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 비닐봉지 하나
지난 늦은 봄이다. 종종 들리던 재래시장에서 마늘종 한 묶음을 샀다. 주인은 할머니였는데 담아줄 봉지가 없어 쩔쩔매고 계셨다. 마침 가방에 검정 비닐 봉지가 있어“ 할머니 봉지 여기 있어요.” 하자 할머니는 구부린 허리를 최대한으로 펴시며 “그럼 그럼” 하셨다. 할머니가 그럼 그럼 하신 말씀 속에는 비닐봉지 하나라도 아끼라는 것이 숨어 있었다. 비닐봉지를 덜 쓰면 환경만 좋아지는 게 아니라 지금 당신이 팔고 있는 농작물도 계절에 맞춰 잘 수급될 거라는 의미도 포함된듯했다.
할머니를 아무리 봐도 흔히들 말하는 기후변화까진 생각할 여유는 없어 보였다. 너저분한 좌판도 그랬고 반도 못 펴는 굽은 허리도 옆을 돌아볼 처지는 아니었다. 높은 연세에도 장사를 하시는 건 생계를 이어오던 가게를 접을 수가 없어 지키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너무 더운 날씨를 통해 아셨는지 아니면 가게에 들어오던 과일과 채소가 값이 뛰어 눈치를 채셨는지, 기온이 높아 농작물 수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건 훤히 꿰뚫고 계셨다. 굽은 허리를 한 번 더 펴시면서 “내가 비닐봉지 하나 덜 쓴다고 되겠어.” 하시며 혀를 차시기도 하셨다.
그렇다. 올여름 더위는 정말 대단했다. 특히 더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건 농작물이 아닐까 싶다. 사과값이 폭등했고 배추값도 덩달아 천정부지로 뛰었다. 사과값 배추값이 날만 새만 뉴스거리였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그 값에 귀를 쫑긋 세운 건 누구나 안다. 그랬으니 채식 위주로 밥상이 차려지던 우리 집 식탁도 더러는 흔들렸다.
나는 할머니 가게에 비닐봉지가 없었던 이유를 뒤늦게 알았다. 할머니가 헌 비닐봉지 뭉치를 찾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가게들처럼 새 비닐봉지를 차양에 매달아 놓고 뚝뚝 떼어 쓰는 게 아니라 단골 사람들이 한번 사용한 비닐봉지를 모아 갖다 주면, 쓰시는 건데 그날따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다.
온종일 하시는 거라야 농작물을 파는 것뿐인데도 기후변화에는 누구보다 앞서계셨던 할머니. 초라하고 볼품없는 난전에서였지만 할머니의 건전한 생활방식은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기후변화라는 큰 난제(難堤)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단지 검은 비닐봉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검은 봉투하나는 그 할머니의 마지막 생존의 수단일 것입니다. 봉투에 담아주려고 할 때 ,할머니! 이장바구니 담으면 돼요,라고 말하면 할머니의 환해지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 시니어들이절약하는 생활을 하면 하면, 환경을 지킬 수 있고 , 작은 일이지만 마음도 저절로 편해질 것입니다.
네 맞아요.
봉지하나 별것 아니지만 한 사람 한 사람 동참하면
큰 도움이 되겠지요. 비닐봉지 하나라도 아끼는 자세가 우리모두에게 필요한 때입니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소재로 쉽고 재미있게 잘 묘사한 글이군요. 잘 읽었습니다.
마음 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소재라고 하시니 더 좋습니다.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시는 강기자님의 아름다운 마음씨에 찬사를 보내며 감사드립니다 ~**
윤기자님이야 말로 글을 쓰시면 현장감이 있어 읽는
사람의 마음을 푹 빠지게 하시면서
칭찬해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공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할머니와 거래 하면서도 허투루 보지 않으시는 강기자님 마음 참 깊으시네요.
황기자님은 꽃잎하나도 모양이 허트러지지않게
카메라에 담잖아요. 그건 사진이 아니고 예술이지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술술 풀어 가시는 얘기에 푹 빠지게 만드는 강병숙 기자님~
작가는 역시 다르십니다.
늘 분에 넘치는 말로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김기자님 고맙습니다.
글 잘 봤습니다~!
강화평 선생님, 고맙습니다.
정감이 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글을. 잘 쓰시네요
박기자님 고맙습니다.
제가 이방에서 기자님을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건 새로운 행복입니다.
알고 보니 제가 사는곳과 거리 멀지않은
거리에 사시더라고요. 이렇게 너른 서울에서
가까이산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늘 즐거우시길~
너무 흔해서 생각지도 못한 것으로 글을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었네요!
강병숙기자 다운 발상 놀랍군요~
모두가 기후 변화를 걱정하는 요즈음 별 것 아니지만 검은 비닐봉지를 크게 부각 한 소재가 너무 좋아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싼게 비지떡이란 말이 있듯이 비닐봉지가
너무흔해 풍족하게 쓰는건 사실입니다
글을 쓴 저보다 댓글로 글쓴 사람을 추켜
주는 이영옥 기자님의 따뜻한 마음이 더 정겹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