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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마음이 만드는 길
출처 경향신문 : https://www.khan.co.kr/article/202606022018005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던 시절의 일이다. 강의동과 강의동 사이는 정식 보도로 단정하게 이어져 있었지만, 잔디밭이 워낙 넓어 그 길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야 했다. 수업이 끝나면 다음 강의실까지 10분 안에 닿아야 했으니, 보도를 따라 걷기엔 늘 빠듯했다. 학생도 교수도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잔디밭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그편이 더 빨랐기 때문이다.
학기 초에는 잔디 사이로 희미한 발자국만 어른거렸다. 그러나 발자국은 또 다른 발자국을 불렀고, 한 학기가 저물 무렵 그 자리엔 풀이 사라지고 단단한 흙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놀라운 일은 다음 학기 개강날 일어났다. 동료들과 그 앞을 지나다 우리는 그만 박장대소하고 말았다. 잔디밭 속 흙길 위로 매끈한 보도블록이 새로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학교는 사람들이 실제로 걸어 다닌 자리를 비로소 ‘길’로 인정해준 셈이었다.
도시계획에서는 이런 길을 ‘욕망의 길’ 혹은 ‘희망선’이라 부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떤 표지판이 없어도,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곳에 결국 길이 난다는 뜻이다. 정해진 길보다 마음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중노년의 삶을 오래 들여다보다 보면 그 시절 잔디밭 보도블록이 떠오른다. 어떤 분은 평생 누군가가 깔아준 보도블록만 따라 걷는다. “내 나이엔 이쯤이 적당하다”며 정해진 길을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또 어떤 분은 자기 발걸음으로 없던 길을 낸다. 이 차이는 능력이나 형편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다.
가고 싶은 곳을 마음속에 또렷이 그리는 사람일수록 실제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쉰에 시작한 수영, 예순에 시작한 그림 공부, 일흔에 펴낸 첫 시집, 여든에 붙든 외국어, 손주와 편지를 주고받고 싶어 일흔에 컴퓨터 자판을 익힌 어르신. 모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분들이 아니다. 마음이 먼저 그곳에 가 있었기에 발걸음이 뒤를 따랐을 뿐이다.
오랜 세월 노년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은 나이가 든다고 굳어버리는 지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든의 마음에도 새 선을 그어 넣을 여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다만 우리는 그 여백을 ‘이미 늦었다’는 한마디로 스스로 접어두곤 한다. 무언가를 향해 마음이 설레는 바로 그 순간, 우리 안에서는 이미 새 길의 첫 발자국이 찍히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첫걸음은 늘 더디고 외롭다. 처음 잔디를 밟는 발자국이 그러하듯, 새 길의 출발은 희미하고 불안하다. 이 나이에 무얼 새로 시작하느냐는 주위의 시선도, 정말 될까 싶은 마음속 망설임도 그 위에 겹친다. 그러나 길이란 본래 또렷해서 걷는 것이 아니라, 걸어서 또렷해지는 것이다. 그 단순한 진실을 나는 그 잔디밭의 흙길에서 배웠다.
내가 그 잔디밭에서 더 깊이 감동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한 사람이 처음 디딘 작은 발자국이 다음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이 또 다음 사람을 불러, 마침내 모두가 함께 걷는 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발달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이 말한 중년기 발달과업인 생산성이 결국 이런 모습 아닐까. 내가 낸 길을 누군가 따라 걷고, 그 길이 보도블록이 되어 다음 세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새 길을 내는 일은 결코 나 혼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늦었다고 망설이는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다. 그 잔디밭의 흙길도 처음엔 누구의 눈에도 길이 아니었다. 풀을 처음 밟은 발자국은 희미했지만, 그 한 걸음이 다음 걸음을 부르고, 걸음이 쌓여 흙길이 되고, 흙길 위에 끝내 보도블록이 깔렸다. 길이 있어 걸은 것이 아니라, 걸었기에 길이 된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도 아직 밟지 않은 잔디밭이 남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지금, 마음이 설레는 곳으로 가만히 한 발 내디뎌보시기를. 언젠가 그 자리에도 새 보도블록이 깔릴 것이다. 오래전에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빛명상
서라! 전봇대
동해 바다를 끼고 달리다 보면 감포라는 해수욕장이 나온다.
