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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blog.naver.com/gounikorea/222067016117
정재연 작가의 북한 여행기 <1> 갑자기 북한에 가고 싶어졌다!
대한민국 통일부 ・ 2020. 8. 21. 17:36
특별할 것 하나 없던 일요일 오후였다. 여느 때처럼 커피 한잔 마시며 이불 속에서 빈둥거리다 우연히 <공작>이란 영화를 보았다. 남북 관계를 소재로 한 첩보 영화였다.
북한에 관련된 영화라면 거의 다 찾아본 것 같은데 왜 하필 이제 와 이 영화를 보면서 북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던 걸까? 영화가 중반부로 넘어갈 때쯤 주인공이 북한의 어느 장마당을 지나가다 여기저기 널브러져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오열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 순간이었다. 핸드폰으로 구글 검색 창에 영어로 ‘북한 관광’을 검색해 보았다. 북한 여행이 가능이나 할까 싶은 마음이 무색하게 북한 관광 전문 여행사들이 수십 개나 올라왔다.
나도 북한에 갈 수 있을까?
호주 국적이긴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현재 사는 곳도 서울이었다. 주변에 북한에 가 봤다는 사람도 또는 북한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여행사에 직접 문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검색 창에 가장 먼저 올라와 있던 여행사에 문의했다. 국적과 현재 거주지, 직업 등을 포함한 개인정보와 함께 북한 여행이 가능한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등을 이메일로 보내고 나니 영화는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메일을 보내고 나니 심장이 벌렁거리고 얼굴이 후끈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갈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는데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두렵고 설레는 복잡미묘한 감정이었다. 만약 갈 수 있다고 하면 어떡하지? 진짜 갈까? 안 가면 그만인 여행인데도 그냥 북한이란 단어가 주는 막연한 불안감은 쉽게 떨칠 수 없었다.
월요일이 되자 여행사에서 답장이 왔다. 대답은 ‘YES’!
출생 국가나 현재 거주지와 상관없이 호주 여권을 갖고 있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말과 함께 관광 목적 등을 묻는 간단한 질문 몇 가지를 보내왔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언론인, 사진기자 등 관광 의외의 목적을 가질 우려가 있는 직업을 가진 여행자의 입국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했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북한을 간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가장 빠른 여행을 선택했다. 2주 후, 평양과 평성 그리고 개성을 방문하는 4박 5일 여정이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비자 신청을 끝내고 여행 비용을 입금하고 나니 그제야 가족들의 반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엄마는 북한에 쌀을 보낸다는 뉴스만 들어도 싫은 소리를 내는 흔한 50년대 생이다. 휴전되고 바로 태어났으니 6·25전쟁을 직접 겪으신 할머니와 그 밑에서 자란 엄마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는 더 말하지 않아도 뻔할 터.
반공 방첩 사상을 철저히 교육받고 자란 탓에 북한의 ‘북’ 자만 나와도 ‘빨갱이들’, ‘간첩’ 등과 같은 온갖 부정적인 수식어를 달지 않고서는 조용히 넘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무작정 “엄마, 나 북한에 여행 가”라고 하니 “제정신이니?”란 소리를 가장 먼저 들었다. 북한이 어딘 줄 알고 겁 없이 가느냐는 소리였다. 할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아이고, 너 다신 집에 못 와” 하시며 하소연하셨다. 친구와 직장 동료들은 하나같이 “뭐? 어디를 간다고? 북한? 그게 가능해? 미쳤나 봐”라며 가뜩이나 겁먹은 속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걸까? 2017년도에 북한에 여행 갔다 죽은 오토 웜비어 사건도 겨우 일 년 전 일이었기도 했고 많은 탈북자의 증언을 검색해서 읽고 또 읽으려니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나는 가기로 결심했다!
여행을 일주일도 채 남겨두지 않고 취소해야 할까 많은 고민을 했다. 주변인들의 의견보다 직접 북한에 다녀온 여행자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었다. SNS에 접속해 북한 여행 사진을 올려놓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전했는지, 위험을 느끼진 않았는지 등을 물어보았다.
생각보다 답변은 빨리 도착했고 답변 모두 아주 긍정적이었다.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목도리며 핫팩, 화장품, 간식 등 북한 가이드들에게 줄 선물도 한가득 사고 보니 가방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메일로 받은 고려항공 e티켓 사본을 여권에 끼워 넣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출국 당일날까지도 북한 비자는 나오지 않았다. 난 이 비행기표 하나만을 들고 북한 출발 하루 전에 베이징에 있는 여행사 본사까지 무사히 도착해야 했다.
