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2022.11.6(일)09;30-13;30
★코스;도봉산역-도봉검문소-북한산둘레길(도봉로191번길)-내자사-도봉산길-북한산국립공원 도봉탐방지원센터-도봉천길-
북서울중학교-무수천길(도봉로171번길)- 서울도봉초교-무수골마을-마중물교회-무수천-난향원-무수골공원지킴터-
자현암입구/유턴-도봉초교-무수천/무수교-오봉초교-시루봉로-전형필가옥-신동아아파트교차로-방학로-성비원씨묘-
연산군 묘-방학동고개-북한산 우이역-우이동 먹거리마을(백란산장)/유턴-우이천-중랑천-응봉역(40km)
★참가;마라톤킴, 쉐도우수, 바이크손대장. 람보림, 오벨로, 스머프차
<후 기> 스머프 차
가을은 시나브로 깊어만 가고있다. 어느덧 겨울의 길목이라는 입동(11.7)이다. 이번 라이딩은 단풍을 맞이하여 서울의 북북지역의 도봉산 동편 산자락을 찾아 떠나는 여정으로, 사찰과 역사문화유적지를 탐방하고 바이크손대장과 랑데뷰하는데 있다. 도봉산은 서울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시, 의정부시에 걸쳐있는 740m 높이의 큰 산으로, 커다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기암절벽과 소나무들이 어우러진 멋진 풍경은 옛부터 유명해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언제나 변함없는 바이콜 전사 5명이 도봉산역 1번출구에 9시30분에 합류하였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도봉검문소를 거쳐 북한산둘레길을 따라 내자사로 향했다. 하늘은 맑고 푸르렀으며 날씨는 쌀쌀하였다. 도봉산 산자락에는 망월사, 회룡사, 쌍룡사, 원통사, 천축사, 관음암 등 내로라하는 불교사찰이 수두룩하다. 그야말로 불국토가 아닐 수 없다. 한국불교 천태종에 속한 내자사는 일주문과 어울리지 않은 조그만 절집으로 마치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다. 대략 살펴본 후 도봉산길로 들어서면 다양한 복장을 한 등산객들이 혼잡할 정도로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북한산국립공원 도봉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여기서 페달을 멈췄다. 자전거 출입금지로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통과하여 광륜사, 능원사, 도봉사를 둘러볼 계획이었으나 이를 취소하고 도봉천을 거쳐 무수천으로 향했다. 무수천은 우이암에서 발원하여 중랑천과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서울 도봉초등학교를 지나면 무수골 마을이 나온다. 무수골은 세종이 재위 당시 찾았다가 '물 좋고 경치가 좋아 아무런 근심 없는 곳'이라 언급한 것에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 무수골에는 전주 이씨 영해군파 묘역과 호안공 이등과 의령옹주 묘역이 있다. 영해군(1435-1477)은 세종의 17남이며, 서자 중 아홉번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빈 김씨이다.
영해군은 화목한 것을 좋아하며 다투는 일이 없다고 한다. 의령옹주(?-1466)는 조선 태조와 찬덕 주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장녀로, 호안공 이등(1397-1457)과 결혼하여 4남3녀를 낳았다. 호안공 이등은 1444년(세종26)에 봉헌대부로 봉하여졌으며 1457년(세조3)에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무수골 마을 마중물교회에 이르면 도봉옛길을 만난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능원사, 도봉사를 지나 무수천 세일교에 이르는 길이다. 도봉옛길 파고라를 배경으로 인증샷하고 성신여대 난향원을 거쳐 자현암으로 향했다. 난향원을 지나는 길은 아름다운 단풍숲과 하늘로 쭉쭉뻗은 아름드리 나무숲이 일품이었다.