어느 해 여름엔가 나는 식구들과 함께 그 감포해수욕장으로 피서를 다녀온 적이 있다. 마음만 있지 선뜻 떠나지 못하는 피서이지만 그때만 해도 호텔에 근무하면서 가끔은 그렇게 아이들과 바람을 쐬러 다니기도 했다.
피서를 마치고 돌아오는 해안도로가 무척이나 막혔다. 차들은 길게 꼬리를 문 채로 그냥 도로 바닥에 섰고, 길은 도무지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빠, 왜 이렇게 못 가는 거죠? 지루해서 죽겠네."
참다가 지쳤는지 뒷좌석의 아들놈이 몸을 비틀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해수욕으로 피곤한 터에 뜨거운 도로 위에서 차 안에만 갇혀있자니 심통이 나기도 했을 것이다.
"글쎄다. 왜 이렇게 막힐까? 이렇게 막히는 도로가 아닌데······."
그러나 30분이 다 돼가도록 차는 제 자리를 지키고만 있었다.
"여보, 무슨 사고가 난 게 아닐까요?"
아내가 창 밖을 기웃거리며 말했다.
"글쎄······."
순간 내 머리 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딱히 잡히지는 않지만 뭔가 꾸물꾸물하고 좋지 않은 예감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 차선만이 아니었다. 반대편 해안쪽 차선에서도 마주 오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기 앞쪽에서 도로를 통제했다는 얘긴데!?"
나는 차에서 내려 막힌 도로의 앞쪽을 까치발로 서서 쳐다보았다. 그러나 차들로 꽉 들어찬 도로는 100m쯤 전방에서 산허리를 안고 우측으로 꺾여 있었기 때문에 무슨 일인지 볼 수 없었다.
나는 가족들을 차에서 기다리게 하고 도로를 따라 앞쪽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도중에도 가슴은 콩당콩당 재게 뛰었다. 산허리를 돌아 조금 더 나아가자 이윽고 교통이 끊어진 지점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사단이 벌어지고 있었다. 길 우측 편에 서 있던 전신주가 도로를 가로질러 60도 정도 누운 채로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기울어 있었다.
도로 공사를 한다고 땅을 파헤치는 중이었는데, 기사가 부주의하게 조작하는 바람에 굴삭기의 손이 전신주 바로 아래께를 찍은 것이다. 굴삭기의 손을 빼냈다가는 충격으로 전신주가 그대로 넘어갈 판이었다. 그래서 굴삭기 손을 빼도 박도 못한 채로 응급 처치반의 도착만을 기다리고 있는 참이었다.
"119구조대 도착 멀었습니까?"
사고 수습을 위해 출동한 경찰이 옆에서 무전기에 대고 외치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긴장했다. 119구조대라니? 벌써 누가 부상이라도 당한 모양이었다. 나는 두리번거리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바다를 끼고 있는 반대편 길에서 사람들이 무리져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지 그 쪽으로 가 보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두 명의 아이들이 도로 아래쪽 바위에 서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기울어 있는 전신주의 낙하 예상 지점 바로 그곳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의 대피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서 있는 바위는 한 평 정도 넓이였는데, 일이 꼬이려고 그랬는지 주위에는 달리 대피할 만한 바위도 없었다.
게다가 해안 절벽 지대여서 바위 주변의 수심은 이미 아이들의 키를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에 물로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방법이 있다면 오직 하나, 도로 쪽의 급경사를 기어 올라오는 것뿐이다. 아이들이 놀기 위해 내려갔었을 그 길로.
그러나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전신주의 위험 때문에 경찰조차도 접근을 못 하고 있는 마당에 아이들을 그 비탈로 기어오르게 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었다.
경찰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구조 헬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꺄악ㅡ!"
주위에 있던 여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전신주가 유리 긁는 소리를 내며 조금 더 기울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다른 중장비라도 한 대 더 있으면 전신주를 받쳐 줄 수 있으련만, 현장에는 문제의 굴삭기 한 대만이 달랑 있었을 뿐이다.
"끼이익ㅡ"
다시 전신주가 음산한 소리를 내며 기울었다. 이젠 거의 40도 각도로 누웠다.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경이 팽팽히 조여왔다.
