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중 가락계 이외는 모두 신라계로 분류 <우록계는 소수, 성씨분류는 대개 선례에 따라>
지난12월말 본보 편집실에 접수된 광주광역시 광산구 종친회 김영능 족장이 「한국인의족보」란 책에 등재된 다음사항들을 질의해왔다. 즉「한국인의족보」188쪽 고성(固城)김씨편 237쪽 남양(南陽)김씨편 243쪽 무장(茂長)김씨편 319쪽 함창(咸昌)김씨편에 이들 김씨들이 모두 가락계이거나 가락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설명되어 있는데 그 진위를 밝혀달라는 내용의 질의였다. 그리고 그 답변은 반드시 가락회보 지면을 통하여 해 달라는 것이다. 이는 모두 종친들이 참고로 해야할 사항이므로 본보를 통하여 이를 답하고자 한다. 고성과 함창은 6가야중 소가야와 고녕가야이다. 수로왕의 탄강신화에 '6개의 알이 모두 화하여 6동자가 되었는데 그 용모가 매우 훌륭하였으며 제일 먼저 어린이로 화한 수로가 대가락국의 왕이되고 나머지 다섯사람도 각각 분봉되어 6가야의 왕이 되었다'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고성김씨와 함창김씨를 가락계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고성김씨와 함창김씨의 족보에도 구지봉 탄강신화가 나오고 수로왕과 형제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남양김씨와 무장김씨는 「한국인의족보」에 가락계로 기술되어 있으나 그 근거가 매우 불확실하다. 남양김씨의 경우 그 시조를 적 으로 보고 고려 의종때 무신의 난이 일어날 것을 예측하고 남양 산골자기로 이사하고 그 곳에서 정착 세거(世居)하여 본(本)이 남양으로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김적」을 가락계로 입증할 만한 역사적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중앙일보사에서 간행한 「성씨의 고향」에서는 「남양김씨의 시조를 김남귀(金南貴)로 보고 남양은 충남 서천의 옛 이름이나 현재는 경기도 화성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으나 김남귀는 조선 숙종때 문과에 급제하여 현령을 지낸 인물이지만 본관의 유래들은 확인할 길이 없다. 또 무장김씨의 시조 김자무(金自武)는 조선 세종10년에 출생하여 문과에 급제하여 단종 때 제주목사를 지낸 사람으로 명백하게 김알지계로 기록되어 있다. 그전에 「한국인의족보」243쪽에서는 무장김씨는 두갈래가 있는데 그중 한 갈래는 시조가 김선(金璇)이고 그는 가락계이다 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매우 잘못된 기록이다. 김선은 무장김씨가 아니라 김해김씨 장사군(長莎君)파이다. 다만 진주김씨는 두 갈래가 있다. 김수를 시조로 하는 진주김씨와 흥무대왕의 둘째아들 원술(元述)을 시조로 하는 가락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김씨 성은 크게 두 갈래로 분류하는데 하나는 수로왕을 시조로하는 가락계이고 또 하나는 김알지를 시조로하는 경주김씨 즉 신라김씨계이다. 다만 임진왜란 때 가또오의 좌선봉 사야가(沙也可)가 귀화하여 성은 김해김씨 아름은 충선으로 사명을 받아 또하나의 김씨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은 김해김씨라 하지 않고 우록김씨로 대구시 가창면 우록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김씨를 대개 가락계(김수로) 신라계(김알지) 우록계(김충선;모화당)로 분류한다. 굳이 따지자면 고성. 함창, 진주(원술계) 김씨등은 가락계이지만 지금까지 가락계라하면 수로왕계인 김해김씨만을 지칭하고 그 외에는 대개 김알지계인 범신라계로 분류한다. 대개 이런 것은 선례를 따르고 존중하기 때문에 새삼 가락계니 신라계니 하는 문제제기는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상을 잘 참조하기 바란다. 김 시우 <가락회보 제318호. 2007년 2월 15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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