무수골공원지킴터에서 150m에 자현암이 위치해 있으며, 원통사는 1,6km, 우이암은 2,1km 거리에 있다. 자현암은 비구니 사찰로 해인사 말사이다. 합천군 우두산자락에 심원사가 합천댐 공사로 수몰위기에 처하자 혜선스님이 1960년 현재 자리로 이전하여 창건했다. 산림감시원이 사찰 출입금지라고 하여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곳에는 함열남궁씨대종묘가 위치해 있다. 마라톤킴 누이동생이 함열남궁씨 가문의 며느리이다. 함열남궁씨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이 본관으로, 시조는 남궁원청이다. 남궁원청은 고려 성종때 여진족을 백두산 이북으로 몰아낸 공으로 문하시중평장사에 임명되었다.
자현암 입구(무수골공원지킴터)에서 유턴하고 왔던 길로 뒤돌아 나와 무수골마을 원형돔 쉼터에서 달콤한 휴식을 취하면서 떡과 단감으로 기를 보충하였다. 도봉초등학교와 서울오봉초등학교를 거쳐 시루봉로를 따라가면 전형필 가옥이 나온다. 전형필 가옥은 1890-1900년대 건립된 건물로 100여 년이 된 전통 한옥이다. 파란 하늘과 울긋불긋한 단풍, 아름다운 한옥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전형필(1906-1962)은 휘문고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대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1928년 스승 위창 오세창을 만나 그의 조언으로 서화와 골동품 수집에 관심을 갖고
인사동 고서점을 인수하여 한국의 중요한 문화재가 일본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았다. 유산으로 받은 막대한 재산은 국가 문화재를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 1938년 수집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간송미술관(보화각)을 세우고 1940년 경영난에 빠진 보성학교를 인수하여 교주가 되었다.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 중에는 훈민정음해례본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서적, 고서화, 석조물, 자기 등이 있으며 10여 점 이상이 국보로 지정되었다. 그가 소장한 문화재 중 신윤복의 화첩도 유명하다. 한옥 뒤에는 전형필과 아버지 전명기의 묘역이 있다.
전형필가옥을 벗어나 방학로를 따라가면 성비원씨 묘가 나온다. 성비원씨는 태조의 후궁으로 슬하에는 자녀가 없다. 신덕왕후가 사망하자 1398년(태조7년)에 태조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입궁하였다. 1406년(태종6)에 정식으로 성비원씨로 봉작되었다. 성비원씨 묘에서 가까운 곳에 연산군 묘와 정의공주 묘가 있다.연산군은 성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페비윤씨 이다. 연산군은 1494년 12월 성종이 승하와 동시에 왕위에 올랐다. 연산군은 성종이 새로 맞은 정현왕후 윤씨가 어머니인 것으로 알고 성장했다.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을 때 백성들의 삶은 매우 궁핍했다.
왕실 재정 악화는 자연스레 왕권의 악화로 이어졌다. 연산군은 즉위 초부터 원로 대신들과 대간인 사림 사이에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1498년 왕권강화를 위한 무오사화와 훈구세력의 재산을 압류하려고 하여 대신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킨 1504년 갑자사화가 일어났다. 특히 자신의 정통성에 문제가 있다고 깨달은 순간부터 광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성종의 후궁과 그 소생 왕자를 죽였다. 두차례의 사화로 훈구파와 사림파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로인해 연산군은 폭군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연산군은 사치와 놀이에 빠져 국가재정은 더욱 악화되었고 그 부담은 고스란이 백성들의 몫이었다.
연산군은 이 과정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자를 온갖 고문으로 죽였다. 대화는 단절된 채 오직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급기야 민심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 교동에서 그 해 11월 31세의 나이로 병사했다. 연산군 묘 주위에는 부인(거창군 신씨), 딸과 사위(구문경), 의정궁주조씨(태종의 후궁)묘 등이 있다. 연산군 묘 입구에 보호수 은행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수령 550살로 '대감나무'로 불린다. 경복궁 중축 당시 징목 대상이었으나 마을 주민들이 흥선대원군에게 간청하여 제외되었다고 한다.
