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영육쌍전법’의 첫 대목은 “과거에는 세간생활을 하고 보면 수도인이 아니라 하므로 수도인 가운데 직업 없이 놀고먹는 폐풍이 치성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에 해독이 많이 미쳐왔으나,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라야 할 것이니라.”로 시작합니다.
영육쌍전법은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새로운 문명과 종교를 촉구합니다. 영육쌍전법은 생활을 떠나지 않는 산 종교의 건설법입니다.
세간생활의 핵심은 직업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직업은 생활의 강령이요 공익의 기초’라고 [사요]의 ‘공도자 숭배’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생활은 의식주를 구하는 것입니다. 즉 의식주를 구하는 활동이 직업입니다. 직업 없이 놀고먹는 폐해를 없애야 하므로 도를 닦는 수도와 교역도 둘이 아니어야 합니다. 수도가 직업이 되어야 합니다.
영육쌍전법은 ‘개교의 동기’와 연관됩니다. ‘개교의 동기’의 정신과 물질의 관계를 수도의 영(靈)과 생활의 육(肉)이라는 시각으로 버전을 달리하여, 정신문명의 수도와 물질문명의 생활이 둘이 아닌 새 세상, 산 종교로 전개하는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정전] ‘개교의 동기’에서 “현하 과학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른 물질문명의 위험성을 전제하면서도 물질문명을 배척만 할 것이 아니라 선용(善用)의 대상으로 삼도록 합니다.
이러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의 제반문제를 영육쌍전법에서는 수도의 영(靈)과 생활의 육(肉)이라는 프레임으로 새로운 문명과 종교의 건설을 촉구합니다. 새로운 미래시대의 육(肉)은 물질문명이 발달된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가상현실 속 물질문명의 생활이 될 것입니다.
영육쌍전법의 배경에는 소태산의 구도 환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의 고향이요 구도지인 영광 길룡리는 법성포가 생활권입니다. 그래서 법성을 통해 생활물자를 교류했던 것입니다.
법성포는 조선왕조의 조세창고이며, 칠산 바다의 풍성한 수산물의 집결지이며, 동학농민혁명의 활동지이며, 근대 제국주의의 물질문명이 강제 유입되었던 창구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법성포는 근대 문명의 조류가 밀려드는 전환시대의 통로로, 길룡리에서 법성포로 흘러가는 와탄천은 이러한 근대 물질문명의 직통로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법성포를 왕래하며 구도했던 것입니다.
소태산께서 “이 일을 장차 어찌할꼬?”라는 염원 속에서 깊은 정(定)에 드셨던 노루목 또는 선진포는 법성장으로 드나드는 길목으로써 근대의 물질문명이 흘러들어오는 지류였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이러한 물질문명의 대전환시기에 물질문명이 넘나드는 통로인 길룡리에서 구도하셨던 것입니다.
호기심 많고 주의심 깊었던 소년시절의 대종사는 옥녀봉과 상여봉 너머의 법성포를 바라보며 법성포로 들어오는 근대 물질문명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물질문명에 대한 호기심과 편리함 그리고 낮섦과 두려움에 당황하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구도의 경험은 대각 이후 물질문명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보이십니다. 대각 후 시국을 살펴보시고 그 지도강령을 표어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선포하시며(대종경 서품 4장), 저축조합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숯를 사고 파는 거래로 경제적 이익을 성취하며, 이 이익금으로 주변에서 일제에 의해 식민화되는 간척사업을 보시고, 제자들과 힘을 모아 길룡리 앞 갯벌을 막아 지역의 숙원사업이었던 논을 자주적으로 개간합니다.
이처럼 과학의 발달에 따른 물질문명은 소태산의 구도와 대각 그리고 창립 과정의 배경이었습니다. 영육쌍전법은 물질문명의 생활과 정신문명의 수도가 둘이 아니게 하는 법입니다.
‘영육쌍전법’의 이어지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불조사 정전(正傳)의 심인(心印)인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와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으로써 의·식·주를 얻고, 의·식·주와 삼학으로써 그(일원상) 진리를 얻어서 영육을 쌍전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니라.”
제불조사 정전(正傳)의 심인(心印)은 모든 부처와 조사가 바르게 전해주신 마음도장이라는 뜻입니다. 제불조사는 깨달은 자입니다. 경계 경계에 깨어있는 공부인입니다. 이렇게 깨어있는 공부인의 마음당처가 바로 심불 일원상, 심체 일원상, 법신불 일원상입니다.
이 일원상의 진리에 바탕한 삼학수행의 영(靈)으로 의식주의 육(肉)을 얻게 하고,
의식주를 구하는 육(肉)의 활동에서 삼학수행을 하여 일원상 진리인 영(靈)을 얻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육쌍전법의 시작도 ‘일원상의 진리’요 결론도 ‘일원상의 진리’입니다.
수양·연구·취사의 삼학은 일원상에 근원한 삼학이며, 의식주 생활을 떠나지 않는 삼학수행은 일원상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만일 의식주 생활 속에서의 삼학공부가 일원상으로 열매 맺지 못하면 생활 속에 떨어진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영육쌍전법의 열쇠는 일원상의 진리입니다.
수도의 영과 생활의 육을 쌍전하는 기반도 일원상이요 결과도 일원상입니다.
