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룹회사에 있어, 회장의 업무일지는 그룹 전체에 관한 일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자신이 머무는 회장실과 관련한 일을 직접 처리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룹전체의 시스템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처리됩니다. 회장은 그룹전체의 일에 매달리고 있지 회장실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대지 않습니다.
조선왕조실록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록된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동방 즉, 동아시아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실록만 그런 것일까요? 훈민정음이나 동의보감 등은 동국이 아닌 동방에서 사용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 제왕운기나 용비어천가는 누가 읽으라고 만든 것이겠습니까?
제왕운기에 대한 강단학계의 평가입니다.
-----------------------
~제왕운기의 구성은 중국사, 한국사를 각 권으로 분리하여, 중국 동쪽에 독립된 고려 왕조가 존재함을 적었다. 우리 민족은 하늘(천 天)과 연결되는 단군(檀君)을 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임을 나타냈다. 드디어 단군신화를 한국사 체계 속에 당당히 포함시킴으로써 우리 역사의 유구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발해(渤海)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 확인하고, 발해인이 고려에 귀순해온 사실을 서술하여, 발해 역사를 최초로 우리 역사와 연결시켰다. 이러한 독자적 역사를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민족이 중국과 확연히 구별되는 자주적이고 독자적인 국가임을 강조하였으며, 몽골의 정치적 지배에 대항하는 의지를 간접적으로 표출시키기 위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왕운기 [帝王韻紀] (두산백과)
===
~이처럼 『제왕운기』는 중국과 우리 민족과의 지리적·문화적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우리는 중국과 구별되는 독자성·자주성·주체성을 가진 우수한 문화민족임을 국민 각자에게 자각하게 하여 몽고의 정치적 지배에 대항하는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하여 제작된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동명왕편」과 함께 고려 중기의 대민족서사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몽고의 강대한 외압 때문에 가지게 된 문화적 위기의식과 저항정신은 같은 시기에 일연(一然)이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던 동기와 같다. 그러므로 양자는 단군을 한국사체계 속에 편입시키는 선구자적인 역사서술을 남기게 된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제왕운기 [帝王韻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와 같은 평가는 엉터리입니다. 자주적이고 독자적이라면서, 책의 상권에 중국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권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하권에서는 동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이것을 자주적이고 독자적이라 할 수 있습니까? 몽골에 대항하는 의지를 담았다면서, 중국의 역사에 몽골을 집어넣어 몽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국의 자주성, 독자성을 말한다면서, 왜 중국의 역사를 다루는 것입니까? 그것도 모자라, 떡하니 상권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사대주의에 찌든 저서라 비판합니다. 답은 너무 간단합니다. 이 책은 우리 동국인이 읽으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제왕운기의 목적은 단순하고 간단합니다. 중국인 즉, 몽골인이 읽으라고 쓴 책입니다.
과정이야 어쨌든 몽골이 중국이 되었습니다. 우역곡절도 있었고 내키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몽골을 중국으로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겠지만, 무력으로 중국이 되었으니 몽골이 얼마나 기고만장하겠습니까. 위아래도 몰라보는 일이 있을 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승휴가 이 책에서 말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몽골, 너희들이 중국이 되었으니 역대 중국을 본받아 중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고 어른인 동국을 똑바로 모셔라.’ 제왕운기의 구성이 왜 저렇게 되어있는지, 너무 뻔하지 않습니까?
용비어천가에 대한 강단의 설명입니다.
------------------------
~내용은 조선 건국의 유래가 유구함과 조상들의 성덕을 찬송하고, 태조(太祖)의 창업이 천명에 따른 것임을 밝힌 다음 후세의 왕들에게 경계하여 자손의 보수(保守)와 영창(永昌)을 비는 뜻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장(每章) 2행에 매행(每行) 4구로 되어 있으나, 1장이 3구이고 125장이 9구로 된 것만은 예외이다. 3장에서 109장까지는 대개 첫 절에 중국·역대 제왕의 위적(偉蹟)을 칭송하였고, 다음 절에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태조(太祖)·태종(太宗) 등 6대 임금의 사적(事蹟)을 읊고 있다. 110장에서 124장까지는 물망장(勿忘章)이라 하여 “닛디 마ㆄ쇼셔”로 끝마친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두산백과)
===
~내용은 세종의 직계 할아버지 여섯 분의 행적을 읊은 것인데, 이 행적은 모두 하늘의 명을 받들었다는 중국의 제왕의 그것과 부합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 여섯 선조도 역시 하늘의 명을 받고 있었음을 보이려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이것 또한 중국인 즉, 한인이 읽으라고 만든 책입니다. 너무 뻔한 일입니다.