나는 우주의 마음에 의지해 보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이 판국에선 구조 헬기가 와도 늦은 상황이다. 이렇게 무력하게 지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빛VIIT을 청했다. 순간 하얀 불기둥이 나의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거기서 그대로 서 있으라!"
전신주를 향해 외쳤다.
빛VIIT을 거두면서 이 상태라면 20분은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이 나도 모르게 생겨났다. 전신주를 앞으로 20분간 그대로 멈춰 세워 주겠노라는 우주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맴도는 듯했다.
"여기 현장 책임자 되십니까?"
현장을 정리하는 경찰관 중 우두머리쯤으로 보이는 사람 곁에 다가가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경찰은 정신없어 죽겠는데 왜 그러냐는 듯 힐끔 쳐다보면서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저쪽에 있는 굴삭기 손을 빼도록 조치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뭐라구요? 굴삭기 손을 빼라구요? 그걸 빼면 일이 어떻게 된다는 것쯤 상황을 보면서도 몰라요? 근데 이 양반이 지금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누군 빼기 싫어 안 빼나? 바빠 죽겠는데······."
경찰은 별 얼빠진 놈 다 보겠다는 기세로 쏘아붙이더니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지 말고 빼도록 해 주세요. 빼도 괜찮습니다.“
"허ㅡ근데 이 양반이··· 지금 제 정신입니까? 빼면? 저 전신주는 어떡할 겁니까? 지금 바쁘니 저 쪽에 가만히 가 계세요!"
도저히 말로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당시 나는 대구 최고급 호텔의 총매니저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저는 미친 사람도 아니고 괜히 장난으로 이러는 것도 아닙니다. 설명을 드릴 수는 없지만 안전을 보장하지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굴삭기 손을 빼라고 하십시오. 괜찮습니다. 뒷일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겠습니다."
"이 호텔이라면 나도 아는 곳인데··· 보아하니 장난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알만하신 분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저걸 빼면 어떻게 된다는 것쯤은 알잖습니까? 대체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는 겁니까?"
명함을 들여다보는 경찰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러나 쉽게 내 말을 따라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빼세요. 괜찮습니다. 그러니 믿고 기사에게 작업 지시를 내려 주십시오. 뒷일은 책임지겠습니다. 일이 잘못되면 제가 피해보상을 하겠어요. 정 못 믿으시겠다면 굴삭기 손을 뺄 때까지 제가 저 전신주 밑에 서 있겠습니다.“
한동안 빼라, 못 뺀다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나의 설득이 집요해질수록 경찰은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았다. 하긴 언제 올지도 모를 구조 헬기만 손 놓고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너무도 급박하다는 것을 경찰이라고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정말 나중에 탈이 생겨도 보상이고 뭐고 뒷감당은 선생님이 전부 알아서 하시는 거죠? 확실하죠?
경찰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거듭 확인을 하더니 이판사판이라는 듯 굴삭기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모두 안전한 쪽으로 대피해 주십시오.“
마침내 경찰들이 호루라기를 불며 사람들을 안전한 도로 양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굴삭기가 시동을 걸었다.
"긴장하지 말고 조심해서 천천히 빼세요."
나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한 굴삭기 기사를 안심시키기 위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기사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전신주 아래 부분에 서서 작업을 지켜보았다.
'크르륵ㅡ'
굴삭기의 손이 둔탁한 마찰음을 내면서 아주 조금씩 들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침을 삼키면서 내 쪽을 바라보았다. 굴삭기의 엔진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릴 정도로 주위는 숨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전신주를 향해 계속 빛VIIT을 보냈다.
"와!ㅡ"
그러기를 얼마 후,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끼리릭ㅡ'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굴삭기의 손이 완전히 들어 올려진 것이다. 밑둥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전신주는 그러나 원래의 각도에서 한 치의 변화도 없이 그렇게 굳게 서 있었다.
"와! 저게 어째 안 넘어가고 저렇게 버틸 수 있을까?"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보기에도 신기했다. 하늘보다 땅에 가깝게 누운 그 커다란 전신주가 겨우 화분만 한 흙덩이에만 의지해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내 눈으로 보면서도 정말 믿어지지가 않는군요. 어떻게 저럴 수가······."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온 그 경찰 책임자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전신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가니 급한 대로 굴삭기를 전신주 받침대로 사용하고 빨리 저 구덩이를 메우셔야 합니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경찰을 향해 다음의 훈수를 던졌다.
