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에 쉬러 나온 물범, 바다 보이는 옹벽에 그려주세요
발간일 2021.11.03 (수) 14:16
녹색연합, ‘백령도 청소년 생태학교’ 점박이물범 생태활동 펼쳐
백령도는 10억 년 전에 형성된 지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서해 최북단 섬이다. 파도가 빚어낸 절대 비경 두무진, 천혜의 천연비행장 사곶해변, 바다의 소리를 품은 콩돌해안, 지구 내부의 신비를 간직한 진촌현무암, 시간의 지층이 주름으로 남은 용트림바위 등 학계의 오랜 관심과 연구 활동으로 2019년 국가 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 ‘살아있는 지질 박물관’ 백령도는 ‘생태명소’이기도 하다. 해마다 3월부터 11월까지 백령도 해역에 머무는 300여 마리의 점박이물범은 겨울이 되면 중국 보하이만과 랴오둥만으로 이동하여 유빙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다가 봄이 되면 한반도의 서해 물길을 따라 백령도로 돌아온다.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백령도 물범을 관찰할 수 있다. 위사진은 물범바위에서 쉬고 있는 점박이물범(사진 이상규), 아래 사진은 물범바위(출처 황해물범시민사업단).
‘살아있는 지질 박물관’ 백령도는 ‘생태명소’이기도 하다. 온갖 철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육상에서 물범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해마다 3월부터 11월까지 백령도 해역에 머무는 300여 마리의 점박이물범은 겨울이 되면 중국 보하이만과 랴오둥만으로 이동하여 유빙에서 새끼를 낳아 기르다가 봄이 되면 한반도의 서해 물길을 따라 백령도로 돌아온다.
동그란 머리와 큰 눈망울의 귀여운 얼굴, 지느러미처럼 변한 짧은 다리를 가진 점박이물범은 해양포유류다. 사람 키만 한 유선형의 몸은 회색 털로 덮여 있고 검은색의 불규칙한 반점 무늬가 있다.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점박이물범이 서해 최북단 섬에 서식하면서 분단된 남북한을 자유롭게 오간다는 점을 착안해 ‘비추온, 바라메, 추므로’ 점박이물범 3남매를 마스코트로 선정했다. 백령도 용기포 신항 마당에는 ‘점박이물범 3남매’가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4시간을 달려온 사람들을 깜찍한 모습으로 맞이한다.
▲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점박이물범이 서해 최북단 섬에 서식하면서 분단된 남북한을 자유롭게 오간다는 점을 착안해 ‘비추온, 바라메, 추므로’ 점박이물범 3남매를 마스코트로 선정했다. 백령도 용기포 신항 마당에는 ‘점박이물범 3남매’가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4시간을 달려온 사람들을 깜찍한 모습으로 맞이한다.
백령도 서북쪽에 있는 하늬해변은 점박이물범을 수시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저기 바다 위에 반짝반짝하는 검은 거 보여요? 동그란 머리 같은 게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잖아. 저게 물범이야. 물범 머리가 반질반질하니 대머리잖아, 그래서 햇빛에 반사되는 거지.” 물이 빠진 하늬바다의 너른 갯벌에서 굴을 채취하는 진촌리 아주머니가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설명해 주지만 아쉽게도 바다에 익숙하지 않은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알아야 보이는 법이다.
하늬해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수면 위로 낮게 솟아 있는 3개의 바위섬은 물범의 쉼터인 ‘물범바위’다. 눈이 밝은 사람은 바위에 올라 햇볕을 쬐며 쉬거나 잠을 자는 물범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바위가 그다지 큰 것은 아니어서 바위 위로 오르려는 물범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짧은 다리로 서로 밀치는 모습이 인간의 눈에는 마냥 귀엽게만 보인다.
1982년 천연기념물 제331호로 지정된 점박이물범은 1980년대만 해도 황해에 수천 마리가 서식하고 있었지만,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 등으로 개체 수가 계속 줄고 있다.
▲ 백령도 점박이물범 이동경로. 사진 출처 EBS 동영상.
2004년부터 점박이물범 보호 활동을 해온 녹색연합은 더 적극적인 활동을 위해 ‘황해물범시민사업단’을 구성했다. 2018년에는 주민들의 제안을 바탕으로 물범의 서식지 확장을 위해 물범 인공쉼터를 조성했다. 황해물범시민사업단 박정운 단장은 백령도에 상주하며 진촌리에 마련한 사무실을 거점으로 지역주민, 청소년들과 함께 백령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백령도 주민들이 점박이물범 보호 활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참여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 활동을 진행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박정운 단장은 백령도 주민들로 구성된 ‘점박이물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점사모)’, 백령중·고등학교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와 함께 지역 생태환경 보존과 어촌 공동체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5월 하늬해변과 진촌리 마을은 국가 생태관광지역으로 지정됐다.
