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이동민
노인이 된 우리들이 만나면 우스개 소리로 곧 잘 하는 말이 있다. ‘우리가 아이를 훈육할 때 착하게 살아라’라고 한 말이 잘못 된 거 같다는 거다. 우리가 어릴 때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래서 우리도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조국이를 봐라. 위법이 판치고 편법이 능력이 된 세상에 착하게 살다가는 밥을 굶기가 딱이지. 이제는 이렇게 말을 한다. 하기야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이득이 있는 곳으로 쫓아가려는 것이 본심이니 나무랄 수도 없을게다.
최고위층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 서로 짜고 거짓 서류를 만들어서 주고, 받으며 이득을 나누고서도 잘못이 아니라고 큰 소리다. 세상이란 원래 그런거다라고 믿는 듯하다. 그들이야 이해 당사자이니까 그럴 수가 있겠지만, 단지 한 패라는 이유로 그가 옳다는 사람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나는 6. 25 전쟁 때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포스터에서 얼굴이 붉고, 머리에는 뿔을 달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그들도 그런 얼굴을 한 사람들의 패거리인가 싶어서,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다. 텔레비전에서 비쳐준 그들의 얼굴은 우리 얼굴과 꼭 같았다. 길거리에서 보는 그냥 평범한 얼굴이었다.
그런 중에서도 내가 가장 실망하는 일이 우리나라 국회에서 일어났다. 법을 만든 지 두 달만에 마음에 안 드는 단 한 사람을 물 먹이기 위해서 법을 또 만든다나. 나쁜 사람들이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농땡이 짓을 하여 학교를 중퇴한 사람이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법무부 장관이 되고서도 자기 패거리만을 위하는 학교 일진과 같은 짓을 한다. 학교 선생님이 일진을 훈육할 때, 학교에 중퇴한 사람이 법무부 장관이 되었잖아요. 라고 항의하면 선생님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내가 이들을 보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내 참!’ 하는 탄식의 말 뿐이다.
어제 저녁은 티비 조선에서 제 2대 미스 트롯의 여왕을 뽑았다. 아내는 생기발랄한 젊은 아가씨 가수가 여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래도 잘 부르고, 인기도 있고, 정식으로 음악 공부를 하였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여왕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도 달았다. 아내의 조건을 충족한 아가씨 가수는 결선까지 올라올 동안 항상 시선을 모았다. 그러나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제주도란 후진 땅에서 조용히 살고 있다는 아줌마 가수가 뽑혔으면 싶었다. 활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음악의 폭도 넓지 않다고 평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도 양지은이라는 이 아줌마가 여왕이 되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도중에 탈락했다. 그러다가 선에 오른 가수가 학교 다닐 때에 학폭의 경력이 드러나서 도중하차했다. 그 자리에 땜빵으로 불려온 가수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자기의 콩팥 하나를 떼어 준 효녀였다. 일진의 자리를 효녀가 메꿔 주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상징처럼 느껴졌다. 방송국에서 자신의 잘못을 물타기 하기 위해서 악녀 대신에 착한 여자를 일부러 골랐는지 모른다. 세상은 모두 그렇게 뚱치며서 돌아가지 않는가.
그녀가 여왕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돌았다. 티비 조선에서 상품가치로 따진다면 아가씨가 훨씬 더 값이 나간다. 그러니 은근히 젊은 가수가 뽑히도록 후원할 것이다.
나쁜 사람이 활갯짓하고 다니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조금이나마 느끼던 터라 상품가치 운운하는 말이 그럴 듯했다. 악과 선이 훤히 보이는데도 선택을 할 때는 자기 편이라고, 자기에게 조금이나마 이득이 있다고 주저 없이 악을 선택한다. 그리고는 악이 선이라고 온갖 헛소리를 하는 것을 하루가 멀지 않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경선이라면 모든 것을 제쳐두고 실력으로만 따져야 한다. 젊음에다. 소질도 있고, 대학에서 음악의 기본까지 습득한 가수가 여왕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나는, 아내는 말했다. 제주도 가수는 효녀라며, 국민들의 호응이 너무 높아서 국민투표를 하면 누가 될지 모른다고 했다. 현재까지는 젊은 가수가 1위이고, 제주도 가수가 2위인데, 그래도 젊은 가수가 노래를 잘 하잖아 했다.
국민은 착한 효녀 가수를 선택했다. 나는 환영하면서도, 경선인데 음악의 기초가 모자라는 사람이 여왕이 되는 것은 찜찜한 마음이었다. 그래도 경선인데 동정으로 여왕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이었다. 양지은이라는 가수의 경력이 화면에 일제히 떠오르면서 나의 기우를 씻어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음악 신동이라는 말을 듣고 담임선생은 성악 공부를 권했다. 돈이 없어서 국악의 창으로 바꾸고 명창 김선주에게 배우러 제주도에서 목포까지 일주일에 세 번 배를 타고 다녔다. 이후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했으나, 성대에 결절이 생기고, 또 아버지에게 콩팥을 떼어 준 수술의 뒷끝으로 배에서 나오는 깊은 소리를 낼 수 없어 창을 포기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교사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 그의 경력이었다. 어! 이렇다면 음악의 기초는 누구보다도 탄탄하다. 이 정도면 전문 음악인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내가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우리의 지도자들은 악과 선을 구분하지 못해서 우왕좌왕하지만 국민은 무엇이 악이고 선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착하게 살아라고 훈육하였던 것이 옳았다는 믿음을 되찾은 것이 제일 반갑다.*
첫댓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벌받는다.
이런 말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많이 들어 양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보니 착한 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더 많더군요.
그런 사람이 인정 받고. 하지만 저도 믿습니다. 착하게 사는 게 옳은 것이라고.
오래전에
시내 중앙공원에서 시화전을 펼칠 때,
선생님을 뵌 적이 있고 또 인상 깊은 말씀을 전 아직 기억하고 있답니다.
좋은 날, 좋은 깨달음을 주심에
저는 오로지 무한한 감사를 표할 뿐입니다.
건강하세요^^
선생님!...
세상에는 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착한 사람이 더 많아요...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