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브랜드 혹은 모델이 잘 팔리는 것은 꽤 많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좋은 상품일 때 그렇다. 어떤 물건이라도 그걸 사는 사람마다 구매 동기는 모두 다르다.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장비나 기능과 요구 사항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안전을 최우선에 놓았다면 에어백의 개수나 충돌 테스트 결과 등을 따지고, 가치(혹은 가성비)가 중요하다면 가격 대비해서 편의 장비나 공간 등이 얼마나 잘 갖춰져 있는지를 본다. 물론 여러 구매 동기를 같이 고려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개인에 따라 이런 구매 동기들 중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해 차를 고른다.
즉 여러 구매 동기를 잘 맞출 수 있도록 상품이 잘 만들어져 있고, 가격 같은 최종 결정 요인이 합리적일 때 그 상품은 성공한다.
또 하나의 성공 요인은 경쟁 모델이 약할 때다. 유럽 기준으로 D 세그먼트의 주요 경쟁 모델은 BMW 5시리즈와 아우디 A6가 해당한다. 국내 시장을 기준으로 할 때, A6는 작년 7월말부터는 2.0 디젤 모델이 판매 중지되었고 올해 3월부터는 3.0 디젤 및 휘발유 모델도 판매를 멈췄다.
또한 주요 경쟁 모델이었던 5시리즈는 올해 2월 모델 체인지를 앞두고 작년에 마지막 모델을 판매하느라 재고 수급 등의 이유로 1만 7,223대가 팔렸다. 결국 작년 6월 신형이 나오면서 시장을 선점한 E 클래스의 인기를 꺾을 요인이 없었다. A6는 페이스리프트한 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주력 모델인 2.0 디젤이 판매 정지를 당하면서 시장의 신뢰를 잃었고, 모델 체인지가 예정된 5시리즈가 할인 판매로 대응하기에는 너무 역부족이었다.
올해 2월 동급 최대인 차체 크기와 전 모델에 자율 주행 장치를 더한 신형 5시리즈가 런칭하면서,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주목을 끌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1월부터 7월까지 구형을 합쳐 모두 8,676대가 팔렸는데, 2만 1,156대를 판매한 E 클래스의 40% 수준이었다. 사실 새 모델 판매 초기에는 모델 믹스에 문제가 있었다.
기본형과 140만원 차이가 나지만 4존 에어컨과 서라운드 뷰, 앞좌석 통풍 시트 등이 포함된 M패키지 플러스 모델이 적게 수입되면서 막상 데뷔 후 초기 판매가 주춤했다. 기본형이 더 팔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고객들은 플러스 모델을 선호했고, 이미 생산이 끝나 국내에 들어온 차들을 처리할 방법은 없었다. 새 차를 할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초기 판매 모멘텀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신형이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3월부터 7월까지 월 평균 판매 1,000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7월 공식 프로모션은 작년 수준인 최대 500만원 할인으로 돌아갔다. 여기에 서비스(?) 비용까지 포함하면 최대 700만원까지도 할인을 해주고 있지만 현장 반응은 시원찮다는 소식이다. 벤츠 E 클래스가 1~7월까지 월 평균 3,000대를 판매했고, 심지어 8월부터는 2018년식을 판매하면서 공식 프로모션을 없앴음에도 판매가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은 사실상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것은 E 클래스의 디젤과 휘발유, 2WD와 4WD 모델의 판매 비율이다. 2016년까지는 휘발유 : 디젤이 51.5 : 48.5였지만 2017년이 되면서 58.9 : 41.1로 바뀌며 휘발유 모델의 판매 비중이 늘어났다. 2WD와 4WD의 비중도 흥미롭다.
2016년에는 2WD : 4WD의 비율이 74.4 : 25.6으로 후륜 구동의 비율이 훨씬 높았지만, 2017년 들어 63 : 37로 4매틱 모델의 판매가 크게 늘었다. 여기에는 3월부터 판매를 시작한 220d 4매틱 모델이 큰 역할을 했는데 7월까지 총 2,705대가 팔려 월 평균 500대, 같은 기간 E 클래스 판매의 19%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BMW 5시리즈는 휘발유 : 디젤이 34.8 : 65.2, 2WD : 4WD 비율이 57.2 : 42.8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아직 벤츠는 휘발유와 2WD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4WD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력 모델인 E300이 과거 V6 3.5L에서 I4 2.0L로 다운사이징이 되면서 접근이 쉬워진 것도 영향을 미쳤지만, 경쟁 모델에는 찾아보기 힘든 6천만 원 초반의 E200 등 엔트리 모델이 전체 판매에서 약 30%를 차지하며 E 클래스로의 유입을 이끈 것이 핵심이다.
국내 도착한 재고에 따라 판매량이 바뀌긴 했지만 위급인 E300의 경우도 1천만 원 정도의 차이는 3년 기간의 금융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때 큰 부담이 아닐 수 있기 때문에 ‘미끼 모델’의 역할도 충분히 했다고 볼 수 있다.
E 클래스를 선택한 고객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젊어진 안팎 디자인’과 ‘와이드 스크린의 화려한 실내’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기본형인 아방가르드 모델도 벤츠의 삼각형 로고가 선명한 스포츠 라디에이터 그릴이 브랜드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아래급인 C 클래스보다는 위급 S 클래스가 떠오르는 실루엣으로 모델의 위상을 높이는 효과를 냈다. 이는 실내 디자인에도 이어져 S 클래스의 대시보드를 그대로 옮겨온, 12.3인치 스크린 2개의 역할이 매우 크다. 과거 벤츠에서 단점으로 꼽히던 화면 해상도가 개선된 것도 한몫했다.
물론 E 클래스라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AV 모니터는 경쟁 모델인 5시리즈와 달리 아직 터치 스크린을 지원하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의 스위치나 커맨드 조그 셔틀 부근에 터치 입력이 가능해졌지만, 정밀도가 떨어지는 지도와 불친절한(?) 내비게이션 음성 안내는 불만이 높다.
또 동급에서 가장 짧은 휠베이스(2,940mm) 때문에 어쩔 수 없이 2열 공간에서 손해를 봤다. 때문에 2열 무릎 공간을 만들기 위해 1열 시트 등받이를 크게 깎아내고 2열 시트의 앞뒤 길이를 줄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 2열에 성인이 탔을 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생각보다 고급감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전동 트렁크를 열고 닫을 때 지나치게 빠르게 움직이고 닫힐 때 소음이 커 경쟁 모델과의 비교에서 단점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꽤 긴 시간동안 E 클래스의 독주를 막을 방법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디젤게이트가 벤츠가 포함된 담합 문제가 불거지며 2 라운드로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바람조차 일지 않는다. 최대 경쟁 모델인 BMW 5시리즈가 17년식에 파격적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미 18년식으로 바뀐 E 클래스는 공식적인 프로모션이 없음에도 잘 팔리고 있다.
또 작년 6월 런칭 후 3~4개월 마다 쿠페와 컨버터블, AMG 라인업, 새로운 디젤 모델 등을 추가하며 라인업을 넓혀온 것도 시장에서 판매가 탄력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가격과 제품에서 충분한 경쟁력이 있었던 아우디 A6가 재판매를 시작하고, 5시리즈가 가격과 관련해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불신을 깨트리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출처 : 오토엔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