그곳에서 다른 여행객들을 만나서 함께 이동해야 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북한 여행 시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을 설명하는 1시간짜리 미팅에 참석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고려여행사는 이 미팅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북한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꽤나 엄격한 규칙을 갖고 있었다.
출발 당일, 서둘러 김포공항으로 갔다. 입국 수속 시 최종 목적지가 평양인걸 확인하고 매니저까지 불러오는 소동이 일어났다. 결국 비자가 없어서 다시 돌아오게 돼도 항공사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각서 한 장을 써내고 나서야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북한 여행 중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
베이징에서 택시를 잡고 도착한 여행사는 구석진 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벽 곳곳에 북한 여행 관련 포스터가 붙어있었고 못해도 10명은 넘어 보이는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할 다양한 국적의 여행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곧이어 미팅이 시작되었고 나를 포함한 15명 남짓한 여행객들은 모두 긴장한 상태로 여행사 매니저의 설명을 경청했다.
여행객들은 다음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 규칙을 어길 시에는 전체 여행이 취소되거나 운이 나쁘면 북한의 법으로 처벌을 받기도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규칙을 어길 시 북한 현지 가이드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북한 여행은 여느 나라 여행지처럼 배낭 하나 메고 훌쩍 떠날 수 있거나 맛집 탐방을 할 수 있는 그런 자유나 선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철저히 일정표대로 북한 현지 가이드들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북한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지켜야 할 규칙> 1. 사회주의를 존중할 것. 북한 주민과 대화할 때 사회주의 사상에 대해 설교하지 않는다. 2. 특정 종교를 설파하지 않을 것. 성경책을 들고 입국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3. 허락받지 않은 장소에서 사진 촬영은 절대 하지 말 것. 늘 가이드에게 허락을 먼저 구한 후 촬영한다. 군인이나 공사 현장, 일하고 있는 주민들의 사진 등은 찍을 수 없다. 4. 혼자서 호텔 밖으로 나가거나 단독 행동을 하지 말 것. 항상 팀원들과 함께 이동해야 한다. 5. 북한 지도자를 존중할 것.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북한 곳곳엔 지도자의 동상이나 사진이 있는데 자칫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동작을 취해서는 안 된다. |
1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된 회의실에 앉아 있느라 머리가 슬슬 아파져 왔다. 내일 이 시간쯤이면 난 평양 땅을 밟고 있겠지? 북한은 어떻게 생겼을까? 북한 주민은 날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국말을 써도 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여행사 근처에 잡아놓은 호텔로 돌아갔다. 내일 오전에 다시 팀원들과 여행사에 모여 버스를 타고 베이징 공항으로 갈 예정이었다.
출처: https://blog.naver.com/gounikorea/222073343004
정재연 작가의 북한 여행기 <2> 북한여행,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다!
대한민국 통일부 ・ 2020. 8. 28. 10:48
눈을 떠보니 새벽 4시. 베이징 호텔 방 천장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누워있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평양에 있게 될 거란 생각에 설레는 건지 두려운 건지 나조차 알 수 없는 마음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지금이라도 맘만 먹으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하지? 북한에 가려는 게 정말 정신 나간 짓일까?
북한에서 인기 최고라는 초코파이며 맥심 커피믹스까지 꾸역꾸역 들어차 있는 가방을 쳐다보았다. 문득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포→베이징→평양까지 7시간의 여정
택시를 잡아타고 시간 맞춰 여행사에 도착하니 여행객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들인데 어찌나 반가웠던지 이제부턴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거라는 근거 없는 동지애(?) 같은 연결고리가 생긴 기분이었다.