무지렁이 동국백성에게 중국의 역사를 들먹이면서 이씨왕조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것은, 너무 웃기는 일로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자기들 동국의 역사를 알고 있을지도 의문인데, 아니 역사의식이라는 것이 있을지도 의문인데 중국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양반을 비롯하여 글을 어느 정도 아는 식자를 대상으로 만든 책이라는 뜻인데, 동국의 유식자는 중국을 예로 들어 설명하지 않으면, 못 알아듣는다는 말 밖에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동국인들이 중국의 역사를 잘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용비어천가가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대주의가 어쩌고 저쩌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뼛속까지, 동국이 중국의 속국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강단학계도 동국이 중국의 속국이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당연히, 용비어천가를 읽을 사람들이 중국인이라는 뜻입니다.
최만리상소문은 동국인끼리 중국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기에, 동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중국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고, 용비어천가는 동국인이 중국인에게 동국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기에,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 동국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즉, 설명을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상소문은 동국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기에, 상소문을 읽는 사람(임금)이 동국인이 되는 것이고, 용비어천가는 중국의 경우를 예로 들고 있기에, 용비어천가를 읽는 사람(백성)이 중국인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인이 읽는데, 왜 언문이 섞여있을까요? 제 글에서 말했다시피, 당시의 사람들은 동국어와 중국어(문자가 아닌 어음)를 같은 언어로 보고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동국어와 중국어가 서로 달라졌다 해도 본국의 입장에서는, 본국의 언어나 문자를 중국백성이 익히도록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훈민정음을 내려 보내서 중국인이 언문을 익히게 될 것이므로, 언문이 섞여있다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해동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이시니...’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동국, 해동 등은 중국을 염두에 둔 이름입니다. 중국이 없다면 저런 이름들은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자식’을 염두에 둔 단어입니다. 자식이라는 것이 없다면 아버지라는 단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동국인이 읽는 책에 해동이라는 말을 쓸 수는 없습니다. 그냥 ‘아국’이라 하면 됩니다. ‘남한’이라 할 때는 반드시 ‘북한’을 염두에 두고 사용합니다. 북한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한국, 우리나라, 대한민국 등의 말만을 사용합니다. 우리끼리 남한이라는 말을 사용했을 때에도, 남한 사람이 아닌 타국 사람이나 북한 사람이 듣게 될 것을 예측하고 사용합니다.
‘해동 육룡’은 책을 읽는 사람이 중국인이기에, 중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동국의 왕족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는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첫댓글 울나라가 중국입니다. 됴션이 대륙에서 멸망하고 그 지배세력과 사대부 지주 계층들이 한반도로 넘어와 살기 시작한 때가 일제 시대부터입니다. 그 때부터 울나라의 진실한 역사는 모두 지워지고 니뽄넘들이 일괄적으로 편집 편찬한 황국식민역사관을 강제로 오랜세월동안 주입받게 되어 오늘에 이르른것입니다. 즉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울들은 실제로 그 뿌리는 대륙에서 살아남기위해 이주해온 실질적인 듕귁의 지배계층들인겁니다. 바로 울리가 중국의 후손이죠. 현 짱깨 넘들은 바로 최하층민들이 뿌리입니다.
감탄사만 연발입니다.
잘 보았습니다.
아전인수 견강부회
'눈 뜬 장님'의 광고는 가볍게 skip.
라무님 글 잘봤습니다.
저는 제왕운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만,
제왕운기의 설명에서
"결국 몽골을 중국으로 허락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신 이유를 알고싶습니다.
몽골을 중국의 지존으로 허락했다는것은,
그들의 방식을 인정 하고서도 통제가 가능할때에 할수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몽골을 징벌하기 이전에 훈계를 한것이 아닌가, 추측을 해봅니다만,^^.
좀더 구체적인 예가 있다면 쉽게 이해할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람이나 조직의 일이라는 것이, 항상 법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른이라 할지라도 뒷방늙은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뒷방신세를 지더라도 어른은 어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떤 일로 다퉜을 때, 아들이 승리하게 되면 아버지가 비록 뒷방으로 밀려나더라도, 아들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승리하게 되면 아들이 무릎 꿇고 사과하는 일은 당연합니다. ‘삼전도의 굴욕’과 같은 사건은 100% 조작된 것으로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몽골과 고려도 전쟁의 결과에 의해 중국과 동국의 관계를 새로 정립했을 뿐입니다.
