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지역 지도부, 즉 주 공산당(오브콤)의 상층부가 채택한 전략은 간단했습니다. 실패는 숨기고 성공은 과장한다였죠. 그들의 특권과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중앙위 노선"에 동의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사적으로는 그들끼리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죠. 전략이 잘 먹히지 않을 때면 비난을 집중시킬 희생양들을 이용했습니다. 주 공산당에서 상부로 보내는 정보를 지도부가 모두 통제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 관리자들보다 지역 지도부가 모스크바의 서슬퍼런 눈초리를 피하는 것이 더욱 쉬웠죠.
지역 지도부는 주 공산당에서 독고다이로 노는 사람들이 그들 그룹에 충성을 표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없애려고 노력했습니다. 1930년대 초반 곡물 수급 캠페인의 경험은 지역 지도부들로 하여금 잠재적인 불만분자들을 빡세게 쪼이지 않으면 그들이 불리한 정보를 풀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죠. 이는 자신들의 위치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대강 파악하고 있는 현 상황을 더 확실히 파악하기 위하여 주 단위의 감찰기관들과는 독립된 기관들을 설립하였습니다. 이는 지역 관료들에게 새로운 위기가 되었죠. 당근과 채찍 전술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발달했습니다. 당근은 우선 자신들 파벌에 들어왔을 때의 특권을 더욱 맛깔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큰 아파트, 다차(별장), 소비재 및 식료품 접근 권한 확대 허니버터보드카라던가, 봉급 인상 등을 유인책으로 쓸 수 있었죠. 오블리스폴콤 산하의 경제 행정은 원칙적으로 이러한 용도의 자의적 예산 집행을 금하고 있었으나

지도자들은 자기들 나름 쟁여놓은 비자금이 있었기에 괜찮았습니다.
채찍도 필요했습니다. 이는 자신들 파벌과 갈등을 빚은 사람들에 대한 대처법이었죠. 대개는 자리에서 짤라버리면 끝이었죠. 의결권 등등이 사라지니까. 1930년대 중앙에서 당원 솎아내기 캠페인을 벌일 때가 이런 일을 하기 아주 적격이었습니다. 신뢰하지 못할 놈들은 적당한 빌미를 잡아서 족치면 됐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사람 없었죠. 과거 노동자반대파였거나 좌익반대파였거나 우익반대파였거나 하면 특히 편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제거해서 공석이 생기면 신중하게 선택된 자신들 파벌의 신뢰할만한 친구들을 불러올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 공산당 회기에서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지도부의 의사에 따라 임명되곤 했죠.
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를 비롯한 타 지역에서 관료들이 올 때도 있었습니다. 처음에 이들은 그럭저럭 환대를 받은 채로 왔습니다. 그리고 지역 지도부에서는 이들을 주의깊게 관찰했죠. 만약 지역의 일을 비판하며 다 통할 수 있는 처지를 귀찮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역시 어떻게든 그를 깎아내려 좌천시키거나 아예 주 경계 밖으로 쫓아내곤 했습니다. 그들의 파벌 속으로 들어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이 온 자들의 평판은 체계적으로 보호되어 공적인 장소에서 추켜세워질 수 있었죠. 지역 언론들은 이런 파벌들을 찬양하는 기사 일색이었습니다.
카바코프에 따르면 1935년까지 주의 모든 주요 직책들은 자신들 무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의 NKVD 대표까지 말이지요. 우랄 주 NKVD 대표 레셰토프는 카바코프의 가까운 친구로서 무리에 잘 녹아들 수 있었습니다. 지역 지도부에 대한 심각한 비판은 어떠한 것도 허용되지 않았고, 주 공산당의 핵심 요직을 독차지하던 파벌들의 엄청난 반격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이제 "언터처블"이 디었죠. 이런 강고한 폐쇄집단의 존재로 인하여 카바코프는 중앙 당의 수많은 캠페인과 계획에 대한 타박에 대해 그럭저럭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모스크바가 읽을 수 있는 공식 회의록에는 "당의 총노선을 목숨걸고 사수하자" 등과 같은 딸랑거리는 말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사적으로 그들의 행동은 사뭇 달랐습니다. 당 회의가 끝난 후 지도부는 공장 및 기업체의 관리자들에게 실패를 추궁하고 해임을 빌미로 위협했습니다. 이에 맞서 기업체 관리자들은 지역 지도부가 중앙에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 생산비용과 생산량을 속이곤 했는데 지역 지도부는 이들과 적극 협조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파벌의 일원이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는 대형 프로젝트들은 더더욱 그러했죠. 중앙에서 이런 일들의 자세한 내막을 알고자 하면 그들은 즉각 희생양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들은 주로 외부에서 온 뜨내기거나 하나쯤 없어도 될 낮은 직책의 사람이었죠.
스타하노프 운동도 같은 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공적으로 그들은 스타하노프 운동을 지지하고 추진했지만 사적으로는 그것에 저항했습니다. 일단 스타하노프 운동으로 야기되는 사고들, 실패들, 병목현상들을 감당하기가 싫었습니다. 현장 당국자들도 스타하노프적 방법론은 생산현장에 적용할 수도 없을뿐더러 비효율적이라고 까고는 했습니다. 노동자들 중 많은 수는 돌격 노동자가 아니었는데 "아놔 임금도 안 오르는데 니들은 왜 존나 나대죠?"라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습니다. 주 공산당의 지도부는 스타하노프 운동에 대한 열정이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1935-36년 겨울 동안 스타하노프 운동을 촉진시키기 위한 주 공산당의 어떠한 구체적 조직적 조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이 정치국의 매의 눈에 걸려들었죠. 그리고 주 공산당 통제 위원회는 이 정보를 캐치하여 "야 지금 모스크바 분위기 안 좋다 ㄷㄷ;; 니들 계속 뻗대다가는 음경되니까 적당히 하고 시늉이라도 해;;"라고 암시를 줍니다! 주 공산당은 스타하노프주의에 대한 사보타주와 저항을 찾아내겠다고 설치면서 진정한 자아비판 1936년 봄에 236건의 재판을 만들어냈는데, 이건 쪼개진 주들 중에서 스베르들롭스크 주 단독으로 나온 수치였습니다. 그리고 역시 '최소의 행동' 기조는 이어가고 있었죠.
돌격노동자들은 입을 다물고 있는 대신에 몇가지 재정적 보상과 소비재들을 지원 받았습니다. 입을 안 다무는 겁 없는 친구들은 어떻게 하냐고요? 스탈린 동지께서 일찍이 교시하신 바, "적들이 무장을 해제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안 한다면? 우리가 해버리면 된다." 겁을 줘서 조용히 만들면 되는 일이죠.

