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婚姻)이라 함은
혼인할 혼, 장가들 혼(婚)자에 혼인인, 사위집 인(姻)자를 써서 혼인(婚姻)이라 하는데
혼(婚)자는 신부을 말함이며, 인(姻)자는 신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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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우리의 풍습에는 남자가 혼인(婚姻)을 하면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일을 해주고 살았으며 첫 아이를 낳으면 비로소 독립을 하였다.
때로는 어린 신부와 가약을 맺어
신부가 클 때까지 신부집에 살면서 일을 해주는 데릴사위 제도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도
신혼부부가 혼인하여 신혼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
먼저 신부 집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신랑 집으로 가는데
이 또한 옛날 풍습의 영향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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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자가 혼인(婚姻)을 하면
새로이 장인(丈人) 장모(丈母)가 생기게 되고
장인 장모 집을 일컬어 장가(丈家)라고 하였다.
그래서 남자가 혼인하는 것을
'장가(丈家)간다 또는 장가 든다'라고 말하였다.
또 여자가 혼인을 하면 새로운 시부모(媤父母)가 생기게 되고
그 집을 시댁(媤宅)이라 하여 '시집(媤家)온다 또는 시집간다'라고 하였다.
그러던 것이 조선시대 말기 때만 해도
혼인할 때 신랑이 혼(婚) 즉 신부 집으로 먼저 가서 혼례(婚禮)을 올리고
초야(初夜)를 치룬 후 사흘 뒤에
신부를 데리고 인(姻) 즉 신랑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래서 두 사람의 평생 가약을 맺는 것을 가리켜 혼인(婚姻)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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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백년가약을 맺는 것을 결혼(結婚)이라 부른다.
결혼(結婚)이란 말은
맺을 결(結)자에 혼인 혼(婚)자를 써서 양가가 혼인을 결정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결혼은 법률행위로서 일종의 계약이다.
혼인에 합의한 당사자가 혼인신고를 하면서 법률혼은 시작되는 것이니까
따라서 결혼(結婚)과 혼인(婚姻)은 엄격히 구분되는 것이다.
물론 결혼식(結婚式)이나 혼례식(婚禮式)에 부여되는 의미는 큰 차이는 없지만
우리 조상들은 인륜지대사를 땅이나 사고파는 계약의 차원을 넘어
양가가 사돈(査頓)이 되는 인척(姻戚)의 의미로 혼인(婚姻)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일본이란 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혼인(婚姻)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결혼(結婚)이라는 말만 사용하고 있다.
옛날 일본의 결혼풍습은 사돈이라는 상호동등(相互同等)이라는 의미는 없고
완전한 남존여비(男尊女卑)로서 신부를 사고파는 의미가 강하여 결혼이라 했으며
그래서 결혼식을 하고 나면
신부의 성(姓)은 없어지고 신랑의 성(姓)을 따라야 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 때 결혼이란 용어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그들의 입맛대로 '혼례식을 결혼식'이라 하였으며
전통혼례 방식밖에 없던 우리나라가
서구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일본식 예식문화로 변하게 되었다.
그 여파로 1934년 김영환이 세운
'만화당 예식부(萬花堂 禮式部)'가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예식장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처럼 혼례식이 아닌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가장 중요한 백년을 함께하고자
서약을 할 때는 지금도 '결혼서약(結婚誓約)'이 아닌 '혼인서약(婚姻誓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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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을 하면
반드시 신혼여행을 가는데 이를 '허니문(honeymoon)'이라 한다.
허니문은 어원상으로 볼 때
허니(honey)는 '벌꿀, 귀여운 여자, 여보' 라는 뜻이고 문(moon)은 달(한달)을 말한다.
즉 허니문(honeymoon)은 감미롭고 행복한 신혼기를
보름달에 비유하여 '꿈같은 한 달간의 달콤한 신혼기'를 의미한다.
그 유래는 바빌론시대로 올라가 그 당시의 결혼풍습 중에
신부의 아버지가 꿀에 물을 섞어 발효시켜 만든 스테미너에 좋은 '벌꿀 술인 미드(mead)'를 자신의 사위에게 주었다.
갓 결혼한 신랑은 이 술을 한 달간 마시면서 왕성한 스테미너로 신부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런 연유로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떠나는 여행을 '밀월(蜜月 :꿀밀, 달월)여행'이라 했으며
영어로는 허니문(honeymoon)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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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문의 또 다른 유래는
고대 노르웨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에는 혼기가 찬 남성들이 사랑하는 처녀나 과부를 납치해가서 자신의 신부로 삼았는데
신부의 가족들이 그녀를 찾는 것을 포기할 때까지 은신처에 숨겨두었다가 데리고 온데서 유래했다.
이 기간이 한 두달 이었는데 한 두달이 지나 신부가 임신을 하게 되면
그때서야 나타나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결혼을 승낙받았다.
어찌 보면 허니문은
눈맞은 남녀들의 도피행각이었으며 아니면 강제납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