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근무제와 페미니즘
국미애 지음|여성학 총서 14|147×217×19 mm(하드커버)|336쪽 24,000원|979-11-308-1374-5 93330 | 2018.10.15 ■ 도서 소개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나 노동시간 분포에 관심을 가져야 노동 중심 사회의 틀을 깨기 위한 여성주의적 접근
국미애의 『유연근무제와 페미니즘』이 푸른사상사 <여성학 총서 14>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유연근무제가 장시간 노동의 뿌리를 흔들고 노동자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지하면서,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의 평등한 공유를 지향하는 기획으로 작동하게 하려는 여성주의적 개입이다.
■ 저자 소개 국미애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졸업. 인천발전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으로 일하였고, 현재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에서 여성노동/일자리 분야 등 성 평등 정책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 『성희롱과 법의 정치』, 『젠더 노동과 간접차별』(공저)이 있고, 번역서로 『성적 차이, 민주주의에 도전하다』(공역), 『시간을 묻다: 노동사회와 젠더』(공역)가 있다. ■ 목차 ■ 책머리에
제1장 유연근무제와 성평등 1. 잊혀진 「로드맵」, 남겨진 시간제 일자리 2. 유연근무제, 어떤 변화로 만들 것인가 3. 유연근무제와 성별 분업 4. 일터의 역동(dynamics)에 주목하자
제2장 장시간 노동 체제의 형성 1. ‘근면’과 ‘협동’으로 포장된 장시간 노동 2. 시대를 관통하는 성별 임금 격차 3. ‘노동시간 단축’과 ‘초과 근무’의 공존
제3장 ‘제도화된’ 유연근무제, 무엇을 지향하는가 1. 공공부문:일-가족 양립과 일자리 창출 2. 민간부문:인력 활용과 가족 친화 경영
제4장 유연근무제의 선별적·배타적 적용 1. 기혼자의 육아 지원, 0순위! 2. “여성만을 타깃으로?” 3. ‘책임’도 ‘권리’도 적은 하위 직급만 가능? 4. 비정규직 배제의 역설
제5장 ‘조직’의 무엇이 유연해지고 있을까 1. 업무 조정과 인력 문제 간과 2. “상사의 스타일”에 좌우? 3. ‘용감한 개인’의 결단 4. ‘커리어’와 맞바꾼(tradeoff) 시간표? 5. 생산성 증대 논리에 포박된 다양성
제6장 노동시간, 헌신의 징표? 1. 지켜지는 출근 시간, 늦춰지는 퇴근 시간 2. 자발적 규율:‘유연한’ 시간표의 ‘경직된’ 사용 3. ‘회사 인간’으로 진화하기 4. ‘표준 노동자’ 혹은 ‘반(semi) 노동자’
제7장 두 개의 시간:‘경제적’ 시간, ‘그림자’ 시간 1. ‘열혈 육아’ 아버지:‘이상적 노동자’ 궤도 이탈 2. ‘어머니 궤도’의 갈등적 수용:성취의 유예 3. 남편이 빠진 ‘일-가족’ 양립 4. 성별 분업, ‘배려’와 ‘효율성’의 미덕?
제8장 유연근무제의 재구성 조건 1. 노동과 시간의 평등한 공유 2. 속도? 방향!:‘좋은 일자리’ 나누기 3. 다양한 삶의 모습, 다양한 노동 생애 고려 4. 노동자의 ‘시간 주권’ 보장
■ 참고문헌 ■ 찾아보기
■ 출판사 리뷰 이 책은 노동시간과 성 평등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유연근무제는 장시간 노동 체제에 도전하는 제도적 접근이며, 시간을 불평등 구조로 문제화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은 유연근무제가 장시간 노동의 뿌리를 흔들고 노동자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지지하면서,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의 평등한 공유를 지향하는 기획으로 작동하게 하려는 여성주의적 개입이다. 노동시간은 성별 관계의 평등 혹은 불평등 문제를 다루는 핵심 주제이다. ‘워라밸’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월화수목금금금’의 냉정한 현실이 공존하는 상황은 무엇보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어야 함을 드러내준다. 그런데 누구의 어떤 시간이 줄어들어야 하는가. 한국사회의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일상적인 재생산을 ‘누군가’ 도맡아 한다는 전제하에 유지되어왔다. 그 누군가는 대개 여성이다. 장시간 노동은 개선되어야 하지만, 그 방향은 단축에만 있지는 않다. 노동시간 단축의 중요성만큼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재량권과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도 시급하고 절실하다.