일원상에 기반하여 영육을 쌍전하고, 영육을 쌍전하여 일원상의 열매를 맺으면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사회·국가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일원상으로 영육을 쌍전하여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산 종교일 때 개인·가정·사회·국가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대종경 교의품 18장입니다.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우리 공부의 요도 삼학(三學)은 우리의 정신을 단련하여 원만한 인격을 이루는데 가장 필요한 법이며, 잠간도 떠날 수 없는 법이니, 예를 들면 육신에 대한 의·식·주(衣食住) 삼건(三件)과 다름이 없다 하노라. 즉, 우리의 육신이 이 세상에 나오면 먹고 입고 거처할 집이 있어야 하나니, 만일 한 가지라도 없으면 우리의 생활에 결함이 있게 될 것이요, 우리의 정신에는 수양·연구·취사의 세 가지 힘이 있어야 살 수 있나니, 만일 한 가지라도 부족하다면 모든 일을 원만히 이룰 수 없나니라. 그러므로 나는 영육쌍전의 견지에서 육신에 관한 의·식·주 삼건과 정신에 관한 일심·알음알이·실행의 삼건을 합하여 육대강령이라고도 하나니, 이 육대강령은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한 가지 우리의 생명선이 되나니라.”
소태산 대종사는 육신에 관한 의·식·주와 정신에 관한 일심·알음알이·실행의 삼학을 육대강령이라 하여, 이는 서로 떠날 수 없는 관계로 우리의 생명선이 된다 하십니다.
일심·알음알이·실행은 수양·연구·취사의 3학 수행으로, 이 삼학과 의·식·주의 생활을 온전히 겸행하라는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현실 삶을 영위해 나가는데 필요한 물질적 요소들을 의·식·주로 표현하고, 정신의 의·식·주에 해당하는 것을 일심·알음알이·실행이라 하여 병행할 것을 강조합니다. 정신의 삼학 수행과 생활의 의식주 간에 풍요로운 조화를 요구합니다.
일원상에 바탕한 삼학수행으로 의식주의 육(肉)을 얻고, 의식주의 생활을 떠나지 않는 삼학수행으로 일원상의 진리인 영(靈)을 얻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영육쌍전법은 일원상의 진리에 근거한 삼학 수도의 영(靈)으로 정신문명의 도학을 창출하고, 삼학에 바탕한 의식주 생활의 육(肉)으로 과학의 물질문명을 선용하게 합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회보] 제33호, 이공주 수필의 ‘나는 용심법을 가르치노라’는 법설에서 ‘정신문명 즉 용심법(用心法)’이라 정의합니다. ‘마음 작용하는 법’인 용심법이 곧 정신문명이라는 것입니다.
일원상을 체받아 삼학수행하는 용심법은 정신문명입니다. 이와 같이 정신문명인 용심법으로 물질문명을 선용하라는 것입니다.(대종경 교의품 30장)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문명을 배제한 정신문명은 육신에 병이든 불구자 같다 하십니다. 영육쌍전법에서 생활의 육이 배제된 것입니다. 또한 정신문명이 쇠약한 물질문명은 정신에 병이든 불구자와 같다 하십니다. 영육쌍전법에서 수도의 영이 결여된 것입니다.
이처럼 영육쌍전법은 문명차원에서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의 병행을 추구합니다.
대종경 교의품 31장 말씀입니다.
“안으로 정신문명을 촉진하며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야 영육이 쌍전하고 내외가 겸전하여 결함 없는 세상이 되리라. 그러나 만일 현대와 같이 물질문명에만 치우치고 정신문명을 등한시한다면 마치 철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칼을 들려준 것과 같아서 어느 날 어느 때에 무슨 화를 당할지 모를 것이니 이는 육신은 완전하나 정신에 병이 든 불구자와 같고 정신문명만 되고 물질문명이 없는 세상은 정신은 완전하나 육신에 병이 든 불구자와 같나니 그 하나가 충실하지 못하고 어찌 완전한 세상이라 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내외문명이 병진되는 시대라야 비로소 결함 없는 평화 안락한 세계가 될 것 이니라.”
이와 같이 수도의 영과 생활의 육을 쌍전하여, 안으로 정신문명의 영을 촉진하여 도학을 발전시키고, 밖으로 물질문명의 육을 촉진하여 과학을 발전시켜서, 내외가 겸전된 결함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개인·가정·사회·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소태산 대종사는 방언공사를 시작하실 때 “미래에도 보기 어려운 큰 회상을 건설하려면 도학과 과학이 병진하여 참 문명세계가 열리게 하는 법을 제정하겠다.”고 하십니다.
즉 정신문명의 영(靈)이 주체가 되어 물질문명의 육(肉)을 선용하여, 결국 정신문명과 물질문명이 병행되는 사회를 추구하십니다.
과학의 발달에 따른 물질문명은 소태산 대종사의 구도 배경이며 참 문명건설의 전제입니다. 그러므로 소태산 대종사는 물질개벽의 시대를 책임지실 정신문명을 창도한 주세성자이십니다.
영육쌍전법은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는 소태산 대종사의 포부요 경륜으로, 소태산 대종사가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수도와 생활이 둘이 아닌 영육쌍전의 산 종교를 건설하여 개인·가정·사회·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법입니다.
원불교의 가장 핵심 경전인 정전을 강의합니다.
원불교를 신앙하고 수행하는 모든 분들에게
이 강의가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불교 공식 홈페이지 http://www.wo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