버스타러 가는 길 ⓒ정재연
베이징 공항으로 가는 여행사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영국인 가이드가 북한 비자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손바닥만 한 파란 종이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글자가 빽빽하게 쓰여있었다. 사증을 펼쳐보니 안쪽에 내 증명사진과 간단한 신상정보가 적혀있었다.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국적란에 나를 ‘조선인’이라고 표기해 놓았기 때문이다. 조선인? 아니, 도대체 조선인이 어디 사람이지? 혹시 북한 사람을 말하는 건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북한 비자 ⓒ정재연
20분 남짓 걸려 도착한 베이징 공항에서 고려항공 수속 데스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비교적 이용하는 승객이 적어서인지 한참을 걸어가야 겨우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막상 도착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수속 카운터에 줄을 맞춰 서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앞에서 북한 사람들이 북한말로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정말 신기했다.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북한 사람들을 내 눈앞에서 보게 될 줄이야. 나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왠지 이번 여행은 아주 색다른 경험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고려항공 비행기 ⓒ정재연
눈앞에 고려항공이 보였다. JS152편. 김포공항에서 한 시간이면 갈 거리를 베이징으로 두 시간, 그리고 다시 90분을 꼬박 날아 평양으로 들어가는 긴 여정이었다. 서운한 듯 묘한 기분을 그때 처음 느껴보았다. 탑승 준비에 맞춰 고려항공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들이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 어느 나라보다 긴장됐던 순안국제공항에서의 입국심사
고려항공 기내식 ⓒ정재연
고려항공 비행은 순조로웠다. 햄버거로 나온 간단한 기내식에 포도 탄산단물을 한 잔 들이켜니 비로소 이미 북한에 와 있음을 느꼈다. 입국신고서까지 작성하고 나니 어느덧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하얀색 페인트가 칠해진 넓은 공간에 입국 심사대가 6~7개 정도 널찍널찍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 각각 짧은 줄을 찾기 바빠 보였다.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줄을 서는 내내 얼마나 긴장했는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이 찾아왔다.
평양 순안국제공항 도착 ⓒ정재연
비자증에 적힌 조선인 신분 뿐 아니라 입국신고서에 북한에 오기 전 들렀던 두 나라와 거주 기간을 적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경우는 베이징 1일과 서울 5년을 함께 적어내야 했다. ‘서울 거주’와 ‘조선인’은 왠지 북한 여행에 썩 어울리는 단어는 아닌 것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조용히 여권과 비자증을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 심사관은 나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여권과 입국신고서를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그는 곧 컴퓨터에 무언가 입력하기 시작했다.
1년 같은 10초가 말없이 흘렀다. 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일까? 손이 떨리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할머니 말씀대로 북한 당국이라면 나 하나쯤 잡아넣는 건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소 좀 다시 확인하겠습네다. 서울 어뎁니까?” 그의 첫 마디였다. 생각 외로 차분한 그의 목소리에 한없이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집 주소와 직장 주소를 확인한 후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라는 평범한 그의 인사말이 정말 반가웠다.
평양 순안국제공항 내부 ⓒ정재연
긴장이 풀리고 나서야 공항이 눈에 들어왔다. 현대적인 외관의 모습은 김포공항과 비슷했다. 공항 밖에는 북한 가이드 3명, 사진기사 1명, 그리고 운전기사 1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진짜 북한 여행이 시작되었다.
처음 본 평양의 낮과 밤
평양 시내로 들어가는 길 ⓒ정재연
창밖 너머론 끝없이 펼쳐지는 밭이 보였고 종종 자전거를 타고 가는 주민들이 보였다. 평양으로 가는 내내 북한 가이드들은 북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해 주었다. 30분 정도 달렸을까, 버스가 평양 중심부로 들어서자 이제껏 한 번도 본적 없던 평양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평양 시내 ⓒ정재연
7~80층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아파트며 높은 고층 빌딩이 길게 늘어서 있는 도시를 보고 나를 포함한 팀원들의 입이 떡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머, 여기 북한 맞아?’ 서울에 사는 사람이 높은 건물 구경 좀 했다고 입이 떡 벌어질 일은 없겠지만 북한에도 이렇게 높은 건물이 있을 줄은 몰랐다.
평양의 밤 ⓒ정재연
우리는 평양의 밤거리를 산책하며 북한의 관광명소인 김일성경기장과 개선문, 인민대학습당 등을 방문했다. 저녁이 되니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턱이 덜덜덜 떨릴 정도였다.
저녁 시간에 맞춰 식당에 도착할 때쯤엔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이미 멸치볶음부터 오징어젓갈, 배추김치까지 저녁 밥상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북한에서 먹는 첫 식사 ⓒ정재연
식사로 비빔밥이 나왔는데 잘 익은 깍두기에 비빔밥을 한 입 가득 물고 보니 여기가 서울인지 평양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고된 하루였다. 식사를 끝내자마자 호텔로 돌아가 북한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알람도 없이 눈을 떠보니 아직 5시가 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었다. 오늘 일정은 개성 판문각 방문. 내가 북한에 꼭 와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였다. 7년 전 파주에 있던 판문점에 방문했었다. 걸어서 2분도 채 걸리지 않을 곳에 서서 북한 땅을 바라보았다.
