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지닌 가장 패셔너블한 것 중 하나가 머리카락 아닐까. 머리 모양과 색깔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 각양으로 표출된 헤어스타일을 봤으리라. 어깨 뒤로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 풍성한 웨이브의 파마머리, 우아한 올림머리, 싹둑 친 커트머리 등. 미적 감각을 타고난 여성들에게 머리카락은 자유자재한 변신의 아이콘이다. 때론 무심코 풀어헤친 산발조차 관능미를 뿜는 머리카락은 자타의 마음 자락을 ‘밀당’하며 이미지 메이커를 자처한다.
이미지는 은근한 경쟁력의 보검이다. 생간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는대로 생겨진다는 요즈음, 머리카락이야말로 팻숀의 시작이면서 완성이라 할 만하다. 따져 보아도 헤어스타일을 제쳐 놓고는 눈부신 의상인들 패션으로서의 제 역할을 다할 수 없다. 그러기에 여자들은 머리 단장에 시간과 돈을 과감히 투자한다. 자존심의 최후 보루인 듯 고아하고 샤프하고 이지적이게, 또는 에로틱하게.
깔끔한 간판 아래 환한 실내가 들여다보이는 〇〇 헤어 갤러리. 한 명뿐인 헤어 디자이너이자 주인인 여자에게 파마를 부탁한다. 아파트 바로 앞인데도 어쩌다 반짝 눈에 띄어 들렀었다. 깔끔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끌리고 세련된 중년 아티스트가 축적했을 노하우에 대한 신뢰감에 넙죽 머리를 맡겼었다. 수년째 단골이다.
“머리 길이를 약간만 정리하겠습니다.”
날렵한 빗질과 가위질로 머리끝을 잘라 낸 다음 스프레이로 영양제를 뿌린다. 주인은 몇 달 만에 한 번씩 파마하러 오는 그녀가 평소 모자를 쓰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다. 머리 길이가 목덜미를 살짝 덮는 ‘세미 롱’ 스타일을 선호한다는 것쯤은 숍에 처음 들어선 순간 간파 했던 터다.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여자의 열망은 시대를 관통한다. 나아도 초월한다. 옛날 곤궁한 시절에도 어머니들은 동네 미장원에서 명절 치레 ‘불파마’를 했다. 그때 엄마를 따라간 꼬마는 쇠 집게의 후끈대는 열기를 기어이 견뎌내었다. 7살, 그녀의 헤어패션 시작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의 조그만 계집아이가 얌전히 묶어 준 엄마표 머리에 자주 까탈을 부릴 만큼 머리 모양에 집착을 보였다. 미에 대한 애착은 당초 여자의 본성이며 자기표현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게다.
“로드 감을게요.”
바야흐로 헤어아티스트이 신들린 손놀림이 춤을 추는 시간, 파마약을 바름 뒤 플라스틱 로드로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간다. 머리밑이 약간 따끔거리는 정도야 눈감고 조용히 누려 볼 만하다. 만약 우리의 평생 수업인 인생살이도 이처럼 프로페셔널한 지휘자가 있다면 한 편의 예술이 될까.
삶이 암만해도 블랙홀 같은 날, 여자들은 외모적 변신을 시도해본다. 알싸한 세월의 모퉁이를 박차고 나가 무한 창공을 날아 볼 수도, 물처럼 흐를 수도 없는 처지. 머리카락을 부추겨서라도 무기력한 삶을 추슬러 보는 거다. 후줄근한 기분을 싹둑싹둑 커트해 버리거나 녹진하고 갑갑한 마음 바닥을 파마로 불 지른다. 한층 로맨틱한 ‘볼륨 파마’로 자신을 위무하는 깜짝 변신을 완(完)한다.
하지만 삶이 그리 고분고분 따라 주던가. 풍경소리도 외로운 산사에서 가끔 마주치는 여승의 머리에선 소슬한 바람 냄새가 났다. 세속의 색깔들을 삭제한 무채색 승복보다 파르라니 벌채한 맨머리가 속을 파고드는 까닭은. 한 여승으로서의 삭발이 ‘머리를 깎는다’는 의미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숱한 사연을 무연(無緣)으로 만드는 것. 타고난 여자의 본성과 애욕마저 자른다는 각인이다. 참고 금하고 삭히며 닦아 갈 수행의 길이 순탄하다면야….
머리를 말아 놓은 지 한 시간 경과. 목에 받침대를 두르고 약체 중화제를 바른다. 곡절 허다한 인생 여정과는 달리, 헤어 아티스트가 지휘하는 순항의 시간이 착착 진행된다. 완성작을 상상하는 기다림은 기분 좋은 설렘을 동반하니 이 또한 즐겨 본다.
머리카락엔 힘의 생멸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들어 있다. 몸의 부호들이 품었던 난연하고 빛나던 계적을 떠롤려 보라. 열렬히 피어 오르던 봄날도 머리카락이 새로 빠져나가고 말았다. 게다가 알 수 없는 내일을 내포한 머리카락이 푸석푸석 색깔조차 날려 버릴 땐 어떤가. 몸의 칠십 퍼센트가 물인 몸의 부호들이 아직도 물관을 타고 감성에 젖어 들어 출렁이건만, 감상에 빠져 일을 그르치기도 하는 여자이건만, 거침없는 시간에 편승한 생이 애잔해진다.
“로드 풀고 샴푸할게요.”
마침내 파마 종결 단계. 머리를 감겨 주는 손길이 아릿한 삶을 나긋나긋 위로해 준다. 머리를 통째 내맡긴 그녀는 편안한 안도감 뒤에 두근대는 기대감이 차오른다. 마음은 이미 벽면 거울 쪽을 넘보고 있다.
정체 불명한 흐름에 휑하니 빠져나간 것들이 서럽다고? 부려 놓은 자국이 아리다고? 그렇더라도 마냥 주저앉기엔 세상은 너무나 눈부시다. 무색무취하고 무미한 문장은 삶의 기호가 아닐지니, 제빛을 잃은 자리를 애틋하게 메우고픈 음모를 꾀하지 않는다면 여자이겠는가. 지지고 볶고 한 꼭지의 컬을 넣어서라도 발끈한 개화를 꿈꾼다.
한데 이 무슨 일일까. 파마 로드를 풀고 샴푸를 하고 머리 손질이 끝난 거울 속 그녀가 눈이 휘둥그레진다. 표정이 굳어 버린다. 아뿔사. 야심 찬 걸작, 의미심장한 회심작은 어딜 가고 뜻밖의 치명적인 저 개화! 사정없이 뽀글뽀글한 뽀글이 파마가. 자신만의 색깔도 엉켜 버린 채 그녀의 마음을 절여 놓는다. 어설픈 오기로 뻣뻣해지지 않게, 섣불리 부풀어 낭패당하지 않게. 괜한 허세로 망가지지 않게…. 어머머 세상에나, 무슨 죄를 지었다고…. 멋이란 파격적이면서도 정서적이고 여운이 있어야 하거늘.
저 머리 어찌 좀 해 주세요. 그녀가 퍼질러 앉아 울어 버리기 전에, 이게 내 자화상이냐고 속을 다 쏟아 내기 전에, 한껏 비틀고 고아만 놓으면 예술이 되냐고 악쓰기 전에, 우아한 웨이브가 물결치는 패셔너블한 머리로 어서 빨리 제발요.
세상은 날마다 새로운 무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