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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갸라도스
출처 : 여성시대 사람은책을만들고책은사람을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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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 놀이공원에서 일하는데, 괴물 중에 절반은 연기자가 아냐 25 – 열망(完)
나는 놀이공원에서 일하는데, 연기자 중 절반은 실제 연기자가 아니다. 여태까지 있었던 사건들과 비교하면 차 안에서의 시간은 매우 평화롭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차의 시트에 등을 대고 앉아 있자니 등에서 익숙한 끈적임이 느껴졌다.
두껍고 품이 큰 윗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눈치채지 못했지만 등에서 다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지하세계에서의 여정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기 때문에 잠깐 스쳐가는 불편함에 내가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시트에 기대어 천이 등에 쓸리자 처음으로 축축함이 느껴졌다.
“미안한데 잠깐 차 좀 세워줄 수 있어?” 나는 다리우스에게 빌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길가에 차를 세웠다.
뒷자리에 앉아서 커다란 눈으로 창문 밖을 바라보던 매들린은 귀를 쫑긋 세우고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그러는데?” 그녀가 물었다.
나는 말없이 윗옷을 구겨 벗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피가 많이 묻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가 옷 아래에 입고 있던 나시 티는 완전히 피에 절어 있었다. 이미 피가 말라붙기 시작해서 나는 살갗에서 굳은 피와 천을 떼어내며 고통에 움찔거렸다.
“이런 망할.” 다리우스가 중얼거렸다.
“걱정 마, 차 시트에는 안 묻은 것 같아.” 나는 티에 묻은 커다란 핏자국을 들여다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가방에 아직 안 입은 티가 있다는 게 떠올라 나는 새 옷으로 갈아입은 후 다시 윗옷을 걸쳤다.
“네 타투 거의 다 없어졌어. 그냥 알록달록한 자국만 몇 개 남았어.” 다리우스가 걱정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뭐? 아, 젠장…” 나는 욕을 했다. “다 너무 좋았는데!! 망할… 그래도 예상은 하고 있었어. 우리가 입구 근처에서 돌아다닐 때부터 벌써 피가 흐르고 있었잖아. 내가 직접 지하에 내려갔으니 없어졌을 만도 하지.”
“그런데 왜 피가 나지?” 매들린이 물었다.
“타투 잉크에 철이 들어있어서 그런 것 같아.” 나는 설명했다. “지하세계는 그런 걸 거부하잖아, 맞지?” 나는 피가 묻은 나시 티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가방을 열어 채찍과 권총을 꺼냈다. 워린을 마주했을 때는 둘 다 들고 있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미리 대비하고 싶었다. 다리우스는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 차를 출발시켰다. “이런 미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 네가 아직 제정신이라니 믿을 수가 없어.” 그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존경심이 묻어났다. “나였으면 어느 순간 미쳐버렸을 거 같아.”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가 바보같아서 그래. 그나저나 아직도 이해 안 가는 게 몇 개 있어. 내가 데일의 사무실에서 발견한 사진 있잖아?”
“얼굴 없는 사람들이 찍혀 있는 사진?” 다리우스가 말했다.
“응, 그건 대체 뭐지?”
토끼 머리 소녀는 갑자기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얼굴 없는 사람 사진이 있다고? 야생의 것들이 누군가의 형태를 취하면 원래 주인의 사진이 그렇게 변해. 그 사람이 나온 사진에서 얼굴이 전부 사라지는 거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 “나를 납치한 놈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 내 모습을 뺏어간 놈한테 엄마 아빠가 의심하지 않도록 내 사진을 전부 없애버리라고 하더라고.”
“와, 너무 끔찍하다.” 다리우스가 중얼거렸다.
매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인생 정말 거지같아. 그렇지만 적어도 워린을 열받게 했으니 한 방 먹였다고 봐야지.”
“내가 또 계속 궁금했던 게, 워린한테 3이라는 숫자가 무슨 뜻일까? 워린이 뭘 먹을 때 알게 된 건데 빵을 계속 세 조각으로 자르더라고. 총에 세 번 맞고 나서부터 그렇게 된 걸 수도 있는데 정확히는 모르겠어.” 나는 크게 혼잣말을 했다.
