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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화지문 설참신도(口禍之門 舌斬身刀)
시편 12편 1-7절, 야고보서 3장 1-12절
한 문 덕 목사
[2019년 여름성경학교]
어제는 교회가 왁자지껄했습니다. 오늘 목회마당에도 썼지만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요!”라는 주제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음 주일까지 진행됩니다. 우리교회 유치부 초등부 어린이들은 총 13명이지만, 마침 휴가를 얻은 심민정 전도사님과 인하도 다녀갔고, 두산아파트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도 있었기에, 30명도 넘는 아이들이 교회와 아파트 놀이터를 오가며 시끌벅적했습니다. 교육부 교역자와 선생님들, 보조교사로 도와주시는 학부형들, 식사를 담당해 주신 애찬부장님과 여신도회원들까지 한바탕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매우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친구들아 함께 놀자!”라는 전도활동을 곁들였는데, 포스터도 만들고, 미리 초대장도 돌려서 그런지 작년보다 배나 되는 어린이와 그의 부모들이 교회에 와서 함께 참여했습니다. 교사들은 성경학교를 미리 준비하느라 몇날 며칠을 애쓰고 수고하였고, 덕분에 우리 아이들과 동네 어린이들은 매우 행복하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성경학교는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교회의 큰 행사이고, 매년 정해진 주제에 맞게 말씀을 배우고 새로운 찬양과 율동도 합니다. 우리 교단은 성경학교 때마다 노래들을 만드는데, 그 노랫말과 곡들이 참으로 좋습니다. 올해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찬양들을 보았는데, 작곡과 작사를 한 이들 중에 한 이름이 눈에 띠었습니다. 제가 전에 목회하던 교회에서 가르쳤던 학생이 어느 덧 주일학교 교사가 되고 작곡가가 되어 이번 성경학교 노래를 만들었는데, 너무도 잘 만들었고, 그래서 더욱 반가웠습니다. “조물조물”(임다운 글, 곡)이라는 노래입니다.
잠깐 이 노래를 불러볼까요? “조물조물 조물딱 만져요. 내 손 위에 있는 흙을, 조물조물 조물딱 만지면 어느새 따뜻해져요. 훠얼훠얼 하늘을 나는 새도 폴짝폴짝 뛰노는 다람쥐도 조물조물 조물딱 내손으로 생명을 빚을 거예요. 조물조물 조물딱 주님도 손에 흙을 올려놓고, 조물조물 조물딱 만져서 만물을 빚으셨을까? 살랑사랑 싱그런 꽃내음도 투닥투닥 장난치는 우리들도 조물조물 조물주 하나님이 생명을 빚으셨어요.” 이 노랫말을 생각하며 노래를 부르면,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마음도 한없이 순수하고 맑았던 시절로 돌아가게 됩니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당신의 믿음은 생각이 되고 그 생각은 말이 되며 말은 행동이 되고 행동은 습관이, 습관은 가치가, 그리고 그 가치는 당신의 운명이 된다.”(Your beliefs become your thoughts, Your thoughts become your words, Your words become your actions, Your actions become your habits, Your habits become your values, Your values become your destiny.)는 말을 남겼습니다.
성경학교는 2-3일 정도 진행되지만, 이 기간 동안의 의미 있는 경험들은 우리 아이들의 믿음과 생각, 말과 행동, 습관과 가치를 만들어가고, 그것은 결국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형성하며 운명이 될 것입니다. 제가 저 스스로를 돌아보며 어떻게 목사가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가장 가깝게는 바로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의 경험들이 제 삶에 아로새겨졌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는 세상과는 다른 분위기와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탄식]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꿈꾸는 하나님 나라와 전혀 다른 현실을 만나게 됩니다. 교회에 오면 안전하고, 즐겁고, 행복하고, 가슴이 확 트이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오늘 시편의 기자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주님, 도와주십시오. 신실한 사람도 끊어지고, 진실한 사람도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서로서로 거짓말을 해대며, 아첨하는 입술로 두 마음을 품고서 말합니다. ~ 중략 ~ 주님,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리고, 비열한 자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높임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혜롭게 판단하고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쁜 생각을 품고 남을 이용해 먹으려는 사람들의 속임수에 넘어가고 맙니다. 대부분의 사기꾼들은 청산유수의 말로 사람들을 꼬입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의 말씀처럼 그들은 “혀는 우리의 힘, 입술은 우리의 재산, 누가 우리를 이기리요!”라고 자신만만해 합니다.