그렇게 하여 아이들의 목숨도 건졌고 사고는 큰 피해 없이 수습되었다. 모두가 빛VIIT과 함께 한 덕분이니 감사의 마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이처럼 빛VIIT의 힘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분야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경험을 하곤 하였다. 사람뿐만이 아닌 모든 생물들과 모든 자연의 현상들에도 빛VIIT이 함께 하며 다양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 힘은 대우주의 심장으로부터 전해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빛VIIT은 인종과 국경, 종교와 사상을 초월하여 풍요롭고 행복한 변화를 가져다 준다. 나는 다만 그 힘을 전달해 주는 매개체의 역할만을 할 뿐이다.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초판 1쇄 발행 1996년 11월 25일
개정판 1쇄 발행 2009년 11월 30일 P. 204 ~211
새로운 길을 찾아
빛VIIT의 실체를 확인하고 내게는 생각지 못했던 고민이 생겼다. 빛VIIT에 대한 소문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근무하는 호텔로 각종의 고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심신이 불편한 사람, 집 나간 아이를 찾아달라는 이, 시험을 잘 치게 해달라는 입시생… 등으로 호텔 로비가 북새통을 이루었다.
이쯤 되고 보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우선은 고객들 보기에 미안했다. 호텔이라는 곳이 조용하고 안락해야 하는데, 이렇게 별별 사람들로 어수선 하니 어느 고객인들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찾아오는 이들을 쫒아낼 수도 없는 문제고 정말 난감했다.
뿐만 아니라 찾아온 사람을 마냥 기다리게 방치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을 맞이하다 보니 자연 내 호텔 업무에도 지장이 생겼다.
무엇보다 사주 뵙기에 면목이 없었다. 호텔 분위기는 어수선하게 흐르는데다가 나는 또 나대로 근무 시간에 열중하지 못하니 어느 사주라고 좋아하겠는가? 그러다 보니 자꾸 호텔을 옮겨 다니게 됐다. 물론 사주는 괜찮다고 하며 더 근무 할 것을 권했지만 내가 그럴 수 없었다. 면목도 없었지만 눈치를 보아가며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내게 능력이 있다면 힘든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기껍게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호텔을 옮길 때마다 이런 나의 처지를 이해해 줄 것을 조건으로 달았다.
“그럼요. 좋은 일을 하시는 건데. 정 선생만 오신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정 선생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가 문제겠습니까? 더구나 저절로 호텔 광고가 되는 건데요. 좋고말고요.”
대부분의 사주들은 처음에 이렇게 말하며 환영의 뜻을 표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런 것인지 시간이 좀 지나면 처음의 입장에서 후퇴된 모습들을 보이곤 한다.
“좋은 일 하시는 거니깐 기왕이면 앞으로 사람들을 만날 때는 내 방에서 만나도록 하세요. 그게 여러 모로 좋겠어요.”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데, 그때마다 사장실을 불쑥불쑥 들락거려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내가 하는 일을 통제하겠다는 소리였다.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럴 때가 되면 미련 없이 호텔을 옮겼다. 그러나 옮기는 데도 정도가 있지 조금씩 그런 생활이 피곤해졌다.
사실 이런 직장 문제 말고라도 내게는 진작부터 또 하나의 고민이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이 힘을 우주의 뜻에 더욱 합당하게 널리 나눌 수 있겠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이 힘이 언제까지 나에게 머물지는 사실 나 자신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 버릴 것인지, 아니면 영원히 내게 머물 것인지는 우주의 마음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어찌됐든 이 힘이 내게 머물러 있는 동안만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하여 더 많은 분들에게 우주마음의 숨결을 알게 하는 일이 빛VIIT의 원뜻에 충실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 부족했다. 내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호텔을 그만두고 빛VIIT을 전하는 일에만 매진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자주 고개를 들었다. 이것저것 구애받지 않고 오로지 빛VIIT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한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도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무작정 직장을 걷어 버릴 수는 없었다.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망설였지만, 결국 내 마음은 호텔을 떠나는 쪽으로 굳어갔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계가 끝까지 내 발목을 붙들었다. 아무리 가장이라고는 하나 가족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손님들한테도 미안하고 사주 뵙기도 그렇고……. 난 또 나대로 서운해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남 고통 해결해 주는 사람으로만 생각들을 하니……. 이래저래 마음이 심란하오. 직장을 그만두든가 무슨 소리를 내야지, 이거야 원…….”