■ 책머리 중에서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Work and Life Balance의 줄임말인 워라밸은 일과 개인생활의 조화로운 균형을 의미한다. 2018년 한국 사회를 전망한 책에서는 “개인생활보다 직장을 우선시하는 과거 세대와 달리, 일 때문에 자기 삶을 희생하지 않으며, 특히 나 자신, 여가, 성장을 희생할 수 없는 가치로 생각하는” 젊은 세대를 워라밸 세대(Generation ‘Work-Life-Balance’)라 칭하기도 하였다.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용어 ‘월화수목금금금’을 떠올려보자. 주말도 없이 평일처럼 일해야 하는 상황, 충분히 쉬지 못하고 일에 쫓겨야 하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이 우리의 현실을 더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시간이다. 워라밸을 가능하게 하려면, 월화수목금금금을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노동시간이 줄어들어야 한다. 직장일에 쏟는 시간을 줄여야 가족을 돌보거나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된다. 그런데 누구의 어떤 시간이 줄어들어야 하는지는 찬찬히 따져볼 일이다. 워라밸을 가로막고 월화수목금금금을 강제하는 이른바 ‘장시간 노동’은 유급 노동(paid work) 중심의 삶을 표준으로 만들어온 ‘노동 중심 사회’(work-centered society)를 지속시켜왔다. 그리고 노동 중심 사회는 장시간 노동하는 사람과 그 가족의 일상적인 재생산을 ‘누군가’ 도맡아 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 누군가는 대개 여성이다. 우리나라 여성과 남성의 1일 유급 노동시간은 각각 273.3분, 421.9분이다. 여성에 비해 남성의 유급 노동시간이 1.5배 정도 더 길다. 그렇다면 무급 노동시간은 어떤가. 여성의 1일 무급 노동시간은 227.3분으로 남성의 45.0분에 비해 다섯 배 이상이다. 결과적으로 여성의총 노동시간은 남성에 비해 길다. 시간의 절대적인 양에서 차이가 난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성격의 시간에서 어느 정도의 차이가 나는지, 우리 사회가 어떤 시간에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지를 짚어보는 일이다. 노동시간은 성별 관계가 평등한지 불평등한지를 다루는 핵심 주제이다. 한 국가의 노동시간이 얼마나 성평등한지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총 노동, 즉 유급 노동과 무급 노동이 여성과 남성에게 동등하게 공유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책은 노동시간과 성평등의 관계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였다. 장시간 노동은 개선되어야 하지만, 그 방향은 단축에만 있지는 않다. 노동시간 단축의 중요성만큼 노동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재량권을 높이는 것, 노동자의 상황과 요구에 맞출 수 있게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도 시급하고 절실하다. 유연근무제(flexible work arrangements)는 어디에 강조점을 두는가에 따라 두 가지로 정의된다. 하나는 노동력 활용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다른 하나는 노동자의 재량권을 확대하는 방안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유연근무제는 1990년대 중반 민간기업에서 노동력을 유연하게 활용하기 위한 전략으로 도입했는데, 2000년대 들어 일과 가족생활의 양립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최근에는 워라밸을 실현하는 방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유연근무제는 무엇을 목적으로 정의되고 어떻게 활용되는가에 따라 매우 다른 의미의 제도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총 노동의 성평등한 공유와 분배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로서 유연근무제에 주목하였다.
■ 책 속으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총 노동은 누구에 의해 얼마만큼의 시간을 들여 수행되고 있을까. (중략) 우리나라 여성의 1일 무급 노동시간은 227.3분으로 남성의 무급 노동시간 45.0분에 비해 다섯 배 이상이다. 반면 유급 노동시간은 여성이 273.3분, 남성이 421.9분으로 1.5배 정도 차이가 난다. 결과적으로 1일 총 노동시간은 여성 500.6분, 남성 466.9분으로 집계된다. OECD회원국의 노동시간 분포 양상도 한국과 유사하다. 하지만 무급 노동시간의 성별 격차가 한국처럼 크지는 않다. 노동시간의 이와 같은 분포는 과연 공정한가. 50 대 50의 기계적 균형이 성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듯, 하루에 30분 정도 더 일하는 것 자체를 불공평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절대적인 양에서 얼마만큼 차이를 보이는가,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어떤 노동에 더 중요한 가치가 부여되고 있는가이다. 위와 같은 분배는 서로 ‘다른’ 영역의 책임을 여성과 남성 각각에게 부여함으로써 마치 평등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화폐를 중심으로 경제력을 측정하는 자본주의 제도 안에서 위와 같은 노동의 분배는 여성을 경제적으로 의존적인 존재로 만드는 효력을 갖는다. (19~20쪽)
출근 시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퇴근 시간은 늦춰지는 게 당연한 문화에서 유연근무제의 실행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퇴근 사유를 제출하도록 하거나 간식 타임을 통해 근무시간이 자연스럽게 연장되거나 직급에 따라 퇴근 시간이 유예되는 등 정시 퇴근을 비정상화하고 초과 근무를 정상화하는 장치는 여러 일터에서 발견된다. 여기에는 퇴근 시간을 노동자의 태도와 연결시켜 평가하고 시간을 통해 위계가 확인되는 정치가 작동한다. (199쪽)
유연근무제가 가정 내 성별 역할을 지원함으로써 여성의 시간 갈등을 줄여준다면, 직장에서는 유연근무제를 사용하는 기혼 여성과 그렇지 않은 남성 간의 성별 분업이 순환되며 구조화된다. 여성의 재생산 노동 부담으로 인한 사회적 관계망의 한계와 이를 고려한 업무선택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더욱 여성적인 직무에 한정시키는 성별 직무 분리를 강화시킨다(신경아, 1999). 여성의 임금노동은 남성의 노동에 기대어 있는 부차적인 것으로 통용된다. 현재의 노동시간 체제는 임금노동에 몰두하기 어려운 여건의 노동자가 다소 덜 중요하거나 덜 힘들거나 시간을 덜 들여도 괜찮은 일을 담당하도록 합리화한다. (262~263쪽) |
출처: 푸른사상 출판사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사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