“사실 오래된 자들 중에 3이라는 숫자에 매여 있는 것들이 많아.” 토끼 머리 소녀가 끼어들었다. “예를 들어 베리를 세 개씩 먹는다던지 말을 세 번씩 반복한다던지. 근데 왜 그러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갑자기 뭔가가 떠올라서 나는 핸드폰을 꺼내 클라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라면 알 것 같았다. 클라라는 거의 바로 받았고 나는 전화를 스피커폰으로 돌렸다. “리아, 안녕.” 그녀는 활기차게 나를 반겼다. “네 전화 기다리고 있었어! 혹시 시간 좀 있어? 우리-”
“미안, 지금 네 도움이 좀 필요해서.” 나는 짧게 설명했다. 지난 며칠 동안 내가 뭘 겪었는지 그녀가 알지도 못하는데 갑작스레 말을 끊어서 미안했다. 나는 나중에 제대로 설명을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아마 전말을 알게 된다면 클라라는 엄청나게 충격을 받을 것이다. “3이라는 숫자는 무슨 의미야?”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오컬트 쪽에서?”
“응.”
“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3의 법칙이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업 같은 거지. 모든 게 다시 자기한테 돌아온다는 그런 개념이잖아. 3의 법칙은 모든 게 세 번 돌아온다는 거야. 삶의 모든 면에 적용할 수 있지만 특히 마법과 관련해서 더 의미가 있어. 그리고 기독교에서도 3은 의미가 있지. 악마가 예수를 세 번 유혹했다는 것도 있고 삼위일체 같은 것도 있으니까…” 그녀는 말꼬리를 흐렸다. “왜 물어보는 건데?”
“나중에 설명할게, 약속해. 고마워, 안녕.” 나는 말을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었다. “혹시 이거 때문일까?” 나는 매들린에게 물었다.
“나도 몰라. 그냥 오래된 자들한텐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모르지. 어차피 다들 꼰대거든. 숫자랑 규칙에 그렇게 집착하는 것도 당연해.” 그녀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그녀가 사라진 걸 알게 된다면 지하에 있는 것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몇 분 후에 공원의 입구에 도착했다. 해가 지고 하늘 높이 달이 떠 있었다. 멀리에서 관람차가 은빛으로 반짝이며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왠지 불길하게 보였다. 나는 권총을 허리춤에 차고 벨트의 구멍에 채찍을 고정시켰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지?” 다리우스가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나 혼자 가야 할 것 같아. 일단은 내기에서 말한 대로 네이선한테 가야 돼. 워린이 벌써 여기 도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관 없을 것 같아. 이틀이 지나기 전에 여기 와야 한다고만 했지, 공원에 워린보다 먼저 도착해야 한다는 말은 없었어. 그리고 아직 하루도 안 지났으니까… 아마 괜찮을 것 같아. 워린이 약속을 지키기만을 바래야지.”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마 지켜야만 할 거야.” 매들린은 나를 안심시켰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워린은 항상 규칙을 지키지는 않아.” 그녀는 걱정에 찬 목소리로 덧붙였다.
“다른 사람들을 부르는 게 나을지도 몰라.” 다리우스가 제안했다. “상황이 나빠질 경우를 대비해서.”
그의 목소리에 걱정이 서려 있었다. 그의 말에 함축되어 있는 내용에 괜히 몸서리가 쳐졌다.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는 않아.” 나는 중얼거렸다.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잖아. 그리고 나도 계속 여기 있을 거야.” 다리우스가 말했다.
“뭐, 그럼 그렇게 해. 그렇지만 어떤 상황인지, 여기 오면 어떻게 될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말해줘야 해. 누구도 다치는 건 싫어. 매들린, 다리우스랑 같이 여기 있어, 알았지?”
토끼 머리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와 다리우스를 향해 억지로 웃어 보인 후 몸을 돌려 출발했다. “조심해야 돼!!” 뒤에서 매들린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밤이 내려앉은 공원은 항상 무서웠다. 혼자만 있는 데다가 뭔가가 모퉁이 뒤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항상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쿵쿵 뛰는 심장 소리에 내 숨소리까지도 묻힐 지경이었다. 공원에 흐르는 정적에 나는 신경을 곤두세운 채 텅 빈 거리를 걸었다.
나는 트윈 베일 포인트로 향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공포 구역에 잠깐 멈춰섰다. 유령의 집 옆에 있는 스크래치의 우리는 텅 비어 있었다. 스크래치가 보고 싶었다.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나는 날카롭게 휘파람을 불고 스크래치의 이름을 몇 번 불렀다. 어딘가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린지 불과 몇 초 후에 스크래치는 건물 뒤에서 뛰쳐나왔다.