고민이 계속되던 어느 날인가 작심을 하고 아내에게 은근슬쩍 내 속뜻을 비쳐보았다. 혼자 끙끙 앓고 있느니 말이나 한 번 꺼내 보자는 심사에서다.
“그렇게 그 일이 하고 싶으세요?”
펄펄 뛸 줄 알았는데 아내는 의외로 차분했다.
“꼭 하고 싶다기보다……. 생각해 봐요. 그렇다고 사람 찾아오는 걸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일 아니야? 얼마나 절실하면 물어물어 호텔까지 찾아올까…….”
“하긴 찾아오는 사람들 모른 체하는 것도 사람 할 일은 아니죠.”
“그럼, 아니고말고. 나한테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해 줘야지. 안 그래요? 그런데 여러 면에서 직장 일이 발목을 잡아요.”
“ …….”
아내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기로는 아내도 빠지지 않았다. 아내는 팔공 재건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과 재활을 위해 설립된 그 학교에서 아내는 결혼 전까지 교편을 잡았었는데, 교사 노릇뿐만 아니라 월급을 털어 학생들의 뒤를 보아 주는 후견인 역할도 했다. 월급만으로 부족할 땐 커튼 등의 인테리어 소품을 만드는 부업을 해서라도 후견인 역할을 했다. 아내뿐만 아니라 장모님까지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등 처가 식구 모두가 재건학교 일에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처가의 가풍이었다.
그런 아내였기에 더 쉽게 말을 꺼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진작부터 호텔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소.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게 좀 그랬거든. 이 힘이 내게 온 참뜻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닌가 해서……. 여보, 사실 우리 형편에 물질적으로 남들에게 베풀 것이 뭐가 있겠소? 안 그래요? 그나마 내게 이런 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오.”
“그래요, 한 가지라도 남에게 베풀 것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요.”
아내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여보, …내 털어 놓고 말하겠는데, …솔직히 나 호텔을 그만두었으면 좋겠소. 그 분의 뜻에 따라 전적으로 매달렸으면 해서…….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소. 하지만 이런 문제를 나 혼자 결정할 수도 없고…….”
나는 말끝을 흐렸다. 아무리 내친걸음이라고 해도 아내에게는 충격적인 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그러세요.”
아내는 이 소리뿐이었다.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워졌다.
“아니, 여보. 내 말은, 직장을 그만뒀으면 하는데…….”
“알아들었어요, 당신 말. 나쁜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난 당신 뜻에 따르겠어요.”
“당신, 정말 괜찮겠어?”
오랫동안 끌어온 고민이 이렇게 한 순간에 결론 나다니 싱거운 기분까지 들었다.
“그럼 제가 길길이 뛰기라도 할 줄 아셨어요? 사실 그동안 당신 얼굴 보면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당신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잘 생각했어요. 저도 찬성이니깐 당신만 좋다면 그렇게 하세요.“
아내는 은근한 힘으로 내 손을 잡아 주며 말했다. 얼굴엔 살풋한 미소가 돌았다.
“고맙소.”
“고맙기는요. 대신 그만둘 땐 적어도 두 달 전에 나한테 구체적으로 통보를 해 주세요. 그래야 저도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대책이라니?”
“그럼, 당신 호텔 그만두고 나면 우리 가족 손가락만 빨고 살아요? 당신 성격에 그 힘을 돈벌이로 연결하진 않을 테니 무슨 대책이라도 세워 둬야죠. 다행히 인테리어 소품 만드는 기술이라도 있으니 그걸로 가게라도 하나 내면 그럭저럭 먹고는 살 수 있을 거예요.”
