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70년 8월 3일(월요일)
무창포불교대학 불심사 아침방송
주제 : “함께 지은 공덕”
법우 여러분, 오늘 아침 법문의 주제는 “함께 지은 공덕”입니다. 어제 불심사에서는 개산 19주년 기념법회와 병오년 우란분절 백중 49일 영가천도기도 3재를 정성껏 봉행하였습니다.
법회가 원만히 이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면 한 사람의 힘으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부처님 전에 올린 향과 꽃과 공양, 법당과 도량을 정돈한 손길, 음식을 마련한 정성,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동참한 발걸음, 함께 독경하고 염불한 마음이 하나로 모여 큰 공덕을 이루었습니다.
어떤 분은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렸고, 어떤 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궂은일을 맡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몸이 불편하거나 거리가 멀어 법회에 직접 참석하지 못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합장하며 영가의 극락왕생과 법회의 원만한 회향을 발원하였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일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부처님께서는 모든 일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정성이라도 맑고 간절한 마음으로 행했다면 그 공덕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법구경 제122게송에는 “작은 선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물방울이 모여 항아리를 채우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작은 선을 쌓아 마침내 복으로 가득 찬다.”라는 가르침이 전해집니다. 작은 선행 하나하나는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의 선한 마음이 모이면 한 도량을 밝히고 많은 사람의 삶을 따뜻하게 합니다.
어제 법회를 위해 누군가 꽃 한 송이를 올렸다면 그것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부처님을 향한 공경의 마음이었습니다. 누군가 법우들을 위하여 차 한 잔을 건넸다면 그것은 단순한 차가 아니라 먼 길을 온 이를 위로하는 자비의 공양이었습니다.
누군가 법당의 자리를 정돈하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면 그것도 훌륭한 공덕입니다. 다른 사람이 편안하게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한 그 마음속에 이미 부처님의 가르침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공덕은 반드시 큰돈을 보시하거나 특별한 일을 해야만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에 따라 물질을 보시하는 일도 귀하지만, 따뜻한 말과 친절한 표정, 묵묵히 힘든 일을 맡아주는 행동도 소중한 공덕입니다.
법우 여러분, 함께 지은 공덕에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힘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지만,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마음을 보태면 부족했던 부분이 채워지고 어려웠던 일도 원만하게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힘이 있고, 어떤 사람은 지혜가 있으며, 어떤 사람은 정성이 깊습니다. 말솜씨가 있는 사람은 좋은 말로 다른 이를 격려하고,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필요한 일을 돕고, 시간이 있는 사람은 몸으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능력과 형편이 한곳에 모일 때 공동체는 건강해지고 공덕은 더욱 커집니다.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다른 사람이 해주고, 다른 사람이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주는 것이 바로 도반의 아름다운 인연입니다.
그러나 함께 일하다 보면 때로는 서운함도 생깁니다. 나는 열심히 했는데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나만큼 애쓰지 않는 것 같아 불평하는 마음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공덕은 칭찬을 받기 위해 짓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한 일을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이름이 드러나기를 바라며, 보답을 기대한다면 그 순간 맑았던 공덕에 욕심과 집착이 섞일 수 있습니다.
참된 공덕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해야 할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인연 있는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행하고, 그 결과는 따지지 않는 것이 보살의 실천입니다.
어제의 법회가 원만히 이루어진 것은 이름이 드러난 몇 사람만의 공덕이 아닙니다.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보태고, 기도와 축원을 함께한 모든 분의 공덕입니다.
법우 여러분께서는 “나는 한 일이 별로 없다.”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법회에 참석하여 함께 합장한 마음, 부처님 말씀을 경청한 마음, 영가의 왕생을 발원한 마음도 귀한 공덕입니다.
한 사람의 염불 소리는 작을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한마음으로 염불하면 법당을 가득 채우는 큰 울림이 됩니다. 한 사람의 발원은 작은 물결과 같지만, 대중의 발원이 모이면 고통 받는 영가와 살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함께 밝히는 큰 원력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함께 수행하고 함께 공덕을 짓는 이유입니다. 혼자서는 쉽게 지치고 물러설 수 있지만, 도반들과 함께하면 서로를 일으켜 세우며 수행의 길을 오래 걸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며 어제 함께 지은 공덕을 마음에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더 많이 했는가.”를 따지기보다 “많은 인연의 도움으로 법회가 이루어졌구나.”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받은 도움과 은혜를 잊지 말고, 오늘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어보시기 바랍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 어려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힘든 일을 함께 나누는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함께 지은 공덕은 법회가 끝났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일으킨 선한 마음을 가정과 직장과 이웃에게 이어갈 때, 법회의 공덕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더욱 넓고 깊게 피어나게 됩니다.
법우 여러분, 함께 지은 공덕이 더욱 귀한 까닭은 한 사람의 선한 마음이 다른 사람의 선한 마음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먼저 따뜻한 손길을 내밀면 그것을 바라본 사람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을 내게 됩니다. 이렇게 선한 마음이 인연을 따라 퍼져나갈 때 작은 공덕은 더 큰 자비의 물결이 됩니다.
어제 불심사에서 봉행한 개산 19주년 기념법회와 백중기도 3재도 그러했습니다. 한 분이 정성을 보태자 다른 분이 함께했고, 누군가 힘든 일을 맡자 곁에 있던 법우가 말없이 손을 보태주었습니다. 서로의 정성이 서로를 움직이며 마침내 한마음의 법회를 이루었습니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에서 한 사람이 먼저 부드럽게 말하면 가족의 분위기가 편안해지고, 직장에서 한 사람이 어려운 일을 기꺼이 나누면 다른 사람도 협력할 마음을 냅니다. 한 사람의 작은 선행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씨앗이 됩니다.