웃음기 하나 없는 북한 군인의 표정을 보며 북한에서 보는 남한의 모습도 저렇게 차가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이 지난 오늘 드디어 난 북한 쪽에 서서 남한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첫 여행 일정, 개성 판문각으로 가는 길
평양을 빠져나가니 부드럽게 밀려나갔던 도로가 다시 울퉁불퉁 거칠게 깔려 있었다. 개성, 특히 판문점 근처는 군사적 요충지가 많아 사진을 찍는 건 불가능했다. 심지어 어떤 장소를 지날 땐 군인이 직접 버스에 올라타 함께 가기도 했다.
잠시 들른 휴게소에는 통일 포스터와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있었다. “누님, 남조선 사람들도 통일을 원합네까?” 포스터를 구경하고 있던 내게 가이드가 물어왔다. “글쎄, 원하는 사람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죠?” 어젯밤 막걸리 한 두 잔 덕에 나름 가까워진 남자 가이드였다.
개성에서 볼 수 있는 포스터 ⓒ정재연
“에이, 진짜입네까? 남조선 사람들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네다.” 그들의 직업 특성상 다양한 외국인을 만나고 대화할 기회가 많아서 그랬을까, 나도 잘 모르는 이런저런 질문을 물어왔다.
“북조선 사람들은 모두 통일을 원해요?” 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대답했다. “고조 우리는 모두 통일을 원합네다. 우리가 원래 한 민족 아닙네까?”
버스는 천천히 판문각 입구까지 들어갔다. 긴장감이 돌았다. 군인 사진 역시 절대 찍을 수 없다는 엄격한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포함한 팀원 모두 긴장한 채로 주변만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우리 쪽으로 군인이 걸어왔다. 그의 무표정한 표정을 보고 있노라니 7년전 파주 판문점에서 보았던 군인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팀원 중 가장 덩치가 큰 독일 사람의 뒤에 섰다.
“고조 유로프(유럽) 사람들만 있을 줄 알았는데 다르게 생긴 사람도 보입네다.” 군인의 첫 마디였다. 그는 우리를 한번 쓱 훑어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내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남한에서 왔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군인이 껄껄껄 웃기 시작했다.
“아, 기맀습네까? 아이고 반갑습네다. 잘 오셨습네다. 거 악수나 한번 합시다.” 얼떨결에 앞으로 나가 악수를 하니 주변에서 박수 소리와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쥐죽은 듯 고요함만이 흐르는 판문점
그는 우리 팀을 정전협정조인장에 이어 판문각까지 안내해 주는 역할을 맡았다. 십여 분 정도 설명을 들은 후 드디어 판문각을 향해 걸었다. 눈앞에 판문각이 서서히 형태를 보이기 시작하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7년 전 바로 북한 군인이 서 있던 그 자리에 서서 판문점을 바라보며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이곳에 오면 많은 생각이 들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서서 남한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이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북쪽에서 본 남쪽의 판문점도 쥐 죽은 듯 조용할 뿐이었다.
개성에 위치한 판문각 ⓒ정재연
“이렇게 북조선에서 남조선을 보니 기분이 어떠십네까?” 군인이 내게 물었다.
“좀 묘하네요. 여기까지 오는데 비행기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7시간이나 넘겨 걸렸는데 막상 이렇게 보니 걸어서 2분도 안 될 거리에 남한이 있었네요. 바로 걸어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게 말입네다. 고조 통일이 빨리 되야디 안캈습네까?” 그는 웃으며 내 말에 대답해 주었다. 그와 손을 잡고 사진을 함께 찍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우리가 손잡고 있는 사진을 연신 찍어댔다.
“제 이름은 000입네다. 저를 잊지 마십시오. 통일되면 꼭 다시 만납시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는 다시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 두 판문점을 오고 갈 수 있다면, 서로를 빨갱이나 적, 남조선이나 북한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서울 사람, 평양 사람, 함경북도 사람이라고 부른다면 통일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오지 않을까?
북한 군인과 한 컷 ⓒ정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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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번째 북한여행] 미션1: 평양에서 미용실가기
정재연
https://youtu.be/LQTsF6T2z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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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특목고가 있다? 스카이캐슬 아이들의 공연을 함께보시죠~
정재연
https://youtu.be/gX1K5W_U0Z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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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통일부UNITV
https://youtu.be/JHeJAf8vEL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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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히 잘보앗읍니다...
북을 악마화하는 미국은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 팩스어메리카를 구현
하고 싶겠지만 그런 패권은 공존과
상생을 도외시하기 때문에 망한다
노자 말씀이 문밖을 나서지 않아도 세상일을 알 수 있다고 하던데~
요즘은 집안에서도 세상일을 알 수 있고 또,
옳바르게 알 수 있는 力도 길러야 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