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들어 겸손과 열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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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성주간이 시작되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에 선우경수 신부가 김대건 본당 공소에서 성지(聖枝)를 축복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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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나마대교구에서 특별히 한국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수호성인으로 삼도록 해준 김대건본당에서 선우경수 신부가 '오라시온 골고타'라는 기도모임을 마친 뒤 현지 신자들과 나눔을 갖고 있다. |
부제로 1년을, 사제 수품 후 1년을 한국에서 보낸 뒤 지난해 2월 파나마로 돌아왔다. 파나마 도착 후 하루를 보내고 곧바로 과테말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년 동안 녹슬었던 에스파뇰(스페인어)을 다시 가동하기 위해 한달 동안 과테말라에 살았다. 한 달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기존에 배웠던 것을 정리하고 많은 것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파나마에 돌아와 새내기 선교사제로서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임무를 시작했다. 파나마에서 우리 서울국제선교회는 두 본당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나는 헤네시스(Genesis)에 있는 '성 안드레아 김대건 본당'이고, 또 하나는 파나마시티에서 멀리 떨어진 에스피노(Espino)에 있는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 본당'이다. 두 본당의 주임은 파나마 양성 담당인 김무웅 신부님이고, 난 보좌로 일을 하고 있다. 각 본당마다 공소가 딸려 있는데, 김대건 본당에는 4개가, 성 마르티노 성당에는 무려 27개가 딸려 있다. 주임 신부님과 난 사제관이 있는 본당을 중심으로 공소를 돌아다니며 사목을 하고 있다.
과테말라에서 파나마에 돌아오니 막 사순 4주가 시작되고 있었다. 난 헤네시스의 한 공소에서 에스파뇰로 첫 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선교활동의 막을 올렸다. 이미 파나마에 도착한 날 저녁에 헤네시스의 성 김대건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긴 했지만, 이 미사는 주임 신부님이 주례하신 미사였기에 헤네시스의 작은 공소에서 드린 미사야말로 에스파뇰로 내가 직접 주례한 첫 미사였던 셈이다. 따라서 나의 온 마음을 라틴 아메리카에 봉헌할 수 있었고, 더 감회가 깊었다. 그래선지 마치 미사 중에 "너는 남미에서 일하는 선교사제로 내가 선택하였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했다. 미사에 앞서 난 그 조그마한 공소 사람들에게 미사 전에 내가 첫 미사를 봉헌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공소 신자들의 진심어린 축복 속에 첫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파나마에서의 첫 미사를 시작으로 난 성주간에 들어갔다. 사제로서 파나마에서 처음 맞는 성주간이라 난 몹시 긴장했고, 현지에 새롭게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설사를 했다. 몸이 아팠지만, 아플 여유는 없었다! 주님의 도움으로 다행히, 또 무사히 성주간 전례를 모두 마쳤다.
이렇게 성주간을 시작으로 사제로서 파나마에서 새롭게 인생을 시작했다. 에스피노 본당 신자들과는 헤네시스 공소에서 첫 미사를 봉헌한 뒤 2주 정도 지나서야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성 금요일 전례를 하면서 첫 인사를 나눴는데, 전례 전 '십자가의 길'로 성 마르틴 데 포레스 성당 근처를 한 바퀴 순회하는 행사가 있어 마을 신자들과도 폭넓게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헤네시스 본당이나 에스피노 본당의 신자들과 미사를 통해, 또 나눔을 통해 연초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다!