스크래치는 내게 거의 부딪힐 뻔했지만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게 멈춰서서 뿔이 달린 검정색 머리를 내 어깨에 비비며 반겼다.
“애기야.” 나는 속삭였다. “너무 보고 싶었어…” 나는 스크래치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 스크래치는 그동안 어디 있었냐는 듯 내게 얼굴을 비볐다. 시간이 없다는 것이 떠올라 나는 마지못해 손을 떼고 다시 서부 구역으로 향했다. 뒤에서 스크래치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뒤를 돌아 미소를 날렸다. “나랑 같이 갈 거야, 친구?”
양말인형은 금세 나를 따라잡았고 우리는 점점 걸음을 재촉하다가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텅 빈 길거리를 나란히 달렸다. 땅은 곧 어두운 색깔에서 밝은 색깔로 바뀌었고 발 밑에서는 모래가 밟혔다. 우리는 트윈 베일 포인트에 들어섰다. 바위투성이에 매력 넘치는 이 구역에 내가 느꼈던 사랑이 떠오르자 그리움이 아프게 밀려왔다.
역마차를 찾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워린이 이미 네이선을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아 나를 엿 먹인 게 아닌가 싶어 나는 패닉 상태가 되기 직전이었다. 말들이 푸르릉거리며 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돌리자 그의 모습이 보였다. 역마차는 선술집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웃는 카우보이를 만난 바로 그 선술집이라는 것이 떠오르자 몸서리가 쳐졌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되기 전 마지막으로 말이다.
나는 바로 마부석을 향해 달려갔고 양말인형은 뒤에서 나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네이선은 마부석에 대자로 누운 채 학 인형을 손에 꼭 쥐고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나는 손을 올려 그를 살짝 건드렸다. 네이선의 눈꺼풀이 움찔거리더니 그는 잠이 덜 깬 채로 일어나 앉았다.
“무슨 일이야…?” 그는 눈을 깜빡거리고 머리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그가 어둠 속에서 나를 보기 위해 눈을 찌푸리는 것이 보였다. “리아, 너야?”
“맞아!! 맞아, 저예요!! 괜찮아요?”
“당연하지…” 그는 아직 잠에 취한 듯 꼬인 발음으로 말했다. “왜 안 괜찮겠어? 너 왜 여기 있는 거야?”
“설명할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기는 네이선 때문에 왔는데 모든 게 다 괜찮을 거예요.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뭘 기다리는데?” 네이선은 혼란스러워하며 나와 내 복실복실한 친구를 쳐다봤다.
“뭐가 아니라 누구예요.” 나는 그의 말을 고쳐 주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조금만 더 밝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있는 거지? 그냥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 건가? 네이선을 찾았다. 내가 이긴 게 분명했다. 점점 더 걱정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목에 걸린 로켓을 만지작거렸다.
갑자기 스크래치가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 나는 몸을 휙 돌렸다. 달빛 아래에 몸집이 큰 남자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문을 닫은 기념품 가게의 나무 현관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의 옷이 제대로 맞는 것으로 보아 그는 다시 콜트로 변신한 듯했다.
“다시 보니까 좋네.” 그는 낮게 웃었다. “내가 보고 싶진 않았어?”
“칼로 찌르고 싶었지.” 나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워린은 크게 낄낄대더니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 편이 네게 좋을 텐데.”
“그래서? 내기한 건 지킬 거야? 나 여기 도착했잖아. 해냈다고.” 나는 단호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래서 너무나 자랑스럽단다.” 카우보이는 조롱조로 말했다. “그래도 난 널 잡았어. 몇 초 정도였지만 너를 잡았지.”
“네가 언제 그랬어! ‘붙잡히면’ 이라고 했잖아. 나랑 내 친구가 널 때리고 도망쳤으니 그걸 붙잡았다고 하기는 힘들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나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들어. 그리고 나한테 10시간 먼저 출발하게 해 주겠다고 했잖아, 분명 10시간은 안 됐을 텐데.”
“열 시간 ’정도라거나’ 라고 말했지.”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러면 안 되지!! 네가 날 잡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탈출했고 여기 도착했잖아. 너도 약속했잖아.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일단 내가 이긴 거야.”
