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학장님, 어제 저는 신도림역 플랫폼에서 학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척이나 안부가 궁금했었거든요. 제가 들은 학장님의 목소리엔 기운이 약간 없는 듯해서 놀라긴 했습니다. 편찮으시다니, 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러나 이내, 저를 너무나 아껴 주신 학장님을 위해 저희가 기도드릴 테니 염려하지 마시라고, 긴 시간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학장님
결론부터 거듭 말씀드립니다. 떨치고 일어나십시오. 일어나실 수 있습니다. 우린 지금 '주님의 날개' 밑에 있습니다. <가톨릭 성가> 436번 '주 날개 밑 내가 편히 쉬시라/ 어두운 이 밤에 바람 부나…
제가 노래 하나만은 학장님보다 조금은 나으니까, 권유합니다. 느리게 부르시면 안됩니다. 며칠 뒤 다시 전화로 저랑 한 소절씩 바꿔 봉헌하십시다.
제가 참 외람되지요? 우선 용서를 빕니다. 그러나 이 글월에 제 기도하는 마음을 실으려면 불가피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 우리 모두가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 주님께서 들어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기억하십니까, 학장님. 오래 전 제가 그야말로 사경을 헤맬 때, 학장님이 기도의 위대한 힘을 설명하시는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때 덧붙인 게 뭔지 아십니까? 그 이전에 학장님이 조금 편찮으셨는데, 제자들이 보낸 기도문(사본)들이었습니다. 그게 제게는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잠깐만 그 옛날의 제 몸 상태를 다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KNN 부산 방송 문화대상을 받을 때가 2003년 5월 15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장님은 문화예술 부문, 저는 사회 부문, 상금 1,000만원….그때 학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겉으로 멀쩡한데 어디가 그렇게 아프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답할 힘도 없었습니다. 숨도 제 대로 못 쉬고, 심장은 1분에 120번 이상 뛰고.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저는 식물인간처럼 살았습니다. 아무도 저를 다시 산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의사 70명, 병은 수십 가지. 수면제를 몇 알씩 들이켜도 불면을 이길 수 없고.
지금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李吉東이가 되었습니다. 어제도 여기 용인에서 출발하여 인천국제공항까지 용인문화원 시니어 합창단 출국 장면을 취재하러 갔다 왔습니다. 국제 합창 경연 대회에 나가는 26명 단원들과 떠들썩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귀갓길에만 세 시간 소요되었지요. 원로 가수 차도균 인터뷰(두 시간/ 마포)/ 그 일주일 전에 저도 마포 FM 생방송 출연(59분)/ (이하 시간대 생략) 26사단 사령부 방문/ 1사단 12연대 안보 강연(문산)/ 출판기념회 사회 및 진행 노래(제 졸저 소설집/ 종로)/ <실버넷 뉴스> 15기 기자 발대식 독창(성균관대)/ 가수 쟈니리와 방일수 코미디언 면담(종로 송해의 거리)/ 26사단 전 주임원사 면담(회룡역)/ 한국소설가협회 방문(남산 도서관). 이상 딱 한 달 동안 제가 홍길동 흉내를 낸 흔적입니다. 다 못 적었습니다.
완치되지 않았으면 그렇게 미친 듯이 움직이지 못합니다. 군 안보강사는 90-120분간입니다. 교통편만 왕복 다섯 시간은 잡아야 합니다. 새로 시작한 <실버넷 뉴스> 기자 일에 정말 많은 투자를 합니다. 그러니 아플 시간도 없지요. 전립선암 수술 결과도 좋아 내년 4월 30일이면 완치 판정을 받습니다.
존경하는 학장님
제가 스스로를 일으킨 기적 같은 이야기를 지금 드리려 합니다.(학장님의 기도가 제 치유에 큰 몫을 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참, 제가 아플 그 무렵 학장님이 <성경> 필사에 대해 말씀해 주셨지요. ‘구약’부터 쓰지 말고 ‘신약’에 먼저 손대라고. ‘구약’을 상당량 옮겨 쓰는 중이었는데도 저는 그 말씀을 좇았습니다. 그러다가 워낙 신경을 쓰다 보니 안과에서 시신경 함몰 진행이라는 사형 선고를 내리더군요. 그 이상의 절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몸 전체의 건강이 좋아지니 시신경도 돌아오더군요. 완전히 나았습니다. 지금 안관에 안 가본 지 3년이나 됐습니다. 그 필사를 아직 계속하고 있으니, 거의 기록이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몹쓸 병, 정신까지 망가지고 누워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아니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는 폐인…!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죽을 각오로 하고 주교좌 중앙 성당 요아킴 안나 노인대학에 수업(강의)을 갑니다. 눈빛만 봐도 서로 통하는 그런 제자 백 수십 명이, 저의 몰골을 보고 고개를 가로젓는 겁니다. 저는 쓰러질 듯 말 듯 하는 자세로 살아 계신 주'를 불렀습니다. 주 하느님 외아들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네/ 내 모든 죄 다 사하시고/ 무덤(지금은 '죽음'으로 부르더군요.)에서 부활하신 나의 구세주…
그게 기점이었습니다. 회복을 알리는 신호. 죽자사자 거기 매달렸습니다. 밤낮이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밤에 더 열창(?)했습니다. 누워서 '주 하느님…외아들 예수…날 위하여…오시었네…'
물론 소리는 낼 수 없지요. 네 박자는 들이쉬고 네 박자는 내 쉬는, 그 특별한 노래 치료법은 주님의 말씀 따라 제가 세상에 선을 보입니다. 헌 오르간 앞에 앉아 간이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녹음하여 듣고. 병마와의 전투를 저는 그렇게 처절하게 벌였습니다. 물론 정신의학과 약도 먹었습니다. 소위 '공황 장애'라고 진단하더군요. 그 치료도 약물 효과도 컸겠지요.
