾸 드러내게 되는 거죠. 두 가지 입장이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원전의 안전을 도모하게 되는 것인데요, 이명박 정부에는 원전진흥론자들이 원안위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정부, 여당, 야당, 위원장 추천으로 총 아홉명의 원자력안전위원을 위촉하게 합니다. 위원장이 핵공학 전공자거나 원전관련 업무를 맡았던 관료가 대부분이고 위원의 경우에도 원전관계자들이 상당수입니다. 워낙은 민간인들이 참여해서 시민안전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지켜내겠다는 명분이 있던 것이지만 속내는 원전진흥론자들의 허수아비가 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위원회가 조직되고 회의가 공개되기 때문에 시민이 개입할 여지가 생겨난 것이지요. 회의를 방청해 보면 가관이 아닙니다. 말 한 마디 안 한 채로 귀가하는 위원도 있고, 질문하고 문제제기를 하면 질문한 위원이 박사고 의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와서 공부하냐고 타박하는 권위적인 사무처장이 있는가 하면, 전관예우처럼 원전관련 연구소나 정부부처에 근무하던 전문가가 원전산업에 재취업을 몇 년간 금지하는 법률이 전문가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니 국가손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기도 합니다. 사무처는 위원의 활동을 보필해야 하는데 결정에 권위적으로 개입하고 자신들이 절차를 어기고 위원을 대신해서 처리하기도 하고 원자력과학기술원 과학자들을 무조건 믿자, 과학자들이 얼마나 애쓰냐 믿어주자는 태만한 소리를 줄창 해대는 위원도 있습니다. 전문적인 이해가 없이도 시민의 눈높이에서 보고 그들의 활동을 견제할 시민 역할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방청 경험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대표님들부터 회원들이 시간 날 때마다 한 시간이고 오전이고 가능한 시간에 참여해서 방청을 하고 후기를 쓰고 그것을 모아 정리를 하고 경험이 쌓이고 내용이 쌓이면 그것으로 논평을 정기적으로 내기 시작한다면 원전 안전을 위해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하나 김제남 위원이 방청자로 와서 원안위원을 압박하고자 해보기도 했고 방청자를 무시 못하게 조치를 취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그것 때문에 그 두 분은 외려 국회의원의 권력을 남용한 경우로 몰려 수난을 겪기도 했습니다. 회원님들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앞으로도 원안위 및 소송방청 활동을 적극적으로 고민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읽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읽고있습니다!! 중간에 숭실대회원들 밑에 2102년이 2012년의 오타가 아니가해서 올려봅니다~^^ 자세한 과정을 몰라 이번 총회(?) 다녀오신 이야기 들으면서도 저만 이해안되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는데 선생님의 수고로 잘 정리해주셔 모임을 이해하는데 많은도움이될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
정정합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소송과 관련하여 소송대상이었던 회사는 미국 GE사(제너럴 일렉트릭), 일본 도시바, 히타치으로 바로잡습니다. 제가 혼동했습니다. GM이 아닙니다. 이점 착오없으시길 바랍니다. 죄송!!
정정. 환경운동연합과 소송했던 분유회사는 일동후디스였습니다.
다읽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읽고있습니다!! 중간에 숭실대회원들 밑에 2102년이 2012년의 오타가 아니가해서 올려봅니다~^^
자세한 과정을 몰라 이번 총회(?) 다녀오신 이야기 들으면서도 저만 이해안되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는데 선생님의 수고로 잘 정리해주셔 모임을 이해하는데 많은도움이될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