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구약에서는 모세, 신약에서는 바울을 만난다.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지만 두 사람 다 거절된 기도가 있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바울은 그의 육체의 가시 때문에 기도했다. 하나님의 응답은 "네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대답이었다.
종종 우리는 인생 역사의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착각을 할 때가 있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살아간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감독은 아니다. 인생이라는 드라마에 우리는 모두 자기 드라마의 주연이다. 그리고 선과 악의 대쟁투라는 역사극에서 우리 각자는 선한 역할이든 악역이든 한 부분의 담당하고 살아간다.
열심히 우리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만, 그 대본은 자신이 선택한다. 모세는 고난의 길을 선택했고 비록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모범적인 대본을 줬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누구나 그 대본을 가지고 말씀대로 연출하면 그 역할을 마칠 때쯤 하늘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수 있다. 모세는 딱 한 번의 실연으로 그의 임무를 내려놓았다. 그가 흘린 눈물이며, 걸어왔던 거친 사막이 그의 뒤편으로 나타났다. 서편에는 멀리 아지랑이처럼 지중해의 물결이 아른거리고 북편 헤르몬산은 차가운 물살을 갈릴리로 토해내고 있었다. 동편으로 모압 평원이 내려 보이고 그 사이에는 ... 악속의 땅 가나안이 눈에 들어왔다.
레바논의 백향목들과 푸른 종려나무들이 우뚝우뚝 모습을 드러내고 향긋한 포도송이의 단내가 바람을 타고 비스가산 꼭대기에 서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모세의 코끝을 자극하였다.
모세를 보면 역할을 읽는다. 내 삶의 역할을 나는 잘해 내고 있는가? 사소한 실수들, 반복되는 허물들, 툭툭 튀어나오는 인간적인 성질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위대한 선지자요 지도자였던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그의 역할을 내려놓았듯이 언젠가 내 역할도 마칠 텐데 내가 서야 할 비스가산 위의 내 모습은 어떨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모세도 그랬을까? 내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분의 자비하심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도 주어진 말씀을 따라 내 역할을 잘 해내야겠다고 결심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잠시 동안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불어 고난받기를 선택한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느꼈다.”(부조, 472)
언젠가 나도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질 때 후회 없이 그리고 아쉬움 없이 바울 사도가 했던 고백처럼 나도 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나님 아버지! 이 소박한 기도를 들어 주소서. 어떤 위대한 업적이나 위치가 아니라 진실로 잘 싸웠다고 내 길을 잘 지켰다고 주님께 인정받는 그런 사람 되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닮아 가길 소원합니다. 저의 욕망과 감정을 의지의 통제 아래 둘 수 있도록 이 아침 새 마음과 새 영으로 충만케 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