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교 교정 수선화
낮에 강수가 예보된 삼월 둘째 일요일이다. 며칠째 오월 초순으로 여겨도 될 더위가 느껴지더니 봄비가 오려는 모양이다. 비가 그치고 나면 기온이 내려가 예년과 같은 날씨로 되돌아간단다. 비가 오면 야외로 나가는 현장 학습에 어려움이 예상되어 아침 식후 서둘러 창원천과 교육단지를 둘러 오려고 길을 나섰다. 스틱이나 도시락이 필요 없어 배낭은 둘러메지 않아도 되었다.
그동안 봄이 오는 길목 야생화 탐방이나 냉이와 쑥을 캐느라 바삐 보낸 날들이다. 가끔 창원천 천변으로 나가보기도 했는데 틈을 낼 겨를이 없었다. 천변 산책로에 조경수로 자라는 산수유나무는 노란 꽃을 피워 화사했다. 한때 봉림동 주택지 학교에 근무할 적에 5년간 아침저녁 걸어 출퇴근한 길이기도 했다. 그 시절엔 도심에 살아도 천변 풍광에서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반지동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창원천에 걸쳐진 다리를 차례로 지나 명곡교차로에 이르렀다. 겨울 강수량이 미미하긴 해도 냇바닥에는 기본 수량이 흘렀다. 곧 팔뚝만한 잉어들은 떼를 지어 웅덩이 가장자리로 몰려나와 알을 스는 모습을 보여줄 테다. 암컷이 알을 슬면 대기한 수컷들이 정액을 분사하는 생명 탄생의 신비로운 광경이다. 창원천이 생태 하천으로 복원된 생생한 현장이다.
파티마병원 부근 높이 자란 능수버들 한 그루가 연두색 잎이 돋으면서 늘어지는 가지는 포물선을 그렸다. 창원대로와 나란한 용원지하도에 이르러 봉암 갯벌이 바라보일 창원공단 이면도로로 진출하지 않았다. 대원 레포츠공원으로 들었더니 들머리 습지 공원 능수버들도 수액이 오르는 기색이 완연했다. 테니스장과 축구장과 족구장에는 일요일 아침을 맞아 동호인들이 땀을 흘렸다.
레포츠공원에서 창원수목원 언덕으로 오르니 초막 주변은 매화가 거의 저물어갔다. 가는잎조팝나무는 움이 트는 잎과 함께 자잘한 꽃잎이 보이길 시작했다. 다양한 수목이 식재된 언덕에는 노란 산수유꽃이 단연 돋보였는데 목련꽃과 어울려 더 화사했다. 백목련과 자목련이 동시에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충혼탑 사거리 연못의 능수버들에서도 연두색 잎이 돋아 싱그러움이 더했다.
내가 아까 봉암갯벌로 나아가질 않고 레포츠공원에서 수목원을 거쳐옴은 일요일을 맞은 교육단지 여학교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내가 교직 마지막을 보낸 거제로 떠나기 전 근무지가 그곳 여학교였다. 앞뜰과 뒤뜰의 넓은 교정에는 여러 조경수가 어울려 자라고 초본에서도 각종 꽃을 피웠다. 나는 근무시간 중 뜰로 내려가 사색에 잠기고 완상한 꽃들은 생활 속 남긴 글감으로 삼았다.
앞뜰 살구나무는 분홍색 꽃이 피어 화사했다. 본관 건물이 북풍을 막아준 양지바른 자리라 여느 곳의 살구나무보다 일찍 꽃을 피웠다. 뒤뜰로 가니 내가 궁금해했던 수선화가 노란 꽃잎을 달고 질서 정연하게 피어났다. 땅속의 알뿌리는 삼월이 되자 파릇한 싹이 돋으면서 노란 꽃잎으로 세상을 환하게 비추었다. 시든 잎맥이 납죽 엎뎌 자라던 민들레도 잎줄기를 불려 꽃을 피웠다.
지난 근무 시절 보도블록 틈새를 비집고 자란 제비꽃이나 괭이밥도 앙증맞은 꽃을 피워 허리 굽혀 눈높이를 맞추어주었다. 담임을 맡지 않은 나는 교지를 편집부 동아리를 지도하면서 꽃을 가꾸었다. 봄에는 수목이나 초본에서 여러 꽃을 봤으나 여름의 봉숭아와 가을의 코스모스는 내가 손수 키웠다. 아름드리 고목 벚나무 가지에는 꽃눈이 몽글몽글 부풀어 연방 꽃을 피울 듯했다.
여학교 교정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다가 올림픽공원으로 들어섰다. 국화공원에는 구절초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소국은 묵은 줄기에서 새움이 돋아났다. 인근 야구장과 축구장에서도 건각들은 운동에 열중했다. 교육단지 벚나무도 일제히 꽃을 피울 날을 기다렸다. 폴리텍대학 캠퍼스 동백나무는 꽃망울을 맺어갔다. 창원스포츠파크에서 원이대로를 건너 외동반림로 소하천을 따라 걸었다. 23.0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