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밥 밥 이야기>/구연식 우리 민족문화는 농경문화가 대부분이다.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식사대용 간이식품이 많이 등장했다. 그중에서 주식인 쌀을 이용한 식품이 대종을 이룬다. 그 옛날에는 가마솥 하면 자연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누룽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가마솥이 아닌 누룽지 기계에서 찍어내는 것이어서 모양만 비슷하지, 맛과 향은 얼토당토않다.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에 익숙했던 주전부리였기에 농촌지역 꼰대 세대에게는 또 다른 초근목피의 춘궁기를 더욱 떠올리게 한다. ‘깜밥 밥’은 생소한 단어 이어서 보통사람은 쉽게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 옛날 전후(戰後) 군부대 인근에서 군수식품 자투리로 주민들이 조리했던 ‘부대찌개’나 ‘꿀꿀이 죽’을 떠올리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1950년대 논산 육군훈련소 후반기 교육부대인 27 연대(현재 그곳에는 제7공수여단이 있음)가 전북 금마에 있었다. 그 27 연대 영외부대(營外部隊)인 숙영지(宿營地)가 ‘양곡(陽谷) 소세양 신도비’와 ‘가람 이병기 생가’를 가는 길목인 우리 마을 앞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전쟁 직후 이어서 가난에 찌든 생활은 누구나 피할 수 없었다. 숙영지 인근 마을에 깜밥 밥은 춘궁기 구황(救荒)을 해 준 끼니였다. 그 시절 군부대 취사도구는 증기식(蒸氣式)이 아닌, 대형 무쇠 가마솥에 취사(炊事) 준비를 했기에 밥은 몇 층 밥으로 익혀져 있었고, 아랫부분은 까맣게 타버려 삽 모양의 큰 주걱으로 깝밥을 긁어내면 둥근 멍석 모양으로 나왔다. 그것을 대충 말려서 인근 주민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판매했다. 그것도 알음알음을 통하여 조금 덜 타고 좋은 것을 적당한 가격으로 구매하여 햇볕에 말린 것이 쌀 대용 식량이었다. 어머니가 부대 깜밥을 물에 헹구면 검게 탄 깜밥은 물에 둥둥 떠서 내려가고 덜 탄 깜밥은 가라앉아 그것으로 밥을 지어서 먹었던 것이 “깜밥 밥”이었다. 여러 번 헹구면서 밥의 진기는 모두 빠져나가 찰기는 없고, 퍼슬퍼슬했다. 어머니가 학교 도시락으로 싸주면 검고 누른색 밥이었다. 그것도 없어서 허천나던 시절에 얼마나 고마운 밥이었는지 모른다. 전후 시절이라 한국군의 모든 군수품(軍需品)은 미국에서 보내온 것들이어서 한국군의 체격에는 맞지 않는 큰 군복이 대부분이었다. 소싯적 우리 집에는 재봉틀이 있었다. 어머니는 군인 아저씨들의 군복을 수선해 주어 가용 돈으로 긴요하게 쓸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수선한 군복을 숙영지 위병소(衛兵所)에서 해당 군인 아저씨에게 수선비를 받고 갖다 드렸다. 군인 아저씨들은 수선비 외에 미군 초콜릿, 비스킷, 바둑 껌 그리고 통조림 등을 주었다. 군부대 옷 심부름은 가장 신나고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일반 사회인이나 또래들보다 먼저 바다 건너온 선진국의 주전부리를 그 시절에 먹어 보았으니 말이다. 깜밥 밥은 보기도 싫고 냄새도 싫었지만, 군인 아저씨가 주신 과자는 너무 맛있어서 집에 오면서 다 먹어버려 어머니한테는 입을 깨끗이 닦고 시치미를 떼면서 과자는 안 받은척하기도 했다. 지금도 밥이 너무 타서 숭늉에 검은 쌀이 둥둥 뜨면, 그 옛날 어머니가 군부대 깜밥을 물에 헹구었을 때 검게 탄 깜밥을 밖으로 버리던 어머니의 손등 모습이 아른거린다. 아내는 지금도 전기밥솥이 아닌 일반 밥솥에 식사를 지어서 밥을 준다. 그래서 식사 시간에는 구수한 밥 냄새가 식탁을 가득 메꾸고 누룽지는 저절로 만들어지며 걸쭉한 숭늉도 곁들인다. 이렇게 만든 누룽지에 아들 손자 모두가 우리 집에만 오면 어느 상품 선전처럼 ‘손이 가요 손이 가∼.’이다. 아내는 수시로 만들어 놓은 누룽지를 모아서 서울 손자에게 택배로 보내거나 자식들에게 들려준다. 특히 손자들은 시중에서 파는 누룽지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할머니 누룽지만 찾는다. 지금은 쌀 생산량이 남아 농민들은 쌀값 안정을 주장하는 시위가 연례행사처럼 열리고 있다. 정부는 쌀 소비를 위한 각종 식품 개발과 벼 대체 작물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깜밥 밥 시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쌀이 남아 깜밥 밥은 가축 사료도 외면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인류는 부가가치가 높은 고차원 산업에만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1차 산업으로 하늘이 주신 생명의 양식인 쌀 생산을 내팽개친 느낌이 들어 천벌을 받을까 두렵다. 우주선을 타고 가는 조종사도 쌀밥을 먹어야 살 수 있을 텐데 하면서 공연한 기우(杞憂)가 가로막는다. 최근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유(油)와 옥수수, 밀, 보리 등이 전쟁으로 바닷길이 막히어 전 세계 식품시장을 마비시켰다. 가공(可恐)할 세계 식량 전쟁이 초래한다면, 어느 첨단 무기로도 인간의 식량을 대신할 수 없을 텐데 별 방정맞은 생각을 해본다. 신세대들에게 ‘깜밥 밥’먹기 체험을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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