난 파나마 성 요셉 대신학교를 졸업했고 현지에서 부제품을 받았다. 그래서 파나마 신학교 은사 신부님들과 같이 공부한 동기 신부들, 후배 신학생들이 몹시 보고 싶었다. 다들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2년 동안 서로 떨어져 살았지만 파나마 친구들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 그래서 먼저 신학교를 찾아갔다. 한국에 있을 때 종종 성 요셉 신학교로 들어가는 꿈을 꾼 적이 있지만, 이날 난 그 꿈이 실제로 이뤄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든 나의 신학교! 신학교에 들어서니 4년간 친구들과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공부하고 같이 운동을 했던 옛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즐거웠던 일과 힘들었던 일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천천히 학교 운동장을 걸었다. 기분이 몹시 상쾌했다. 신학교는 실제로 변한 건 별로 없었지만, 사제 수품 후 주님 은총으로 보는 능력의 폭이 넓어진 듯했다. 신학생 때는 보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왜 신학생 때는 이것을 보지 못했지?", "이것도 보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래서 더 세심한 눈으로 신학교 경내를 차근차근 돌아봤다. 그때야 교수 신부님들도, 후배 신학생들도 나를 알아보고 나를 반갑게 맞아줬다. 그리고 나서 얼마 뒤 신학교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영광과 기쁨을 주님께 받았다. 벅찬 감격이었다. 주님 은총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지난해 4월에 사제 피정이 있었다. 이 피정 중에 친구들을 거의 다 만났다. 서로 반갑게 포옹하면서 그간 못했던 말을 긴 시간 주고 받았다. 파나마에서 처음 참석하는 사제들의 모임인데다 난 새내기였지만, 사제가 되기 전에 신학교에서 서로 학생으로, 사제지간으로, 또는 여러 본당에서 이미 뵈었던 신부님들이라 이미 여러 번 참석한 사제 피정처럼 느껴졌다. 피정 기간 내내 하느님 사랑에 온전히 빠져 지냈다. 피정이 끝나는 날 바로 에스피노 본당으로 내려가야 하기에 서둘러 짐을 챙겨 나를 기다리던 본당 차량에 올랐다. 그러고나서 일주일 정도 에스피노 지역 공소를 돌며 미사를 봉헌했다. 본격적으로 에스피노에서 사목을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에스피노 지역 공소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풍경도 아름답지만, 주민들 마음씨는 더 아름답다. 순박하고 강한 믿음에 사제로서 책임감을 더욱 느끼게 해주는 곳이 에스피노 지역이다. 반면 헤네시스 지역은 김대건 본당을 포함해 공소가 다섯개에 불과하기에 한꺼번에 모든 공동체를 소집하는 게 에스피노 지역보다 용이하다. 그래서 헤네시스 지역은 공동체별로 평일과 주일미사 외에 한 달에 한 번 다섯 공동체 모두가 모여 모여 '합동미사'를 봉헌한다. 이 미사에서 모든 공동체는 우의를 다지고, 서로 주님 안에서 깊은 친교를 나눈다. 한 달에 한 번은 '오라시온 골고타'라는 기도모임을 저녁 9시부터 시작한다. 기도가 끝나면 미사로 마무리되는데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신앙을 굳건히 한다. 기도와 미사가 끝나면, 참석자들은 본당에서 준비한 채소나 과일 주스를 마시며 늦은 밤이지만 기쁘게 대화를 나누고 헤어지곤 한다. 이 밖에도 청년들을 위한 청년미사도 한 달에 한번씩 봉헌되고 있고, 회의도 자주 열린다.
두 본당 신자들은 이런 기도 모임과 미사를 통해 하느님과 함께 활기차게 주님 나라를 건설하고 있다. 에스피노 지역 사람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가진 시골에서 굳건한 신앙을 키워가고 있다면, 헤네시스 지역 사람들은 발전적 미래를 내다보면서 노력하는 신앙을 간직하며 살고 있다. 그들은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성당을 건설하려는 꿈을 갖고 있다.
우리 서울국제선교회 신학생들은 파나마 성 요셉 대신학교에서 하느님의 충실한 일꾼으로 커가고 있다. 현재는 7명의 신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주중에는 파나마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주일에는 헤네시스와 에스피노 본당에서 신학생 실습을 하고 있다. 지금은 파나마 성 요셉 신학교에서 해마다 1월 초부터 한 달간 실시하는 '미션'이라는 이름의 선교 체험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다. 파나마 전 지역에 걸쳐 섬과 오지, 시골 등지에 신학생을 파견해 선교체험을 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나도 신학생 때 해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아주 좋은 경험을 쌓았던 기회로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이 체험은 사제로 살아가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돌아보면 지난 1년은 은총의 시간이었다. 사제로서 파나마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던 1년이었다. 2007년부터 4년간 파나마에서 신학생으로 있으면서 난 많은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사제가 되고 보니 파나마를 훨씬 더 새롭고 자세하게 보는 눈을 주님께서 주셨다. 과거에 신학생 눈으로는 보지 못했던 걸 보게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2014년은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를 수호성인으로 모신 에스피노 본당에서 새해를 맞았다. 올해는 마르티노 성인처럼 가난한 사람 가운데 뛰어들어 겸손과 열정을 갖고 사는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아직 새내기 신부로서 많은 게 부족하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는다. 부족하기에 그분은 나에게 더 필요하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