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지도부가 지역 파벌들에 의해 조직된 체계적 기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을지라도, 어찌되었든 자신들의 명령이 어떻게 수행되는지는 신중하게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당조직의 명백한 타성과 무능, 그들이 "관료주의"라고 부르던 습성이 만연한 걸 확인하고 절망했죠. 모스크바가 보았듯이 31-32년의 곡물 수급 캠페인, 스타하노프 운동, 확인 및 교체 캠페인을 비롯한 정치권의 명령들은 지역 당조직에서 미달에 관한 구체적 처벌로 위협을 주어야만 하는 시늉이라도 보여주었습니다.
일단 지역에서는 대체로 구 트로츠키주의자 및 부하린주의자의 소행이라고 돌리면서 적당히 면피하고 있었죠. 그러나 제2차 5개년 계획이 끝을 향해 가면서 축적된 문제들이 점점 겉잡을 수 없이 속출하자 중앙의 몇몇 지도부는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됩니다. "어? 뭐야? 뭔 똥이 이렇게 많지? 이거 진짜 당조직들이 적들한테 포섭당한 건가???"
1934년, 스탈린은 "중앙위 관료들을 포함하여 책임있는 모든 관료들"을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새로 만든 당통제위원회(KPK, Komissiya Partiinogo Kontrolya, 카페카)를 창설하는 연설을 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에는 "당과 소비에트의 법이, 그들 보라고 쓰여진 것이 아니라 바보들 보라고 쓰여진 줄 아는" 자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에 이들은 굉장히 모호한 위치에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전임자와 다른 점은 우선 지역 당조직으로부터 제도적으로 독립된 상태에서 독자적인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권한이 부여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지시들은 지역 당 위원회의 참여 하에 받았지요. 그들은 주 공산당 서기국을 포함한 지역의 고위 관료들까지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나 그들의 활동이 주 공산당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간주될 경우 역공을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카페카의 전권대사들은 자신들의 업무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했죠. "저는 어떤 것을 일반적 관계로 간주해야하고 어떤 것을 일탈로 간주해야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라고 대표가 말한 적도 있었죠. 지역 지도자들은 이걸 보면서 "ㅋㅋ아무도 나를 막지 못하셈 ㅋㅋ" 하면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피상적인 조사만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7차 당대회에서 카바코프(앞 줄 왼쪽에서 두번째)
얄궂게도, 위원회가 확장될 수록 주 공산당이나 하위 당 조직에서 새로운 인원들이 보충되었습니다. 결국 "다 통할 수 있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죠. 몇몇 주의 공산당은 위원회의 명령을 배포할 언론 등에 대한 접근권을 요리조리 막아버리기도 합니다. 몇몇 위원회는 자기들끼리 무기한으로 감찰을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스베르들롭스크 주에서 이런 것들은 이제 관례화 되어버렸죠. 각각의 지역당 회의 전에, 주 공산당의 지도부 몇몇이서 주 공산당으로 누가 올만한 사람인지, 누가 제물로 헌납될지에 대해 미리 이야기를 맞추고 들어가곤 했죠.
그래도 당통제위원회가 완전 호구는 아니었습니다. 어찌되었든 그럭저럭 지역의 파벌에 눈엣가시처럼 남게 되었죠. 몇몇 조사의 결과로 오블리스폴콤의 경제 행정에서 부조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자신들 파벌의 핵심 인물들의 충성을 위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이 까발려진 것이다. 주 공산당은 미련을 갖지 않고 즉시 오블리스폴콤 경제 관료들의 목을 쳐버리고 사태를 덮으려고 합니다. 조사는 더 진행되지 않았고 착복 수준에서 사태가 정리되었습니다. 1년 반 뒤, 주 공산당의 "관료주의적 타성"이 스타하노프 운동과 확인 및 교체 캠페인에서 만연해있다는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 물증들은 예조프에게로 들어갔고 카바코프가 소환되어 중앙위 조직국에서 논의가 되었습니다. 이 당시 속기록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만 최고위 지도자들에게 카바코프가 엄청 쪼인트 까인 것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뭔가 모스크바 높으신 분들 만나면 이런 느낌일 것 같네여
카바코프가 우랄로 돌아왔습니다. 주 공산당의 높으신 분 두 명이 목이 날아갔고 "사보타주"에 대한 체포의 물결이 한 번 휘몰아쳤습니다. 그들은 다른 누구보다 크게 당의 총노선을 보위하고 있다고 소리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숙청이 몰아칠 때 자신들의 사람들도 감찰이 나왔을 때 잘라버리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되었죠. 일단 조금 타격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전략은 잘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당통제위원회는 주 공산당의 몸통들 대신 라이콤과 고르콤의 깃털들만 족쳤었죠. 그러나 이제 그런 중간 관료들도 희생양 만들기의 이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스베르들롭스크 주의 문서고가 슬슬 그런 재판 사례들로 빼곡해지고 있었습니다. 우랄마쉬는 보여주기식 재판이 잦기로 악명이 높았죠. 제철업에서도 온갖 뻘짓과 병크들이 잦았고, 앞에서 강조했듯 제2차 5개년 계획에 자리한 훨씬 복잡하고 구조적인 요소들이 만들어낸 문제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건 항상 일선 담당자들이었죠.