고맙게도 아내는 내가 가장 곤혹스러워 하던 부분까지 헤아리고 있었다. 이런 아내는 배려에 힘입어 희망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수순을 본격적으로 밟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 뒤, 나는 대구 금호 호텔의 총 매니저 겸 관리 이사직을 끝으로 20여 년간의 정든 호텔 생활을 마감했다.
94년 새해, 우리 부부는 동해안의 영덕 부근에 있는 선비치 호텔로 해맞이를 떠났다. 지난 20년의 생활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떠난 여행이었다.
우리는 동이 채 트지 않은 진보랏빛 여명 속의 해변을 걷고 있었다. 아내와 이런 저런 말들로 덕담을 나누고 있을 때였다.
“여, 여보, 저거 봐요!”
아내가 갑자기 수평선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뭐가? 어디?”
나는 아내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유난히 밝고 선명한 해가 바람개비 돌 듯 빙글빙글 돌면서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 빛은 또 얼마나 환상적인지 마치 서치라이트처럼 확연하게 줄기를 이룬 광선 자락들이 하늘과 땅과 바다 위로 뻗어나며 천지를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어! 어…….”
주위에 있던 관광객들도 할 말을 잃은 채 입만 벌리고 있었다. 그리고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주위에서 또 한 번 소동이 일었다.
“어, 어? 얘 좀 봐라! 너 손이 왜 그러냐?”
“그러는 너는 어떻고? 얼굴에 온통 황금가룬데?”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손, 다리에서 금분과 은분들이 생겨났다. 내 손바닥에도 금분들이 빽빽하게 솟아나 있었다.
“당신이 이 길로 나선다고 하니깐 하늘이 축복해 주는 것 같아요.”
아직도 일출의 황홀한 광경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 아내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내의 말처럼 그건 분명 우주의 마음이 내게 내려 준 환영과 축복의 빛VIIT이었다. 직장을 떠났다고 조금도 위축되거나 불안해하지 말라는 격려의 미소임에 틀림없었다. 그 일은 실제로 나에게 커다란 격려가 되었으며, 오직 빛VIIT과 함께 하는 길에만 정진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출처 :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초판 1쇄 1996년 11월25일
개정판 2쇄 발행 2009년 12월 21일 p.110-117
불타지 않은 명찰
내 머릿속은 소중한 힘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불타올랐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호텔이 아닌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우주의 힘을 나누는 학회였던 것이다.
학회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이 일에 전념하면서
호텔 시절 못지않게 바쁘고 분주한 시간들이 이어졌다. 난생 처음 시작하는 일이고 보니 가끔은 시행착오를 겪기도 하고,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에 난감해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 있고, 늘 우주의 마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예전의 내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찾아와서는 내가 앉아 있는 방이며 작은 사무실을 한 번 둘러보고는 혀를 끌끌 차며 노골적으로 안타까운 내색을 비치기도 했다.
“정 이사님도 참…. 제 이럴 줄 알았습니다. 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신답니까?”
다시 호텔로 돌아가자며 달콤한 제안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곳에 계시느니, 정 이사님, 호텔로 다시 돌아오십시오. 언제라도 정 이사님께서 돌아오실 수 있도록 아직도 자리를 비워놓은 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연봉 걱정 따위는 하지 않으시도록 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원하시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을 어느 정도 병행하셔도 좋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몸담았던 직장에서 최고의 자리를 곧 눈앞에 두고도 그것을 뿌리쳤으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당연했다. 물질적 안정과 사회적 명예가 보장된 길에서 제 발로 걸어나와 별반 세상이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한다고 덤비는 내 모습이 무모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사람인데 왜 그런 것에 마음이 끌리지 않았겠는가. 풍족하기는 고사하고, 상황이 좋지 못할 때에는 사무실 월세며 각종 공과금 내는 일에까지 신경 써야 했기에 무척 힘들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근사한 조건이나 제안도 내 굳은 신념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비록 지금의 생활이 예전보다 조금 초라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는 당당함과 자신감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일은 나 혼자서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학회는 항상 모든 회원들의 것이고 또 그들과 함께 꾸려 나가는 것이지 한 번도 내 개인의 소유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이 학회는 우주의 마음에 의해 세워졌고, 학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우주마음과 함께 할 때만이 가능한 일들이었다.