이승휴가 제왕운기를 저술했을
당시(1287, 충렬왕13)는, 몽골이 이미 중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국과 중국이 서로 관계를 정립한 이후입니다. 따라서, 몽골을 징벌하려 한 것은 아니고 훈계를 하려는 뜻입니다.
고맙습니다.
역사나무님의 댓글을 다시 읽어보니, 질문이 조금 어렵네요.
'결국 몽골을 중국으로 허락했다'는 것은, 전쟁에 졌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몽골의 방식을 어느 정도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러고서도 통제가 가능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통제가 안된다면 고려조정이 없어졌을 것입니다. 뭐, 허수아비로도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요.
제 글에서 '징벌'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저는 훈계를 한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라무님 죄송합니다.
제가 글을 짧게 쓰려는 습관이 있어서 때론 중요한 부분을 빼먹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서를....^^.
징벌,은 제 생각입니다.
즉 중국을 무력으로 장악한 몽골을 훈계로써 회유, 설득하려고 오랫동안 노력하지만 실패하고,
결국에는 동국이 몽골을 징벌해서 중국밖으로 내쳤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고려와 몽골의 전쟁은 중국땅에서 수행된 전쟁이라는 생각이구요.^^.
답글 고맙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대한민국을 극동이라 부르고 아랍을 중동이라 부릅니다. 그러면 중앙은 어디겠습니까? 당연히 서유럽을 기준으로 볼 때입니다. 서유럽에서 볼 때 한반도와 일본이 제일 동쪽끝에 있으니 극동이라 부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 사는 누구입니까? 단연히 우리는 서유럽에 사는 사람입니다. 서유럽에 사는 백인이 우리나라 사람입니다. 극동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은? 우리가 지배하는 다른 민족입니다. 이제 내가 하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이런 자기모순이 어디 있어요? 정신머리가 딴 데 가 있으니 자기조상이 남의 조상으로 뒤바뀌고 있어요.
님도 저처럼 글빨이 별로 없내요.^^.
주어가 없으니 무슨말을 하시는지 이해하기가 난해합니다.^^.
무엇이 모순이라는 말인지, 알아듣기 쉽게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서유럽사람이라 가정할 때, 우리가 극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의 민족은 우리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요? 이것이 말이 됩니까? 우리가 중국인이라 가정할 때, 동국이라 부른다 하여 동국의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니... 정신머리가 딴 데 가 있는 사람은 당신이죠.
Doahm님 아랍이 중동이면
중앙은 서유럽이 아니고 이집트나 지중해가 되지 않나요?
그 다음말은 무슨말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알기쉽게 쓰신다면 토론도 가능할것 같은데 말입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대체로 맞게 이해하셨습니다만, 조금만 보태겠습니다.
‘조선=동국, 조선=동국+중국+외국, 조선=하늘, 조선=천하’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백성은 조선의 백성이고, 훈민정음은 조선의 백성을 위한 것입니다. 동국은 회장실이고 중국(천하)은 회사건물 전체입니다. 외국(몽골, 일본 등)은 지점이나 하청업체 정도에 해당할 것입니다.
최만리 등이 반대한 이유 중에 하나는 이렇습니다.
‘중국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동국의 임금과 신하는 중국만 신경 씁니다. 중국만 신경 쓴다는 얘기는, 동국의 ‘주 업무’가 중국을 다스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최만리 등이 말하는 ‘문명’이라는 것은
‘중국이 중화가 된 상태’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명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 중에 하나가, 동문입니다. 한 가지의 문자를 쓰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비문명의 뜻으로 쓰이는 단어가 이적입니다. 이적은 두 가지 이상의 문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국은 한 가지의 문자인 ‘한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세종이 한글(언문)을 중국에 내려 보내게 되면, 중국에 두 가지의 문자가 존재하게 되니, 중국이 이적처럼 두 가지 이상의 문자를 사용하게 되어, 중국이 중화에서 이적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므로, 최만리 등이 반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왕의 역사관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당시 사람들(동국, 중국, 외국)의 보편적 인식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주, 화와이주 등이 미연방정부에 대해, 미연방정부가 캘리포니아주 등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것과 똑 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