연산군 묘에서 북쪽 300m 남짓 거리에 정의공주 묘가 있다. 정의공주(?-1477)는 세종대왕의 둘째 딸로 태어나 훈민정음 창제에 이바지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의공주의 오빠는 문종, 동생은 세조 이다. 세종대왕이 가장 아끼던 딸이었다. 정의공주는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불교에 조예가 깊었다. 정의공주는 남편 안맹담과 함께 세종 승하 후 소현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사를 중창했다. 안맹담은 관찰사 안망지의 아들로 1428(세종10)에 죽성군에 봉해졌다가 1432년에 연창위로 개봉되었다. 정의공주는 연창위와의 사이에서 4남2녀를 두었으며 1477년 2월 사망하였다.
연산군 묘소 입구에서 방학동고개를 넘으면 북한산우이역이 나온다. 우이동먹거리마을을 지나는 중에 바이크손대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때가 오전 11시 50분 경이었다. 우이령까지 갔다가 오면 시간이 많이 지체돼 백란산장까지 갔다가 우이천 자전거길로 진입하였다. 우이천은 항시 맑고 깨끗하여 철새들의 낙원이다. 금실좋은 원앙새와 청둥오리가 눈에 띄였다. 물고기를 사냥 중에 있었다. 12시 40분경에 중랑천과 우이천의 합수지점에서 바이크손대장과 합류하였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고구마와 연양갱으로 카보로딩하면서 숨고르기 하였다.
중랑천 자전거길을 따라 응봉역 크우익가든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30분경이었다. 돼지갈비살과 된장국수와 순두부찌개로 권커니잣커니하면서 정겹게 웃음꽃을 피웠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푹 빠지다 보니 어느새 오후 3시 30분경이었다. 다음주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둥지로 향하였다. 오늘 날씨는 미세먼지가 없는 맑은 하늘로 운동하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도봉산 산자락길은 업다운이 심해 힘이 부칠 것이라 지레 겁먹었는데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고 재미가 더 쏠쏠하였다.
쉐도우수는 코스를 기획할 때는 회원들이 적당히 힘에 부칠 정도의 코스를 선정할 뿐만 아니라 사계절 경치 좋고 아기자기한 곳으로 안내한다. 이것이 쉐도우수의 매력 포인트다. 바이콜 전사들과 함께 여인동락하면 기운이 솟고. 행복호르몬 세로토닌이 분비된다. 정말 모든 순간이 즐거웠고 행복했다. sd16 바이콜릭스(Bikeholics) 브라보!
출발전 도봉산역내 부산어묵집에서 '뜨끈한 어묵'으로 불가심(람보림,오벨로 부부 제공)
도봉검문소에서 도봉산역을 배경으로
내자사 가기전 도봉산을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고
도봉산의 장쾌한 모습
내자사 일주문에서
북한산국립공원 도봉탐방지원센터 입구에서 '울긋불긋한 단풍이 아름답다'
도봉옛길 파고라를 배경으로
윗무수골 둘레길 통제소에서 마라톤킴 자전거 공기주입 중(쉐도우수)
성신여대 난향원을 지나서
자현암 입구(무수골공원지킴터)에서
북한산국립공원 안내도에서 현지형을 설명하는 쉐도우수
북한산 국립공원 안내도 '현위치' 무수골공원지킴터
무수골공원지킴터 함열남궁씨 대종묘 비석
무수천에서 도봉산을 배경으로
무수골마을 원형돔 쉼터에서 '떡과 단감'으로 카보로딩
전형필가옥
연산군 묘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연산군 묘 등장
묘소 맨 위 왼쪽이 연산군 묘, 오른쪽이 연산군 부인 묘, 맨 아래 묘는 연산군 딸과 사위묘
연산군 묘 입구 수령 550년 보호수 나무(대감나무)
방학동고개를 넘어
방학동고개 생태보존터널을 지나
북한산우이전철역을 지나 백란산정에서 유턴
우이천 전망이 좋은 곳에서 북한산을 배경으로
우이천 자전거길을 따라
중랑천과 우이천 합수부에서 바이크손대장과 랑데뷰
고구마와 연양갱으로 카보로딩
중랑천 자전거길을 따라
크우익가든 도착(13;30)
점심식사 마치고 나서 각자 둥지로(1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