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77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의 뜻은?
성경에 나오는 다윗은 왕임과 동시에 노래를 잘 하며 악기도 다루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때에 부르는 노래와 음악을 매우 중요시 했습니다.
이때에 제사를 맡고 있던 레위 사람들이 다윗에게 몇 명의 음악가를 예배를 위해 추천했습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의 이름이 아삽입니다. 그런데 그가 수천 년간 불리는 히트 곡들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동료였던 여두둔은 아마도 작곡과 지휘에 뛰어난 재능이 있는 음악가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삽이 작사한 시에 자신이 발전시킨 운율을 붙여 노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개역판 성경에 붙어있는 시편 77편에 대한 첫 설명 “아삽의 시, 영장으로 여두둔의 법칙에 의지하여 한 노래”는 오늘날 우리식으로 말하면 작사자 아삽, 작곡가 여두둔이라고 이야기 할 수있는 거지요.
그들은 임금들 밑에서 이제 막 정립되기 시작하던 이스라엘의 성전 예배와 제사를 음악적으로 완성시킨 사람들입니다. 마치 독일의 근대 시대에 왕들의 지원을 받아 하나님을 향한 노래를 가장 높이 발전시켰던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나 베토벤과 같은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어떨 때는 찬양대만 4000명 나팔수만 120명이나 되는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동원해서 찬양을 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삽과 여두둔은 이스라엘이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갖지 못했던 좋은 환경에서 음악가로서의 일생을 살았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아삽과 여두둔을 더 이상 그들이 계획하고 참여했던 거대한 음악의 스케일 안에서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맑았었는지 또는 그 찬양의 소리가 그 악기들의 소리가 얼마나 장중했었는지를 알지도 못합니다.
그들이 찬양할 때에 얼마나 멋진 음악적 기교를 썼었는지를 확인할 방법도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라졌습니다. 심지어는 오늘 본문 3절, 9절 그리고 15절에 나와 있는 셀라가 음악적으로 무엇을 의미했었는지를 오늘날 우리는 정확히 알 지 못합니다. 무려 3000년의 시간이 우리와 이 음악가들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삽의 시 시편 77편를 보며 무려 30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의 마음 깊은 곳의 외침과 그 외침의 시 깊이 쌓여있는 눈물의 의미를 공감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고통을 탄원하고 있습니다. 그 탄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들여지는 것이 거부되었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 탄원과 두려움의 마음을 감추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찬양을 만듭니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려 최선을 다했으나 그 유래와 근원을 알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있었고 이로 인한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