워린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 와.” 그는 내게 손짓을 했다.
“뭐? 싫어.” 나는 스크래치 뒤에 몸을 숨기고 권총 손잡이를 잡았다.
“이리 오라고 했잖아.” 그는 아까보다 더 단호한 투로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오르는 것이 느꼈다. “약속 지켜.” 나는 양말인형의 털을 꽉 붙들고 낮게 속삭였다. 양말인형이 아주 조용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말하면 네가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어. 내가 지하에 있었을 땐 널 찾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고.” 그는 짧게 웃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시선의 가장자리에서 네이선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그는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듯 보였다. “뭐… 무슨 일이야?” 그는 더듬거렸다.
나는 네이선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워린은 기대고 있던 기둥에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편안한 듯한 걸음걸이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지만 가까이 오자 그가 깊게 인상을 쓰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팔을 뻗어 네이선의 멱살을 쥐고 그를 마부석에서 들어올려 내동댕이쳤다. 네이선은 놀라 숨을 들이키더니 바닥에 떨어지며 신음소리를 냈다.
“뭐하는 거야?” 나는 의도했던 것보다 더 불안에 찬 목소리로 속삭였다. “다치게 하지 마!”
워린은 어깨를 으쓱하고 네이선의 갈비뼈 부근을 슬쩍 찼다. 나는 다급하게 달려가 그를 밀쳐냈다. 그는 몇 걸음 비틀비틀 뒷걸음을 쳤지만 빠르게 중심을 잡았다.
“됐지. 다시 땅에 내려왔네.”
워린의 조롱을 무시하며 나는 네이선에게 몸을 굽혔다. 그는 미동 없이 흙바닥에 누워 있었다.
“네이선.” 나는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머리가 빙빙 돌았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는 게 느껴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괜찮아요? 뭐라도 말 좀 해 봐요!”
네이선은 낮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워린은 내 뒤에서 피식 웃었다. “괜찮을 거야. 너라도 하루 종일 마차에 앉아 있으면 걷는 법이 바로 기억나지는 않을걸. 그냥 약해진 것 뿐이야.”
나는 숨을 삼키고 덜덜 떨리는 몸을 일으켰다. “그럼 네이선을 고쳐 줬다는 말이야? 그냥 이렇게?” 나는 잠깐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사기치는 거야?”
“아니거든.” 거의 짜증이 난 듯한 목소리였다. “생각을 해 봐. 그를 고른 건 나였어. 내 소유였다고. 내가 원해서 마차에 발이 묶인 거였지. 그가 마차에서 내리기를 내가 원한다면 내릴 수 있어.”
나는 조금 진정했다. 숨이 조금 덜 가빠졌다. “다행이다.” 나는 조금 더 자신감에 차서 말했다. “이제 나를 다시 정상으로 돌려줘.”
워린은 아까처럼 낮고 오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왜?”
나는 얼어붙었다. “그걸 걸고 내기를 한 거였잖아! 네가-”
“그런 말은 한 적 없어. 네 말을 빌리자면 너는 ‘내 몸에 무슨 이상한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멈춰 줬으면 한다’라고 말했지. 그러니 다시 네게 먹이를 주려고 하지는 않겠어.” 그의 ‘먹이’ 라는 말을 듣자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지만 말이야. 너도 그 말을 했던 게 아닌가?” 그는 조롱조로 덧붙였다.
“아니야! 너도 아닌 거 알잖아! 나를 다시 인간으로 되돌려달라고.” 나는 항의했다. 몸 속에서 분노와 공포가 끓어올랐다.
“정말 미안하군. 네가 그런 의도로 한 말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어. 그렇지만 우리가 데일에 대해 얘기를 나눴을 때 말했던 것처럼, 할 수 없는 일을 가지고 협상을 할 수는 없겠지.”
“무슨 소리야?”
“11일. 네게 처음 먹이를 준 지 오늘이 열 하루째야. 현실을 직시해, 이제 널 구할 수 있기에는 너무 많이 진행됐어. 끝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어.”