1936년 초, 당통제위원회는 지역 관료 조직에서의 재판 현황에 대해 조사를 시행합니다. 다음과 같은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재판 기록에 대한 분석은, 주에서, 특히 스베르들롭스크와 사라토프 지역에서의 사법업무가 완전히 근거 없이 사람들을 체포하고 유죄를 선언했으며, 지도부의 업무능력으로 기인한 문제나 단순히 업무 교육만 하면 해결될 문제로 노동자들에게 유죄를 선언하곤 하는 행태, 즉 별거 아닌 일을 구실로 대중 억압을 자행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슬슬 중앙에서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자세한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중앙 지도자들은 지역 관료들이 자기 보호, 면피 용으로 억압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광범위한 폭력을 쓰는 것은 주저했습니다. 1936년 5월 말, 소브나르콤의 승인을 받은 위원회의 결정은 "행정적 수단(억압)은 국가의 기율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 합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대신에 채택된 것은 "대중에 의한 혹독한 비판"이었죠.

1934년 말에 있던 세르게이 키로프 암살로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딱지는 여러모로 편리한 것이 되었습니다. 제2차 5개년 계획 동안 수없이 터지는 사건/사고들을 보면서 그것을 과거 반대파들에 의해 자행된 반혁명 책동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큰 논리적 비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중앙 지도자들이 이러한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이 광범위 했다고 믿었는지는 여전히 확실하지는 않다고 하네요. 대숙청이 막 시작하기 직전, 프라브다에서는 엄중한 경계를 주문하였지만 편집진은 "반혁명종자들은 이미 먼지 속으로 가라앉았고" "심각한 수준의 지지자를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애매한 태도로 인하여 "라벨링"이 만연했습니다. 우랄마쉬에 있던 재판에서 피고는 그들의 출신계급을 숨겼다는 이유로 기소당했고, 2심에서 피피고들은 독일 첩자로 또 기소당했습니다. 모스크바가 키로프 암살 이후 "인민의 적"들을 찾아내라고 지시한 이래로 라벨링은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지역 관료들은 그들 "개인의 적"들을 제거하기 위해 주저없이 "인민의 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였습니다. 혹은 자신들의 조직의 무능을 덮는 데도 잘 이용했죠.
재밌게도 카바코프를 비롯한 주 공산당의 최고 지도부는 중하위 관료들이 이러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라벨링"은 자신들만의 무기가 되어야만 했지 너도 나도 막 쓰는 것이 되면 곤란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들이 피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죠. 중앙 지도자들도 이런 현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저 구 반대파, 당의 이질적 요소들을 제거하는 것만을 원했지 아무 때나 트로츠키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그들이 바라던 것이 아니었죠.
1936년, 중앙위는 억압과 숙청의 수준을 어느 정도로 할 것인가에 대해 분열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키로프 암살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들로 "인민의 적"들이 기소되고 처형되는 일은 많이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이 지역에서 자의적으로 자신들의 독자적 이익을 위해 자행되는 "희생양 내세우기"인 것도 명백했죠. 여러모로 답보상태였습니다. 지역의 파벌들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잡는 데 어떤 신박한 노력을 더 기울여야할까? 제2차 5개년 계획들의 문제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할 것인가?
그러나 그 해, 생산의 급격한 감소는 무언가 정치적인 대지진이 일어날 것을 암시했습니다. 광범위한 계획 미달과 숨겨진 "인민의 적"을 찾아내라는 중앙의 지시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강렬한 화학적 결합을 일으킨 것입니다.
첫댓글 트로츠키는 허구헌날 털리는구나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시작인가 ㄷㄷ
오늘도 사용하면 좋을 듯한 짤을 조공하옵니다
헐 저 드립의 원본이 이건가 보군요 처음 알았넹
@첝 자막놀이의 원조격인 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니까 이 시리즈의 요체는 대숙청의 본질은 "대대적인 사회개혁운동" 이었고, 그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정치적 갈등과 대결이 있었으며, 그 갈등은 단지 일방적으로 스탈린이 아랫것들에게 "죽을 것이다!" 라고 해서 이뤄지는게 아니라는 것, 그렇게 광범위하게 죽을 것이다 를 시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과 진통이 있었던 것인가를 보여주는 부분이죠. 이러한 요지가 잘 전달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다만 여러번 말하지만 그래서 그러한 폭력적인 방식의 사회변혁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쏘련, 나아가 러시아로부터 이어지는 아시아사회의 낙후성 같은 부분을 말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서구 자본주의자들의 아마이한 자유주의가 위선적이라는 것은 김치화된 몽키버전으로 겪고 있을 지언정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저러한 폭력적 방식이 그에 대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는건 역사가 보여주는 것... 물론 스탈린동지가 영생하셨다면 달랐겠지만!
대개
폭력 = 일방성
이라는 단순도식을 사람들이 굉장히 뿌리깊게 믿고 있는데... 심지어 조선노동당에서도 그딴 식의 단순논리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올해 여러 일을 겪으면서 아무리 허접하게 보여도 사람인 이상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라는 걸 느꼈는데, 하물며 저런 위치에서 밀고 당기고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죽을 것이다!" "죽어주겠습니다!" "으악!"으로 끝나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실로 아마이한 것이죠
@첝 살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 것 만으로도 만만한게 없죠. 저렇게 아마이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자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한다' 같은 말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할 것임...--
깊이 뿌리박힌 인식이라는 것을 바꾼다는 것은 실로 어렵다는 것은 80년전의 스탈린동지만 느끼는 것은 아닐 것 같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