실제로 여러 사람이 함께 같은 말을 하면 우리들은 너무도 쉽게 그것을 사실로 믿어 버립니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이야기 중 삼인성호(三人成虎)의 일화가 있습니다. 전국(戰國) 시대, 위(魏)나라의 태자가 조(趙)나라의 인질로 가게 되었는데, 혜왕은 충신 방총(龐蔥)에게 태자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혜왕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어떨까요?” “그땐 아마 믿을 것이오.” “저잣거리에는 호랑이가 없음에도 세 사람이 입을 모아 그런 말을 하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됩니다. 제가 조나라로 떠난 후 사람들이 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을 겁니다. 아마도 세 사람은 훨씬 넘겠지요. 간절히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겠소.”(龐蔥與太子質於邯鄲,謂魏王曰:‘今一人言市有虎,王信之乎?’ 王曰:‘否.’ ‘二人言市有虎,王信之乎?’ 王曰:‘寡人疑之矣.’ ‘三人言市有虎,王信之乎?’ 王曰:‘寡人信之矣.’ 龐蔥曰:‘夫市之無虎明矣,然而三人言而成虎. 今邯鄲去大梁也遠於市,而議臣者過於三人,願王察之.’ 王曰:‘寡人自爲知.’)
그런데 방총이 떠난 후 많은 이들이 방총에 대해 비방하는 말을 했고, 거듭되는 비방에 결국 혜왕은 방총을 의심하게 됩니다. 나중에 태자가 인질에서 풀려 위나라로 돌아왔지만, 끝내 방총은 함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於是辭行,而讒言先至. 後太子罷質,果不得見.)
“세 사람의 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이 하는 실험인데요. 어떤 사람이 혼자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는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그냥 지나갑니다. 두 명이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러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와서 함께 쳐다보긴 하지만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그냥 지나갑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러면 아무 말이 없어도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하늘에 아무것도 없지만, 한참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세 사람이 어떤 말을 동시에 하면 그것을 우리는 너무도 쉽게 사실로 믿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십계명을 비롯해서 거짓 증언하는 것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수많은 거짓말들이 난무하였고, 더군다나 국가 차원에서도, 또 가장 올바른 말을 해야 하는 법조인들까지도 거짓말들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 그러했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우리 법원이 1심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회사라고 판단한 자동차 부품회사 다스가 미국 LA법원에서 BBK 주가 조작 사건 피해자들에게 2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3억 5천만원을 주라고 판결하였다는 소식이 나왔습니다. 다스와 BBK의 소유주가 누구인가를 놓고 설왕설래가 있었지만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유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입니다. 거짓말 하고도 대통령이 버젓이 될 수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상황을 이용하여 멀쩡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한 일들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2016년에 개봉한 다큐멘타리 영화 “자백”은 국가기관인 국정원에 의해 시민이 어떻게 간첩으로 조작되는가를 잘 보여준 영화입니다. 이 영화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우리의 마음을 깊이 찌릅니다. 보통은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에 배우와 스텝들과 관계자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올라오는데, 이 영화는 1958년부터 2015년까지 약 60년간 공안당국이 간첩으로 조작했던 사건의 목록들을 엔딩 크레딧으로 보여 줍니다. 거기에는 간첩이 아니었으나 간첩으로 몰린 100명의 명단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모두가 숨죽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러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영화를 후원한 사람들 4만 3556명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우리 성경에는 없지만 가톨릭 성경에는 있는 집회서 28장 17-18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매에 맞아 죽으면 매 자국이 날 뿐이지만 혀에 맞아 죽으면 뼈가 부러진다. 칼에 맞아 죽은 사람도 있지만 혀에 맞아 죽은 사람이 더 많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난 60년의 세월 동안 거짓 증언의 역사 속에서 숨죽이며 위협과 공포를 느끼며 살아 왔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하고야 말았습니다.
[성령강림절기에 다시 한 번 말씨를 생각하며]
우리는 지금 성령강림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성령 강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꼽으라고 하면, 사도들이 성령을 받고 담대해 졌다는 것과 서로 다른 언어들이 소통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우리도 담대해져야 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언어들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지만, 우리는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할 수도 있고, 거짓으로 사람을 죽이는 말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소통하는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탁 트이게 하지만, 대화가 되지 않으면 답답하여 울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말 한 마디에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오늘 설교 제목처럼 우리의 말은 때로 화를 부르는 문이요, 우리의 혀는 몸을 상하게 하는 칼이 됩니다.
