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1주일(다해)
큰 돌과 작은 돌
두 여인이 노인 앞에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
한 여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 남편을 바꾼 일에 대해 괴로워하면서 스스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여인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노인은 첫 번째 여인에게 큰 돌 열개를 뒤의 여인에게는 작은 돌 여러 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두 여인이 돌을 가져오자 노인은 들고 왔던 돌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큰 돌을 들고 왔던 여인은 쉽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여러개의 작은 돌을 주워온 여인은 원래의 자리를 일일이 기억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은 말합니다.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니라. 크고 무거운 돌은 어디에서 가져왔는지 기억할 수 있어 제자리에 갔다 놓을 수 있으나, 많은 작은 돌들은 원래의 자리를 잊었으므로 다시 가져다 놓을 수 없는 것이다. 큰 돌을 가져온 너는 한때 네가 지은 죄를 기억하고 양심의 가책에 겸허하게 견디어 왔다. 그러나 작은 돌을 가져온 너는 비록 하찮은 것 같아도 네가 지은 작은 죄들을 모두 잊고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는 뉘우침도 없이 죄의 나날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너는 다른 사람의 죄는 이것저것 말하면서 자기가 죄에 더욱 깊이 빠져있는 것은 모르고 있다.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월간 좋은 생각, 1992년 8월호, p.101]
오늘은 교회력으로 다(C)해의 첫날이자 대림 제1주일이다.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가는 이때에 우리 교회는 다해 첫째 날을 맞이하였다.
구세주께서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대림절 동안 사제는 자색 제의를 입고 이 시기가 보속과 회개의 시간임을 깨우쳐 준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오시는 분에 대한 준비의 자세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고 또 그분이 오시면 어떻게 대접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또 언제 도착하시는지도 알아야만 제대로 접대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맞이할 손님은 어둡고 암울한 이 세상을 밝게 비추실 메시아, 구세주이시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대접을 받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치셔서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사하기 위해서이며 조건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 주시기 위해서이다. 이 조건 없는 사랑의 전달자로서 오실 메시아는 이미 구약의 예레미야서에서도 예언되었다.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에게 한 약속을 이루어 주겠다.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예레 33,14-15)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야훼 우리를 되살려 주셨음’이라는 명칭이 예루살렘이 아니라 ‘메시아’에게 직접 적용되는 것이다. 이 명칭은 당시의 비겁한 왕 치드키야 (B C. 597-586)의 이름과 풍자적으로 대립된다. 그 명칭은 당시 왕이 실현시키지 못한 정의를 메시아가 실현시키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약속을 지키는 체 하다가 변심하여 약속을 저버리는 세상의 왕들과 대조적으로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는 정의를 펼치고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분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바로 이런 정의를 펼치시는 평화의 왕, 구세주이시다. 참된 희망을 주고 신뢰를 주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손꼽아 기다려야 하는 분이다. 이분이 오시면 온갖 억울함과 불의가 사라지고 모든 이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이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 자기의 삶에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주어진 과제를 위해 얼마만큼 최선을 다했는지 자신이 안다. 그리고 하느님이 아신다. 나를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내 양심 앞에서 내게 주어진 이 삶의 과제를 위해서 나는 얼마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나날의 삶 안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또 하나의 하느님의 겸손하고 충실한 종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 종말이 다가오면 해와 달과 별에 이상한 징조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면서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루카 21,27)라고 말하고 있다. 또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라고 언급하고 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든다는 것은 그 분을 향하여 마음을 쏟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곧 깨어 기도하며 그분의 오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분 앞에 떳떳이, 흠 없이, 그리고 거룩한 자로 서 있을 수 있기 위하여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서로서로 사랑하며 아낌없이 나누는 생활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오늘의 제2독서(1테살 3,12-4,2)의 말씀처럼 무엇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인지 생각하면서 하느님 사랑 안에 머무르는 참 기쁨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 그리하여 오시는 주님을 두려움과 떨림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흔쾌히 맞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