“아니야,” 나는 속삭였다. 나는 더 강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아니야!!! 거짓말 하는 거지, 이… 이 개새끼, 이런 방식이 아니잖아! 내가 먼저 물어봤고 너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부분이라고 했고, 나는…” 나는 적절한 단어를 찾느라 더듬거렸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 텅 빈 머릿속에는 말 대신 분노가 가득 들어찼다. 나는 그에게 달려들어 보람 없이 그의 가슴팍을 밀쳤다. 그는 웃을 뿐이었다. 그는 가만히 서서 웃을 뿐이었다. “방금 네이선한테는 효과 있었잖아!” 나는 소리쳤다.
“네이선은 지하에 들어갔던 적이 없어. 그게 너랑 그의 다른 점이야, 알겠어? 여기 땅 위에 있는 것들은 네 친구처럼 변해. 그렇지만 지하로 내려간 적 있는 자들은… 뭐, 혼자서도 짐작할 수 있을 거라 믿어. 네가 데리고 다니는 작은 토끼가 좋은 예시지.”
“널 믿었는데.” 나는 속삭였다.
“알아.”
나는 권총을 들어 망설임 없이 그의 배를 쐈다. 그는 욕을 하더니 몸을 굽히고 기침을 하며 검은 액체를 뱉어냈다. 액체는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나는 그를 다치게 하는 게 소용 없다는 뻔한 사실을 무시한 채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총을 겨누고 다가갔다. 조끼에 난 구멍 외에는 탄환이 그를 맞췄다는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만 좀 했으면 좋겠는데.” 그는 이를 악물고 낮게 속삭였다. “정말 이렇게 하고 싶어? 우리 둘 다 네가 결국-'
나는 다시 그를 쐈다. 이번에는 그의 골반 바로 위에 총알이 꽂혔다. 그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미동 없이 서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는 내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나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가 나를 다시 밟기 전에 나는 몸을 일으켜 내 뒤에 가만히 서 있던 양말인형에게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양말인형은 경계 태세를 갖추고 으르렁거렸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가 널 도와줄 것 같나?” 워린은 내 당황스러움을 눈치채고 소리쳤다. “자신을 만든 자를 공격하지는 않을 거야.”
그는 내게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자 나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워린 역시 속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흙바닥에 그의 부츠가 쿵쿵 부딪히며 나를 쫓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짙은 어둠 속에서 내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워린을 따돌리고 직원 출입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다리우스와 매들린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할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나는 워린이 어떻게든 나를 놓치기를 빌며 선술집의 모퉁이를 돌아 건물 뒤로 달렸다. 나는 모래로 찬 텅 빈 길거리를 달렸다. 트윈 베일 포인트의 입구가 눈에 들어오자 나는 숨을 내쉬었다. 나는 입구로 달려들어가 공포 구역으로 들어섰다. 푹신한 신발을 신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움직일수록 나를 찾기가 힘들 터였다.
나는 할리우드 구역으로 통하는 입구가 나타날 때까지 전속력으로 달렸다. 내 뒤를 쫓던 발걸음 소리는 점점 멀어지다가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할리우드 구역 입구에 사람들이 여럿 서 있는 게 보이자 심장이 멎을 뻔했다. 가까이 가자 그들이 누구인지가 보였다. 다리우스와 매들린 이외에도 미첼, 올리버, 그리고 캐롤라인이 보였다. 나는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따라와. 얼른.” 나는 헉헉거렸다.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었다. 다리우스는 토끼 머리 소녀의 손을 붙잡더니 그녀를 끌고 달리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레스토랑으로 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피아니스트는 여느 때처럼 주변 상황에는 무신경한 채로 연주에만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는 레스토랑의 카운터 뒤에 몸을 숨겼다. 잠깐 동안 나는 말없이 숨을 돌렸다.
동료들이 질문하는 소리가 내 심장이 쿵쾅대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매들린과 다리우스가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그들이 다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건 확실했다.
뭐라도 아이디어를 떠올리려고 나는 미친듯이 머리를 굴렸다. 계속 워린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나는 이 모든 일이 내가 아직 깨지 못했을 뿐인 기괴한 악몽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정말로 이제 나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비연기자로 변한 모두를 관장하는 사람이 워린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한 가지 있을 것 같았다. 가능한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마법으로 상황이 해결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워린을 죽여야 했다.