지난 10월 29, 30일 이틀간 인천녹색연합과 백령중·고등학교는 ‘백령도 청소년 생태학교_기후변화와 점박이물범’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백령중·고등학교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 소속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 탐방, 워크숍 등을 진행했다.
▲ 지난 10월 29, 30일 이틀간 인천녹색연합과 백령중·고등학교는 ‘백령도 청소년 생태학교_기후변화와 점박이물범’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백령중·고등학교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 소속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 탐방, 워크숍 등을 진행했다.
첫날은 박정운 단장이 준비한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 변화와 점박이물범의 생존’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동안 진행해 온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 오전은 점박이물범 서식지인 용트림, 두무진, 하늬바다 등을 탐방했다. 오후에는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가 준비한 ‘백령도 점박이물범길 만들기를 위한 공공디자인 상상 스케치’ 워크숍이 진행됐다. ‘점박이물범길’은 백령면사무소에서 하늬바다에 이르는 1km 길이의 마을길이다. 마을길에 물범을 만나러 가는 길을 덧입히는 상상을 마음껏 펼쳐보는 시간을 가졌다.
길과 담장의 공공디자인 사례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난 후,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약돌에 각자의 물범을 새겼다. 백령면사무소로 이동하여 진촌1리 김치복 이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다함께 마을길을 걸었다.
백령면사무소 담장을 돌아서 진촌1리 주택 담장 사이로 난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자 마지막 추수를 서두르고 있는 밭 너머로 파란 바다와 하늘이 펼쳐졌다. 방어를 위해 둘러친 철책과 옹벽 사이에 바다로 향한 문이 작게 열려있다. 하늬바다에 들어서자 북한 땅 황해도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지척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물때가 맞지 않아 바위에 오른 물범을 볼 수는 없었지만, 백령도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은 물범과 만나는 길과 바다의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 이번 생태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길과 담장의 공공디자인 사례에 대한 강의를 듣고 난 후,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약돌에 각자의 물범을 새겼다.
글과 그림으로 정리한 생각들을 가지고 교실로 돌아와 점박이물범길은 ‘어떤 길이어야 할지’ 의견을 나누었다. 외부 방문객이 아닌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청소년들의 시선은 참신했고 사고는 유연했다.
“바다에서 바라보이는 옹벽 부분에 물범을 그리면 좋을 것 같아요. 해변에 온 사람뿐 아니라 물범바위에 쉬러 나온 물범도 그림을 볼 수 있게요.” “작은 단색 타일을 이용해서 물범을 표현하면 어떨까요? 픽셀처럼요.” “물범은 물때가 맞아야 볼 수 있으니까, 물때를 알려주는 안내 시설을 설치하면 좋을 것 같아요.” “물범이 물고기를 잡아먹어서 어부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잖아요. 물범 코가 하트모양이거든요. 하트모양을 이용해서 어부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걸 그려 넣어도 좋을 것 같아요.” “오르막길을 오르는 물범이나 이웃집으로 놀러 가는 물범을 담장이나 벽에 그리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물범과 함께 걷는 길처럼 느껴질 것도 같구요.” “도민들이 백령도나 물범에 관한 시를 짓고 길에 전시하면 어떨까요?”
▲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이 점박이물범길 만들기를 위한 공공디자인 상상 스케치를 하고 있다.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를 담당하고 있는 이은택 선생은 “물범이 인간에게 이익을 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범을 보호하려 애쓰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사람들의 실천으로 환경이 지켜지고 있다는 걸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지금 우리 학생들의 모습처럼, 캠페인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길에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라며 실천하는 학생들을 격려했다.
이번에 진행된 워크숍은 점박이물범길 공공디자인을 위한 밑그림이 되고, 내년 한 해 동안 주민들과의 소통과 참여를 통해 구체화 될 예정이다.
백령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로 오랜 시간을 가야 하는 가장 먼 섬이지만, 한반도가 분단되기 전에는 황해도 장산곶에서 불과 15km 떨어져 있는 내륙과 가까운 번성했던 곳이다. 지금은 북방한계선과 인접하여 남북 간 긴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한국 분단의 현대사를 품은 곳이 되었다.
▲ 학생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생태계 변화와 점박이물범의 생존’에 대한 강의를 듣고, 그동안 진행해 온 점박이물범 탐구동아리 활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생태학교에 참여한 학생들이 하늬바다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한 모습(출처 황해물범시민사업단)
남한, 북한, 중국 해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물범을 보호하고, 물범을 만나러 가는 길을 마련하는 백령도 학생들과 주민 그리고 활동가의 노력이 지역 문화와 공동체 발전의 디딤돌이 되고, 점박이물범길을 딛는 걸음이 생태와 환경을 생각하는 평화의 길로 다져지길 바란다.
글·사진 박수희 i-View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