학장님
제가 겪은 불안은 그러나 약물만으로는 치료가 불가했습니다. 성가는 기도의 두 배 효과가 있다하지 않습니까? 제가 부른 성가는 ‘가톨릭 성가’보다 복음성가입니다. 언젠가 학장님이 앉아 계신 가운데, 가톨릭 센터에서 ‘부산가톨릭 문학상’ 수상(선용 베드로)을 축하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때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였던 것 같습니다. 학장님 박수 크게 보내고, 함성도 질러 주셨지요. 아직 위에 쟁쟁합니다.
성가의 가사 뜻을 생각했습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그걸 다르게 해석하지 말자! 오직 ‘…외아들 예수 날 위하여 오시었다/ …’거기에서 오차를 줄이는 자체가 분심을 최대한 줄인 기도라고 믿는 겁니다. 혼신의 힘을 쏟습니다. 성가에 제 모든 것을 바치는 겁니다.
치유되고 나서 시내 많은 성당 노인학교에 다니면서 그 복음 성가들을 쏟아냈습니다. 마침내 천주교 부산교구 은빛 사목지원단장이라는 감투까지 썼으니, 여기저기서 불러 주더군요.
마침내 몇 년 전 한국가톨릭문인회 신년회 때 저는 무대에 올라섭니다. 서울 문학의 집. 그 며칠 전 제가 자청했었습니다, '살아 계신 주'를 봉헌하게 해 달라고. 김남조/ 김후란/신달자 시인님 등이 앉아 있었지요. 무반주로 나름대로 열창했더니 김남조 시인님이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면서
“앙코르!”
고 하시는 게 아닙니까? 그러니 또 박수가 터지고. 그 뒤로도 가톨릭문인회 피정 때면 가끔씩 교우들 앞에 섭니다. 듣는 교우의 아픔이 치유된다는 확신으로 기도를 올리는 겁니다. 어떤 교우에게는 전화를 걸어 ‘살아 계신 주’를 선사했습니다. 심장병을 앓는 양정 본당 노인학교 자매에게 ‘목포의 눈물’을 수시로 불러준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비일비재(非一非再)까지는 안 가지만, 적잖은 횟수입니다.
존경하는 학장님
제가 소설을 쓴다니까 걱정해 주신 그 衷情, 너무나 잘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외관상 소설가로 우뚝(?) 섰습니다. 한국소설가협회 카페에 가 많이 드나드는 회원 중 열 손가락 안에 꼽힐 겁니다. 서로 얼굴을 아는 작가들도 수십 명 됩니다. 지난번 출판기념회 때, 토용일 오후인데도 소설가협회에서 40명 가까이 왔더군요. 제가 무얼 믿고 기고만장(?)한지, 그들은 아마도 혀를 내두르겠지요. 산행에도 참가합니다. O Sole Mio도 독창합니다.
학장님이 큰 힘이 되셨습니다. <부산가톨릭문학>에 실은 졸작 중의 졸작을 읽고 학장님이 걱정해 주셨지요. 거기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이등병과 삼성장군’이라는 중편을 다시 썼고, 이번 <연적의 딸 살아 있다> 맨 마지막에 덧붙였습니다. 어제 이명인 테레사 수녀(제 13촌쯤 되는 질녀/ 아내의 제자) 편으로 보내 올렸으니 읽어 주시면 영광이겠습니다.
학장님!
부산 평협 회장님까지 지내신 분, 제 문학의 스승님. 부디 힘을 내십시오.
그런 뒤 졸저를 읽고 호평(?) 한마디 짧게 주십시오.(웃음) 제겐 새로운 성취동기가 될 겁니다. 김천혜 교수님/ 구인환 교수님(저를 추천한)/ 이유식 교수님/ 류영남 박사님 들처럼(이 경우 '들' 띄어 쓰는 것 맞지요?) 참 가수 남진도 거들었고 오순절 평화의 마을 김수진 원장신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우리 본당 교우와 26사단 장병 교우, 한국가톨릭문인회, 제가 종신 소액 후원하는 여남은 군데 본당과 시설(제주도 ‘서귀포 성당’에서 청각장애 교우 성당 ‘인천 청언 성당’ 등 본당 몇 개/ 오순절평화의 마을/ 초량 시각 장애복지관) 교우들에게 학장님을 위해 기도를 올리자고 이야기하겠습니다.
가을이 오기 전에 망미 성당에 내려가서 학장님 옆에 앉아, 미사 참례를 할까 합니다. 옛날 그 곳 노인학교도 몇 번이나 드나들었었습니다. 한 시간 수업을 해도 좋습니다. 강사 수당 안 받겠습니다.(웃음)
애창곡 있으시지요? 1/4박자일 테니 거기 맞춰서 소리 내지 않고 그 노래를 부르십시오. 들숨 넷/ 날숨 넷! 가곡이든 복음성가든 성가든 대중가요든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가가 최고겠지요. 가슴이 시원스럽게 뚫리는 174번 ‘사랑의 신비’/ 211번 ‘주여 나의 몸과 맘’/ 166번 ‘생명의 양식’/ 436번 ‘주 날개 밑’ 등을 추천해 올립니다.
존경하는 학장님
오늘은 더 이상 말씀을 안 드리겠습니다.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사모님과 아드님 신부, 그리고 모든 가족들에게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壓尊法을 고려 지나친 경어를 생략했습니다. 학장님의 가르침대로 외래어를 안 쓰려고 여태껏 노력도 했습니다. 이 글월은 주님께 바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2017. 7. 27
용인에서 이원우 아우구스티노 올림
두서가 없고 장황했습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