지난번에 시도했을 때는 먹히지 않았던 걸 안다. 그렇지만 3이라는 숫자가 떠올랐다. 나는 그전까지는 생각해본 적 없던 어떤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다. 삼세번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를 죽이려는 시도를 세 번 성공하면 진짜로 워린을 죽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를 철 탄환으로 세 번 쏜 콜트의 시도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 시도는 며칠 전에 내가 했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를 공격할 수 있는 철제 무기가 있다면 아마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게는 철 탄환도, 브리젯의 칼도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갑자기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아이디어가 내 머릿속을 스쳤다. 콜트가 워린을 쏠 때 사용했던 철 탄환들이 아직 그의 몸에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상처가 낫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동료들을 쳐다봤다. 내 굳은 표정을 보고 그들은 전부 입을 다물었다. “우리 워린을 붙잡아야 돼.”
15분 정도 후에 나는 폐병원처럼 생긴 유령의 집의 입구 앞에 서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나는 입을 열어 그의 이름을 불렀다. 처음에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불렀다. “워린? 워린, 어디 있어? 그냥 얘기 좀 하고 싶어서 그래. 이번에는 진짜로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약속할게!”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내 어깨에 차가운 손이 얹어졌다. 내 옷을 뚫고도 냉기가 느껴졌다. 나는 헉 숨을 들이키고 뒤로 몸을 돌렸다. 당연하게도 그가 서 있었다.
“너… 너 되게 몰래 잘 다가온다. 인정할게. 아니면 그냥 내가 잘 놀라는 건가?” 나는 숨가쁘게 횡설수설했다.
그는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꿰뚫어 보는 듯한 창백한 눈동자로 나를 바라봤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마음 속으로 욕설을 했다. 이 방법이 다시 한 번 먹히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 줘.” 나는 말했다. “나한테 화났어?”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저었지만 그의 표정은 딱딱하고 무감정했다. 나는 그가 따라올지 보기 위해 천천히 유령의 집의 입구 쪽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나를 따라왔다.
나는 유령의 집 안으로 걸어들어가 그가 따라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멈춰섰다. 방의 절반은 달빛이 닿지 않아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가 안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나는 그의 팔을 붙잡고 가까이 당겨 바닥으로 밀어붙이며 비명을 질렀다. “지금이야!!!!”
올리버, 캐롤라인, 미첼, 그리고 다리우스는 숨어 있던 어둠 속에서 튀어나왔다. 캐롤라인과 다리우스는 워린의 다리를 잡고 눌렀고 미첼과 올리버는 그의 팔을 붙들었다.
“잡았어!!” 미첼이 소리쳤다.
나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 손전등 기능을 켠 후 몸부림을 치는 워린에게 빛을 비췄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의 셔츠를 찢듯이 풀어헤쳤다. 주름진 낡은 천을 옆으로 밀어내자 세 개의 총상이 눈에 들어왔다. 뱃속을 가득 채운 메스꺼운 느낌을 무시하며 나는 검지손가락과 중지손가락을 가장 아래에 있는 총상에 강하게 박아넣었다. 해어지고 썩은 살점에 손이 닿자 나는 거의 토할 뻔했다. 내 손가락이 살 안을 뒤지며 철 탄환을 찾자 워린은 고통에 차 울부짖었다. 나는 탄환이 별로 깊이 박힌 게 아니기를 바랬다.
드디어, 결국, 손가락에 뭔가 단단한 것이 닿았다. 나는 그것을 손톱으로 집어 꺼내려고 시도했다. 회색 상처에서 탄환을 꺼내는 데는 1분 가량이 걸렸다. 첫 번째 탄환을 꺼낸 후 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다른 탄환들을 꺼냈다. 워린은 몸부림을 치며 움찔거렸고 동료들은 그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아두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시도는 해 봐야 했다. 나는 목에서 로켓을 풀어 맨 위쪽 총상에 가져다 대고 꾹 눌렀다. 로켓은 살을 파고들었지만 그렇게 깊게 들어가지는 못했다.
나는 워린을 내려다봤다. 그는 텅 빈 창백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봤다. 처음으로 그의 눈길에는 증오도, 조소도, 비웃음도 담겨 있지 않았다. 아주 잠깐 동안 나는 머뭇거렸다.
“뭘 기다리는 거야? 얼른 해!!” 캐롤라인이 내 뒤에서 소리쳤다.
나는 손을 들어올리고 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 나는 온 힘을 다해 로켓을 내리쳤다. 붉은 버베나 꽃으로 가득 찬 철과 은이 그의 살에 깊게 박히자 워린은 등을 휘고 고통에 차 울부짖었다. 나는 손에 철 탄환들을 쥐고 워린의 입을 강제로 열어 탄환들을 쑤셔넣었다. 그는 이제 거의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환을 뱉어내려고 애썼다. 나는 손으로 그의 입술을 막았다.
