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튀르키예가 6·25 때
대규모 파병한 진짜 이유
소련 西進에 위기감 극대화
NATO ‘안보 우산’ 편입되려
대규모 파병, 血戰도 불사
자유·평화 누릴 자격 熟考할 때
----2010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압둘라 귤 전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아흐레 앞둔
2010년 6월 16일 유엔군 튀르키예 참전용사들과 함께
부산 대연동 유엔기념공원 튀르키예군 전몰장병 묘비를
찾아 참배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는 6.25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
장병 62명의 유해가 안장돼 있다----
< 조선일보 DB >
지난 6일 대지진으로 튀르키예에서만
4만명 넘게 숨졌다.
현장에 급파된 대한민국 긴급구조대가 건물
잔해에서 꺼져가던 생명을 구하고, 민간과
기업의 구호물품 행렬이 잇따르는 인류애
현장을 보면서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전의 우정,
6·25 전쟁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함께 지킨
혈맹(血盟)의 가치를 떠올리게 된다.
튀르키예와 한국의 거리는 8000㎞에 육박한다.
1957년 수교했으니 1950년 6·25 전쟁 당시엔
‘형제의 나라’를 이야기할 사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튀르키예는 왜 멀고도 낯선 한국 땅에
연인원 2만명 이상을 파병하고, 1000여 명의
전사자를 내며 치열한 전투를 불사했을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참전은 ‘위기에 처한 국가에 대한 도움’이나
‘유엔 회원국으로서 의무 수행’ 같은
이상적·박애주의적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소련 위협에 맞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라는 동맹의
‘안보 우산’에 편입되기 위해 유리한 조건을
선점하려는,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계산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튀르키예 전사자 묘역.
6.25 전쟁에서 전사한 튀르키예 장병 462명이
잠들어있다----
채성진 기자 >
2차 대전 이후 동유럽에선 소련의 서진(西進
정책으로 각국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었다.
미국이 1947년 트루먼 독트린을 통해
경제·군사적 원조를 약속했지만, 자국 영토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소련과
국경을 맞댄 튀르키예는 불안하기만 했다.
NATO 가입을 추진했지만 유럽 각국과
지역적 거리, 이슬람 국가라는 상황이 발목을
잡았다.
마침 발발한 6·25 전쟁은 튀르키예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한국 파병이 NATO 가입에 교량 역할을 할 것”
이라는 당시 아드난 멘데레스 총리의 발언처럼
‘신뢰할 수 있는 안보 파트너’라는 인식을
미국에 심어줄 절호의 무대였다.
튀르키예는 개전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50년 7월 18일 비밀리에 내각회의를 소집해
대규모 파병을 결정했다.
석 달 뒤인 10월 17일 튀르키예군이 부산항에
도착했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의 튀르키예군 묘비들. 중공군을 상대로
격전을 벌인 군우리 전투에서 전사한 장병들이 안장돼 있다.
전사한 날짜인 1950년 11월 29일이 청동판에
돋을새김돼 있다----
채성진 기자 >
공교롭게도 이 무렵 중공군이 전쟁에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산발적인 전투를 이어가던 중공군은 평안남도
청천강 인근에서 벌어진 군우리 전투에서
대대적 공세로 돌아섰다.
파병 후 처음 치른 이 전투에서 튀르키예군은
장병 200여 명이 전사하고 중화기와
차량 70%를 잃었지만, 적 공세를 지연시켜
다른 유엔군 피해를 막았다.
당시 장렬히 전사한 무스타파 첼릭,
무하렘 코시쿤 등 스물두세 살 젊은 병사들의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있다.
10여 개 묘석의 청동판에 새겨진 전사(戰死)
날짜가 1950년 11월 29일로 같다.
전열을 가다듬은 튀르키예군은 이듬해 1월
용인 김량장, 151고지 전투 등에서 총검
백병전을 불사하는 강인한 전투력으로
중공군을 잇달아 격퇴했다.
결국 동맹을 향한 ‘진정성’을 인정받은
튀르키예는 1952년 2월 18일 NATO에
가입했다.
창설국 12곳을 제외하고 NATO가 그리스와
함께 처음 받아들인 나라였다.
신현실주의(Neo-realism) 이론을 주창한
국제정치학자 케네스 월츠는
“외교정책에서 가장 우선시할 것은 생존과
국가 안보”
라며 이를 위한 대표적 수단으로 ‘동맹’을
꼽았다.
튀르키예가 위기에 처한 신생 대한민국을
구하겠다는 명분으로 참전했지만, 배경에는
국익 극대화를 위한 냉정한 현실론에
기반한 전략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그렇지만 이역만리 낯선 땅에서 피 흘리며
싸운 튀르키예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국익 극대화를 앞세운 각국의 편 가르기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하다.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사이비 동맹’으로 험난한 이 시대를 헤쳐갈
수 있을까.
‘자유와 평화를 누릴 자격’에 대해 숙고할 때다.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 전시된 튀르키예군의 6.25 참전 자료.
당시 사용했던 전투복과 촬영한 사진 등이 보인다----
< 채성진 기자 >
채성진 기자
[출처 : 조선일보]
[100자평]
밥좀도
글로벌 약육강식 경쟁 체제에서 국가와 국민의
생존과 안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한국은 지구촌 최악 폭력 집단인 북한, 중국,
러시아와 맞닿고 있다.
자유 우방과 지혜로운 정치와 외교로 동맹을 잘 맺어
위기나 시련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공산 국가는 한국의 적국임을 한시도 잊지 말 일이다.
유박사
그렇군요.
그래도 수 많은 장병이 흘린 피는 고귀한 희생,
우리 국민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 때문에 적화통일을 못 이룬
북괴 편을 드는 종부기들은 분명히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겠지요?
