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은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역사를 잊은 몰 역사의식에 사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입니다. 최근 전국 초중고생 3919명을 대상으로 ‘3‧1절 관련 학생인식에 관한 조사’를 한 결과 40%가 3‧1절의 의미를 모른다고 하는 사실을 보아도 그 단적인 실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삼일운동의 거사의 중심에 기독교인들이 앞장섰다는 사실을요. 33인중 16명이 기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가장 피해와 희생을 많이 당한 곳이 교회였고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교회가 수원에 가면 제암리감리교회가 있는데 31운동당시 이 교회 교인들을 예배당안에 두고 일제 아리타 도시오 중위가 지시하여 23명을 총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32가구를 불지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운동은 일시적인 감정이나 흥분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성경에 근거한 의의 분노요 의의 실천운동이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3,3 독립단의 공고문이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거기에 “성도는 마일 성경을 읽되 월요일 사10장 앗수르를 멸함으로 그날에 남은 자가 돌아오고 무거운 명에가 벗겨지는 자유와 승리, 화요일,렘12장 악한 나라를 반드시 멸하고 내 백성을 건져낼 것이라는 구원의 소식, 수요일, 신28장 말씀에 순종하는 백성에게 축복하시고 거역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임한다는 사실, 목요일, 아가 5장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영적사랑을 조국을 사랑하는 노래.금요일, 사59장 백성의 좌악을 지적하고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할 것이라는 말씀. 토요일, 롬8장,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 된 하나님 자녀를 그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약속 등을 읽을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즉 성경에 근거하여 이것을 묵상하며 민족의 독립을 차근차근 준비해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삼일절 노래 가사에도 ...이 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3.1절 노래“기미년 3월 1일 정오 ...>
또 가슴뭉클한 숨겨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왜 3.1에 이 거사를 행했을까입니다
그이유는 3.3일은 고종 장례일인 국장이 있으니 이날 하는 것은 임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점, 3.2은 또 왜 아닐까요? 그 날이 주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세심하게 성경중심의 거사였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의식은 물론 투철한 하나님 중심의 성경적 가치관을 가진 소수의 기독교인들-전 국민의1.5%-에 불과했지만 민족대표는 무려 33인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습니다.(그밖에 천도교인15명 불교2명) 가히 그 정신은 우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신앙의 위인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지도자가 있는 민족의 희망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1919년 서슬 퍼런 일제치하에서도 독립을 외쳤던 그 놀라운 에너지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었다면 95년이 지난 우늘 우리에게 어떤 독립이 필요할까요?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위해 그런 지도자의 성공적인 계승을 보여주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는 모세의 지도력에 우선 순종한 사람입니다. 미래를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치열한 전투의 현장에서 생명바쳐 충성한 일등공신으로서의 사령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를 소개할 때 그저 그렇게 소개하지 않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종(에베드 예호와) 모세라고 기록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하인이요 노예에 해당되는 거룩한 노예였습니다. 즉 자기의 뜻, 생각대로 하나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지도자는 먼저 이렇듯이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그것도 철저히 거룩한 멍에를 진 노예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종’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수종자’라고 했을 때 수종자는 ‘에베드’로 부르지 않고 ‘메샤레트’라고 여호수아를 수식하고 있습니다. 메샤레트라는 단어는 섬기다 봉사하다의 ‘샤라트’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모세 곁에서 보좌하는 보좌관이요 작전 사령관이었습니다. 즉 그는 모세곁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모세와 여호수아 사이의 생전에는 한번도 에베드-하인, 노예- 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단 한번 ‘에베드’를 사용했는데 그곳은 그의 최후죽음을 말할 때만 수24:29에서 여호와의 종 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수종자라는 뜻의 ‘메샤레트’는 후계자, 돕는자라는 의미입니다. (왕상 19:21 엘리야의 제자 엘리사처럼) 하나님-->모세-->여호수아에게 지도력이 계승되고 있는 순간입니다. 눈의 아들 이전에 모세의 수종자, 보좌관이 먼저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1)어시스트의 달인입니다. 1절
일찍이 아말렉전투에서 모세의 명을 받들어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가져오게 한 일등 공신입니다. 좋은 인물, 좋은 영적 군사가 되려면 이런 자기가 무슨 일을 규모없이 마구 하는 자가 아닙니다. 밑바닥에서 섬기는 일부터 배워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 훈련부터 되어야 합니다. 수종자란 말은 조수역, 본래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을 말하는 용어입니다. 조연을 잘해야 주연급이 되는 법입니다. 조교를 잘하면 교수자리도 얻게 됩니다. 남의 도움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남을 돕는 자리에 서기 바랍니다. 주님을 나를 위해 주님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자기도 잃고 주님도 잃고 맙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 무엇 주님께 바치리이까 내몸을 내 시간을 내 재능을 내 물질을 성별해 드리면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고 그에게로 들어가서 거하심으로 한 시대 그 역사의ㅡ주역으로 사용하십니다. 여호수아는 눈의 아들이라고 했지만 그의ㅡ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는 모세를 잘 만났습니다. 그를 가까이서 잘 섬겼습니다. 섬기는 자가 위대합니다. 섬겼더니 지도자를 계승받았습니다.