그런 까닭에 물질적인 풍요로움 없이도 내 마음만은 그 어느 때 보다 편안하고 넉넉했다. 또한 내 머릿속은 이 소중한 힘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불타올랐다.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호텔이 아닌 바로여기, 학회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우주의 힘을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만이 마음속에 온통 가득찬 것이다.
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의문
하지만 내 마음속 깊숙이 수그러들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과연 이 빛VIIT이 언제까지 나와 함께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은 분명치 않았다. 단지 확실한 것은 바로 지금처럼 내가 원할 때마다 어김없이 우주의 빛VIIT이 내려와 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해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혹 어린 시절 도경道卿이 곁에 계셨다면 모를까.
만약 내가 오랜 동안의 수련이나 수도 과정을 통해 이 힘, 초광력超光力과 만나게 되었다면 그러한 질문 따위는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힘은 그런 부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나는 초능력을 얻기 위해, 혹은 도를 깨치기 위해 수련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그런 힘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그저 남들처럼 인생의 절반 가까운 시간을 열심히 노력하면서 평범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그런 내게 언제부터인가 이 우주의 힘이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 이르자 너무도 자연스레 우주의 큰 빛VIIT과 만나게 된 것이다.
초광력超光力이 내게로 온 것이 나의 의지와 무관한 일이었듯, 이 힘이 언제 내게서 떠날지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까닭에 나는 늘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되뇌이곤 했다. 언제든지 지금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이 사라진다면 그 즉시 아무런 미련 없이 예전의 내 자리로 돌아가겠노라고 말이다. 내가 지녔던 힘을 빙자하여 거짓으로 세상을 기만하며 이 자리에 머무를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따금 회원들에게 이런 내 생각을 버릇처럼 이야기 하곤 했다. 비울 것은 비워주고 채울 것은 다시 채워야 되는 순리에 따르는 것이 현명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늘 생각해 왔기에….
학회는 해를 거듭할수록 자리를 잡아갔다. 나는 하루에도 수십 명 씩 다양한 모습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들에게 초광력超光力을 주었다. 5년 정도가 지나자, 학회에서 혹은 크고 작은 공개 강연회를 통해 초광력超光力을 만나고 거쳐간 사람이 어림잡아 10만 명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초광력超光力을 알고 이 힘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 어느 누구보다도 내가 초광력超光力에 대해 더욱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대한 우주의 빛VIIT과의 만남을 통해 초광력超光力의 근본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면, 수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제를 접하면서 일종의 ‘케이스 스터디’가 가능했던 셈이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는 이 힘의 무한한 가능성과 깊이에 대해 세삼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학회 설립 5주년 행사를 하고 난 후에는 항상 마음 속에 남겨져 있던 의문의 해답 역시 나름대로 찾을 수가 있었다. 비록 이 힘이 나의 의지에 의해 생긴 것은 아니지만, 이 능력은 계속해서 나와 함께 하리라는 우주마음의 약속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만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확신 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곧 몇몇 회원들과 함께 산청 초광력전超光力殿으로 향했다. 오래 전부터 마음먹고 있었던 한 가지 일을 해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불타지 않은 명찰
산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오랫동안 한쪽 구석에 쌓아두었던 커다란 짐 꾸러미부터 마당 앞으로 끄집어냈다. 그것은 바로 5년 전 호텔을 그만 두면서 가지고 나왔던 내 잡동사니들로 꽤나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이었다. 막상 꺼내 놓고 보니 생각보다 그 부피가 훨씬 더 커보였다.
비록 지금은 먼지만 뽀얗게 앉은 채 무용지물이 되어버린긴 했지만 한때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이었는지. 그 속에는 지난 20년간 호텔 생활을 하며 쌓아온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내 발자취가 담겨 있었다. 호텔 경영 · 홍보 자료, VIP 회원 명부들, 각종 이벤트 기획안, 심지어는 인테리어 자재 샘플과 벽지 견본에 이르기까지 호텔과 관련된 자료라면 없는 게 없을 정도였다.
