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해봅시다
|
22-10-03 12:37
물빛 39집 원고 (정정지)
목련
조회 수 216 댓글 0
엄마라는 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통증이 날 에워쌌다
흉추 12번 골절
누워서 견디는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조금씩 차오르던
눈물샘이 터지던 날
세 살 아이처럼
엄마를 부르며 목 놓아 울었다
늘 가까이서
서성이던 엄마가
등을
쓰다듬어 주셨다
커다란 힘이
나를 감쌌다
다른 말은 다 놓아버려도
세상 떠날때까지
꼭 쥐고 있는
엄마라는 말은
대신할 말이 없다
출항
배가 정박해 있을 땐
태풍도 파도도
먼 나라 얘기였다
이제 닻을 올리고
떠나야 한다
별이나 헤던
저 여린 손
무수한 담금질과 메질끝에
호미나 낫이 태어나듯
담금질을 피할 순 없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고
앙다문 흙을 열어
씨앗을 뿌릴 수 있게 하는
호미 같은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날
목이 한 자나 길어진 항구는
팔을 넓게 벌리며
목젖이 보이도록 웃을 것이다
빛을 잃다
시장 안 정육점
아저씨가 우두커니 앉아있다
종착역은 아직 멀었는데
홀연히 내려버린 그의 아내
무채색 옷만 입던
그녀가 빛이었나
몇 개나 켜져있는 전구가
빛을 잃고 어둑하다
환하게 웃던 그녀가 없는 가게
길 잃은 표정의 아저씨와
늘어지게 낮잠 든 고양이
둘이서 지키고 있다
관음죽에 물을 주며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그녀를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우연히 들른 인터넷 카페의
카페지기였다
그곳을 들락거리다
습자지가 물기를 빨아들이듯
우린 서로에게
스며 들었다
자폐가 있는
동생의 딸을 돌보면서
소중히 키우던 자신의 꿈은
접어서 가슴에 묻었다
진액과 땀으로 보살핀
긴 세월
이제 그녀의 몸도
예전같지 않다
관음죽*에 물을 주며
지구 한 귀퉁이를
맑히고 있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녀가 생각났다
*관음죽 ; 공기를 맑게 하는 식물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가져옴
늦은 출발
군자란이
꽃대를 밀어 올리다 멈췄다
뭇 꽃들이
다투어 피었다 떠나고
벌도 나비도 가버린 지금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고
올라오던 꽃대를
물고 있는 군자란
서늘한 날씨에
때 늦은 출발
숨이 차게 쫓아가도
따라잡을 수 없다
활짝 핀 날을
보여 줄 수 없다
계절의 고개를 넘어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없어
동그마니 앉아있는 군자란
가을 햇살 속에
긴 그림자를 끌고있다
달도 별도 없는
밤 깊은 줄 모르고
울어대는 귀뚜라미
서러움이
목까지 차였구나
속이 후련할 때까지
다 비워내라
네가 토해내는 얘기
토씨하나 안 빠트리고
열심히 들어줄게
손 잡아 줄게
등 두드려 줄게
달도 별도 없는 오늘 밤은
목 놓아 울기 좋은 날
네 울음 엮어서
천을 짜면
가을 한 벌 만들겠다
울음 깊어간다
카페 게시글
작품토론방/옛자료
물빛 39집 원고/ 정정지
꽃나비달
추천 0
조회 4
24.09.11 05:32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