그러나 함께 공덕을 지을 때 반드시 경계해야 할 마음도 있습니다. “나는 이만큼 했는데 저 사람은 무엇을 했는가.”라고 비교하거나, 자신의 수고만 크게 여기고 다른 사람의 정성을 작게 보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분별이 생기면 함께 지은 공덕의 기쁨이 서운함과 다툼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형편과 능력이 다르기 때문에 공덕을 짓는 모습도 같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시간을 내어 봉사할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건강이나 생업 때문에 잠시 마음만 보탤 수도 있습니다. 물질로 크게 보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따뜻한 말 한마디와 간절한 기도로 동참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정성을 내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더 많은 수고를 했을 수도 있고, 겉으로는 작은 정성처럼 보여도 그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한 공양일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형편을 헤아리고 작은 정성도 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함께 공덕을 짓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보시를 할 때에도 베푼다는 생각과 내가 베풀었다는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무엇을 했다는 생각을 오래 붙잡으면 공덕이 교만으로 변하기 쉽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 서운함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참된 공덕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칭찬받지 못해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기꺼이 행합니다. 내가 한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도량을 밝히며 모든 중생의 평안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우리는 흔히 공덕을 지은 뒤 그 복이 나와 내 가족에게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가족의 건강과 자녀의 앞날, 사업의 성취와 어려움의 소멸을 발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러나 불자의 공덕은 나와 내 가족에게만 머물지 않고 더 넓게 회향되어야 합니다.
회향이란 내가 지은 선한 공덕을 혼자 차지하지 않고 모든 존재와 함께 나누겠다는 마음입니다. 어제 올린 기도와 공양의 공덕을 선망부모와 조상영가에게 돌리고, 고통 받는 이웃과 이름 모를 영가들, 법계의 모든 중생에게까지 두루 돌리는 것입니다.
촛불 하나로 다른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촛불이 늘어날수록 주변은 더욱 밝아집니다. 공덕도 나눌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회향하는 마음을 통하여 더욱 넓고 원만해집니다.
법우 여러분, 어제 함께 지은 공덕을 법회가 끝난 뒤의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남겨두지 마십시오. 그 마음을 오늘의 생활로 이어가야 합니다. 법당에서만 자비롭고 가정에서는 화를 낸다면 수행이 온전하게 이어졌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기도할 때의 공손한 마음으로 가족의 말을 들어주고,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던 정성으로 부모님과 어른을 섬겨야 합니다. 도반을 위해 자리를 양보했던 마음으로 이웃을 배려하고, 영가의 평안을 빌었던 마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의 아픔도 살펴야 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짓는 공덕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찰이나 어려운 이웃에게는 친절하면서도 정작 가족의 수고에는 무심할 때가 있습니다. 밖에서는 부드럽게 말하면서 집에서는 편하다는 이유로 거친 말을 하기도 합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밥을 마련하고, 배우자의 수고에 감사하며,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자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도 귀한 공덕입니다. 아픈 가족을 돌보고 힘든 사람 곁을 지켜주는 일은 부처님 전에 올리는 어떤 공양보다 소중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에게 작은 힘이 되어보십시오.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도와주고, 외로운 사람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지친 사람에게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해보십시오.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에게 형편에 맞게 나누고, 아픈 이를 위해 잠시라도 축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이 모이면 가정과 이웃이 밝아지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조금씩 따뜻해집니다. 공덕은 멀리 있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법우 여러분, 함께 지은 공덕을 생각할 때에는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있었기에 내가 선행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도량이 있었기에 보시할 수 있었고, 도반이 있었기에 함께 기도하며 신심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공덕을 지었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라 공덕을 지을 수 있는 인연을 만난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나의 작은 정성을 받아준 사람, 함께 손을 잡아준 도반, 바른길을 가르쳐주신 부처님과 스승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 불심사에서 함께 지은 모든 공덕이 선망부모와 조상영가의 극락왕생으로 이어지고, 동참한 모든 법우의 가정에 건강과 평안으로 피어나기를 발원합니다. 또한 그 공덕이 어려움 속에 있는 이웃과 법계의 모든 중생에게 두루 미쳐, 고통은 줄어들고 자비와 지혜는 더욱 밝아지기를 기원합니다.
함께 지은 공덕은 함께 나눌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선행을 이어가며, 나와 이웃이 함께 평안해지는 복된 인연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법우 여러분, 함께 지은 공덕은 법회가 끝났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날의 정성과 감사한 마음을 오늘의 삶 속에서 이어갈 때 공덕은 더욱 깊어집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도움을 주며, 누군가의 수고를 알아주는 일이 모두 공덕을 이어가는 수행입니다. 내가 한 일을 자랑하기보다 함께할 수 있었던 인연에 감사해야 합니다.
공덕은 혼자 차지할수록 좁아지고, 모든 존재에게 회향할수록 더욱 넓어집니다. 어제 함께 지은 기도와 공양의 공덕을 선망부모와 조상영가, 고통받는 이웃과 법계의 모든 중생에게 두루 돌리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나 혼자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함께 평안하고 함께 행복하기를 발원하며, 작은 선행 하나를 실천하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드립니다.
첫댓글 부처님 법문 고맙습니다.
마음에 새겨 행 하겠습니다.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실천히도록 마음에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