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퇴고의 기술 2 / 이종수 (시인)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퇴고. 퇴고에 앞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무엇일까?
첫째, 본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대로 씌여졌는가?
둘째, 읽히는데 걸림돌은 없는가?
셋째, 사실에 맞는 이야기인가?
넷째, 표현이 정확한가?
다섯째, 쉬운 말이든 어려운 말이든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가?
여섯째, 지나치게 늘어난 말은 없는가? 를 살펴야 한다.
먼저 본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대로 씌여졌는지 살펴야 한다.
의욕이 앞서 어느 것이 먼저인지 구분이 안 가게 쓴 시들이 많기 때문이다.
화려한 수사에만 치우쳐서 정작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 실패한 경우다.
목화솜 이불 한 채
골동품인 화장대
통에 고춧가루가 가득 담기고
아침이 없는 새신 한 켤레
축축한 새벽비가 얼어
오들오들 옆자리 앉아
천근만근 누운 막걸리 통으로
지랄 같은 새벽 종소리가 기어 들어간다
아파트 게시판엔 입주자들 찾고
하루는 여느 날과 같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301동에서는 저승으로 떠난 자의
모습이
지나치며 숨어 들어간다
하지만
나비가 되어 날아가기를
삼보산에 걸린 아침을
재촉한다
- 김태봉, <301동 아파트>
‘301동 아파트’은 공간배경일 뿐 시의 내용에 맞는 제목이 아니다.
새벽 창문으로 내려다 본 301동 아파트 둘레를 감싸고 있는 사물과 작자의 기분 상태를 말해줄 뿐이다.
‘저승으로 떠난 자의/모습’을 보면 앞에 놓인 사물들이 망자의 유품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사물들이 아파트라는 딱딱한 공간에 스며드는지,
아니면 떠나는 자의 영혼인양 나비를 등장시킨 까닭이 분명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지나친 행갈이도 극도로 말을 아끼는 것인지 보래 의도했던 이야기를 제대로 펴내지 못한 어눌함인지
구분이 가지 않게 만든다.
누군가 떠나간 자리, 공동주택에서 익명의 한 사람이 떠나가는 자리 위에 ‘지랄 같은 새벽 종소리’가
겉도는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사물들과 어떻게든 연관을 지어 ‘나비’로 형상화시킬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즉흥적으로 본 것들만 나열할 수도 있지만 그 익숙하면서도 낯설은 공간을 빠져나가는 ‘이야기’가 부족한 것이다.
한 사람이 떠나가고 게시판에 새로운 입주자를 구하는 이야기로 썼더라면 어땠을까싶다.
먼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除隊를 하고, 세월도 믿음도 무심히 멱살을 잡고 흔들던 스물다섯 계급장을 떼고도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바람 불면 허수아비 제 가슴을 치는 가을 저녁답, 어머니 또 우시고
높은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잘 다려진 작업복을 끌고 어쩌다
계집아이들이 크래카를 씹으며 지나갔다 가로수 가지마다 매달려 떨고 있는 하나, 둘
눈물방울 같은 잎새들 이른 아침 누이의 세수대야엔 붉은 피가 자꾸만 번졌다
발 밑에서 으깨지는 비명소리 나뭇잎들
들판이나 한번 둘러보고 가거라
갯벌이나 한 번 또 한 번 돌부리에 넘어져 어머니
검정치맛자락에 피가 흘렀다
여전히 굴뚝에서는 연기가 솟아올랐다
출신도 전북 본적지 서해중학교졸업
고향도 두고 사랑마저 등진 신세가 핸드카를 밀면서 울어야하나
울어야하나 부르면 고향은 조막손 아프게 찌르던 낫자욱들
잘살자 진성전자공원들아 어둡게 화장실 낙서 같은 곳에서도 얼어붙고
오줌을 갈기며 얼어붙은 아랫도리로
이름을 써 갈기며 군대삼년 몸으로 때워나가자 개새끼처럼 웃던 날들
모집공고 위에도 눈발은 내려쳤다
내려앉고 싶었다 이력서도 구겨버리고 문득 공고판 아래 얼어붙는 어머니
엉겅퀴 들판도 밀어버리고
등 뒤론 움켜쥔 손 마디마디 풀며 떠오르는 눈송이들
하얗게 쌓여가는 불빛들 내려앉고 싶었다
엎드려서 감출 수 있는 것은 눈물들 뿐일까
전봇대 같은 곳에 기대여 바라보면 어느새
눈발 그친 곳에서도 불빛은 흐려지고, 누이여
흩어지고 어디로 또 떠나는 밤기차소리에도 부서지고
- 박영근, <취업공고판 앞에서>
취업공고판은 노동자의 삶을 사려는 자의 지난한 이야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또 누군가의 시를 낳게 한다.
그만큼 빌려서 쓸 수 있을 만큼의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구별을 발품 팔며 떠돌다
새벽 두 시, 집 앞 맥주집에서
2001년도판 사단법인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주소록을 읽는다
서른여섯 해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헤어져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서른여섯 송이
라일락과 목련香밖에는
만난 것이 없다
아파트와 대학교와 출판사가 主鍾이구나
그런데, 이것 봐라? 최병은 씨 댁 옆집?
403-014 인천시 부평구 부평4동 10-22 22/3
박영근(시) 032)518-7119, 016-330-0449
최병은 씨 댁 옆집에 네모 치고
마주 앉아 맥주를 마신다 목련꽃 지고
라일락 펴는 밤,
지구별의 새벽 취업 공고판 앞에*
나는 서 있다
- 이안, <최병은 씨 댁 옆집에서>
주소록에 나온 것 색다른 주소가 발단이 되었지만 이미 ‘지구별을 발품 팔며 떠돌다’ 새벽 맥주집에 앉은
시인에게 주소록의 주인공이 썼던 ‘취업 공고판 앞에서’란 시는 목련꽃과 라일락으로 대변되던
자신의 주종主鍾을 생각하게 한다.
