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 (창세기 1:3~5)
그동안 '80'이란 숫자가 귀에 깊이 박혔습니다. 교회창립 80주년기념사업이 시작되면서
지난 2~3년 동안 수도 없이 말하고 들었습니다. 매달 두 번째 수요기도회, 그리고
금요기도회 때에도 몇 차례 특별기도회를 했습니다. 올해가 80주년이므로, 80이란 숫자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입니다.
영락교회창립 80주년은 영락교회에도 단 한 번이요, 우리에게도 단 한 번입니다. 80이란
숫자를 가슴 깊이 닿도록 느끼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한경직 목사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누구보다 진하게 느끼시겠습니다. 또,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첫기초를 놓은 분들이라면 80이란
숫자를 더 절절하게 느끼실 것입니다.
우리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70주년, 75주변에도 그렇게 해왔습니다.
제가 영락교회에 부임했을 때, 많은 은퇴 장로님이 80주년에 뭔가 많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현대식 예배당을 지어야 한다고 말씀한 분들도 계셨지요. 모두
80주년을 기뻐했고, 기도하면서 특별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영역에서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 중 젊은 분들은 90주년, 100주년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분들도 그때가 되면 기념행사를
해야 한다고 느낄 것입니다. 특히 100주년에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100년이 주는 무게감이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0주년 되는 해라고 다를 게 있을까요? 100주년이 되는 2045년도 지금의 한해와
똑같을 것입니다. 열두 달인 것도, 계절의 변화도 같을 것입니다. 그때도 영락교회는 예배하고,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고, 교제하며 부지런히 주님을 섬기고 있을 것입니다.
모든 해가 중요합니다. 79주년이 있으니 80주년도 있고 그 후로도 같은 해가 20년이 더 흘러야
100주년이니, 모든 해가 다 중요합니다. 계단이야 두 세 계단씩 뛰어오를 수 있다지만,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가는 공동체가 군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급하다고 시간을
끌어 당길 수는 없습니다. 제대 날은 하루하루가 축적된 결과입니다. 그날을 기다리지 말고,
오늘을 기쁨으로 사는게 현명합니다. '이제야 그날이 왔네'라고 하지 말고, '벌써 그날이네!'
하면서 맞이하는 게 현명합니다. 80주년에도 전처럼, 전보다 더 열심히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이듬해도 그렇게 하고, 또 그 이듬해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 중에는 100주년을 맞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갈 분도 많을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영락교회를 떠나게 될 저도 100주년이 되면 초대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살아 있을지도 알 수 없는 제가 웃자며 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100주년을 맞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문제일 게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90주년,100주년을 채운 사람만 환대하는 분이 아닙니다. 주어진 한 해를, 아니 하루하루를 믿음
안에서 기쁨으로 산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어 환대하실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애굽은 최고의 사건이었지만, 그 이전 노예로서의 하루하루도 소중했습니다.
출애굽 당시의 모세, 아론, 미리암, 여호수아, 갈렙 등 이름이 거명된 이들과 당시의 백성만
위대한 게 아닙니다. 그 이전 수백 년 동안 노예로 태어나 노예로 살다가 노예로 죽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다 다 소중합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출애굽 세대가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과거에 빚지고 있습니다. 김운성 목사가 여기 있는 것은 43년 전에 신대원 1학년이던 제게
장학금을 모아 한경직기념사업회 이름으로 전해 준 당시의 성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80주년을 맞는 현재의 영락교회 성도, 기념사업을 위해 헌금을 드리고, 80주년기념사업위원회와
산하 분과에 속하여 수고하는 분만 소중한 게 아닙니다. 그 이전의 모든 선배님이 다 소중합니다.
지금 계시는 분, 먼저 주님께로 가신 분, 다음 세대까지 다 소중합니다. 나중에 100주년의 주역이
되는 성도들은 그때 80주년을 위해 기도하며 수고한 부모 세대를 기억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오늘 여기 있음으로써 90주년, 100주년의 소중한 일들이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오늘 여기의 삶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성실한 믿음으로 사는 것, 서두르지 말고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야말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도 빛을 창조하신 첫날 하루부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위대한 세상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영락교회의
100주년을 준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80주년인 올해를 살아 가길 원합니다.
- 김운성 목사님, 영락교회 발간 월간 ‘만남’ 25년 1월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