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수를 구해 주고
삼월이 중순에 접어드는 둘째 주말이다. 같은 생활권에 사는 벗이 작년 여름 퇴직해 내 고향 의령 가례에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해 5촌 2도를 실천하려고 한다. 거기는 친구의 처가로 벼농사를 짓도록 넘겨준 자기 소유 논을 되받아 올봄부터 밭작물을 가꾸는 농사꾼이 되었다. 창원에 살던 아파트는 혼기가 꽉 찬 아들이 혼자 지내는데 친구 내외는 주말에 복귀해 가족들과 상봉한다.
친구는 작년 하반기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 입주는 마쳤으나 조경공사는 마무리 단계라고 했다. 마당에 심을 조경수를 구한다기에 내가 알고 지내는 분에게 몇 그루 받아 가라고 했다. 그분은 내가 예전 근무지에서 만났던 동료로 나보다 대여섯 살 연상이다. 퇴직과 동시에 선대가 살던 동읍 남산리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지으며 소일해 나는 가끔 들려 안부를 나누는 사이다.
토요일 아침 내가 사는 아파트로 차를 몰아온 벗과 시내를 벗어나 지인의 농장으로 향했다. 차내에서 그간 귀촌해 봄을 맞아 농사일이 시작된 얘기를 듣게 되었다. 지인 농장을 방문하니 아내와 함께 밭일에 나서려는 즈음이었는데 반갑게 맞아주었다. 조경수는 지인이 씨앗을 심어 가꾸어 놓은 비파나무였는데 옮겨심기에 알맞은 크기였다. 대여섯 그루를 파 옮겨 가게 해서 고마웠다.
지인은 비파나무 묘목 말고도 분에 키운 블루베리 묘목도 두 그루 챙겨주었다. 지인 아내는 내가 가져가라고 겨울초를 가득 잘라 포대에 담아 주면서 커피까지 타 주어 잘 먹고 나왔다. 남산리 동구 밖을 지난 남해고속도로 교각 아래서 나는 지인이 챙겨준 겨울초를 갖고 내리면서 친구를 먼저 보냈다. 겨울초에 붙은 시든 검불과 흙은 야외에서 가려야만 뒤처리가 쉬울 듯해서다.
냇가 쉼터에서 겨울초를 깔끔하게 가리니 부피가 줄어 이동이 수월해졌다. 이후 겨울초가 담긴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농로를 따라 걸어 민자로 건설된 구룡산 터널 용전 요금소 곁으로 올라갔다. 양봉업자가 둔 벌통과 단감나무가 자라는 농원을 지난 산기슭에 요금소가 있었다. 몇 해 전 구룡산 터널을 뚫으면서 임야와 과수원 일부가 편입되어 자동찻길이 생겨 생태계가 달라졌다.
통행료 요금소 언저리 볕이 바른 자리에는 머위가 움이 터 자랐다. 배낭을 벗어두고 가져간 칼로 여린 머위 순을 몇 줌 캐서 모았다. 그곳은 본디 과수원이었는데 터널이 뚫리면서 자동찻길에 편입된 부지여서 수로로 바뀐 곳이었다. 몇 끼 찬이 될 만큼의 머위 순을 캐서 검불을 가려 아까 챙겨둔 겨울초 봉지에 같이 채워 남산리 동구 식당에 들러 제육볶음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들고는 남해고속도로가 높은 교각으로 걸쳐 지나는 국도의 횡단보도를 건너 소목마을 앞으로 올라갔다. 정병산 북서편 마을 앞길을 지나니 수령이 오래된 당산나무가 나왔다. 마을이 끝난 산기슭은 단감농원이 펼쳐지고 일부에 텃밭 농사를 가꾸는 이들도 보였다. 아까 남산리에서 마을버스로 시내로 복귀하지 않고 소목고개를 넘어 사림동을 거쳐 집으로 향해 가는 길이었다.
소목고개를 넘으니 주말을 맞아 산행을 나선 이들이 더러 보였다. 약수터에서 샘물을 받아 마시고 사격장으로 내려가니 클레이 사격으로 레저를 즐기는 이들의 총소리가 타꽁! 따꽁! 들렸다. 잔디 운동장 가장자리의 벚나무는 꽃눈이 부푸는 기색이 뚜렷했다. 양지쪽에는 화사하게 핀 민들레가 점점이 보였다. 사격장을 벗어나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길을 걸어 사림동 주택지로 내려갔다.
길가 주택에서는 노부부가 화단에 사과나무를 심어 놓고 물을 주고 있었다. 그 곁에는 파릇한 움이 돋은 수선화가 노란 꽃잎을 펼쳐 화사했다. 노지에서 구근으로 키운 히야신스도 밀어올린 꽃대에서 붉은 꽃잎을 달고 나왔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는 가꾸는 화분이 없어도 집을 나서면 산야에서나 누구 집 뜰에서나 꽃들은 지천으로 보게 된다. 퇴촌삼거리를 지나니 집이 가까워졌다. 23.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