그만큼 취업 공고판 앞에 서 있는 두 화자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던 까닭을 말해주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다음에는 읽히는데 걸림돌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리듬과 가락일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읽기를 방해하는 또 다른 것일 수도 있는 걸림돌.
증평에서 서울까지
한시간 삼십분 걸린다
똥구멍으로 내뿜은
배기가스는
그 거리에 흩어져
창문을 열지 못한다
비행기가 떴다
사람 200-300명을 싣고
역시 꽁무니엔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아래로 내려온다
무중력 상태로
공중부양을 하면
못 갈 곳이 없다
배기가스도 더러운 오물도 없다
내친 김에
우주로 걸어갈까
바다와 산과 강들은
둘러앉아
소곤소곤거리고
사람들은 꼬물꼬물 움직이며
파고들어 온다
자리를 잡자
땅을 밟는 축복과
하늘을 하는 행운도
둘러앉은 산천도
조금 더
있는 그대로 살자
공중부양하는 날이
올 때까지
그대로 살자.
- 김태봉, <공중부양>
뒤에는 잘 읽히지만 앞에서는 잘 읽히지 않는다.
본래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잘 펼쳐지지 않은 까닭이다.
배기가스를 내뿜으며 옮겨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공중부양하여 우주까지 갈 수 있는 날까지
‘그대로 살자’는 말은 이해할 수 있지만 무중력상태의 지구별을 떠올리며 공중부양이라고 말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아 보인다.
1연을 읽는 흐름과 2연을 읽는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한 까닭도 있지만 그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무엇보다 첫 번째로 꼽은 이야기의 부재가 공중부양의 의미를 집어 삼켜버려서 잘 읽히지 않는다.
욕망의 몸이 그만큼 무거운 까닭일까?
시원하게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공중부양으로만 문명의 이기를 탓하고 있다.
차라리 ‘허경영 공중부양의 비밀’이란 멘트로 변비약 광고를 하는 제약회사의 광고를 빌려 써서
이야기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달 호텔에서 지구를 보면
우편엽서 한 장 같다.
나뭇잎 한 장 같다.
훅 불면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저 별이
아직은 은하계의 오아시스인 모양이다.
우주의 샘물인 모양이다.
지구 여관에 깃들어 잠을 청하는 사람들이 만원이다.
방이 없어 떠나는 새.나무.파도.두꺼비.호랑이.표범
돌고래.청개구리.콩새.사탕단풍나무.
바람꽃.무지개.우렁이.가재.반딧불이......많기도 하다.
달 호텔 테라스에서 턱을 괴고 쳐다본 지구는
쓸 수 있는 말만 적을 수 있는 엽서 한 잎 같다
- 박용하, <지구>
공중부양으로 어디든 옮겨간다는 발상보다는 먼저 달 호텔에서 바라보는 가엾은 지구의 이야기가
더 나을 것 같다.
잘 읽힌다는 것은 발상을 거꾸로 했어도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는 사실에 맞는 이야기인지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실수여도 발표되고 나서는 큰 오점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바람이 불어와 눈물을 흘렸다.
조금씩 신장이 아파왔다.
사랑이 깊은 사람은 술기운에 울고 웃고
도착한다던 봄소식은 멀리 있고
일본의 쓰나미가 지나간
후쿠오카에서
낙진이 먼저 도착한 저녁
뉴스는 모든 것을 안심시키고 있는 사이
나의 신장은 허전하고 외롭다
소금기가 가시지 않은 원전에선 아무리 물을 퍼부어도
온도는 낮아지지 않는다.
오늘은 편서풍이 분다
- 박원희, <영풍출루>
단 하나. 원전사태의 본거지인 ‘후쿠시마’가 ‘후쿠오카’로 잘못 표기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이름이 전혀 다른 양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자칫 오해를 살 수 있다.
세세히 살펴야만 보이는 실수이다.
다음에는 지나치게 늘어난 말은 없는가? 줄이거나 없애도 되는 말이 시 읽기를 방해하고 있는지 잘 살펴야 한다.
꽃 피고
벌 날아드는 봄, 여름 내내
징글맞게 비만 오더니
올해 농사 도매끔으로 넘어가게 생겼는디
우묵배미, 양지뜸
능구렁이 길길마다
담배 꽃 핀다
누렇게 마르고 찢기는 속
다 태울 듯 불이었다가
진득진득 끈끈찰찰 내뿜으며
줄담배 피운다
<담배 꽃 핀다>는 제목으로 발표한 시다.
담배꽃이 줄담배를 피운다는 답답한 농촌 현실을 표현하려고 쓴 것인데,
나오자마자 특유의 질질 끄는 버릇이 나왔다는 평을 듣고 바로 고쳐 썼다.
담배꽃이야 당연하게 피는 것이지만 담배가 사람인양 뻑뻑 담배를 피우는 것까지는 좋은데
‘올해 농사 도매끔으로 넘어가게 생겼는디’란 대목이 들어가면서 말을 아끼면서 충분히 드러낼 수 있었던 시가
진짜 도매끔으로 넘어가게 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꽃 피고
벌 날아드는 봄, 여름 내내
징글맞게 비만 오더니
우묵배미, 양지뜸
능구렁이 길길마다
담배 꽃 핀다
는 식으로 ‘올해 농사 도매끔으로 넘어가게 생겼는디’를 빼면서 더 나은 시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작자의 의도가 너무 지나치게 들어가면서 빚어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