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등재를 넘어서
며칠째 낮엔 더위가 느껴질 정도인 삼월 둘째 금요일이다. 어제는 매화를 완상하러 양산 원동에서 배내골로 가는 영포를 찾았더니 코끝에 와 닿는 향이 달달했다. 부전에서 출발해 순천으로 가는 저녁 열차로 돌아와 귀가가 늦었다. 잠을 깬 새벽에 탐매를 다녀온 일기와 시조를 한 수 남겼다. 아침 식후 근교 산자락 임도를 걸어볼 요량으로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향했다.
마산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버스 출발지에서 진동 대현 종점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니 시간이 여의하지 않았다. 교육단지로 등교하는 학생들과 창원대로 공단으로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타고 내려 운행이 더뎠다. 마산역 광장으로 들 시간이 없어 김밥은 마련 못하고 마산합포구청 앞으로 나가 대현으로 가는 72번 농어촌버스로 갈아탔다. 진동 환승장을 둘러 진북 내륙으로 들어갔다.
진북 일반산업단지를 지난 버스는 대현 방향이 아닌 추곡으로 들어갔다. 추곡은 여항산과 서북산의 낙남정맥이 무학산으로 건너가는 대산과 광려산의 남향 기슭 깊숙한 골짜기였다. 외추를 지나 커다란 저수지가 나오고 그 안 동네가 내추였다. 남은 승객은 나 혼자뿐이었는데 기사는 왜 내리질 않느냐 했다. 나는 버스가 거기서 회차해 대현 종점까지 가지 않음은 그때야 알았다.
내추 종점에서 외추 동구 밖으로 나오니 진동 일대에서 흔히 보는 서낭당과 막돌탑이 보였다. 수령이 오래된 당산나무와 함께 냇가에서 주워 모은 돌멩이들로 얼기설기 쌓은 돌탑이었다. 당산나무와 막돌탑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동신제를 지내는 성스러운 장소다. 외추 동구에서 고성을 거쳐온 79번 국도 옛길을 따라 걸어 귀정 교차로에서 정현을 지나자 대현 이정표가 나타났다.
대현마을 동구에는 돌담으로 둘러쳐 기와를 얹은 효자비각이 보여 가까이 가 봤다. 자물쇠가 채워져 빗돌 표면을 살필 수 없어 담장 밖에서 큰 글씨만 확인하니 김해 김 씨 문중 효자였더랬다. 마을 어른들을 만났더라면 언제 적 인물이며 구체적인 효행 내력은 어떠했는지 여쭤보고 싶었는데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대현에서 찻길을 따라 더 올라가니 버스가 회차하는 종점이었다.
본래 대현까지 버스로 갔다면 거기서 고갯마루로 올라 봉화산 허리로 난 임도를 따라 걸어 여항으로 나가볼까 했는데 찻길을 따라 걷느라 시간을 제법 보냈다. 그리하여 마음이 바뀌어 진등재에서 곧장 여항으로 나갈 참이다. 진등재는 대현이나 대티로도 불리는 창원 진동에서 함안 여항으로 나뉘는 낙남정맥에 걸쳐진 고갯마루다. 그 고갯길을 넘다가 갓길 언덕에서 달래를 캤다.
나는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길을 나서면 자연에서 찬거리를 구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가 손수 채집한 냉이와 쑥은 나물이나 국으로 끓여져 식탁에서 봄 향기를 맡고 있다. 달래는 산언덕에서 작년 가을 싹이 터 시든 검불 속에서 겨울을 나고 파릇한 잎줄기가 드러나 나에게 간택 보시했다. 볕 바른 자라에 움이 돋아 자라는 쑥도 캐 보려다 시간이 많이 걸려 그냥 지나쳤다.
진등재에서 봉곡마을을 지나니 이방실 장군 테마 학습장이 나왔다. 고려말 이방실은 그곳 출신 무인으로 홍건적을 물리친 공적을 기린 공원이었다. 깊숙한 산골의 내곡과 두곡을 거쳐 청암으로 가니 초등학교와 면사무소가 나왔다. 행정구역이 함안면으로 바뀐 강외마을 버스 정류소에 한 할머니와 가야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할머니는 가야 장날의 장을 보러 나가는 걸음이었다.
읍 소재지라 장터 규모가 컸지만 어디나 단순하고 일정한 구색이라 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말산리 고분군으로 올라가 봉긋한 능을 바라보려다가 오후의 햇살에 더위가 느껴져 먼발치서 바라봤다. 언젠가 내가 남길 운문의 소재가 될 가야인들의 무덤이었다. 장터 노점을 지나 돼지국밥집으로 들어 늦은 점심을 먹고 마산으로 가는 버스를 탔더니 하루해가 거의 저물었다. 23.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