우리 인간은 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사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이런 놀라운 문명을 지구상에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자유자재로 말을 할 수 있었고 그것으로 서로 소통하며 협력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고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하면서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뇌를 가지게 됩니다. 뇌가 발달하면서 기억하는 능력이 좋아지고, 언어의 능력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많은 정보들을 공유하고 기록하고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적으로는 맹수들에게 잡혀 먹을 수밖에 없는 신체조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고, 지구의 생태계를 바꾼 존재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곧 말하는 동물이라고 정의를 할 수 있습니다. 말은 사람의 사유 능력을 드러내고,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야고보서에 쓰인 대로 혀는 몸의 가장 작은 지체 중에 하나이지만, 온 몸을 조정하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말은 정말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57회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영국독립영화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스톡홀름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하고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의 4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무려 5개의 상을 받은 영화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박찬욱 감독의 그 유명한 ‘올드보이’입니다.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최민식 분)는 이유도 모른 채 15년간 독방에 갇혀 고통을 당한 뒤, 풀려나온 뒤에도 하루하루 파멸을 향해 치닫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비극의 발단은 영화의 주인공 오대수가 고교시절 잘못 놀린 세치 혀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신은 기억도 안 나는 말 한마디가 입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한 여성을 죽음에 이르게 했고, 그를 사랑했던 이는 복수를 결심했던 것이지요. 결국 오대수는 스스로 혀를 잘라 용서를 구하지만, 이미 장난삼아 던진 돌은 생명체를 죽이고, 다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영화 주인공은 자기의 이름 오대수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고 풀이하는데, 이런 삶의 태도가 그의 언어에 나타났고 결국 이런 비극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100만부가 넘게 팔린 <언어의 온도>라는 책의 저자 이기주 선생이 <말의 품격>이라는 책을 또 썼는데,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카페를 종종 이용해 글을 쓰는 작가는 여름 어느 날 사무실 근처 아담한 카페에 갑니다. 글을 쓰고 있는데, 40대 초반의 남자가 직원에게 커피를 주문했습니다. 직원은 매우 친절하게 응대하며 “고객님, 차가운 커피로 드릴까요? 뜨거운 커피로 드릴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남자의 반응은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아, 당연히 아이스커피지. 당신 같으면 이 더운 날 땀 뻘뻘 흘리면서 징글맞게 뜨거운 커피 마시겠어? 확, 그냥!”
이 상황을 보고 작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남자가 토해낸 명사와 동사, 거기에 달라붙어 있는 조사와 어미에는 타인을 향한 적의와 공격 본능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남자가 쏟아낸 자음과 모음은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닌 듯했다. 남자의 몸과 정신 속에서 오랫동안 서로 치고받으며 갇혀 지내다가, 입술이 열리는 틈을 타 감옥을 탈출한 죄수들처럼 느껴졌다. 남자의 말은 일종의 갑언(甲言)이다. 손님은 왕이기 때문에 갑으로 군림해도 된다는 그릇된 인식이 잔뜩 묻어나는 폭언에 가까운 지저분한 언어.”
사람이 어떤 태도로 무슨 단어를 사용하여 말을 하는가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작가는 바로 그것을 목격하였고, 그 손님이 나간 뒤 한숨을 쉬며 괴로워하는 직원의 마음을 함께 아파하면서 한 가지 상상을 합니다.
‘사내가 만약 프랑스의 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한다면 한 잔 값으로 얼마를 치러야 할까?’
프랑스의 어느 한 카페는 말의 품격에 따라 커피값이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메뉴판에 공식적으로 적혀 있는데요. 만약 반말로 “커피”라고 하면 7유로를 내야하지만, “커피 주세요.”라고 하면 4.25유로를 내고,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부탁합니다.”라고 하면 1.40유로를 낸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이어서 조선 후기의 문인 성대중(成大中)이 엮은 <청성잡기 靑城雜記>의 한 구절을 말합니다. “내면의 수양이 부족한 자는 말이 번잡하며, 마음에 주관이 없는 자는 말이 거칠다.”(內不足者 其辭煩 心無主者 其辭荒) 내면의 수양이란 반응하는 인간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는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반응을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극이 들어왔을 때,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추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행동하면 좋을지 사유의 공간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마련하는가에 따라 이 사람의 행동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집니다. 사람은 자신이 만든 그 공간에서 충분히 생각하고 정리한 다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 능력으로부터 사람의 됨됨이가 형성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해서 말하는 법을 배우면 그 사람의 인격도 점점 성숙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바로 말과 글로 외부의 모든 자극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말과 글은 바로 그 사람의 품격을 드러냅니다. 어떤 사람의 격과 수준을 나타내는 “품(品)”이라는 한자어가 입 “구(口)”자 세 개가 모인 것도 흥미롭습니다.