2)모세보다 더 회막을 사랑할만큼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출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과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회막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세운 특별한 성막으로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장소입니다. 회막에는 만나기 위해 왔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치 못하면 성막의 주님을 경험치 못한 방문객으로 왔을 뿐 예배자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출 40:34구름이 회막에 덮히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 이곳에서 모세가 떠난 뒤에도 홀로 남아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세이상으로 더 기도했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성막을 위한 앞선 준비자가 되엇습니다. 교회는 담임목사이상으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성도들이 10%이상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의 불신앙과 불순종의 기나긴 터널을 뚫고 나와 여호수아가 머물렀던 회막과 같이 지도자의 빈자리, 성도들이 떠난 그 자리를 채우는 숨은 봉사자가 되게 하소서
3) 말씀을 묵상하는 자였습니다. 8절
묵상이란 골똘히 생각하다, 말씀을 꼭꼭 씹어먹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소가 되새심질을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소는 위가 4개입니다. 씹은 것을 최종적으로 삼킬때까지 씹는 것을 쉬지 않고 계속 반복합니다. 소는 음식물 풀등을 일단 삼켜 첫째 위장에 넣고 그 보관된 음식물을 다시 입으로 보내고 천천히 씹습니다. 이렇게 먹었던 것들이 충분히 소화가 되면 우유로 바뀝니다. 어쩌면 말씀 묵상 원리도 이와 같습니다. 진리(음식)->입으로->생각으로-> 마음으로 ->믿음의 결단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되새김질해야 소의 풀이 우유로 질적으로 바뀌는 것처럼 말씀을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하여 실행에 옮길 때 여러분의 삶의 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을 언제든지 변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 강하고 담대하라고 3번씩이나 반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으면 두려움을 이깁니다. 마음에 담대함을 주십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왜 우리는 이런 지도자의 계승을 원합니까?
그는 천체의 기상도를 바꿀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능력있는 기도자였습니다.
수10:12-14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또한 모세 다음으로 인도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지도자의 계승을 충실히 이행하였습니다. 즉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있는 동안 여호와를 잘 섬기게 하는 선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수24: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는 모든 일을 아는 자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신앙의 1대 2대 3대 그리고 모든 후손에게 신앙의 계승이 이루어지도록 하십시오. 역사에 옷점을 남기지 않도록 교회 지도자의 자랑스런 계승이 이어지게 하십시오.
이를위해 오늘 3.1절 기념주일에 투철한 신앙관과 분명히 물어야 할 질문, 그것은 3.1운동의 고귀하고 숭고한 정신이 면면히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계승한 정신을 빛바래지 않고 유지하고 있느냐입니다. 여호수아의 기도로 해와 달의 움직임이 바뀐 것처럼 동 시대를 살고 있는 자와 여러분의 마음의 영적 기상도가 바뀌어지고 이 도시와 이 민족의 영적 기상도가 바뀌어질 수 있는 기도응답을 가진 하나님과 친근한 사람이 되십시오.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날동안 적어도 여호수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았던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겼다고 한 말씀과 같이 하나님 중심의 지도자를 만들어가는 제 2, 제3의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종 모세를 그는 모세의 수종자로 그 곁에서 섬기고 회막에서 끝까지 빈 자리를 채우고 평소 말씀을 늘 묵상함으로 가능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수아시대는 여호수아와 그 당시 생존한 장로들까지는 괜찮았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이후에는 어떤 다음세대가 교회와 이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계승해야 할 것인지를 준비함으로써 부끄럽지 않은 역사와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