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령 야생화
삼월 둘째 월요일 아침 기온은 제법 쌀쌀했다. 인적 드문 산자락 임도를 걸으면서 봄기운을 느껴 보고자 길을 나섰다. 경칩이 이후 예년 평균 기온을 웃돌던 날씨가 어제 내린 봄비 이후 급전직하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집 앞에서 101번 시내버스로 마산역 근처로 나가 역 광장 모퉁이 농어촌 버스 출발지로 갔다. 번개시장에서 김밥을 두 줄 마련해 배낭을 채워 76번 버스를 탔다.
작년부터는 주말이 아닌 평일에도 근교 들녘이나 산자락을 누비는 여가를 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시장과 댓거리를 지나 밤밭고개를 넘으면서 몇몇 승객이 타고 내렸다. 버스는 진동 환승장을 거쳐 진전면 소재지 오서를 둘러 양촌에서 일암과 대정을 지나 산골로 들어갔다. 봄날이면 내가 산나물을 마련하고 여름이나 가을에는 야생화를 탐방하느라 가끔 찾아가는 깊은 골이다.
평암에서 둔덕 구간은 지방도를 넓혀 포장하는 공사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버스는 골올방에서 20여분 기다렸다가 종점 둔덕에서는 내린 손님은 나 혼자였다. 둔덕에서 함안 군북 오곡으로 넘어가는 지방도는 차량 통행이 드물어도 산마루 일부를 제외하고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었다. 굴참나무 고목이 당산나무로 버틴 오실골에서 오곡을 넘는 찻길을 따라 걷다가 산기슭으로 갔다.
볕 바른 산기슭에는 이른 봄 움이 튼 머위 순이 몇 가닥 보였다. 아랫마을에 사는 할머니가 그 순을 캐 어시장 노점으로 내다 팔기도 할 머위였다. 계곡물이 흘러오는 도랑에 자라는 머위는 현지 할머니가 캐도록 남겨두고 나는 산기슭 가시덤불에 자라는 머위를 몇 줌 캐 봉지에 담았다. 다시 찻길로 내려와 오곡재로 향해 오르다가 갈림길에서 미산령으로 가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미산령 가는 길섶 오리나무 가지는 모양이 특이한 꽃이 달려 눈길을 끌었다. 봄이 오는 길목에 냇가의 버들개지가 보송보송한 솜털이 붙은 꽃이 피듯이 오리나무도 잎보다 먼저 피는 꽃망울이었다. 임도 맞은편은 산세가 험한 여항산의 암반 능선이 서북산으로 뻗쳤다.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아까 캔 머위에 붙은 검불을 가려내고 준비해 간 김밥을 먹었다.
배낭을 추슬러 짊어지고 아무도 다니질 않는 임도를 따라 걸었다. 아직 철이 일러 양지꽃이나 구슬붕이꽃은 보이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 피는 남산제비꽃도 아직 피지 않고 움이 터 자라는 쑥만 보였는데 그냥 스쳐 지났다. 길섶에는 작년 가을 싹이 터 겨울을 넘긴 달래가 무더기로 자라 가져간 호미로 캐 봉지에 채웠다. 미산령을 향해 오르다가 임도를 벗어나 산기슭으로 들었다.
활엽수 숲 바닥은 복수초가 무리 지어 자라는 자생지였다. 이른 봄에 잎줄기보다 꽃대를 먼저 밀어 올려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는 절정이 지나 저물고 있었다. 꽃대와 함께 잎줄기가 무성해져 시든 꽃은 수분을 끝내고 씨앗이 달려도 휴대폰으로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숲에서 나와 임도를 따라 걸으면서 양지바른 자리에 웃자란 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쪼그려 앉아 캐 모았다.
쑥이 담긴 봉지를 들고 미산령 고갯마루 정자로 올라 쑥에 붙은 검불을 가렸다. 이후 미산으로 가는 북쪽 비탈로 내려섰다. 저 멀리 아득한 곳은 가야읍 바깥 법수와 대산의 강변 들녘이었다. 깊은 골짜기를 내려가다가 응달이지만 볕이 비친 자리에는 무리 지은 콩제비꽃이 꽃망울을 달고 나왔다. 석간수가 흐르는 계곡에 손을 담그고 물을 한 움큼 모아 들이켰더니 아주 시원했다.
골짜기를 빠져나간 미산에서 곶감 산지로 알려진 파수를 거쳐 봉성으로 가질 않고 가야로 나갔다. 봉성은 함안역이 가까운데 창원 가는 열차는 시각이 맞지 않았다. 가야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꽤 걸려 읍에 닿으니 해가 기우려는 즈음이었다. 추어탕집을 찾아가니 주인은 잠시 외출 중이라 근처 돼지국밥집으로 들어 소진된 열량을 벌충하고 창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23.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