고통에 찬 비명이 그의 막힌 입 뒤에서 터져나왔고 나는 눈을 꾹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를 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그의 머리가 내 손에서 축 늘어지더니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드디어 탄환을 삼킨 모양이었다.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천천히, 천천히, 덜덜 떨리는 젖은 손을 그의 입에서 떼어냈다.
동료들은 확신이 없는 표정으로 그에게서 떨어졌다. 해냈다고 비명을 지르며 캐롤라인이 나를 뒤에서 껴안았을 때에서야 나는 뜨겁고 굵은 눈물이 내 볼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매들린은 숨어 있던 곳에서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며 뛰어나왔지만 왠지 그녀가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네이선이 트윈 베일 포인트에 쓰러져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횡설수설했다. 그 외에 나머지 일은 너무 흐릿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캐롤라인은 나를 집까지 차로 데려다줬다. 그녀는 엄마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내가 씻는 것을 확인하고 나를 거의 재우다시피 했다. 그녀는 나를 위해 소파에서 하룻밤을 자고 갈까 물었고, 나는 고맙지만 괜찮다고 대답했다. 나는 피곤에 찌들어 곧 기절했고 아무 꿈도 꾸지 않은 채 잤다.
오늘 아침 일어나니 핸드폰에는 부재중이 여러 통 와 있었다. 다섯 통은 데일에게서, 두 통은 미첼에게서, 한 통은 다리우스, 그리고 세 통은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다리우스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는 네이선을 병원에 데려갔다고 말했다. 병원에 들어온지 여섯 시간 정도 후에 깨어났다고 했다. 다리우스는 내게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매들린은 어디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공원에서 밤을 지냈다는 대답을 들었다.
다음으로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데일이었다. 그는 즉시 전화를 받았다. 그가 몇 번 사과하고 내가 괜찮다고 몇 번 대답한 이후에야 그는 지금 공원으로 돌아오는 중이라고 말했다. 미첼이 전화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전부 말해 줬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계약은 아직 유효한 거냐고 물었다. 그는 굉장히 진지한 목소리로 유효하기는 하지만 워린이 없으니 이제 제대로 된 집행자가 없는 셈이며, 멀베리랑 모스는 절대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거라 대답했다.
나는 바로 그에게 매들린 이야기를 했다. 지하에 있는 오래된 자들과 협상을 해서 매들린이 워린의 빈자리를 채우는 건 어떠냐고 말이다. 아직도 계약이 깨진 게 아니라면 공원의 지킴이로 그녀보다 적절한 사람이 없을 듯했다. 데일은 마음에 드는 생각이라며 한번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다시 일을 해도 되냐고 물었고, 데일은 거절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내 가방은 침대 옆에 있었다. 나는 내용물을 전부 바닥에 쏟았다. 입었던 옷과 이제는 쳐다보기조차 힘든 권총, 그리고 내가 들고 다니던 철못이 안에 있었다. 못을 들어올리자 살짝 따끔함이 느껴졌다. 못을 들고 있자니 왠지 뭔가가 불편했다. 나는 못을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후 씻고 공원으로 향했다. 양말인형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공원에서 처음 마주친 건 매들린이었다. 그녀는 내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는 듯 직원 출입구 옆에 앉아 있었다.
“언니 안녕! 괜찮아? 좀 나아졌어? 어제는 엄청 안 좋아 보였는데.” 그녀는 반은 걱정, 반은 나를 보게 되어 기쁜 목소리로 수다를 떨었다.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은 것 같아. 너는 어떤데?”
“너무 좋아!! 아무도 나를 잡으러 안 온 데다가 어제 진짜 푹 쉬었거든. 피아노 아저씨 방에서 쉬었어. 피아노 위에 누워 있었어.” 그녀는 꺄르르 웃었다.
“겁 안 났어? 나는 어제 엄청 충격받았는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용감하니까.”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나와 함께 공원으로 들어갔다. 할리우드 구역을 지나는 동안 우리는 나이 든 디바와 마주쳤다. 나는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그레이스!!” 나는 소리쳤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아주 옅게 미소를 짓는 것을 본 것 같다.