호텔을 떠나 새로운 길을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이 물건들을 과감히 버리지 못한 까닭은 단 하나, 내안의 힘이 언젠가는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질문에 대답을 안 이상, 이 물건들에 미래를 맡길 이유도, 미련도 없었다. 내 안에 내재 되어있는 힘이 순간적으로 왔다가 사라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데 대한 확신이 선 이상, 그리고 설사 이 힘이 내게서 사라진다 해도, 훗날에 대한 확신이 분명한 만큼 이제 다시 호텔로 돌아갈 일도, 이 물건을 쓸 일도 없어진 것이다.
잠시 후 물건들을 쌓아둔 짐 더미 위로 불이 붙여졌다. 20년간의 나의 삶의 흔적들이 조금씩 사그라드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그 짐이 놓여졌던 자리에는 불이 탔던 흔적인 까만 잿더미만 남게 되었다.
“어머나 선생님,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불에 타지도 않고 이렇게…, 세상에 신기해라….”
불씨를 고르느라 부지깽이로 잿더미를 뒤적이던 류해정 부부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큰소리로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마당으로 채 내려가기도 전에 그 부부는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선생님, 이거 제가 가져가서 보관하고 싶어요. 그래도 괜찮겠죠?”
“뭔데요?”
여러 회원들이 무슨 일이냐는 듯 그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도대체 뭔데 그러는 겁니까?”
활활 타오른 불길 속에서도 타지 않고 남아 있는 물건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갑작스레 의아한 생각이 들어 잿더미 가까이 다가갔다.
“이것보세요. 선생님 명찰이에요.”
모두의 시선이 불타지 않은 명찰 하나에 쏠려 있었다.
내 명찰, 최연소 호텔 총지배인 자리에 오를 당시 교통부에서 받은 자격증 번호와 내 이름이 새겨진 플라스틱 명찰로, 늘 분신처럼 내 가슴팍에 붙어 나와 함께 했던, 내 얼굴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런 이 명찰이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타지 않고 남아 있었다니! 플라스틱은 불에 조금만 닿아도 녹아 구부러지는 성질을 지닌 물질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 명찰은 불길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원래 그대로의 온전한 모습이었다.
“허, 참, 세상에 이럴 수가. 이 명찰이 이렇게 멀쩡하다니!”
“그러게 말이에요, 선생님.”
주변에 하나 둘씩 모여든 회원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나 역시 이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적절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았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일은 분명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힘이라…. 그렇다. 순간적인 느낌이었지만 우주의 마음은 그 많은 물건들 중 왜 유독 내 이름 석자가 담겨진 이 명찰만을 남겨 두었을까?
사람의 육체는 죽어서 한 줌의 흙이 되어 우리가 왔던 자연으로 되돌아가지만 그 이름만은 영원히 후세에 전해지는 것이다. 이 이름처럼 우주의 힘이 영원히 나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의 증표로 이런 현상을 내게 보인 것일까? 아니면 불타지 않고 남겨진 이 세 글자의 이름을 통해 빛VIIT의 힘을 널리 알리라는 뜻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것이 주는 정확한 의미는 단정 지을 수 없었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호텔에서 총지배인으로서가 아니라 빛VIIT의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그간의 모든 미련을 버리고 지난날의 흔적들을 없애려했다는 사실이다.
행복을 주는 남자
초판 1쇄 인쇄일 2002년 6월 07일
초판 1쇄 발행일 2002년 6월 20일 P. 91-98-
첫댓글 귀하고 소중한 빛역사담긴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빛VIIT의 힘을 널리 알리라는 뜻에
함께 합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께서 빛VIIT을 전하기위해
걸어오신 그 모든길에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빛역사 이야기 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글 감사드립니다.
학회장님의 노고에 깊은 감사와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소중한 빛역사 이야기를 마음에 잘 담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빛역사 이야기... 빛VIIT명상이 사람들의 보편적이 삶이 되어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불타지 않은 명찰>, 동해안 영덕 바닷가의 빛현상,
경이롭고 신비한 빛역사 이야기 올려주심에 감사합니다~
힘든 과정을 거치시며 빛명상 학회를 설립하시고,
저희 회원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주시는 학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공경의 마음 가득 올립니다~
감사드립니다.
불타지 않는 명찰, 경이로운 빛역사 이야기,
학회장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서랏 전봇대! ...빛책속의 귀한글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빛의 길을 선택하신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
귀한 빛 의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소중한 빛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