채찬수
대한민국 종북이들은 .. 말(言)만 잘하면 평화가
온다고 선동을 한다...
정말 그럴까?
늑대처럼 발톱을 감추고 노려보는데.. 수구좌익
종북이들은 국민을 속이는데만 혈안이다...
잉여인간 토착 악플러 종자 그놈 무리들처럼
선동에만 혈안인거야...
유니크박
파병에 국익을 생각지 않는 나라가 어디있을까?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튀르키예는 형제의
나라다.
6.25때 참전하여 목숨잃은 영혼을 욕되게 하는
행위는 해서는 안된다.
손연주
위 칼럼은 당연한, 상식적인 내용인데, 문제는
언론이 위와 같은 칼럼을 쓰면서도 정치편향적
관념이나 정치 개입 재미에 등에 빠져 문가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더욱이 언론은 6.25때 우리 땅을 짓밟고 여태 분단이
되도록 만든 공산국가 중국을 두고 중국몽을
꿈꾸고 중국 가서 혼자 밥먹고 수행 기자는
지근지근 밟히는 수모까지 받은 그 인간을
구속하라는 맹렬한 비판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원론적 비판만 할 뿐 문가를 어쩌지 못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현직 대통령의 딜레마를 이해하기라도
하듯 감싸기라도 하듯 문가 구속을 제대로 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언론은 지난 대통령 탄핵 때는 그 대통령과
그 측근들을 사실상 연일 구속하라고 융탄 폭격했지.
자기네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감정에서 그랬고
박정희를 긍정하는 세력에 대한 거부감에서 그랬지.
그렇게 언론이 정파적, 감정적으로 정치에 개입한
결과 문가 정권이 들어선 것이고...
언론이 자기 이중성을 깨달을 때다.
Freewolf
국가간의 관계는 어느정도 이익의 기반도 있으나
전쟁터에서 피를 흘려 우리를 위해 공산당과 싸운
은혜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청진Kim
자국 군대를 참전시키는 결정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현실적인 게산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julymornin****
정치와 외교에 어찌 순수한 동기만 있겠어요 ??
밑바탕엔 당연히 현실이 존재하죠...
그렇다고는 해도 도움을 준 것도 받은 것도 현실...
최선을 다해서 받은 건 갚아야죠...
그 또한 외면하면 안 되는 현실입니다...
알라딘4U
그 당시 우리로써는 그 져 감사하고 고마웠죠.
세상에 공짜 절대 없습니다.
우리가 자원봉사 구조대를 튀르키에(터키)에 보낸
진짜 이유도 그거 아닌가요?
고지말
튀르키에는 먼 선조시대 부터 우리민족과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중국서역 지방부터 광법위하게 분포되어 있고
고구려 광개토대왕 시절 그쪽을 정벌한적도 있고,
신라 원성왕 무덤에도 서역인이 지키는 묘비가 있다.
또 돌궐족이라 칭하는 민족들도 뿌리는
현 튀르키에 민족과 유사하다.
6.25전쟁 아니더라도 우리와 비슷한 뿌리를
갖고 있다.
東禹
종북들 모두 모아서 북에 보내 그곳 경제개발에
기여하도록 하자.
돈담
개인이나 국가 모두 살기위해 몸부림 쳐야 하는게
자연의 섭리.
자신 만을 위해 국가를 해치는 행위는 자연을
배반하는 짓이다.
사이비 정치인과 그 집단들 자연으로부터 도태당할
것이다 .
돈조반니
터키는 형제의 나라 가 아니지만 세속주의 에
의한 나토 가입 필요해서 한국에 파병한것이었고
현재 에르디안은 세속주의 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로의
거꾸로 가고 있고
반미와 친중, 친러 줄타기 를 하고 있어 독재자
에르도안 이 터키이 미래에 걸릴돌이다.
터키의 쿠테타 를 진압하면서 터키의 지식이 들이
전부 제거 되어 터키에는 지식인과 전문가가 없는게
현실 이고 부정부패가 심하고 사회적으로도
터키 국민들은 이번 지진에 무관심 한것도 이기주의가
팽배한 터키의 현실이다
수려한산강
물론 튀르키예가 정치적 목적으로 625전쟁때
대규모 파병을 한 것은 어느정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시 튀르키예가 전쟁 파병으로 주춤할 때
튀르키예 중고등학생들이 시위한 거 아시나요?
왜 형제의 나라에 빨리 파병하여 도우러 가지
않는가라고,
단순히 625전쟁이 아닌 튀르키예와 한국은 오랜
역사적 연관이 많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아원 설립 및 재건사업을
위해 튀르키예는 오랜시간 대한민국에 계속 물자를
보내며 지원해 주었습니다.
단순히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정원지기
기자가 한번 튀어보려고 했나. 지진으로 어수선하고
고맙다고 우호적인 이야기들이 나오는 시점에
훗날 이야기해도 될, 당연히 이런저런 해석이 가능한
파병을 기사랍시고 게재를 하나.
기자가 터키의 선조인 돌궐과 고구려와의 서기
2000년 전부터 이어진 연합 내지 수나라 등 중국에
대항한 동맹이 서술된 터키의 역사서를 읽어봤나?
삼국사기와 연관하여 깊이 연구해보았나?
우리는 그네들이 형제라하니 이유도 모르고
흐뭇하지만 터키인들은 역사 속에서 형제애를
느끼고 있다.
얄팍한 지식으로 역사를 보는 글과 배경을 알고 쓰는
글은 깊이가 다르다.
최추장님
이 와중에 뜬금없는 소리하고 있네...참 나!!
우리나라도 항상 풍전등화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항상 피아를 식별하고 주적이 북한임을 다시한번
생각해야 한다.
뭉가가 벌인 멍청한 외교짓 5년을 청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