저는 평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교양 있는 신앙인, 신앙 있는 교양인이 되면 좋겠다고 여러 번 말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설교가 여러분들의 삶에 매우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경덕전등록>이라는 책에 보면 “땅으로 인해 넘어진 사람은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 땅을 떠나서 일어나려고 하면 끝내 일어설 도리가 없다.”(若因地倒, 還因地起, 離地求起, 終無其理)는 말이 나옵니다. 땅에서 넘어진 사람은 땅을 딛고 일어나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다고 하지만, 그 모두는 실제적으로 우리 인간의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삶 한 가운데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설교 또한 우리들의 삶과 밀착된 문제들을 다루지 않을 수 없고, 오늘은 말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습니다. 말과 글로 펼쳐지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전부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설교가 저 텅 빈 하늘로 흩어져 버리거나, 땅바닥에 떨어져 쓸모없이 되지 않으려면 여러분 또한 오늘 설교를 들으시고 스스로 노력을 해 주셔야 합니다.
이해인 수녀님이 말과 관련하여 이런 시를 쓰신 적이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이 시의 제목은 “나를 키우는 말”입니다. 좋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좋은 말이, 화가 가득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는 듣기 거북하고 거친 말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은 그 사람을 키우기도 합니다. 즉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은 누군가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힘이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 정말 말을 잘 써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지혜의 말씀으로 온 우주를 이끌어 가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순결한 말씀, 도가니에서 단련한 은이요, 일곱 번 걸러내 순은입니다.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우리의 말에 이런 주님의 말씀을 담아냅시다. 말에 실수가 없어 온 몸을 잘 다스리는 온전한 사람이 됩시다. 우리는 같은 혀로 주님을 찬양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저주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설교 후 기도
지혜의 말씀으로 우리를 가르치시는 하나님! 우리의 말씨를 고쳐 주소서. 사랑을 담아, 아름답고 정확하게 말하는 법을 배우게 하여 주소서. 말을 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구별하게 하시고, 때와 장소에 적절한 말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소서. 돼지에게 진주를, 개에게 거룩한 것을 주지 않는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을 찌르고 울리는 말에 경청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의 혀가 걷잡을 수 없는 악이 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이 아니라, 존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모든 만물을 살리는 생명수가 되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감사기도
거룩하시고 좋으신 하나님! 이 좋은 날 우리 모두를 주님 앞에 불러 모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이 주님의 승리의 날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 당신의 따뜻한 빛을 쪼이니 지난 삶의 구김살들이 살살 펴지고, 당신의 자애로움과 미소로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당신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지의 구름이 걷히고, 우리의 모든 이웃이 당신의 향기임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은총에 감사하여 오늘 우리의 삶과 예물을 드립니다. 우리는 당신만으로 충분하오니, 우리가 드린 예물을 꼭 필요한 곳에 써 주소서.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 곳에, 돈이 맘몬신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당신의 복음의 소식을 전하는 곳에 쓰이게 하소서. 특별히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는 생명사랑교회의 모든 사역을 통하여 우리가 날마다 진보하게 하시고, 더욱 더 주님과 가까워지게 하여 주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 파송사
사랑하는 생명사랑교우 여러분! 어깨를 쭉 펴고 똑바로 서십시오. 세상으로 힘차게 걸어 나가십시오. 자유인으로 사십시오. 구부러진 말을 버리고, 비뚤어진 입을 고치십시오.(잠 4:24) 입과 혀를 지켜 여러분의 영혼을 환란에서 구원하십시오!(잠 21:23)
* 축도
부활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셔서 무지에서 지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행에서 평안으로, 오류에서 진리로, 죄에서 승리로 옮기셨습니다. 이제는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과 거룩한 영의 친밀한 사귐이 사랑과 감사의 언어로 모든 생명에게 힘을 주는 생명사랑 가족들에게 지금부터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