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보는 이상문학상 작품집, 매년 심사위원들이 대상을 선정하는데 많은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작가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좋은 작품이 많다는 뜻이다.
대상으로 선정된 최진영의 "홈 스위트 홈"은 온전한 자신의 집을 갖지 못한 채 살아온 화자가 말기암 진단을 받은 후 얻은 폐가를 자기만의 공간으로 고쳐 현재의 삶에 충실하려는 과정을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그려 낸 아름다운 작품이다.
고유한 과거의 조각들이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을 매개로 현재와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 안에 깃들어 있는 천국의 흔적이 고립되거나 유실되지 않고 언제든 되찾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나’는 지금 이곳의 천국을 발견한다. 이렇게, "홈 스위트 홈"은 ‘나’를 비롯한 인물들이 자신과 서로에 대한 위로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불확실한 삶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질문을 한 번쯤 던져 본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소설에서 ‘우주적인’ 위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의 삶을 위로하는 방법을 하나쯤 더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수작을 들여다보면
1. 김기태, "세상 모든 바다"
케이팝 그룹 ‘세상 모든 바다’, 세모바의 팬인 ‘나’. 사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 교포 4세다. 세모바 콘서트가 열리는 올림픽주경기장에서 경상북도 해진군에서 온 열여섯 살의 백영록을 만난다. 영록과 깊은 대화를 피하고 싶었던 ‘나’는 일본인으로 행세를 했고 그에게 자신을 ‘하쿠’라고 소개한다. ‘나’를 반갑게 대하는 영록과 세모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나’는 세모바가 티켓을 구하지 못한 팬들을 위해 공연장 밖에서 게릴라 라이브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을 영록에게 남기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세모바의 공연장에서 참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참사 소식을 확인하면서 자신과 대화를 나눴던 영록이 사망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2. 박서련, "나, 나, 마들렌"
‘나’의 과자(여자) 친구인 마들렌은 지금 집에 없다. 그렇다면 ‘나’의 팔에 닿는 미지근한 건 대체 누구인가.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리고 내 곁에 누워 있는 낯선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부터 ‘나’는 ‘복수의 일인칭’으로 분열되고 한 명의 ‘나’는 출판사로 출근을 하고 또 다른 ‘나’는 과자 친구 마들렌을 위해 법정으로 향한다. 진정 ‘나’는 마들렌을 사랑할까, 사랑한다고 생각할까. 마들렌과 마들렌을 성추행한 소설가 사이에서 ‘나’의 진심은 무엇일까. 결국 증언을 해달라는 마들렌의 부탁을 거절하는 ‘나’는 또 다른 ‘나’로 분열되고 겁을 먹고 놀란 마들렌은 집을 나간다. 더 이상 쪼개지면 안 돼. 복수의 일인칭인 ‘나’는 식칼을 놓고 또 다른 ‘나’가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3. 서성란,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남편 재섭과 딸 연희는 연희가 집필 중인 희곡 존 터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엄마 혜순도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 혜순은 자신의 딸이 해외 입양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희곡까지 쓰려고 하는 까닭을 알 수 없다. 정년을 삼 년 앞둔 교수 남편, 석사학위를 받고 이듬해 박사과정에 입학한 딸, 연희.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혜순은 남부럽지 않게 만족하며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내심 딸이 그 이야기에 매달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문득 혜순은 제인 클레이의 기사를 살펴보면서 자신의 어떤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진실과 마주하면서 혜순은 오랫동안 쓰지 못했던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다.
4. 이장욱, "크로캅"
크로캅과 곤자와의 UFC 경기 모습을 계속해 돌려 보는 ‘당신’. 이제는 한물간 크로캅과 곤자와의 모습처럼 ‘당신’과 ‘당신의 삶’도 어느덧 중심에서 밀려나 있다. 한때 직장에서 서로 다른 편에 섰던 윗집 남자에 대한 끊임없는 적개심과 의심으로 당신은 리벤지매치의 크로캅처럼 영원한 복수를 꿈꾼다. 결국 윗집에서 들려오는 의문스러운 물방울 소리에 윗집 남자의 집을 찾게 되고 ‘당신’은 오랫동안 ‘당신’을 호명했던 윗집 남자와 마주하게 된다. 사회라는 옥타곤에서 적이자 동료로 마주했던 ‘당신’과 윗집 남자는 이 옥타곤을 누가 만들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고, ‘당신’을 내려다보는 또 다른 ‘그’를 보게 된다.
5. 최은미, "그곳"
‘나’는 오래전 한여름의 폭우로 계곡에 고립되었다가 구조되었던 트라우마가 있다. 그 이후로 비상시에 들고 나갈 생존 가방을 준비해 두고 체력 단련에 힘쓰며, 재난문자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순발력과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국민체육센터에서 운동을 하던 6월의 어느 날 폭염 특보 기간이 길어지면서 전력량이 급증하자 국민체육센터는 폭염대피소로 전환된다. 게다가 장마전선이 맞물린 태풍이 예고되고, 대피소가 된 체육센터 근처에서 사육되던 곰이 탈출했다는 소식마저 전해진다. 봉쇄된 체육센터는 설상가상으로 전기마저 끊기게 되는데……, 과민한 ‘나’에게 가장 안전한 장소라 믿었던 체육센터는 이제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