비슷한 일은 1930년대 중반의 당 문서 확인 및 교환 캠페인에도 나타났습니다. 이 캠페인들은 1933년 숙청의 연속선상에 있던 작업으로 당 관료들 목록을 확인하고 새로 등록하고 관료 하기에는 좀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을 걸러내는 작업이었죠. John Getty는 스몰렌스크 문서고를 확인한 결과 자파드나야 주에서 높은 정도의 저항이 발생한 것을 확인합니다. 그들은 자기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이나 자아비판을 확대하는 것을 극히 꺼려했었습니다. 스베르들롭스크 주에서도 같은 일이 발생합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것 자체가 그들의 회피 전략에 강력한 타격이 될 수 있었죠.
수행권은 아직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지역 지도자들은 시 공산당(고르콤)이나 군 공산당(라이콤) 단위에서 역시 적당히 희생양들을 찾아내서 족치는 것으로 대응했습니다. 주로 평소 그룹의 눈에 찍혀 있던 자들이나, "쿨라크" 혹은 "구 백군 출신"과 같이 현재 체제에 전혀 위험이 안 되는 자들이 희생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는 이를 중앙의 지시에 철저히 이행하는 것이라고 자축합니다. 스베르들롭스크 주 공산당 제2서기인 프셰니친은 "스베르들롭스크의 조직은 이제 끊임없는 다양한 반레닌주의자들과 반혁명 그룹과의 투쟁 속에서 단련된, 스탈린주의 중앙위의 견고하고, 전일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기둥입니다."라고 말했죠.
중앙 지도부는 이런 지나친 자화자찬에 짜증나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지역의 상층 관료들이 어떤 짓을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수단이 없었습니다. 지역 당 조직 밖에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그들의 역량도 부족했고 속도도 느렸습니다. 중앙의 명령에 체계적으로 "관료적 저항"을 자행하고 지역의 업무 상태를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속여왔다고 믿을 확실한 근거는 사실 없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 주의 그룹들은 지역 언론, 지역 법정, 지역의 기업들, 지역의 당 조직들, 그리고 지역의 NKVD로 대표되는 "친구들"의 연결망 속에서 잘 보호되고 있다고 믿을 많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지역 당에서 일정 위치에 올라오면 이 무리에 끼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어습니다. 카바코프가 말했듯이

토야마 선생께서 미국에서는 30분의 1도 안 되는 시민만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였듯이 당시 당내 결정권도 극히 제한적인 파벌의 일원들에게만 돌아갔던 셈이죠.
"당 지도부의 많은 수는 그들이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불법적인 선물들을 써서) 파벌에 의해 감싸지게 됩니다. 1년이나 2년 안쪽으로 그들이 자신들이 엮이게 된 범죄적 현상을 이해했을 때라면 이미 그들은 우리에게 신세를 지고 있는 상태가 되었지요."
새로이 파벌에 들어온 자들은 자신들이 즐기게 된 높은 수준의 생활을 포기하는 것도 아까웠지만, 자신들도 그 일에 연루되어 있음이 밝혀지는 것은 더욱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당분간은, 하급관료들을 제물로 헌납하는 것이 효과적인 면피 수단이 되리라는 것이 확실해졌습니다. 당분간은 말이죠.
첫댓글 저 토야마 고이치라는 사람이 일본의 파시스트였던가요?
https://namu.wiki/w/%ED%86%A0%EC%95%BC%EB%A7%88%20%EC%BD%94%EC%9D%B4%EC%B9%98
타락한 과두제에 대한 분노는 토야마 선생님과 스탈린 동지같은 위대한 분들이 공유하는 바군요 ㅋㅋ~
지적 보편성 아니겠습니까
틱톡 틱톡 틱톡........
펑
역시 기득권이라는건 쉽게 내려놓기 힘든거군요 ㄷㄷ 자기 목숨이 이제 정말로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중앙권력을 속이면서까지 누릴려고시도하다니 ㄷㄷ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최대 이익에 기반한 행동을 한 것인데 전에도 말했지만 정치라는 건 플레이어는 여럿이나 결국 승자는 스탈린인 게임입니다
슬슬 이 시리즈가 거대한 우랄산맥인지 거대한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인지 알 수가 없게 되어가는군요...
Great Pur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