아직 계약이 유효하다는 것이 실망스럽기는 하다. 다른 비연기자들도… 글쎄, 내가 정확히 어떻게 되기를 바랬던 건지는 모르겠다. 이 생각이 계속 내 마음 한켠을 갉아먹기는 했지만 우울한 감정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공원은 오늘따라 훨씬 밝고 가벼워 보였다. 해가 내리쬐고 있었고… 왠지 그냥 기분이 좋았다.
나는 스크래치의 우리로 향했다. 그는 게으르게 누워 있었지만 내가 다가가는 걸 보자마자 통통 튀어왔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매들린이 폐병원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아직 저 안에 있을까?” 그녀는 물었다.
“그럼. 내가 알기로 죽은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는걸. 데일이 알아서 하겠지. 솔직히 말하면 별로 보고 싶지 않아.” 나는 목구멍에 차오른 무언가를 삼키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매들린을 막을 수 없었다. 괴기스러운 것에 대한 아이들 특유의 호기심 때문이지 싶다. 그녀는 폐병원을 향해 폴짝폴짝 뛰어가 안을 들여다보더니 전속력으로 내게 달려왔다.
“안에 없어!!” 그녀가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뭐?” 나는 몸을 일으켰다. “농담하는 거지?”
“아냐, 진짜로 안에 없어!!” 그녀는 주장했다. “지하세계로 가는 입구 어디 있어? 가서 확인해 봐야 돼!!”
나는 그녀를 데리고 화장실로 향했다. 스크래치는 우리 둘을 따라왔다. 나와 동료들이 화장실을 조사했던 날 그대로 문은 잠겨 있었다. 이제는 엄청나게 오래 전에 벌어졌던 일처럼 느껴진다.
“다행이다.” 매들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진짜로 도망친 줄 알았어. 야생의 것들은 죽으면 그냥 사라지나 봐. 먼지가 되거나 뭐 그렇게 되나 보네.”
화장실 창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나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스와 멀베리를 보러 사탕나라 구역으로 들어갔다. 언제나처럼 작은 발레리나는 그녀의 무대에서 춤을 추고 있었고, 마임맨은 무대 위의 조명에 매달려 있었다.
“저 둘은 진짜 하나도 신경을 안 쓴다, 그치?” 매들린이 말했다. 나는 깔깔 웃었다. 나는 오징어 부리가 달린 소녀가 발레복을 입고 돌고, 몸을 틀고, 점프하는 것을 지켜봤다. 지금 보니 굉장히 예뻐 보이는 모습이었다.
입구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라일라를 마주쳤다. 간호사는 유령의 집 앞에 서서 허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기는 했지만 나는 다가가서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 그냥… 열쇠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어. 어쩌다가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
“언니 말 못 듣는 것 같은데.” 매들린이 말했다.
“너무 확신하지는 마.” 나는 대답했다.
얼마 후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다른 부재중 전화들에 답했다. 모르는 번호는 알고 보니 네이선이 병원에서 쓰게 해 달라고 한 전화였다. 그는 나에게 병원에 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나를 먼저 보고 싶어하다니 기분이 좋지만 데일과 먼저 얘기를 나누고 싶어할 줄 알았다고 대답했다.
“음… 아니. 병원에서 깨자마자 지난, 몇 년이야, 10년? 그동안 나한테 말 한번 안 건 사람은 별로 안 보고 싶네.”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완벽하게 이해가 가는 이유이기는 하지만 결국 내 일은 아니다.
나는 지금 이 글을 우리 집 거실에서 고든램지의 키친 나잇메어 재방송을 틀어놓고 점심을 먹으며 쓰고 있다. 점심을 다 먹으면 바로 네이선을 보러 가려고 한다. 꽃도 좀 들고 갈 것이다. 월계수 화분을 들고 가기로 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흉측한 것을 내 거실에 두는 것이 이제는 별로 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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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는 좀 안어울려서 다른데 올린 외전2 (평행세계 / 남편 워린)
<Husband War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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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달글에도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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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 낮에 1화 끌올했는데 정주행 오늘 완^^... 진짜 재밌으니까 같이 보자..
나 이거 옛날에 16화? 18화?까지만 봤었는데 끝났었구나!! 대박 처음부터 다시 읽어봐야겠다 땡큐 땡큐❤️
이거 진짜 재밌어
오 재밌다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